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는 어느 ‘페친'(페이스북 친구)들께서 어제 술자리를 가졌다고 합니다. 한 페친께선 그 술자리에서 겪은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어제 술자리에서 신나게 놀았다. 너무 신나게 노느라 나는 미처 몰랐는데 우리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우릴 보며 계속 그랬단다.
“나 일베는 아닌데 메갈은 죽이고 싶어. 어떻게 죽이지?”
그 얘길 듣고 우리가 무슨 죽을죄를 지었나 싶어서 떠들었던 대화를 복기해보니 그럴 만하다. 어디 여자들이 모여서 탁현민을 보고 내려오라 말아라 하고 있었던가. 조신치 못했구나.
저는 위에 인용한 이야기가 최근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갓건배 사건’(참조: SBS뉴스, 박스 설명 참조)과 유사한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아주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음을 방증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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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버 살해 협박 생방송 사건 (일명 ‘갓건배 사건’)
- 여성 유튜버 ‘갓건배’는 한국 남성을 혐오하는 표현이 주종을 이루는 게임 방송을 진행.
- 이에 일부 남성 유튜버(신태일, 김윤태 등)는 자신의 방송을 통해 갓건배를 공개 비난.
- 특히 ‘김윤태’는 갓건배를 살해하겠다며 찾아다니는 모습을 생방송으로 방영(2017. 8. 10).
- 갓건배 살해 협박 생방송 보던 네티즌이 경찰에 신고.
- 경찰은 생방송을 끝낸 김윤태를 경기도 인근에서 연행함.
- 경찰은 김윤태에게 경범죄처벌법상 ‘불안감’ 조성 혐의로 범칙금 5만 원 부과하고, 김윤태는 풀려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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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험한 말을 해도 문제없다.
- 나는 여성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위와 같은 말을 어떤 남성이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뒤에 아래와 같은 말을 붙이면 어조가 사뭇 달라지죠.
- 나는 험한 말을 해도 문제없다. 나는 일베는 아니니까.
- 나는 여성을 함부로 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메갈은 예외.
갓건배라는 유투버는 평소 한국 남성에 대해 험한 말을 자주 해왔다 합니다. 사건 당일에도 평소처럼 험한 말을 했죠. 그러나 갓건배가 험한 말을 한다 해도 그 사람에 대해 함부로 상해하거나 살해하겠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말할 필요도 없죠. ‘세상에 죽여(어)도 싼 사람이 많다’고 생각할 수는 있어도, 그렇게 믿고 생각한다고 해서 그렇게 ‘행동’해도 되는 건 아닙니다. 그게 법이죠.
만약에 갓건배가 일베 유투버고, 평소 혐오 표현을 자주 썼다고 해서 노란 리본을 단 건전한 소시민을 자처하는 사람이 ‘넌 일베 유투버라는 점에서 내가 처단을 해버릴 거고, 내가 널 처단한다고 하자 사람들이 별풍선으로 20만 원을 쏘기까지 했으니 난 사회적인 공감대를 업고 한국 사회의 이름으로 정의롭게 널 살인하겠다’고 나설 수는 없습니다.
하물며 갓건배의 표현이 아주 안 좋았을 수는 있죠. 그 표현에 저를 포함한 남성분들이 눈살을 찌푸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겁니다. 그러나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속으로 품는 것도 인성 결함이 아닐까 의심해봐야 할 판국에 그 사람 귀에 들리도록 ‘내가 널 죽여버리고 싶어. 이런 이야기를 듣고 네가 겁이 났으면 좋겠어’라고 하는 것은 협박입니다.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내가 저 사람을 죽이러 갈 테니 돈줘요’ 라고 불특정 다수에게 살인 청부금을 받아가며 라이브 스트리밍을 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에 대해 ‘갓건배는 아무런 잘못이 없으며 가해자가 이상하게 미쳐 돌아가서 생긴 일’이라며 갓건배를 순결한 무죄의 존재로 옹호할 필요는 없습니다. 갓건배가 메갈이든 아니든 일베든 아니든 그 사람을 죽음으로 응징하겠다는 일은 벌어져서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반사회적인 ‘범죄’에 대한 경찰의 ‘벌’이 5만 원 범칙금[footnote]참고로 경범죄처벌법 위반 행위에는 ‘범칙금’ 부과이 부과되고, 범칙금을 부과하는 주체는 경찰서(장)이다. [/footnote]라면, 살인을 허용하거나 부추기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수십만 시청자가 구독하는 유튜브 방송의 영향력을 고려하면 결코 ‘5만 원 범칙금’으로 해결될 수 있는 사건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런 이상한 사건이 우리 사회의 표준인 것 같기도 합니다. 여기는 바로 술자리 옆자리에서 “난 여성을 함부로 대하지는 않지만, 메갈이면 죽여버리고 싶다”는 말을 해도 통용이 되는 곳이며, 그런 불쾌하고 공포스러웠던 경험담을 털어놓았을 때 소셜미디어 담벼락에 “그런 이야기를 여기서 하는 당신은 혹시 메갈이라서 그런가요?” 라고 묻거나 “저도 일베와 메갈은 사회악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호기롭게 선언하는 정의로운 히틀러 같은 분이 실시간으로 드러나고 있는 곳입니다.
한 여성이 유튜브에서 하는 험한 말을 막기 위해 20만 원의 살인 청탁금이 모이고, 그 현장이 인터넷으로 생중계가 되는 곳, 그리고 그 ‘죄’에 대한 ‘벌’이 경찰서의 범칙금이 5만 원인 곳. 그 곳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만든 것이 우리입니다. 우리가 탁현민 인사가 잘못되었다고 분개하는 여성분들의 술자리 테이블 옆에서 그 여성들이 듣고 몸을 움츠리도록 ‘난 메갈은 죽여버리고 싶더라’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하는 소셜 미디어 담벼락에 나타나 ‘메갈이세요?’ 라고 묻고 있으니까요.
제발 여성분들에게 ‘메갈이세요?’ 묻지 마세요. 커뮤니티 글을 읽고 무슨 생각을 하던 그것은 당신이 탐문 수사처럼 그러나 잘못된 문법에 의문형 동사로 재갈을 물릴 일이 아닙니다. 그런 의문을 상대에게 표현하기 전에 당신이야말로 메갈이 무엇인지 왜 그런 단어가 사회에서 파생되고 어떤 점들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고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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