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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의 개봉으로 마블 슈퍼 히어로 영화와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화려한 액션 뒤에 감춰진 드라마를 토대로 영화 ‘캡틴 아메리카’가 전하는 서사와 철학이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이 글에는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에 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으니, 아직 영화를 안 보신 독자께선 주의하시기 바랍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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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아메리카는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이를 설명하기 전에 우선 마블의 우주관을 먼저 살펴보시죠.

멀티버스와 평행우주 그리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어윈 슈뢰딩거 우리가 흔히 ‘다원우주’ 라고 부르는 멀티버스(Multiverse)는 어윈 슈뢰딩거(Ewin Schrödinger, 1887-1961, 사진)가 1952년에 언급한 개념에서 정립되었습니다. ‘서로 다른 일이 일어나는 우주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동시에 진행된다는 이론’ 인데요. 영화에서 자주 만나는 설정과 조금 다르죠?

소설이나 영화에서 쓰이는 ‘지금 현실과는 별도로 또 다른 현실이 존재한다’는 설정은 ‘평행우주’ 라 불리는 개념으로써 19세기의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 아래 사진)가 가설한 철학적 관념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평행우주

윌리엄 제임스 ‘다원우주’나 ‘평행우주’나 영미권에서는 똑같은 단어인 ‘멀티버스'(Multiverse)라는 말로 표현되며 그만큼 혼동되지만, 전자는 물리학에서의 우주와 세계의 해설이며 후자는 문학과 상상 콘텐츠에서 우리들의 삶을 관찰하는 철학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 까닭에 ‘패러렐 유니버스'(일본문화권에서는 ‘패러렐월드’라는 표현으로 잘 알려진)라고도 불리는 ‘평행우주’는 윌리엄 제임스가 대중 앞에 피력하기 전부터 신화나 고대문학에서도 자주 등장하고 있기에, 우리에게 제법 친숙한 세계관이기도 합니다.

마블

1939년 출판을 시작해 1960년대부터 전성기를 맞은 미국의 만화출판사 마블은 아시다시피 수많은 슈퍼 히어로들을 만화 속에 등장시켜 큰 인기를 누리다 여러 곡절 끝에 2008~2009년 무렵부터는 그 원작 만화들을 토대로 한 마블 슈퍼히어로 영화들을 직접 제작 발표하며 극장 영상문화에 어울리는 히어로들을 선보이고 있죠.

그런데 이 영화들은 원작 만화와 대충 다른 정도가 아니라 나름의 고유한 설정과 서사를 토대로 전혀 다른 세계관들을 구축해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원작 만화의 팬들이 오히려 영화 내용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거나 불만에 찬 소리를 낼때도 있는데요. 이를 마블 측에서는 ‘똑같은 인물들과 세계라도 평행우주의 개념을 채택한 것이라 보면 된다’며 앞서의 패러렐 유니버스를 영화 설정에 도입해 이를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라는 개념으로 구조화합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footnote]MCU; Marvel Cinematic Universe[/footnote]로 새롭게 선보인 캡틴 아메리카

1940년대 등장했던 캡틴 아메리카는 그 이름처럼 ‘짱 센 미국’을 대표하는 단순 과격한 캐릭터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서 여러 번의 재탄생 끝에 등장한 캡틴 아메리카는 자신이 가진 힘은 물론 스스로 지켜야 하는 존재와 가치에 대해 무거운 의문을 던지게 됩니다.

그리고 2011년에 나온 영화는 캡틴 아메리카 만화 시리즈가 시대별로 갖고 있던 모습들을 유연하게 하나의 설정에 묶어 어떻게 보면 충돌할 수 있는 모순들을 개인의 고뇌로 표출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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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퍼스트 어벤저, 영웅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이제 첫 번째 영화 ‘퍼스트 어벤저’를 돌아볼까요?

퍼스트 어벤저

2011년 영화로 등장한 ‘캡틴 아메리카: 퍼스트 어벤저’ 는 ‘캡틴 아메리카’ 라는 이름이 줄 수 있는 위화감이나 반감을 우려한 국내 배급사에 의해 아예 ‘퍼스트 어벤저’ 로 개봉하게 되는 곡절도 있었습니다.

초기 만화원작과 비슷하게 세계2차대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캡틴 아메리카의 탄생편’이 영화 ‘퍼스트 어벤저’인데요. 주인공 스티브 로저스가 처음부터 그리 강력한 존재는 아니었습니다.

