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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안전처 2년, 세월호는 없었다

세월호는 없었다.

지난 11월 23일 한국행정연구원 주최로 열린 ‘재난안전정책연구’ 공동학술대회에서 기조강연을 맡은 이성호(국민안전처 차관)는 최근 출범 2주년을 맞는 국민안전처가 이룬 성과를 자세히 설명했다. 안전처가 문을 열게 된 배경도 설명했다. 하지만 세월호 얘기는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자료집 13쪽에는 안전처 출범 배경이 된 ‘대형사고의 교훈’으로 법제도 미비, 안전점검 부실, 교육문화 미흡, 인프라 부족을 들었다. 그리고 대표 사례로 성수대교 붕괴(1994년), 삼풍백화점 붕괴(1995년), 대구 지하철 화재(2003년), 경주 마우나 리조트 붕괴(2014년)를 꼽았다. 세월호 얘긴 없었다.

기조 연설에도, 자료집에도 세월호는 없었다.

기조 연설에도, 자료집에도 세월호는 없었다.

재난관리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는 재난이 터져봐야 검증할 수 있다. 그래서 재난관리시스템은 사고를 먹고 산다는 말도 있다. 재난을 통해 대응시스템을 발전시키는 관건은 성찰 혹은 반성이다. 이를 위해서는 여러 해에 걸친, 필요하다면 수십 년에 걸친 종합적이고 독립적인 사고조사와 분석, 사회적 토론과 제도변화가 필요하다.

국민안전처가 왜 생겼을까? 세월호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국민안전처는 2014년 11월 19일 출범 이래 지금까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조사와 분석, 연구과제라도 한 번 한 적이 있었나? 박인용(국민안전처 장관)이 출범 2주년을 맞아 안전처 소속 공무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세월호 얘긴 없었다. 이게 정상적인 상황인 걸까?

출범 2주년에 즈음하여 '안전처 가족에게 띄우는 편지', 이 편지에도 세월호는 단 한 줄, 단 한 단어도 없다. http://www.mpss.go.kr/home/news/notice/?boardId=bbs_0000000000000049&mode=view&cntId=549

출범 2주년에 즈음하여 ‘국민안전처 가족에게 띄우는 편지’, 이 편지에도 세월호는 단 한 줄, 단 한 단어도 없다.

국민안전처 출범 2년 – ‘자뻑 오지라퍼’ 

출범 2년을 거치는 동안 안전처는 갖가지 사업을 했다. 안전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 모두 다 안전처 소관인 양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메르스는 예외로 한다). 하지만 안전처가 안전 관련 업무를 모두 다 관장하는 게 좋은 일일까? 가능하기는 한 걸까?

이성호가 기조 발제에서 안전처 성과로 꼽은 것 중 하나는 도로복구 실적이었다. 그건 국토교통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할 일이다. 그걸 왜 안전처가 성과라고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예산 낭비 논란을 빚은 안전신문고 애플리케이션은 또 어떤가. 예방이나 안전교육을 부쩍 강조하는 듯한데 그게 안전처 업무라고 할 수 있을까?

안전신문고 앱

안전신문고 앱

현재 안전처 제도는 안전처에 오지랖을 요구한다. 안전처 조직체계를 보면 안전과 관련한 건 모두 안전처가 담당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강하게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래서는 옥상옥 논란을 피할 수 없다. 23일 토론회에선 안전과 관련한 온갖 주제를 다 다루었는데 정작 일선 소방관들의 재난대응역량을 높이기 위한 문제를 다룬 연구는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내 눈에는 그게 바로 안전처가 직면한 심각한 모순이다.

기본적으로 분야별 안전 업무는 분야별 업무를 담당하는 곳에서 처리하는 게 합당하다. 식품 안전 문제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맡아야 한다. 도로 안전은 국토교통부, 학교 안전은 교육부, 군대 내 안전문제는 국방부가 일차적으로 책임을 지고 예방하고 관리해야 한다. 그럼 안전처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재난대응이다. 자연재난이나 사회재난이 일단 발생하면 안전처가 총괄 지휘·감독하는 게 맞는 구조다. 감히 말하건대, 지금 안전처가 가려는 길은 재난대응조직과는 다른 듯 하다.

국민안전처 조직도. 방만하고, 비효율적인 조직체계.

국민안전처 조직도. 방만하고, 비효율적인 조직체계.

비극을 응시하고, 과오를 성찰하는 용기 

박인용은 취임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날마다 아침에 상황점검회의를 한다. 이성호는 안전처가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 설명하면서 중요한 사례로 상황회의를 꼽았다. 이날 학술회의에서 류현숙(한국행정연구원 연구위원)은 안전처 일반직 공무원들의 직무 스트레스를 주제로 발표하기도 했지만, 상황점검회의로 인해 안전처 본부 간부들이 느끼는 스트레스는 상당하다.

지난해(2015년)에는 실장이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다. 안타깝게 사망한 실장은 상황 회의를 준비하느라 안전처 주변에 방을 따로 구해야 했다고 한다. 일요일도 없이 아침마다 간부들 모아놓고 하는 상황점검회의라는 게 과연 얼마나 효과적인 건인지도 알 수가 없다.

(딱 군대에서 하던 방식인데 군대라는 곳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의사소통하고, 안전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곳인지 군대 갔다 온 분들은 아주 잘 알 테니 자세한 언급은 하지 않겠다.)

안전처에 필요한 건 상황점검회의나 ‘말 대포’만 쏘는 총기사용 강화 발표가 아니라, 좀 더 실질적으로 현장 인력들이 자율성과 책임성을 높이도록 하는 변화다. 이래저래 나로서는 안전처 출범 2년이 무척이나 유감스럽다. 박인용 이하 안전처 핵심관계자들에게 강조하고 싶다.

안전처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이 아니다. 세월호는 이름을 거론하기만 해도 큰일 나는 볼드모트가 아니다. 실책과 과오 앞에 솔직하게 성찰하지 않는다면 혁신도 없고 개선도 없다. 비극을 정면으로 응시할 용기가 없는 이들이 맞을 미래는 또 다른 비극일 뿐이다.

“거꾸로 된 건 너희들이 아니라 우리들인 것 같다. 거꾸로 된 세상에서 살게 해서 미안해.” (글/그림: 최남균) https://www.facebook.com/leepary

“거꾸로 된 건 너희들이 아니라 우리들인 것 같다. 거꾸로 된 세상에서 살게 해서 미안해.”
(글/그림: 최남균)

이 글에 실린 논지는 상당 부분 박두용 한성대 교수에게 빚지고 있다. 국민안전처를 바라보는 명쾌한 관점을 제시해주신 박두용 교수에게 이 글을 통해 고마움을 표한다.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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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전문기자를 꿈꾸는 기자 겸 박사 겸 블로거( http://www.betulo.co.kr )입니다. 시민단체 공동신문 '시민의신문'을 거쳐 현재 서울신문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나라살림연구소와 저널리즘학연구소에 참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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