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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맹’의 근로기준법 개정안: 아직도 인건비 절감 타령인가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 대표 발의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나왔다. 법정 최대 근로시간을 52시간에서 60시간으로 연장했고, 휴일수당를 지급할 수 있는 근거 조문이 사라졌다. (해당 개정안의 문제점은 아래 링크한 기사 참조. – 편집자)

도대체 왜 이런 안이 나왔을까. 살펴보자.

근로기준법 개정안 요약

근로기준법 개정안 개요 요약

‘구조맹’, 사회 전체 구조에 관한 시각이 없거나 희박

문맹, 미맹, 심지어 개그맹이라는 소리까지 들어봤지만 구조맹이라는 말은 또 처음이지만 무척 마음에 든다. 자신과 자신 주변의 개인적인 범주에만 집착하면서 사회 전체의 구조에 관한 시각은 없거나 있어도 희박한 사람들을 의미하는 말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해 봤지만, 이렇게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단어를 들으니 반갑기까지 하다.

얘기는 아주 오래전에 들은 우스갯소리에서 시작된다.

정세영이 현대차를 지배하던 시절, 정주영에게 현대차 매출이 감소한다고 걱정했다 한다. 내수 시장이 한계에 온 것 아니냐는 얘기였을 것이다. 그랬더니 정주영 회장이 헬기를 불러 타고 서울서 울산까지 내려가면서 경부 고속도로 위로 비행하라고 주문하고선 울산에 와서 정세영 회장을 만나 했다는 얘기가 이랬다는 것이다.

“오다 보니 경부선 고속도로에 빈 자리가 많더라. 차 한참 더 팔아도 된다.”

이 우스갯소리가 만들어진 목적이나 그걸 소비하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감상은 대충, 정주영 회장의 호방함이나 그릇의 크기 같은 것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이 얘기의 함의는 그보다는 훨씬 더 복잡하다.

"1970년 7월 7일 경부고속도로 개통식", 문화체육관광부 (CC BY)

1970년 7월 7일 경부고속도로 개통식, 문화체육관광부 (CC BY)

값싸게 많은 상품을 뽑아내기만 하면 되었던 과거

우리 사회의 경제규모가 아주 미약했던 시절, 고속 성장을 통해 규모를 늘리는 것은 사실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그 정도도 못하는 나라들이 수두룩하지만, 당시 우리의 규모는 세계 시장에 비해 무의미한 수준의 미세한 것이었고, 우리 경제 규모가 늘어난다고 해서 우리가 세계 시장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기대는 먼 훗날 장밋ㅣ빛 미래의 상황으로 보였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아무 걱정 없이 더 값싸게, 더 많이 상품을 뽑아내기만 하면 되었고, 만들어 놓으면 상품은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팔려나가는 것이 당연했던 그런 시절이었다. 내수도 마찬가지이다. 전후 파괴된 국가 인프라에서 도로 하나 깔고 공장 하나 돌리는 것은 마른 모래에 물 붓기도 못 되는 그런 상황. 시멘트에 모래 섞어 나무틀에 부어 엉성한 벽돌(당시에는 부로꾸라고 불렀다.)을 찍어내던 동네 아저씨가 자고 일어나면 건설회사 사장이 되던 그런 시절이다. 찍어내기만 하면 무조건 팔리니까.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면서 정세영 회장이 걱정했듯이 차를 찍어내도 안 팔리는 상황을 만난 것이다. 물론 70년대 오일쇼크 당시에는 일시적으로 그러기도 했다. 그러나 국제 경기는 언제나 상승을 했고, 결국 우리는 물건만 만들면 팔린다는 생각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게 된다.

즉, 상품이 안 팔리는 것은 시장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가 더 싸고 좋은 물건을 못 만들어서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굳건히 형성된 것이다. 그러니 시장의 문제보다는 그 시장에서 같이 뛰는 경쟁자와의 싸움만 염두에 두게 된다.

