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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이 글은 총 10편으로 기획된 ‘힝고의 스페인 유람기‘ 중 5편~7편을 담은 글입니다. (편집자) [/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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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세비야의 구시가지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 도시들은 남부 유럽 특유의 기후 및 이슬람과 기독교 문화의 융합 등으로 인해 상당히 풍성한 볼거리를 자랑한다. 특히 세비야의 구 시가지와 그라나다의 알바이친 지구가 그러하다. 소위 ‘올드 타운(Old Town)’ 으로 지칭되는 이곳의 건물들은 최소 200년에서 300년 이전에 지어진 주택들이 상당수이다.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오래된 골목들이다(차량 진입도 어렵다).

세비야의 구시가지 주택들이 이렇게 고풍스러운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다름이 아닌 스페인의 건축법 때문이다. 스페인 건축법은 법률에서 지정한 ‘역사적 가치가 있는’ 특정 건축물을 수리하거나 리모델링할 때 그 건물의 외관(Fachada, 파차다)을 절대로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다. 이는 톨레도나 그라나다 등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즐비한 도시의 구 시가지는 모두 그러하다.

그래서 바르셀로나, 세비야나 그라나다에서 여행을 할 때, 구시가지의 숙소에서 머물게 되면 마치 중·근세의 스페인 한복판에 들어와 있는 느낌을 만끽할 수 있다. 반면 각종 시설의 심한 노후화로 인해 상당한 불편함을 겪을 수 있다. 물이 새거나 잘 빠지지 않는 일은 예사이며 엘레베이터 속도는 느려터졌고, 심지어는 심심찮게 고장이 나기도 한다. 모두 장단점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 힝고
ⓒ 힝고

그렇다면 이렇게 불편한 동네에는 현재 누가 거주하고 있을까? 세비야의 구시가지는 시 동북부의 산 루이스-알라메다(San Luis-Alameda) 지구부터 시 중심부의 세비야 대성당과 알카사르 요새까지 이어진다. 이 지역은 대도시 대부분이 그렇듯이 1960년대까지 저소득층 노동자들의 거주지였다. 특히 60년대 이후 구시가지 외곽이 집중적으로 개발되면서 저소득층의 유입은 더욱 빨라졌고, 80년대 세비야 구시가지는 범죄와 마약의 온상으로 전락했다.

여기까지는 우리나라 구도심의 슬럼화 과정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그러나 80년대 후반부터 스페인은 우리와는 조금 다른 길을 걷는다. 민간 자본이 자연스럽게 침투하는 식이 아닌, 정부 주도의 ‘젠트리피케이션’(낙후 지역의 외부 자본 유입으로 주거비가 상승해 원주민이 이주하는 현상)이 시작된 것이다.[footnote]어쩌면 정부 주도이므로 ‘젠트리피케이션; Gentrification’ 이라고 부르면 안 될지도 모르겠다.[/footnote] 시작의 명분은 단순했다. 범죄와 마약의 창궐을 막겠다는 것이었다. 곧 대규모 경찰력이 투입되어 많은 클럽과 펍이 폐쇄되고, 노숙인들은 강제로 쫒겨났다.

이와 동시에 스페인 정부는 당시 유럽경제공동체의 기금 지원을 받아 대규모 도심 재개발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민간 자본이 따라 들어온 것은 이 뒤였고, 결국 1990년대까지 저소득층 거주자들은 매우 ‘합법적으로’ 구 시가지에서 쫒겨났다. 대신 이곳에는 여행객들을 위한 레스토랑과 젊은 층이 몰리는 펍, 새롭게 포장된 광장이 들어섰으며 현재 세비야 구시가지에는 그 불편한 시설과 교통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중산층이 거주하고 있다.

ⓒ 힝고
ⓒ 힝고

이는 80년대부터 90년대말까지 집권했던 우파 국민당의 정책에 기인한 것이다(쫒겨난 라호이 전 총리의 바로 그 국민당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스페인에서는 한국과 같은 대규모 상업 임대료 분쟁이 오히려 적었다. 예전에 구시가지에서 살던 저소득층은 대부분 과달키비르 강 남쪽의 트리아나 지구로 이주했으며, 현재 트리아나 지구는 과거부터 살던 무어인들과 저소득층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일부 역사 지구를 제외하면 동네 분위기 역시 상당히 을씨년스럽다.

