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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수령 인터뷰 14(상): 평범한 PC통신 세대 오타쿠의 이야기 (모아 편)

리수령 인터뷰는 리승환 특유의 직설적인 질문과 거침없는 파격으로 다양한 전문가/관계자와 함께 현상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칩니다. 이번 회에선 일본 미소녀 서브컬처와 관련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이글루스의 파워블로거 절대덕력 모아님을 인터뷰했습니다. (편집자)

인터뷰어/인터뷰이 소개

Q. 리승환: 8년 차 블로거, 4년 차 직장인. ‘지갑은 항상 비어 있으나, 하드디스크는 항상 꽉 차 있으니 이 어찌 풍요롭지 아니한가?’라고 말하는 풍류남아. 한 때 부농질에 한눈을 팔아 참된 행복을 몰랐으나, 최근 고자생활을 하며 ‘2D는 배신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디지털 한량을 지향하고, 통칭 웹에서는 ‘리승환 수령’으로 불리고 있음. 블로그 현실창조공간을 운영 중. 트위터는 @nudemodel, 페이스북은 /angryswan

A. 모아: 멀쩡한 가장이자 능력 있는 직장인… 으로 위장한 채 10년 넘어 일반인 코스프레를 펼치고 있는 미소녀 덕후. 일러스트, 에로게(エロゲー ; 야겜), 라이트 노벨, 애니메이션 등 미소녀가 등장하는 모든 분야에 대해 하늘처럼 넓고, 바다처럼 깊고, 태산처럼 굳건한 덕력을 자랑한다. 덕력 가득한 블로그 entertainment log(under construction)을 운영 중.

나름 글 좀 띄우자는 생각에서 좀 더 자극적인 [인터뷰 후편, 미소녀 오타쿠! 미소녀와 오덕을 말하다!]를 먼저 내놓았다. 후편을 먼저 발행하는 인터뷰계의 혁신을 선보이겠다는 의지도 있었다. ^ ^ 하지만 역시 오타쿠 문화 따위에 관심 두는 사람은 적었다. 하지만 PC통신의 추억이 등장하면 어떨까? 아마도 모든 이들이 눈물을 흘리며 관심을 보이지 않을까…

라는 착각에서 1편을 발행한다(…) 이번엔 귀찮아서 아무도 안 읽을 것 같아서 각종 링크는 제외했다.

리수령 인터뷰 14(상): 한 평범한 오덕의 20년 덕질의 역사 (모아 편)
리수령 인터뷰 14(하): 미소녀 오타쿠! 미소녀와 오덕을 말하다! (모아 편)

서(序) : 오덕, 부모님을 속여 게임을 접하다

리: 일단 반갑다.
모: 대체 뭘 들으려고 불렀는지는 모르겠다만 일단 반갑다.

리: 오덕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불렀다.
모: 내가 그렇게까지 내공이 있지 않아 전반적인 오덕 산업에 관한 이야기는 한계가 있을 거고, 그냥 덕질의 역사를 죽 이야기한 후 오덕계에 관한 개인적 생각을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리: 좋다. 처음 이런 서브컬처를 접하게 된 계기는 뭐냐.
모: 83년에 부모님께서 MSX를 사 주셨다. 예전에는 게임도 지금처럼 층이 다양화되지 않았기에 서브컬처에 속했다. 피씨가 아닌 콘솔게임(주: 게임기)에서 시작한 사람들은 주로 일본 게임을 즐겼다. 80년대 초반에는 콘솔 기기 자체를 구하기 어려웠으니, 콘솔 게임을 했던 층 자체가 선택받은 종족이었다.

리: 당시 MSX는 엄청난 고가 기기 아니었나.
모: 지금도 좀 그런 게 남아 있지만, 그때는 정말 게임은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것이었기에 삼성, 럭키금성, 대우에서 학습기기로 선전하는 마케팅을 했다. 당시 다 여기에 부모님께서 속아 넘어간 셈이다. 가격도 당시 28만 원 정도로 엄청나게 고가였지만, 교육 강국 대한민국답게 한 반에 한두 명 정도는 MSX를 사서 게임을 했다.