그 와중에 시장의 한계를 걱정하기 시작한 정세영이나, 그 시장의 한계를 고민하다가 직접 눈으로 보고 이 땅에는 차가 더 필요하다는 (약간은 극적 과장이 섞인) 결론을 내린 정주영이나 구조적인 개념 자체는 있었다는 뜻이기는 하지만…

"biodiversity jenga", Martin Sharman (CC BY-NC-SA 2.0)

“biodiversity jenga”, Martin Sharman (CC BY-NC-SA 2.0)

경제 규모가 커지면 구조를 고민해야 한다

이후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한다. 대한민국의 경제는 세계 10위권이 되었고, 그 비중도 결코 무시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커져 버리고 말았다. 80년대 말 호황 덕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심지어 IMF의 원인을 분석하는 추론 중에 선진국들이 무섭게 도전해 오는 극동의 조그만 나라를 주저앉히기 위해 꾸민 사건이라는 음모론이 있기도 하다.)

즉, 이제 우리는 전체 시장의 문제에 대한 고민 없이 죽어라 물건만 만들어 내면 알아서 팔리는 변두리 구멍가게 수준에서 벗어나 국제 경제의 상황을 조망하고 관찰해야 하는, 당당하게 한몫을 해야 하는 의무와 권리를 동시에 가진 주역이 된 것이다.

문제는 그런 변화에도 우리 경제 주체들의 마인드는 아직도 80년대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의 한계에 봉착하면, 생산 원가의 절감이나 경비절감, 또는 가격 경쟁력이나 품질관리 같은 것들만 잘해서는 매출을 늘릴 수가 없다. 성장이 불가능해진다는 뜻이다. 그 이전에 과연 이 시장이 소모해 줄 수 있는 상품의 규모가 얼마나 되고, 그 마켓 중에 우리의 몫은 얼마이며 앞으로 얼마가 되어야 하는지, 즉 마켓의 볼륨과 마켓 쉐어를 따져보기 시작해야 하는 시점이 된 것이다.

경쟁에 승리하고도 생존에는 실패할 수도

그런 고민이 없이 무조건 경쟁에만 몰두하면 경쟁에 승리하고서도 생존에는 실패하는, 정말 좋은 물건을 잔뜩 쌓아두고 망해야 하는 그런 신세로 떨어지게 된다.

예를 들면 애플의 강점, 애플이 가장 잘한 것이 무엇일까?

좋은 물건? 요즘 안드로이드 기계는 애플의 아이폰에 비교하기가 미안할 정도로 스펙도 좋고 품질도 좋다. 디자인이야 애플이 좋다고 해도, 그거 금방 따라잡는다. 아이폰 6에서 오히려 디자인 역전 현상이 벌어졌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좋은 소프트웨어? 기기 간의 통합이나 사용자의 경험, 즉 UX 면에서 아이폰은 최고의 상품이지만, 그거 안드로이드 진영이 순식간에 따라잡는다. 오히려 다양성의 측면에서는 이미 안드로이드가 앞서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애플의 최대 강점은 없는 시장을 만들어 낸 것이다. 없던 생태계를 새로 창조해 냈다. MP3 플레이어에 불과한 아이팟을 가지고 아이튠스라는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 낸 점. 그 점이 애플의 최고 업적이라고 평가하는데 반기를 드는 사람은 거의 없다.

"Born to be together", Andre Pan (CC BY-NC-ND 2.0)

“Born to be together”, Andre Pan (CC BY-NC-ND 2.0)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거나 규모를 키워야 하는데…

국가의 산업도 마찬가지다. 시장의 한계에 봉착하게 되면 품질경쟁, 비용경쟁은 의미가 없어진다. 우리는 이미 그 품질경쟁 비용경쟁에서 중국에 상대가 안 되는 약자로 전락한 지 오래다. 미안한 얘기지만 그 필드는 우리의 싸움터로 적합하지가 않다.

우리는 이미 시장 그 자체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은 사회의 구조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문화, 정치, 관습, 사회의 수많은 구성원이 생각하는 모든 것이 사회의 구조와 연관이 있다. 라이프 스타일도 사회의 구조와 연관이 있다. 이 사회의 구조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거나 기존의 시장의 볼륨을 증가시킬 방법이 없다.