© 2011 - Paramount Pictures
© 2011 – Paramount Pictures

약골 청년 그러나 그를 우습게 보지 않는 친구

스티브 로저스 라는 청년은 아주 허약한 체질로 그냥 슥 보기만 해도 가련한 한숨이 나올 정도로 왜소합니다. 그런 그에게는 절친이 하나 있는데 버키 반즈라는 친구죠. 버키와 스티브는 겉보기만으로도 체급이 확연히 달라 보이지만 불의를 대하는 태도나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만은 그리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 2011 - Paramount Pictures
© 2011 – Paramount Pictures

오히려 스티브는 버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버키야말로 자신보다 아래로 보여질 수 있는 상대를 자신과 똑같은 동급으로 대하는 위인이었으니까요. 버키는 스티브를 함부로 동정도 하지 않습니다. 스티브가 불량배에게 맞아도 그걸 복수를 대신해준다던가 하지 않죠. 오히려 위로와 격려를 합니다.

약한 사람도 초인으로 만드는 약의 부작용

그런 친구와의 사이에서 스티브는 억울한 일을 당한 뒤에도 복수심보다는 그저 잘못된 일을 바로잡고 약자를 도우려는 태도를 갖추게 됩니다.

© 2011 - Paramount Pictures
© 2011 – Paramount Pictures

나치 제국의 야욕을 막아내는 정의로운 군인이 되고 싶었던 그가 어렵사리 군입대의 기회를 얻어 지원 사유를 말하게 되었을때도 ‘약자를 도우려는 것일 뿐, 악당을 없애려는게 아니다’라는 식으로 답하죠.

이윽고 그에게 하나의 시험이 다가옵니다. 약골도 엄청난 초인으로 만들어준다는 슈퍼 세일럼 혈청의 존재인데요. 그야말로 만화스러운 초능력을 만들어주는 그 약에는 부작용이 있었으니 착한 사람은 더 착하게, 악한 사람은 더 악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이 약을 마시면 어떻게 될까?’

스티브를 강하게 만드는 존재, 절친 버키

© 2011 - Paramount Pictures
© 2011 – Paramount Pictures

약골 스티브 로저스에게 엄청난 열등감과 복수심이 있었다면 그 약을 마셨을때 어떤 인물이 될지 뻔할 뻔자였던 셈이죠. 툭하면 동네 깡패에게 후드려 맞기나 하고 불특정 다수로부터 비웃음을 사는데 익숙했던 스티브의 시간을 생각하면 어떻게 그가 악한 사람이 아닌, 더 선한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의아해지기도 합니다.

특수부대 하이드라의 수장 요한 슈미트는 슈퍼 혈청을 주입받고 그 부작용으로 굉장한 악인 '레드스컬'이 된다. © 2011 - Paramount Pictures
특수부대 하이드라의 수장 요한 슈미트는 슈퍼 혈청을 주입받고 그 부작용으로 굉장한 악인 ‘레드스컬’이 된다. © 2011 – Paramount Pictures

그토록 스티브의 멘탈이 강했던 요인은 버키 반즈라는 동료, 바로 그가 순수하게 흠모하는 영웅이 그의 곁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 2011 - Paramount Pictures
© 2011 – Paramount Pictures

‘나도 힘이 세지면 저런 사람이 되어야지, 약자를 도와주되 함부로 동정도 하지 않으면서 누구나 평등하게 같은 인격체로서 대할 수 있는 영웅’ 말이죠.

어릿광대에서 진짜 영웅이 되다

스티브 로저스는 이제 슈퍼혈청의 힘으로 엄청난 슈퍼맨이 되지만, 그럼에도 그에게 주어진 역할은 어릿광대였습니다. 대중앞에서 쇼를 하고 돈을 끌어모으는 한편 군인들에게는 야유를 받죠. 스티브는 자신의 존재가치에 대해 회의를 품어가던 무렵 다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됩니다.

© 2011 - Paramount Pictures
© 2011 – Paramount Pictures

친구 버키가 속해있던 부대가 전투에서 패해 그 부대원들이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자, 사령부에서도 구출을 해야할지 말지를 망설이게 되는데요. 스티브 로저스는 마침내 어릿광대의 복장을 떨치고 친구를 구하러 홀로 적기지에 뛰어듭니다.