교육기기로 위장한 MSX의 위용 (출처)

리: 게임 소프트웨어도 고가였을텐데 어떻게 게임을 했나.
모: 대부분 정식 수입이 아니라, 일본에서 팩을 몰래 들어와서 테이프레코더로 복제해서 팔았다. 당시 판매가는 3천 원, 교환이 1천 원인가, 1천 5백 원인가 했다. 주로 반포 사거리 일대에 이런 가게들이 있었는데, [재미나]라는 게임기를 만들어서 파는 업체도 있었다. 물론 이조차도 아이들에게는 꽤 고가였다. 그래서 보통 아이들끼리 서로 모여서 같이 게임할 때가 많았다. 그때만 해도 게임기 한 대 있으면 영웅인 시절이었다.

리: 당시 일본의 게임문화는 회사별로 어떤 차이가 있었나.
모: 콘솔 쪽으로는 닌텐도의 패미컴이, PC로는 NEC의 PC98 시리즈가 득세했다. 게임은 주로 이쪽으로 나왔다. MSX는 코나미처럼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제작사들이 내놓기는 했지만 상대적으로 시장은 작았다. 하지만 PC9801은 환경상 한국에 들어오지 못했으니 한국에서는 MSX가 주류였다.

리: 닌텐도의 패미콤은 어땠나.
모: 패미콤은 본체 자체는 MSX보다 쌌지만, 대놓고 게임기라 부모님이 쉽사리 사주지 않았다. 물론 패미콤 있는 친구도 더러 있었지만, 이쪽도 인기 타이틀은 몇만 원 수준이라 정식 팩이 아닌 불법복제 팩이 위주로 즐겼는데, 당시 롬팩 복제 기술이 형편 없어서 가격도 비싸고 에러가 많이 났다. 어쨌든 패미콤이 워낙 재미있으니, 그 쪽은 나도 부러워했다. MSX는 어드벤처나 철 지난 오락실 게임 위주였고, 그나마도 액션 게임의 질은 형편 없었다.

파(破): 오덕, PC통신으로 동료를 만나 덕력을 발산하기 시작하다

리: 그렇게 지겹도록 게임을 하면서 학창 시절을 보낸 건가.
모: 대학 들어가기 전까지 거의 잊고 살았다. 대학 들어가서 컴퓨터 통신을 처음 알았다. 당시 XT에 모뎀을 넣고 하이텔의 전신인 케텔에 가입하게 됐다. 우연하게 예전 추억 따라 ‘게.오.동'(게임오락동호회)이라 불리던 게임 동호회를 찾았고, 89년 생겨난 최초의 애니메이션 동호회 ‘애니메이트'(ANIMATE)에 가입했다. 그러다가 천리안 전신인 ‘PC서브’에 가입해서 그쪽에서 주로 애니메이션, 게임 등의 동호회에서 활동했다.

참고로 애니메이트는 지금도 있다.

리: 본격적인 덕질의 시작은 동호회!
모: 당시만 해도 주변에 게임하는 사람 정말 없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게임을 같이 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대학에는 같이 게임할 친구가 없었고, 자연히 나도 잊고 살았다. 나처럼 게임 좋아하고 애니메이션 좋아하는 친구 있을까 하면서 동호회에 가입했고, 자연스레 정모까지 이어졌다. 그때가 93년이었는데, 그야말로 신세계가 열렸다. 동호회에서 친분 있는 사람들이 애니메이션 빌려보고 테이프 떠주고 만화책 교환하고…

리: 그렇다고 신세계까지…
모: 그 당시는 자료를 구하기가 무척 어려운 시기였다. 그래서 이런 모습들이 너무 신기했고 깊게 빠졌다. 열심히 활동하다 보니 운영진이 됐는데, 당시로는 엄청난 메리트였다. 천리안은 당시 운영진 아이디를 별도로 발급했는데, 이 아이디가 있으면 사용료가 무료였다. 그래서 5년 정도 자료실 담당도 하고, 회원관리도 하고… 5년쯤 지나자 두루넷 등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되며 커뮤니티가 외부로 빠졌는데, 동호회도 다들 점점 다음 카페, 프리챌 등 웹으로 하나둘 옮겨갔다.

