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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애플 오보 경쟁, 또는 ‘바르기’와 ‘빠르기’ [특집]

애플-삼성 소송전을 둘러싼 오보를 서술하는 이 글에서 한국경제가 다른 경제지들과 같이 가판에서 오보를 낸 것으로 기술됐지만, 이는 사실과 달라 바로잡습니다. 해당 매체와 담당 기자에게 사과 말씀 드립니다. 죄송합니다. 독자 여러분께도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고 오해를 불러일으킨 점, 그리고 특히 오보를 지적하는 글에 오보가 있었다는 점에 진심으로 사과 드립니다. – 엔디 올림

애플과 삼성은 소송 중

‘콧대 높은 애플, 삼성에 백기?’

한 경제신문의 기사 제목이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를 둘러싼 소송에서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애플이 “우리가 특허 사용료를 줄테니 소송 합의하자”고 삼성전자에 제안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내 기업이 ‘혁신의 아이콘’ 애플을 상대로 한 특허 소송전에서 사실상 이겼다는 희보를 전한 이 기사는, 그러나 더이상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이 기사의 수정판인 ‘손 내미는 애플…뿌리치는 삼성‘이라는 기사가 걸려 있다. (기사 제목과 내용은 바꿨지만 실수인지 HTML 페이지의 제목은 바꾸지 않았다.)

고친 기사는 원래 기사와 정확히 180도 반대다: 애플이 삼성전자와 모토로라에 “너희가 특허 사용료를 주면 소송 합의해줄게”라고 제안했다는 내용이다.

이 경제신문만 그런 것은 아니다. 매일경제도 3월 8일자 가판(전날 저녁 배포)의 내용이 시내판(그날 아침 배포)에서 바로잡히는 과정을 겪었다.

이 기사를 처음 쓴 것은 미국 다우존스 뉴스와이어다. 그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받아 썼고, 국내 매체는 대개 다우존스나 WSJ을 인용하는 형식으로 기사를 썼다. 일부는 출처도 정확히 밝히지 않고 ‘외신 등에 따르면’이라고 쓰기도 했지만 내용을 보면 원 출처는 다우존스가 확실하다.

다우존스 기사는 현지시각으로 6일 낮에 송고된 것으로 돼 있다. 한국시간으로는 7일이 된다. 현재 포털 사이트에 게재된 기사만으로 보면 국내에서는 머니투데이가 가장 빨리 보도했고, 이데일리가 곧이어 그 뒤를 따랐다. 두 매체가 나란히 오보를 내면서 다른 인터넷 매체들도 이들의 오보를 베낀 셈이 됐다.

이데일리는 한술 더 떠 “애플의 전격적인 제안으로 삼성은 7일 오전내내 긴급 임원회의를 소집했다”고 쓰기도 했지만, 삼성은 이를 부인했다. (7일은 정례적인 삼성의 수요사장단회의가 있는 날이기도 하다.) 오히려 삼성은 화해 무드 보도와는 달리 애플을 상대로 추가 소송을 제기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보다 빨리 기사를 송고해야 한다는 압박 때문이다. 경쟁 매체보다 단 1초라도 빨리 기사를 써야 한다. 기사 내용이 틀리면? 나중에 수정하면 된다. 아니 어쩌면 수정 같은 건 필요없다. 지난 기사는 아무도 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속보 경쟁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오보 경쟁이 되고 만다.

특히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 소송 관련 기사는 이른바 ‘핫’한 기사다. 정보기술(IT)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꼭 챙겨보는 기사이기도 하고, 포털의 뉴스 편집에서도 상위에 배치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종합 일간지나 경제지의 지면에도 잘 실린다. 안 그래도 속보 경쟁 무한도전을 벌이는 기자들은 이 소송전과 관련한 기사는 속도에 더 신경쓸 수밖에 없다.