이처럼 스페인의 도심 재개발은 현대 한국과는 달리 철저히 정부 주도로 시행되었다는 차이가 있다. 다만 그 이후 제대로 된 인프라 정비가 없었다는 점과 (세비야는 아직 지하철 노선이 1개, 트램은 고작 5정거장짜리 노선 1개 뿐이다.) 90년대 중반부터 급증한 여행객 수요로 인해 이전과는 다른 양상의 분쟁이 발생하고 있다. 현재 본격적인 도시재생 정책을 추진하려 하는 서울특별시가 참고할 만한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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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쓰러져 가는 나사리 궁전에서 유럽의 민주주의를 논하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이슬람 문화는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에서 그 정수를 맛볼 수 있다. 알함브라 궁전은 헤네랄리페 정원(여름 궁전), 나사리 궁전, 카를로스 5세 궁전, 알카자바(요새)의 4개 구역으로 나뉘는데 그 중 나사리 궁전은 천년 이슬람 제국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우리는 몇 년 후 나사리 궁전을 영원히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건물이 점점 기울어져 무너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래 사진을 보면 눈에 띄게 기운 모습을 볼 수 있다.

눈에 띄에 기울어진 나사리 궁전 ⓒ 힝고
눈에 띄에 기운 나사리 궁전 ⓒ 힝고

가만히 서 있던 건물이 쓰러져 가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사실상 가장 큰 이유는 이 귀중한 문화 유산이 알함브라 궁전 전체의 지반 침하로 인해 점점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체 왜 멀쩡한 궁전이 무너지고 있단 말인가? 이는 나사리 궁전 바로 옆에 있는 거대하고 위엄찬 새 건축물인 카를로스 5세 궁전 때문이다. 이 궁전이 주변의 건물들에게 지나치게 하중을 전가한 탓에 엉뚱한 나사리 궁전이 피해를 입은 것이다.

‘사코 디 로마’ 를 일으킨 뒷배경이기도 했고, 르네상스가 끝장난 이후 유럽 곳곳에서 반달리즘을 일으키고 돌아다닌 카를로스 5세 답게 그가 알함브라 궁전을 훼손한 흔적은 한두 군데가 아니다. 아라베스크 문양 곳곳을 지워내고 ‘플루스 울트레(PLVS VLTRE)’ 라는 스페인의 국시(國是) 를 적어 놓는가 하면, 기독교의 승리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인 자신의 권위를 대대적으로 선전하기 위해 카를로스 5세 궁전을 지은 것이다.

카를로스 5세 궁전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CC BY SA) https://en.m.wikipedia.org/wiki/File:Palacio_de_Carlos_V_01.JPG
카를로스 5세 궁전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CC BY SA)
구글 위성 지도로 본 '찰스 5세 궁전'과 '나사리 궁전'
구글 위성 지도로 본 ‘찰스 5세 궁전’과 ‘나사리 궁전’

이렇게 권위를 세우기 위해 크고 아름다운 상징물을 내세우기 좋아하는 것은 과거 절대왕정 시대의 왕들로부터 20세기 초 파시즘 지도자들에게 그대로 이어졌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는 로마 한복판에 거대한 대로인 ‘황제들의 거리’ 를 건설하는 바람에 로마 시대의 수많은 역사 유적들이 발굴조차 어려운 환경에 놓이게끔 만들었으며, 독일의 히틀러는 베를린에 거대한 총통궁을 건설하는가 하면 궤간이 3m에 이르는 육중한 철도 ‘브라이트 스푸어반; Breitspurbahn’을 계획하기도 했다. 북한의 김일성 역시 아주 좋은 예시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크고 아름다운’ 상징물에 집착하는가? 그 이유는 명징하다. 이들은 애시당초 민주주의적 정당성이 부족한 채 권력을 잡았고, 그랬기 때문에 오직 권위에 의해서만 자신의 권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치가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총통이 되었다는 잘못된 정보가 우리나라에도 많이 퍼져 있는데 실상 나치당은 히틀러가 수권법을 통과시키기 전까지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 당시의 독일 제국의회 단독 과반을 달성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게 2차 세계 대전을 거쳐 파시즘이 몰락했으나, 크고 아름다운 것에 대한 집착은 그 이후의 포퓰리즘 정치가들에게 변형된 형태로 이어지게 된다. 이제 이들은 더 이상 대형 건축물이나 상징물로 자신들의 권위를 세우려 들지 않는다. 그 대신 이들은 유권자들을 유혹하는 전략을 바꾸었다. 우리가 조금만, 아주 조금만 지성과 인류애를 떨쳐버린다면 모두가 아름답게 잘 사는 세상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하는 것이다.