리: 들어간 곳은 애니메이션 동호회인데, 지금은 게임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모: 그 당시는 애니메이션, 게임, 만화 간 장벽이 거의 없었다. 워낙 좁은 풀인지라 대부분 어느 쪽에서 시작하든 애니메이션 동호회, 게임 동호회, 만화 동호회 모두 가입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좀 특이한 게 있으면 만화 창작 동호회였다. 이쪽은 게임 동호회나 애니 동호회만으로 커버가 안 되다 보니 좀 특수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리: 하지만 그 내부에서도 취향은 다양하지 않은가.
모: 동호회 안에서는 소모임으로 세분화됐다. 게임 동호회 안에는 액션게임, RPG 등이 있었고, 애니메이션 동호회도 건담, 마크로스 등의 소모임이, ‘만.사.동'(만화사랑 동호회)에도 각 작품별 소모임이 있었다. 소모임마다 게시판을 하나씩 할당받고, 자료실은 공유했다. 대부분 자기 좋아하는 작품 소모임서 놀고, 자료실과 채팅방은 공유했다. 이런 시스템 때문에 서로 더 잘 엮이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예로 나우누리에는 이런 모임이 있었다 (출처)

리: PC통신 동호회를 통해 얻은 가장 큰 이익은 무엇인가?
모: 자료 공유다. 지금은 토렌트는 물론이고 웹하드 자료실 가면 테라 단위로 자료가 실시간 공유되지만, 그때는 다운로드 자체가 꿈만 같았다. 그래서 관심 있는 사람은 동호회로 몰려올 수밖에 없었다.

리: 게임은 그렇다치고 애니메이션은 용량 때문에 공유가 불가능했을텐데…
모: 동호회 이전부터 덕질을 하던 분들은 쉽게 구하기 어려운 아날로그 아이템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당시는 CD도 아닌, LD가 주류였는데, 톱을 노려라, 세일러문, 메종일각, 란마 등 LD가 엄청나게 공유됐다. 그걸 모여서 같이 보고, 품평하고, 비디오 데크랑 연결해서 복사하고… 나만 해도 결혼 전에는 집에 복사를 위해 비디오 3대를 갖추고 있었다. 요즘 생각하면 엄청나게 불편하지만, 그때는 나름 최선의 방식으로 자료를 공유한 셈이다.

리: 그 때 동호회 회원이면 어느 정도 구매력이 있었을텐데 구입이 아닌 복사 공유를 한 이유는 뭔가.
모: 지금 블루레이가 6천엔 대로, 대략 10만 원 수준이다. 그런데 20년 전 당시도 비슷한 가격이었다. 일본은 재미있는 게 서브컬처 제품은 가격이 영 안 변한다. 에로게(야게임)만 해도 풀 프라이스 타이틀(full price title)이 보통 9천 엔 대인데 20년 전에도 마찬가지였고, 애니메이션 OST CD도 93년 3000엔이 조금 못 됐는데, 지금도 이 수준이다. 물론 일본이 그때부터 워낙 제로성장을 해온 탓도 있겠지만…

리: 그러면 공동구매 같은 걸 추진한 적은 있었나.
모: 워낙 가격이 비싸서 공동구매는 힘들었다. 그냥 돌아가며 누군가 일본 갈 일이 생길 때마다, 가기 전에 신청을 받아서 간 사람이 꾸러미로 사 들고 왔다. 그렇게 LD 박스를 일본에서 가지고 왔고, 나머지는 돌려 보거나 비디오로 복사해서 봤다. 이럴 여건이 안 될 때는 ‘와우와우’ 위성채널을 이용하기도 했다. [카우보이 비밥]이 애니채널에서 나왔는데, 한 사람이 녹화를 뜨고 비디오테이프 한 박스를 통째로 용산이나 종로 회현상가에 맡겨서 복사했다.

리: 감상 후 비평의 공유도 이루어졌는가.
모: 비평 쪽은 좀 후의 이야기이다. 당시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고, 일본에서조차 서브컬처에 대한 비평은 책자로 잘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일본 네티즌의 정보가 빠르게 유입되기 시작한 건 인터넷이 활성화된 이후다. 인터넷 이전에도 ‘링스’라는 텍스트 전용 브라우저는 있었지만 잘 알려지지는 않았다. 90년대 후반 웹이 활성화되며 정보가 빠르게 유입되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비평보다는 감상 수준에 그쳤다. 동호회에서 공유하는 정보도 일본의 감상, 소개 정도를 읽는 정도였다. 지금은 작품에 대한 공식 사이트는 기본이지만, 그 때는 대부분 유저들이 신작 LD 감상을 올리고, 그림 공유하고 그랬다.
(듣보잡 만화 블로거 capcold 주: 정보량이 부족하고 감상 위주이기는 했지만 편차는 컸다. 송락현, 선정우 등 내로라하는 오타쿠 필자들이 이때부터 글쓰기를 시작했다.)