© 2011 - Paramount Pictures
© 2011 – Paramount Pictures

스티브 로저스가 그렇게 진정한 캡틴 아메리카로 거듭나 성공적으로 부대도 친구도 구출하고 막사로 돌아왔을때 그가 구한 존재는 여전히 자신에게는 절친이자 소중한 존재이지만, 어쩐지 자신에 비해 왜소해졌고 이제는 약하게 느껴지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친구 버키는 스티브와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말합니다.

캡틴 아메리카를 위해서 박수를 치자고 말이죠. 그렇게 버키를 바라보던 스티브 로저스가 영웅이 되고, 그 영웅 탄생을 축하하는 조금 초라해진 옛친구의 이야기.

© 2011 - Paramount Pictures
© 2011 – Paramount Pictures

그것이 ‘퍼스트 어벤저’의 드라마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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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윈터 솔져의 의미는?

이제 두 번째 영화 ‘윈터 솔져(2014)’에 대해서 살펴볼까요?

첫 번째 영화 ‘퍼스트 어벤저’의 시작 장면 기억하실겁니다. 오랫동안 얼음 속에 묻혀있던 방패를 발견하는 것이 영화의 시작이죠. 이 프롤로그는 윈터 솔저의 시작 부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 2013 - Marvel Studios
© 2013 – Marvel Studios

퍼스트 어벤저의 마무리 부분에서 캡틴 아메리카는 비행기와 함께 얼음 속으로 추락합니다. 그 뒤 75년의 세월이 흐르고 세상도 그만큼 바뀌었죠. 하지만 오랜 동면에서 깨어난 스티브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그대로입니다.

한숨 자고 일어났을 뿐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가 몸에 투여받은 혈청의 힘이 여전하기 때문이죠. 악한 사람은 더 악하게, 선한 사람은 더 선하게 만드는 혈청의 힘.

어쨌든 많이 바뀐 세상에 적응해보려는 말년군인의 이야기로 윈터 솔져가 시작됩니다

몰락한 영웅과 얼어붙은 마음들

스티브 로저스에게는 새로운 세상이 많이 적적합니다. 절친한 친구였던 버키 반즈는 지난 2차대전 전투 중 열차에서 추락해 협곡으로 사라졌고, 애인이었던 사람은 호호백발의 할머니가 되어 치매증상까지 보이거든요.

© 2013 - Marvel Studios
© 2013 – Marvel Studios

그래도 세상을 뒤덮었던 거대한 악의 그림자는 사라진 것 같아 위안은 되지만요. 자신 같은 슈퍼 히어로들을 지원하고 엮어주는 정의수호의 특수기관 ‘쉴드’ 의 존재도 어쩐지 든든하게 느껴지죠.

그러나 평화로웠던 분위기도 잠깐, 캡틴 아메리카는 두 번의 중요한 고비를 맞게 됩니다. 엄청난 힘과 능력으로 사람을 암살하고 다니는 천하의 몹쓸 놈, 일명 ‘윈터 솔져’와 대립하는 것이 첫 번째 고비인데요.

© 2013 - Marvel Studios
© 2013 – Marvel Studios

여기서 잠시, 이 영화의 타이틀이자 악인의 닉네임인 ‘윈터 솔져’의 뜻에 대해 짚어봅니다.

‘윈터 솔져와 전쟁범죄’의 관계

토마스 페인 18세기의 철학자이자 미국독립전쟁에서 활약한 시민혁명가인 토머스 페인(Thomas Paine, 1737~1809, 초상화)은 1776년 12월 ‘미국의 위기’라는 글에서 아래와 같은 문장으로 군인들을 독려한 적이 있습니다:

여름의 병사들과 양지의 애국자들(The summer soldier and the sunshine patrio)이 나라에 봉사하며 위기를 줄여나가는데, 그들이 지탱할 수 있는 것은 사람들로부터의 감사와 애정(…)”

부드러운 상징에 가까웠던 이 표현은 그 뒤, 미국의 저명한 정치가이면서 1971년 당시 ‘전쟁 반대 베트남 참전용사’를 대표했던 존 케리가 ‘베트남전 전쟁범죄의 진상을 알리기 위한 미디어 이벤트 데이’에 참여해 이렇게 발언합니다:

존 캐리

“베트남에서 벌어졌던 미군의 전쟁범죄에 대해 침묵해서는 안 된다.”