그러나 “구조맹”의 상태에 있는 결정권자들은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어디선가 비싼 돈 주고 데려온 강사들이 하는 얘기를 들어보기는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무슨 얘기인지 뼛속 깊은 곳까지 느끼지를 못하고 있다.

구조맹들은 여전히 인건비 절감에만 매달려

왜 우리는 힘든가? 우리가 좀 더 싸고 좀 더 좋은 물건을 만들지 못해서…라는 생각에서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들이 만들어낸 대안이 이것이다.

좀 더 많은 시간을 좀 더 적은 돈을 받고 일하도록 하라. 절감할 수 있는 것은 인건비뿐이다.

근로기준법 개악안의 주모자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

근로기준법 개악안의 주모자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

그러니 이번 근로기준법 개정안 같은 것이 나오는 것이다. 이게 좋은 대안일까? 그렇게 세계 최고 수준의 장시간 노동을 하기만 하면 우리가 만든 물건이 마구마구 팔려나가고 경제가 다시 성장하기 시작할까? 이 대안의 허점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변에 있다.

과연 누가 그 물건을 살 것인가?

일단 내수 시장은 바로 그 사람들, 주5일 8시간씩 일하던 사람들이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주6일 10시간씩 일을 하게 되면 그들은 물건을 전보다 더 덜 사게 된다. 어차피 쓸 시간도 없으니 말이다. 내수 시장은 단언컨대 축소된다. 시장이 더 작아지면 물건이 아무리 더 싸고 더 좋아 봐야 팔 방법이 없다.

내수 시장만 축소하고 국제 경쟁력은 없는 대안

국외시장은 어떨까? 우리가 그 비싼 인건비 받아가며 주 6일 하루에 10시간씩 일한다 해서 폭스콘에서 혹사당하는 중국인들보다 더 일할 수 있을까? 폭동 난다. 중국과의 경쟁을 염두에 둔다면 이런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 중국을 상대로 머릿수 싸움에서 이길 방법이 있는가? 지금 당장부터라도 모든 가정에서 아이를 열 명씩 낳는다 해도 중국을 이기려면 최소한 백 년은 걸린다.

아니 그것도 문제다. 주6일 10시간씩 일하면 섹스는 언제 하고 아이는 언제 만드나? 아이를 기를 여유 자체가 없다.

조금만, 아주 조금, 일 그램만 더 “사회적 구조”에 관한 생각을 해 봐도, 노동시간을 늘리는 것은 이 사회의 구조에 악영향을 미치고, 그 악영향은 바로 시장에 영향을 줘서 수요가 감소하게 된다는 사실은 너무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저 머리 희끗희끗하고 70년대 고속 성장의 시대를 이끌어온 좀비 꼰대들은 “구조맹”이라는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시사SF "균형"(조남준) 중에서.

시사SF “균형”(조남준) 중에서.

나라 망치는 구조맹들이 권력을 쥐고 있다

그러니 어이없게도 우리 사회의 경제 상황이 봉착한 문제에 대해 전혀 완전히 매우 극단적으로 틀린 대안을 거의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생각하고 법제화시키려고 드는 것이다. 그 대안이 현실화되면서 우리 경제는 더욱 급속히 추락하게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나간다면 필리핀이나 멕시코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차라리 필리핀이나 멕시코가 되어서라도 그들이 바라는 대로 경제 규모가 늘어날 가능성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것도 불가능하다. 필리핀이나 멕시코가 국제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될까? 국가 사회는 극도로 불안해지고, 사람들 대부분은 고통에 시달리는 사회가 무슨 힘이 생기고 무슨 발전을 하게 될까?

구조맹들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

그 구조맹들에게 주어진 권력을 다수의 힘으로 빼앗아 와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가 살아남을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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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초대필자, 딴지일보 정치부장

월간 더딴지. 딴지 라디오 "그것은 알기싫다", "딴지 이너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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