[중꺾정 58화] 서울시장보다 더 중요한 지방의회. (이소영/대구대 교수) (⏳4분)
22대 국회가 개원했습니다. 유권자의 소중한 한 표, 한 표를 읍소하며 당선된 300명의 국회의원이 과연 유권자를 위해 제대로 일하는지 지켜보고 감시해야 할 때입니다. 이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데 안하는지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달라지니까요.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는 칼럼을 통해 유권자의 시각에서 22대 국회와 정치를 비평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정’치개혁이니까요.
지방정치의 핵심은 지방의회
지방선거가 다가오면 우리의 관심은 늘 비슷한 곳에 모인다.
‘서울시장은 누구?’
‘경기도지사는?’
‘부산시장은?’
선거 초점은 항상 몇몇 지역 광역단체장이 누가 될 것인지, 그 결과가 향후 중앙정치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국한된다. 선거는 전국적 정치 이벤트로 소비되고, 지역 주민의 일상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지방의회는 거의 주목받지 못한다. 지역 주민의 삶을 결정짓는 조례를 만들고, 예산을 심의하고, 행정을 감시하는 기관이지만, 지방의회는 평소에는 물론이고 선거철에도 ‘그림자’처럼 취급되고 있다.
이러한 무관심은 단순한 관심 부족의 문제가 아니다. 지방의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 지방자치의 구조적 취약성을 보여주는 신호이다. 이는 한국 민주주의의 하부 구조가 약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다시 지역의 생존 전략이 사라지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지방 도시의 쇠퇴, 청년 유출, 인구감소와 같은 복합 위기 앞에서 지방정치의 중요성은 과거보다 훨씬 커졌지만 정작 이 중심에 있어야 할 지방의회는 여전히 무력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방의회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지역에서 좋은 정책이 나오기 어렵고, 주민의 요구가 정책으로 이어지기도 힘들며, 지방 행정에 대한 감시와 견제가 제대로 작동하기도 어렵다.

왜 한국의 지방의회는 이렇게 약한 것일까?
한국의 지방의회가 약한 가장 큰 이유는 제한된 자치입법권과 ‘강한 집행부-약한 의회’라는 구조적 불균형에 있다. 지방의회는 자치입법권, 예산심의권, 행정감사권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 행사 범위는 매우 제한되어 있다. 조례는 상위 법령안에서만 가능하고, 예산은 단체장이 제출한 틀을 넘어서기 어렵다. 반면, 단체장은 거부권, 선결처분권, 공무원 임면권 등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지방정부에서 단체장과 지방의회 다수당이 동일 정당인 상황에서 이러한 막강한 단체장의 권한은 지방의회의 독립성을 기대할 수 없게 만든다.
이러한 구조 때문에 지방의회는 정책 경쟁의 장이 아니라 집행부 결정을 승인하고 추인하는 공간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최근 광역의회에서 집행부 발의 안건이 부결되는 사례는 드물다.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지 않는 곳에서 풀뿌리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는 힘들다.
여기에 더해 지방의회 의원 공천 구조 역시 지방의회를 약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이다. 대부분의 지방의원은 정당 공천을 받아야 하고, 공천 과정에서 지역 국회의원이나 시‧도당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이 때문에 지방의원은 주민보다는 공천권자를 의식하게 되고, 의정활동보다는 행사 참석, 조직 관리, 정치적 줄대기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밖에 없다.
지방정치가 중앙정치의 하위조직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지방정치를 하고자 하는 이들 또한 지역을 위한 정책 구상보다는 중앙정치권으로부터 어떻게 인정받을 것인가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공천구조는 정책의 자율성을 약화시키고 정책적 전문성을 가진 인재가 지방정치로 유입될 수 있는 통로를 막는다. 결국 중앙의 정치권력이 중심이 되는 공천 구조가 지방정치를 한없이 가볍고 의미 없이 만드는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지방정치에서 정치적 다양성이 구조적으로 차단되어 있다는 점이다. 현재 지방선거제도는 거대 양당 중심의 의회 구성을 고착화시키고 경쟁이 사라진 지방의회에서는 정책토론과 견제 기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더불어, 지역정당과 같은 지역 기반의 정치 조직을 법으로 허용하지 않고 있는 점도 지역 고유의 의제와 정책 실험이 지방의 제도권 정치 내에서 이루어지기 힘들게 만드는 요인이자, 중앙정치의 노선과 정치 일정에 지방정치가 종속되는 중요한 원인이다.
이렇게 약한 지방의회는 결국 주민참여의 위축으로 이어진다. 주민의 의사를 받아 충분히 논의하고 제도화해야 하는 지방의회가 약하기 때문에 주민참여제도는 지방의회와 연동되지 못하고 정책으로 이어지지도 못한다. 결과적으로, 지방정치에 참여해도 바뀌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주민들이 지방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지방정치과정에 참여할 동기를 가지기 힘들다.

지방의회를 살려야 지방도, 민주주의도 산다
지방의회를 다시 세우지 않고는 지방정치의 정상화도, 지방자치의 발전도 어렵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방향 전환과 개혁이 필요하다. 우선 자치입법권을 확대하여 지방의회가 지역 실정에 맞는 정책을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 복지, 환경, 도시계획 등 지역문제는 중앙정부보다 지방정부가 훨씬 더 전문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지방의회가 단체장으로부터 독립적인 정책기관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감시 및 견제 장치와 자율적인 예산과 조직 운영을 강화해야 한다. 현재의 막강한 집행부-약한 의회 구조를 개선해야 의회가 실질적인 정책기관이 될 수 있다.
지방의회를 다시 세우기 위한 또 하나의 핵심 과제는 지방의회에 전문성 있는 인물들이 유입되어 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방의회의 권한이 개인 정치인의 재량이나 정당 조직에 종속되지 않도록 만드는 제도개편이 요구된다. 특히, 지방의원 공천 구조에 대한 재검토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공천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지방의회는 주민을 대표하기보다는 공천권자를 의식하는 정치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지방의회의 다양성 확보 또한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지방의회 선거에서 비례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선거제도 개편이 필요하다. 그뿐만 아니라 지역정당 설립을 지방의회 선거에 한해 제한적으로라도 허용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될 필요가 있다. 다양한 정당과 인물들이 의회 안에서 지역의 문제를 놓고 정책 경쟁을 벌이는 것만으로도 지방정치는 활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방의회의 정책 의제를 주민과 직접 연결하는 제도적 통로가 필요하다. 주민발안, 주민투표, 주민참여예산 등 다양한 참여제도가 있지만, 이 제도들이 지방의회와 실질적으로 연계될 때 의회는 숙의와 정책 조정의 장으로 기능할 수 있다. 주민의 요구를 정책으로 만들어내고 제도화하는 책임 있는 정책기관이 될 필요가 있다.

지방의회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 질문을 던질 때
지방정치를 중앙정치의 하위버전으로만 인식하는 한, 지방의회는 계속 그림자로만 남을 것이다. 지방의회는 지방 사무의 단순한 의결기관이 아니라 지역 민주주의의 핵심 인프라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고 정책의 지속성을 책임지는 곳이 바로 지방의회이다. 지방의회가 약화되어 있는 이러한 구조를 계속 방치하면 한국 민주주의는 우리 삶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무너지게 될 것이다.
이제는 ‘누가 단체장이 될까?’가 아니라 ‘우리 지역의 지방의회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할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