“토머스 페인이 1776년에 언급한 양지의 행복한 여름병사들이 아닌, 음지의 혹독한 환경에 처하는 겨울병사들이 그들.”

역설적인 개념으로 ‘겨울 병사’ 즉, ‘윈터 솔져’를 증언에서 인용했죠. 케리의 증언을 많은 사람이 상징적인 표현으로 기억합니다(참조: Winter Solder Investigation).

marvel.com comic book 'captain america'
marvel.com comic book ‘captain america’

마블의 작가들은 바로 존 케리가 당시 미디어 이벤트에서 증언했던 내용과 표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혹독한 음지에서 범죄와 충돌하게 되는 험난한 군인 혹은 전쟁범죄’를 뜻하는데 적격이었던 ‘윈터 솔져’를 타이틀로 갖고 온 것이죠.

영화로 넘어와, 자의든 타의든 불의와 충돌하고 보는 스티브 로저스는 결국 ‘윈터 솔져’와 정면대결을 하게 되는데요. 윈터 솔져의 정체는 다름 아닌, 자신을 오늘의 영웅으로 만들어주었던 옛친구이자 전 편 ‘퍼스트 어벤저’에서 행방불명된 버키 반즈였습니다.

윈터 솔져의 뒤를 쫓는 스티브는 착잡해집니다. 자신이 좋아하던 영웅의 몰락을 보는 동시에, 그 몰락한 영웅을 자기 손으로 응징해야 하는 상황이니까요. 스티브 로저스와 버키 반즈의 대립에서 관객들은 한가지 명료한 상황을 보게 됩니다.

© 2013 - Marvel Studios
© 2013 – Marvel Studios

어제의 정의가 오늘의 악으로

한때 영웅이자 선인이라 할지라도 어떤 계기를 맞으면 그 역시 악인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편, 인물들의 뒤편에서 별개의 고비가 등장하죠. 마블 히어로즈들을 지원하고 어벤저스 결성까지 가능하게 했던 특수기관 ‘쉴드’가 2차대전 때부터 뿌리를 유지해온 악의 조직 ‘하이드라’ 의 침투로 상당 부분이 부패했다는 정황입니다.

© 2013 - Marvel Studios
© 2013 – Marvel Studios

그 덕분에, ‘쉴드’에서 악의 떡잎을 발본색원한다며 만들어낸 대테러 방지무기인 ‘프로젝트 인사이트’의 방향 역시 위태로워지죠. 영화는 개인과 단체에서 각각 맞닥뜨린 두 가지 상황을 한가지 명제로 합칩니다.

‘당신이 아끼던 선한 존재들이 어느 날 악한 존재로 변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 2013 - Marvel Studios
© 2013 – Marvel Studios

주인공이 너무 오래 동면한 나머지 바뀐 세상을 못 받아들이는 현실 부적응자라며, ‘쉴드’의 전임국장 알렉스 피어스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가끔 오래된 것을 버려야 하는데 그게 적을 만들기도 한다’ 고 조언도 하지요.

바뀐 세상에 절망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주인공 © 2013 - Marvel Studios
바뀐 세상에 절망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주인공 © 2013 – Marvel Studios

영화 내내 ‘쉴드’ 와 국제사회의 권력을 대표하는 그는 ‘새로운 정의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수단 방법을 안가리는 편이기도 합니다.

쉴드의 전임국장 알렉스 피어스, 로버트 레드포드가 열연했다. © 2013 - Marvel Studios
쉴드의 전임국장 알렉스 피어스, 로버트 레드포드가 열연했다. © 2013 – Marvel Studios

스티브 로저스는 버키 반즈를 쫓아가고 대립하면서도 그를 적대하지는 않습니다. 어려웠던 시간을 견디게 해준 친구의 선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어떻게 해서든 자신이 책임을 지려 하죠. 그리고 ‘쉴드’의 수많은 사람 앞에서 마이크를 부여잡고 말합니다.

© 2013 - Marvel Studios
© 2013 – Marvel Studios

“이젠 진실을 알아야 할때다. 정의를 구현한다고 믿었던 쉴드는 우리가 생각하는 조직이 아니었다. 자유의 가치는 항상 비쌌다. 하지만 난 기꺼이 그 가치를 치를 준비가 되어있다. 혼자라도 상관없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렇게 캡틴에 의해 ‘정의의 수호대였으나 변질된 기관 쉴드’는 해체됩니다. 이쯤에서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더 명료해집니다.