리: 그렇다면 일본 잡지, 책자에 대한 정보는 어떻게 공유됐는가.
모: 당시는 일본 서적을 들여오는 것 자체가 불법이었다. 그래도 세운상가에서 일본 게임잡지를 몰래 팔기는 했다. 그런 걸 간간이 구입하는 애가 있으면, 일본어 할 줄 아는 애들이 번역해서 올리는 일은 꽤 있었다. 당시는 지금처럼 일본어를 잘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주요 활동은 게임 공략 쪽이었다. 물론 90년대 초에도 [게임월드], [게임챔프] 등의 국내 게임 잡지가 있었지만, 유명 작품만 다루고 있어서 정보에 한계가 컸다. 그래서 게임동호회에는 매일같이 마이너한 게임 공략법에 대한 Q&A와 감상 후기가 넘쳤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동호회가 그때 나오는 게임을 총망라한 잡지 역할을 거의 하지 않았나 싶다.

리: 일본에서도 비평의 시작은 동인계층으로부터 활성화됐다. 한국에서 이런 현상은 없었는가.
모: 오프라인 모여서 동호회 토론은 활발했지만, 정보량이 적어서 별로 수준이 높았던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나름의 움직임은 있었다. 종종 동호회에서 회지를 냈는데, 회지 안에는 한국 만화 잡지 시대에 대해 분석도 했고, 강경옥, 황미나 등 여류 만화가의 작품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글도 썼다. 나중에는 나름 재미가 붙어 일본어로 바꿔서 코미케에 들고 나가기도 했다.

리: 이 멤버 중 나름 잘나가는 멤버가 있다거나?
모: 대학로 호프집에서 모임을 주로 했는데, 부산에서 누가 커다란 배낭을 메고 상경하더라. 태극이라는 만화 창작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곧 데뷔 예정이라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만화가 박성우 씨더라. 그 데뷔 예정작이 [팔용신전설]이었고. 그때 사인이나 받아둘 걸 그랬다(…) 또 나와는 인연이 없었지만, 김형태 씨도 하이텔 시절부터 꽤 유명했다.

이게 그때는 나름 충격적 퀄리티였다 (출처)

급(急): 오덕, 탈덕의 의지가 휴덕에 그치고 말다

리: PC통신 이후에는 어떤 활동을 했나.
모: 직장 초년 시절까지만 해도 열심히 했다. PC통신이 죽은 후에도 인터넷에서 동호회는 많이 생겼으니까. 하지만 예전만큼 열심히 하지 않았고, 그간 쌓은 지식과 좋아하는 일러스트, 게임 등에 대해 축적하기 위해 96년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HTML 노가다로 짜다가 98년 XE의 전신인 제로보드로 옮겨탔다. 그러다가 결국 탈덕의 계기가 생겼다.

리: 무엇인가.
모: 결혼이다.

리: ……
모: 2000년 결혼을 하면서 개점휴업에 들어갔다. 가정이 있으니까 취미생활을 거의 죽였다. 집에서는 이런 취미가 있는지도 모르고, 이야기할 상황도 아니고… 그간 모아둔 콜렉션을 후배에게 밀어 넣고, 나머지는 처분하고 몇 년간 탈덕의 길을 걸었다. 2005년까지는 그냥 가끔 다음, 네이버 카페 가서 글 읽고 일본에 웹사이트 들어가서 신작 소식 체크하고 하는 정도였다.

리: 휴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다는 말이 있다. 지금의 모습을 볼 때 다시 덕의 길을 걷는 것 같은데…
모: 한동안 쉬니까 1인 미디어 블로그가 뜨기 시작했다. 집이건 회사건 이야기 할 사람 없는 상태였다. 인풋은 있는데, 아웃풋은 없이 몇 년 보내다 보니 다시 아웃풋에 대한 욕구가 솟아났다. 그래서 홈페이지를 정리하고 블로그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태터툴즈를 사용했는데, 반응이 영 없어서 좀 나이 있는 사람 중 서브컬처 이야기할 사람을 찾다가 눈에 들어온 게 이글루스였다. 당시 이글루스는 성인만 가입 가능했고, 만화, 애니메이션 등 서브컬처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게 지금의 블로그고, 별도로 원화가 이야기를 돌리고 있다.