히틀러가 꿈꾼 '천년제국의 수도 게르마니아'(오른쪽, 1000분의 1 축척모형)의 일부분이었던 광궤 거대열차(왼쪽). 히틀러는 이 거대열차가 오갈 신뮌헨역을 직접 스케치하기까지 했다. 그의 애착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는 대목. (출처: 미상, 재인용 출처: dogdrip.net) https://www.dogdrip.net/69938505
히틀러가 꿈꾼 천년제국의 수도 ‘게르마니아'(오른쪽, 1000분의 1 축척모형)와 그 일부분이었던 광궤 거대열차(왼쪽). 히틀러는 이 거대열차가 오갈 신뮌헨역을 직접 스케치하기까지 했다. (이미지 출처: 미상, 재인용 출처: dogdrip.net)

특히 2012년 재정 위기를 거치며 경제가 크게 어려워진 유럽과, 실질적인 권위주의 독재를 통해 어느 정도 경제적 성공을 거둔 중국과 러시아의 사례는 민주주의가 그나마 잘 확립되어 있다고 여겨졌던 나라들에게도 거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우리나라도 여기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권위에 대한 잘못된 기대로 인해 전근대적 국정 운영을 보여 준 정치인을 나라의 대표로 선출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시민으로써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어려운 문제다.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점차 개인은 파편화되어가지만, 발전한 경제의 혜택을 받아야 하는 계층은 정작 스스로의 존립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그들에게 제대로 된 스피커가 있다고 확신하기도 어려우며, 결국 부동산을 보유한 중산층을 위주로 정치적 올바름을 부르짖던 리버럴 계층은 서구에서 점차 고립되고 있다. 저소득층이 극우·인종주의로 다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렇게 계층과 계층이 괴리될수록 막상 눈 앞에 보이는 크고 아름다운 것들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정치인들은 그 괴리를 먹고 자랄 것이다. 그 괴리를 넓히는 것은 과연 누구일까? 우리는 무엇을 말해야 하며, 또 무엇을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얼마 전(’18년 9월 9일, 현지 기준) 스웨덴 총선에서는 북유럽에서 거의 최초로 극우 인종주의 정당인 민주당이 의미 있는 득표수를 거뒀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들은 주로 청년층 위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유럽의 민주주의가 무너져 가는 나사리 궁전의 운명을 피하려면 과연 무엇이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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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전통의 보존과 끔찍한 소음을 맞바꾼 그라나다

 

아래 사진에는 현수막이 하나 걸려 있고, 보시다시피 “El ruido nos impede vivir”라고 적혀 있다. 한 마디로 “시끄러워서 살 수가 없다.” 는 뜻이다. 저 현수막은 그라나다 시 중심부에 있는 건물에 내걸려 있는데, 실제로 스페인 남부 주요 도시인 그라나다의 중심부는 상상을 초월하는 소음을 자랑한다. 실제로 그라나다 시민 중 17.5% 인 41,300명이 하루 종일 65 데시벨(세계보건기구 기준 허용치) 이상의 소음에 시달리고 있다.

"시끄러워서 살 수가 없다" ⓒ 힝고
“시끄러워서 살 수가 없다” ⓒ 힝고

그렇다면 그라나다는 왜 이런 끔찍한 소음에 시달리게 되었는가? 여기에는 아주 복잡한 문제들이 여럿 얽혀 있는데, 지금부터 하나씩 풀어 나가 보도록 하자. 오늘 주제는 ‘전통의 보존은 결국 현재의 큰 불편을 대가로 한다’는 것이다. 여러 차례 말씀드린 바 있듯이 스페인 정부는 전통 문화의 보존을 다양한 법률을 통해 상당히 우선시하고 있다. 이를테면 건축물 외관 보존을 명시한 건축법이 그러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전통적인 건축물들을 모두 보존하려고 하니 과거 구도심의 재계획이 애시당초 불가능한 수준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라나다 시내 중심부는 고작 왕복 3차선과 2차선(그러니까 편도 1차선) 규모의 도로 두 개가 삼거리를 이루며 교차하고, 여기서 수 없이 많은 일방통행로가 뻗어 나가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대부분의 일방통행로는 폭이 2미터에도 못 미치는 소로이며, 특히 여행객들에게 유명한 알바이친 지구는 도로 환경이 개선이 되지 않아 대중교통도 고작 미니버스 2개 노선만이 존재할 뿐이다.