강력한 힘과 감시권을 지닌 존재가 그 능력을 선한 목적에 쓰겠다 한다. 그러나 그 능력을 제어할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보장이 없다. 제어할 이의 투명성이 없을 때 그 능력은 선한 일에 쓰일 수 있을까?

한때 미국은 세계 이곳저곳의 좋지 않은 일에 파수꾼 노릇을 자처하며 뛰어들어왔습니다. 그 노력의 와중에는 자국의 이권도 있겠지만 아마 평화를 위한 전인류적 시각도 없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방법과 제어에 문제가 있다면 스스로 돌아보고 자정을 시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중요한 존재라 해도 해체하거나 합당한 심판을 받아서라도 말이죠.

이쯤 되면 왜 영화의 제목이 1971년 베트남 참전 용사가 썼던 반전 표현과 같은지 우연으로 느껴지지 않게 됩니다.

베트남전과 전쟁범죄를 반대하는 사람들 (출처 : vvawprotest.org)
베트남전과 전쟁범죄를 반대하는 사람들 (출처 : vvawprotest.org)

영화 속 캡틴 아메리카의 행동이 그렇습니다. 잃어버린 정의를 다시 찾으려면 어떤 것은 없어져야 하며 어떤 것은 심판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자신이 펼칠 수 있는 최대의 정의이자 자정능력이라고 말이죠.

‘윈터 솔져’의 방향과 정체성

영화의 전개는 개인적인 일 혹은 규모가 작아 보이는 사건들을 병합시켜 거대한 전쟁을 치르는 국가의 부패와 위험성으로 은유해나갑니다. 왜 시리즈 주인공의 이름이 캡틴 아메리카인지 돌아보게 마저 합니다.

© 2013 - Marvel Studios
© 2013 – Marvel Studios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의 이야기들은 이렇듯 영웅이 어떻게 탄생하고 몰락하는지, 또 그들이 펼치는 정의가 어떻게 변질될 수 있는가를 다뤄내고 있는데요. 극 전체가 ‘정의란 무엇이냐’는 단순하면서도 커다란 의문을 던지고 있다고 할 수 있죠.

© 2013 - Marvel Studios
© 2013 – Marvel Studios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고 흙탕물에 손까지 담그는 당신을 그저 더럽다고 비웃는 사람들, 그런 자들이 행복해하는 오늘이라니 그게 날 진짜 화나게 해!”

주인공 앞에서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고 마는 알렉스 피어스의 대사는 *’또 한명의 윈터 솔져’가 누구인지, 어떻게 정의의 수호자가 한 끗 차이로 악인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암시이기도 합니다.

시원한 액션과 달리 제목과 대사들을 통해 드러나는 은유와 이야기들의 결이 무거운 편이지만 그만큼 ‘정의와 선은 단순하게 정의하기도 고정하기도 어려운 것’이 아닐까, ‘윈터 솔져’가 보여주는 드라마의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 2013 - Marvel Studios
© 2013 – Marvel Studios

따라서 이 영화의 주인공 캡틴 아메리카를 비롯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을 ‘윈터 솔져’ 로 보게 되는 것도 감독의 연출 의도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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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캡틴 아메리카는 왜 버키를 쫓는가?

이 글은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가 담고 있는 사연 들 중 주인공 스티브 로저스와 그의 친구 버키 반즈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드라마를 들춰보고 있습니다.

© 2011 - Paramount Pictures
© 2011 – Paramount Pictures

앞서 ‘퍼스트 어벤저’에서 약골이던 주인공은 강력한 초인이자 불의를 넘기지 못하는 선인이 됩니다. 특히, 자신이 약자이던 시절을 열등감으로 돌아보기보다 다른 약자를 돌보는 존재가 된 것이죠.

‘윈터 솔져’에서는 쉽게 변질되고 마는 세상에 맞서 고군분투합니다. 타락한 친구를 마주하는가 하면, 정의로운 곳이 악으로 오염된 현실도 목격하죠. 특히, 옳은 일을 위해 구축된 기술 ‘프로젝트 인사이트’가 완전히 그릇된 살상무기로 돌변하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완결편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는 앞선 두 영화에서 보여줬던 ‘정의’의 방향과 정체성이 더욱 복잡한 모습으로 분열되기 시작합니다.