리: 마눌님이 보고 있는데 블로그하기 힘들지 않나. 가뜩이나 주제도 거시기한데…
모: 내 블로그를 잘 살펴본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보통 오전에 업데이트한다. 일찍 일어나서 회사에 가자마자 후딱 업데이트한다. 결혼하고 덕질을 한다는 건 그만큼 고도의 집중력과 노력을 요구한다. 덕질을 계속 하고 싶으면 결혼하지 않기를 권한다. 물론 결혼해서 탈덕하기를 더 권하지만…

리: 주변 덕후들은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
모: 다들 잘 산다. 그때 서브컬처를 접했던 계층은 어느 정도 문화자본이 있는 계층이 많았다. 어릴 때 컴퓨터, MSX 등의 가격이 비싸기도 했고… 물론 지금은 다들 탈덕 내지는 휴덕하고, 그냥 가끔 옛날 이야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리: 앞으로도 계속 블로그를 운영할 생각인가.
모: 한국 인터넷은 기록문화가 많이 약한 편이다. 그런 아쉬움에 일본에서도 흩어져 있는 자료를 모으며 나름 자료 정리를 빡세게 해 왔다. 언젠가 휴덕을 거듭하거나 탈덕을 할 수도 있겠지만, 나름 가치 있는 자료라 생각한다. 블로그가 없어지는 일은 없을 거다.

리: 수고하셨습니다.
모: 네…

리: …하고 끝내기에는 아쉬우니 하나하나 자신의 페이보릿 작품을 이야기해보자. 많은 덕들에게 따뜻한 소재를 제공하며 훈훈한 분위기를 제공해야 하지 않겠나. 먼저 좋아하는 일러스터는?
모: 토니. 창세기전 일러스터도 했다. 1편은 김진이 했고, 김형태도 한 번 하고, 창세기전 외전 중 템페스트를 토니가 했다. 일본인이 했다. 98년 나왔는데 그 사람 희한하게;;; 일본 동인 시장에서 괜찮게 그렸다고 약간 알려진 사람. 소프트맥스서 데려와서 그리게 했다. 원화가 이야기.

Tony의 창세기전 템페스트 일러스트 (출처)

리: 그렇다면 라이트노벨은?
모: [어느 비공사 ] 시리즈. 이 중 1편 [어느 비공사에 대한 추억]은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나올 정도로 큰 인기를 끈 작품이다. 2차대전 공중전 비슷한 느낌이 드는 특이한 설정이 마음에 들더라. 주인공이 실력 있는 파일롯인데, 경비행기 같은 비공사에 동료를 태우고 닷새 동안 1만 2천 킬로미터 횡단해서 나르는 이야기를 한 권에 잘 압축해서 담았다. 이공깽이 난무하는 라이트노벨답지 않은 신선한 작품이다.

리: 일반 게임은?
모: 루카스아츠에서 내놓은 [원숭이섬의 비밀] 1편. 대학생 때 AT가 있었는데, 당시 동서게임채널에서 컨버팅한 게임 중 하나다. 원래 어드벤처 좋아하다 보니 히어로 퀘스트, 킹스 퀘스트 등 유명 어드벤처 게임도 많이 했다. 문제 해결과 스토리의 조화를 보면 정말 영화로 만들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해적들이 주인공이라 슬랭이 너무 많아서 해석이 잘 안 됐는데, 재미없는 수업마다 대사를 다 받아적은 수첩을 가지고 다니면서 해석할 정도로 재미있게 즐겼다.

당시로서는 눈물 나게 멋진 그래픽에 멋진 한글화였다 (출처)

리: 에로게는?
모: [세상의 끝에서 사랑을 노래한 소녀 유노]. 이 게임 엔딩 보고 천장 쳐다보면서 아련한 느낌에 젖어들었던 게 아직 기억에 남는다. 에로게 역사상 가장 난해한 시스템에 방대한 설정을 가진 작품이었다. 얼마 전 디렉터 칸노 히로유키가 죽었는데, 정말 대단한 작품을 남긴 것 같다. 말년에는 실패작도 좀 있었지만, 그 특유의 방대한 세계관이나 블랙유머, 빙빙 꼰 복선이 넘치는 스토리를 다시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아쉽다.

텍스트 어드벤처 사상 가장 복잡한 스토리와 시스템을 자랑하는 작품 (출처: elf)

리: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런 쓸데없는 인터뷰에 시간을 보내느라(…)
모: 아니오. 무슨… 간만에 저도 추억을 떠올릴 좋은 기회였습니다.

리: 하긴 덕질만큼 쓸데없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모: ……

리: ……
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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