또한, 건축물의 보존을 위한 규정이 엄격하기 때문에 당연히도 용도 변경이 어렵고, 이는 결국 도시 중심부가 상업·업무지구 중심이 되어 야간에 공동화되는 것을 막는다. 즉, 시내 중심부가 여전히 업무·상업지구와 주거지구가 뒤엉켜 있기 때문에 대낮의 차량 소음이 결국 다른 일반적인 도시들보다 훨씬 더 심각한 공해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라나다와 규모가 비슷한 한국의 지방 도·농복합시도 이 정도 수준은 아니다.

주택가에 인접한 그라나다의 협소한 도로. ⓒ 힝고
그라나다 시내 중심부의 도로 모습 ⓒ 힝고

게다가 도심 재개발의 부재는 시내 중심부에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좁디 좁은 일방통행로를 개선하지 못했고, 토요타 프리우스 정도의 사이즈를 지닌 차량도 오가기 어렵다 보니 결국 그라나다 시민 상당수는 시내에서 오토바이를 이용한다. 여기에 더해 고작 24만에 불과한 인구로 인해 버스 교통에 의존해야 하는 그라나다의 경우 상당수 시내버스가 아직 노후화된 디젤버스다. 다들 아시다시피 이륜차의 소음은 체감상 승용차의 소음보다, 디젤의 소음은 가솔린보다 심하다.

결국, 그라나다의 시내 중심부 보존은 연 인원 3백만에 이르는 여행객을 유치하는 데에는 아주 효과적이었으나, 결국 도심 재개발의 부재로 인해 상당수의 시민이 끔찍한 소음에 시달려야 하는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전통의 보존’이라는 것은 왜 그렇게 강력하게 추진되었는가? 우리는 여기서 이미 저승 행차를 한 지 오래인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를 다시 좀 호출해 보아야 한다. 스페인의 전통을 보존하겠답시며 이런 저런 규제를 만든 장본인이시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악명 높은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Francisco Franco, 1892-1975)
스페인의 악명 높은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Francisco Franco, 1892-1975)

한국의 경우 일제강점기도 있었고, 과거 박정희 정권 시절 새마을 운동이라는 이름 하에 많은 전통이 소실되었다면 스페인의 경우 정치적 목적을 위한 전통 보존(플라멩코도 여기에 해당)으로 인해 제대로 된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무엇이 되었던 개발에 정치적 목적이 개입되는 순간, 그 부작용은 미래에 유무형의 형태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솔직히 서울처럼 주거지에 소음이 없는 편이 조금 더 낫긴 한 것 같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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힝고의 스페인 유람기

슬로우뉴스는 힝고마스터 님이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연재한 ‘힝고의 스페인 유람기'(총 10편)를 3~4편씩 묶어 3회에 걸쳐 발행합니다. (편집자)

카탈루냐의 노란 리본에서 세비야의 택시까지 (1편~4편)

1. 노란 리본에서 읽는 스페인의 지역 갈등 문제
2. 바르셀로나 지하철에는 광고판이 없다
3. 람블라스 거리에서 스페인 노동시장 읽기
4. 세비야의 택시는 동유럽에서 왔다

오랜 도시 아름다운 건물에 남은 독재의 여운 (4편~7편)

5. 세비야의 구시가지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6. 쓰러져 가는 나사리 궁전에서 유럽의 민주주의를 논하다
7. 전통의 보존과 끔찍한 소음을 맞바꾼 그라나다

고야, 플라멩코 그리고 스페인 투자이민 (8편~10편)

8. 고야의 ‘검은 그림’에서 우리의 미래를 고민하다
9. 올라! 플라멩코, 올라! 최저임금
10. 스페인에 투자 이민을 하려면 어디에 부동산을 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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