© 2016 - Marvel Studios
© 2016 – Marvel Studios

시빌 워, 캡틴은 왜 버키를 쫓는가?

‘윈터 솔저’편의 마무리에서 스티브 로저스는 바다에 떨어져 죽어가지만, 대립하던 옛친구 버키가 그의 목숨을 구하고 사라집니다.

© 2013 - Marvel Studios
© 2013 – Marvel Studios

누구보다 과거의 친구를 잘 알던 스티브는 버키가 마침내 악의 세력에서 벗어나려는 것을 느끼게 되죠. 그런 스티브의 측은지심이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갈등의 한 축으로 자리하게 됩니다.

영화 ‘시빌 워’는 버키 반즈가 하이드라의 조종을 받아 저지른 과거 테러를 프롤로그로 조명하는데요. ‘윈터 솔져’로서 범죄를 저질러온 버키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관객에게 던지는 화두이기도 합니다.

© 2016 - Marvel Studios
© 2016 – Marvel Studios
© marvel.com comic book 'civil war'
© marvel.com comic book ‘civil war’

만화 원작과 같은 점 혹은 다른 점

‘시빌 워’에는 ‘악당들의 존재감’이 없습니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불의’를 어떻게 처리할지를 두고 벌어지는 힘의 격론이 큰 분쟁을 일으키는데요.

원작만화 ‘시빌 워’ 에서는 ‘초인등록법안의 찬성과 반대’를 두고 마블 히어로즈들이 큰 대립을 하게 됩니다. 초인들의 모든 신상정보를 국가에 등록하고 관리하여 제도화시키느냐와 신상의 비밀을 각자에게 맡기고 종전대로의 자유를 허용하느냐를 두고 싸우게 되는 것이죠.

영화 ‘시빌 워’는 겉보기에는 만화와 비슷하게 ‘히어로들을 제도 관리하는 협정’에 서약하냐 마냐로 대립하지만, 그 협정과 상관없이 일어나는 충돌이 드라마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초반에서 ‘스칼렛 위치’는 캡틴 아메리카를 폭탄에서 구하려다 다른 사람들을 죽게 하는데 그 처리를 두고 UN의 정치가들이 논의한 끝에 소코비아 사건(‘어벤저스 2 : 울트론의 시대’ 배경이 되었던)을 예시해 ‘어벤저스’를 UN 관리 기구 아래에 두고 제도화하자는 협정을 제시하게 되지요.

© 2016 - Marvel Studios
© 2016 – Marvel Studios

소코비아 협정은 갈등의 본질이 아니다!

소코비아 사건 피해자를 만나 처연한 항의까지 들었던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는 히어로들에게 억제와 관리가 필요하다며 협정에 찬성하고, 찬성에 마음을 기울여가던 캡틴 로저스는 그 과정에서 히어로들의 인권이 침해되는 역설적 상황에 반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둘을 걷잡을 수 없게 대립시키는 것은 협정이 아닌 ‘윈터 솔져’의 UN 테러 사건인데요. 소코비아 협정을 주도하고 발의한 나라 아칸다의 국왕이 사망하고 그 범인으로 ‘윈터 솔져’ 버키 반즈가 지목되기 때문입니다.

캡틴 아메리카가 버키 반즈를 감싸는 모습은 앞의 영화들에서 비롯된 일관적인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저지른 일이 있다면 합당한 심판이 주어져야 한다. 그러나 그 사람이 하지 않은 일까지 덮어씌우지 마라. 하이드라 때문에 강제로 저지른 범죄들을 버키가 모두 책임져야 하는가?

그런 스티브에게 버키가 고백도 하죠.

‘아니야, 그것은 모두 내가 한 일이었어.’

© 2016 - Marvel Studios
© 2016 – Marvel Studios

시빌 워 (Civil War), 어떤 뜻인가?

이쯤에서 영화의 타이틀 ‘시빌 워’의 뜻을 상기해봅니다. ‘Civil War’ 는 ‘정치권력의 획득을 둘러싸고 같은 나라 안에서 한 집단이 다른 집단에 대해 무력투쟁을 일으키는 행위’ 로 정의되곤 하는데요. 짧은 말로 ‘내전’이라 합니다.