오보는 있어서는 안 되지만, 사실 없을 수도 없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다. 그러나 취재를 통한 보도도 아니고 외신을 전하는 기사에서 중요한 사실을 정반대로 전하는 것은 분명 문제다. 게다가 이번 오보 사태는 머니투데이·이데일리 등 경제전문 인터넷 매체에서 대형 경제신문까지 집단적으로 냈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다. 언론을 지탱하는 어떤 체계가 무너져 있다는 걸 뜻하기 때문이다.

빠르다고 과연 항상 좋은 걸까?

이런 속보 경쟁은 기사 검증 체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매체가 늘어나면서 더욱 심해졌다. 일부 매체는 기업체나 홍보대행사가 보낸 보도자료를 그대로 긁어서 기사로 내기도 한다. 때로는 실수로 홍보담당자의 첨언이나 연락처가 기사에 딸려 들어가는 ‘사고’도 벌어진다. IT나 연예 분야에서 특히 그런 매체가 많이 눈에 띈다.

뉴스news라는 말이 본래 새로운 것이라는 뜻이므로 보도의 ‘빠르기’는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빠르기가 뉴스에서 중요한 가치라면 ‘바르기’는 뉴스의 필요조건이다. 느린 뉴스는 다른 가치에 집중할 수 있지만 틀린 뉴스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아니 오히려 틀린 뉴스는 가치가 마이너스다.

언론 매체가 늘어나면 다양한 여론의 언로가 트여서 말의 민주주의가 더욱 잘 보장될 것이라는 게 일반적 기대다. 하지만 지금처럼 속보 경쟁에만 내몰려 오보경쟁으로 치닫는 상황에서는 그런 걸 기대하기도 어렵다. 똑같은 기사를 누가 먼저 쓰는지만 두고 경쟁하기 때문이다. 그런 매체는 100개가 있어도 소용이 없다.

이제 잠깐 숨을 고를 필요가 있다. ‘슬로우뉴스’는 그런 매체다. 숨을 고르고, 가치 있는 기사를 고르고, 기사 속의 ‘팩트(fact)’를 고른다. 어떻게 보면 ‘슬로우뉴스’라는 말은 그 자체가 모순이다. 하지만 ‘침묵의 소리(The Sound of Silence)‘나 ‘산문시(散文詩)’라는 모순어법 속의 가치를 우리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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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트랙백 (4)

  • 조귀동

    안녕하세요. 한국경제신문 조귀동 기자입니다.

    엔디님이 쓰신 글이 오류가 있군요.

    “매일경제와 한국경제를 비롯한 국내 경제지들의 3월 8일자 가판(전날 저녁 배포)과 시내판(그날 아침 배포)을 비교해 보면 대부분이 전날 오보를 냈다가 다음날 바로잡는 소동을 빚었다.” 라고 하셨는데,

    한국경제신문은 초판에는 해당 기사를 안썼다가 국내 소송냈다는 것과 엮어서 3판(영남배달판) 부터 해당 기사를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2030717911&intype=1

    사실 확인을 하시고 기사를 쓰신지 의심이 드는 군요.

    그리고 매일경제를 비롯한 일부 경제,IT전문 매체들이 오보를 낸것은 말씀하신 대로 이데일리가 2시 30분께 쓴 걸 그대로 받으면서 문제가 된 것인데요

    사실 그 건에 대해서는 오전에 다우존스발로 월스트리트저널에 뜬 게 한국 시간으로 그날 새벽이었고, 통신사인 연합뉴스가 오후 4시 35분께에야 올리는 것도 사태에 일조했다고 보여집니다.

    http://app.yonhapnews.co.kr/YNA/Basic/article/new_search/YIBW_showSearchArticleList_New.aspx?searchpart=article&searchidx&searchwriter&searchscope&searchcategory&searchterm1&searchterm2&searchtext=%25uc0bc%25uc131+%25uc560%25ud50c&PAGINGTOTALCOUNT=752&PAGINGCURRENTPAGE=2&PAGINGPAGESIZE=15

    개인적으로는 연합뉴스 기자의 무능함과 게으름이 사태의 배경을 구성하고 있다고 보는데요. 데스크들의 연합뉴스에 대한 과도한 의존과, 그러한 시장의 기대에 못따라가는 연합뉴스의 무능이 현재 IT 기사 생산 과정에서 굉장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고 봅니다. 여기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 것은 면피를 위해서 동종 업계 전체를 엿먹이는 거라고 보여지기도 하는 군요.

    아무튼 공식적인 사과, 글 첫머리에 해당 오보 사실에 대한 명기, 그리고 본문의 수정을 요구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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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엔디

      사실 확인 과정에서 제가 착각을 한 것 같습니다. 진심으로 사과 말씀 드립니다. 말씀하신 대로 글 첫머리에 오보 사실을 명기했으며, 본문도 수정했습니다.

      다만 다우존스 뉴스와이어 기사는 ① 익명의 취재원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② 화해안을 제안한 시점이 일(日) 단위는커녕 월(月) 단위로도 나타나 있지 않는 등 구체적인 팩트가 부실하며 ③ 기자 스스로 “This is not a new tactic”이라며 기사 내용의 의미를 축소하고 있고 ④ 애플과 삼성 양쪽 모두 관련 제안을 주고받은 데 대해 공식적으로 시인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보면 국내 언론이 빨리 받아 써야 하는 기사였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본문에서 빠른 뉴스보다 바른 뉴스를 지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물론, 제가 지금 이 글에서 오보를 냈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송구스럽습니다만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서는 글의 취지를 감안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 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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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귀동

        사과는 잘 받았습니다.

        뉴스 밸류가 별로 없는 기사라는 말씀이신데, 동종 업계 사람들이 모두 별 시덥지도 않은 거 가지고 괜히 과열 경쟁으로 설레발 칠 정도로 형편없지는 않아보입니다.

        http://online.wsj.com/article/SB10001424052970203458604577265554209940704.html?KEYWORDS=samsung+apple+patent

        여기 기사 말미 보시면 나오겠지만

        “A version of this article appeared Mar. 7, 2012, on page B6 in some U.S. editions of The Wall Street Journal, with the headline: Apple Weighs Settling Patent Cases.”

        라고 실제 지면에 실린 기사라고 확인을 시켜주고 있지요. WSJ 내에서 외부 기사를 전제하는 경우는 굉장히 드문 케이스아니던가요. 특히 tech 섹션에서는 말이지요. 면 편집도 아시아판의 경우 굉장히 비중있게 다뤄졌던 거 같은데요.

        공식적으로 시인하지 않은데다 새로운 팩트가 아니므로 기사가치가 낮다고 하시는데 “This is not a new tactic”이라는 문장 바로 다음 문장은 “Apple had some discussions with companies such as Samsung before initiating litigation, according to statements made to a court in at least one suit.”으로 소송 전에 협상 과정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관련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는 지는 알 수 없지만, 그쪽에서도 이 기사를 크게 키운 것은 현 시점에서 라이선스 제안을 했다는 새로운 팩트 때문이겠지요.

        익명의 취재원의 경우도 a person familiar with matter 가 국내 언론에서건 해외 언론에서건 복합적인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은 잘 아실 텐데요.

        reference 측면에서 기존 연합뉴스 기사를 되짚어 보았을 때, 영미권의 별로 알려지지 않은 IT전문 매체의 글을 그대로 붙인 경우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무튼 별 기사 가치가 안되는 데 남들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든 것은 얘기죠.

        게다가 그렇기 때문에 통신사에서 기사를 킬했다는 것은, 오히려 주 고객인 언론사의 니즈를 무시하고 현 연합뉴스 시스템의 문제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되네요.

        사실 현업에 종사하는 입장에서 말씀드리면 연합뉴스 파업 이후에 마음 편해하는 사람들 많았습니다. 연합이 없어도 기사 작성에 별 문제가 없는데다, 오히려 업계 사정 모르고 1~2주전에 외신에 뜬거 새로운 사실인양 쓰거나, 팩트 해석이 잘 못된 기사들이 뜨는 사례가 없어졌거든요.

        아무튼 논의는 이쯤에서 접도록 하지요. 빠른 대응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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