같은 나라, 같은 사회 안에서 벌어지는 내전은 침략과 방어처럼 방향과 경계가 외부적으로 명확한 전쟁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살던 집단이 각자의 이해추구과정에서 대립하게 되는데요.

이권이나 종교 인종 갈등이 아닌 ‘서로 옳다고 여기는 평이한 개념들’이 충돌할수록 더 깊고 복잡한 싸움으로 전개되기에 외부의 시선으로 볼 때는 종종 왜 싸우는지조차 이해가 어려워집니다.

영화 ‘시빌 워’ 에서는 ‘범죄자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 를 두고 크고 작은 대립이 빚어집니다. 이는 철학으로 정립된 개념 중 ‘사회정의'(Social Justice)의 원칙과 실현을 두고 맞서는 집단갈등의 은유이기도 한데요.

우리에게 가슴아픈 역사, 한국전쟁(1950-1953)도 대표적인 내전(Civil War)다. (출처: Korean War Photos, United States federal government)
우리에게 가슴아픈 역사, 한국전쟁(1950-1953)도 대표적인 내전(Civil War)다. (출처: Korean War Photos, United States federal government)

상실감과 동질감, 피해자와 가해자

‘시빌 워’에서는 주인공 캡틴 아메리카보다 더 큰 갈등과 논란에 휩싸이게 되는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하나는 스스로 ‘제도 된 통제’를 받아들이고자 했던 아이언맨, 또 하나는 UN 테러로 사망한 국왕의 아들 ‘블랙 팬서’ 입니다.

© 2016 - Marvel Studios
© 2016 – Marvel Studios

토니 스타크는 성인이 되던 무렵 부모가 테러에 사망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코비아에서 아들을 잃었다는 어머니의 분노도 쉽게 이해하고 그 방지책으로 소코비아 협정 서명을 모두에 내미는 거죠.

토니 스타크의 분별력과 정 반대 선상에는 오로지 복수를 하겠다며 버키를 죽이려는 블랙 팬서가 있습니다.

둘은 소코비아 협정을 앞뒤로 뭉치게 되지만, 협정도 반대하고 버키도 보호해야 하는 스티브는 둘에 모두 맞서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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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복수는 정의구현이 될 수 있는가?

영화의 플롯은 의외의 복선과 반전을 통과하며 버키가 UN 테러의 범인이 아니라는 게 드러나고, UN 테러를 조작하면서까지 토니와 스티브를 대립시킨 진범은 ‘윈터 솔져’의 악행 자료를 공개해 아이언맨의 이성을 날려버립니다.

앞서 영화의 초반부 ‘윈터 솔져’가 테러하는 대상이 이 시점에서 밝혀지는데 그 희생자는 다름 아닌 토니의 부모님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개인의 복수는 정의란 이름으로 펼쳐질 수 있는가?’라는 주제가 무겁고 매섭게 인물들 사이를 휘몰아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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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맨-캡틴 아메리카-버키 반즈는 처절하기 짝이 없는 전투를 시작하게 되는데요. 버키는 생존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통제와 자정을 대변했던 두 인물의 처지는 바뀌다 못해 이성 잃은 복수심과 인류애적인 조정자가 드잡이질로 피를 흘리게 되는 내전이 벌어지는 것이죠.

마지막 전투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입혀가는 장면들은 상징적이기까지 한데요. 그렇게 펼쳐지는 영화속 대결은 버키 반즈 로 대변되는 보통 사람들을 두고 사회 이데올로기의 정체성과 방향들이 충돌하는 느낌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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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가 나올 수 없는 싸움

영화 ‘아이언맨’ 에서 ‘양심’으로 은유 되기도 했던 아크 원자로를 정의의 상징인 캡틴의 방패가 내리찍는 장면은 메타포 액션의 결정이라고 할 수 있고요. 눈앞에 부모님 원수가 나타나자 복수심에 불타는 평범한 인간이 되는 토니 스타크. 불리한 약자가 된 불씨를 감싸기 위해 감히 정의라는 이름도 내려놓는 캡틴 아메리카의 행동.

둘의 처지에 관객들은 공감하게 되는 한편, 어느 한쪽을 응원하기도 힘들어집니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는 피해자가 되는 아이러니 속에서 드러나는 진범의 동기 역시 피해의식의 복수였다는 것은,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문제의식의 본질이 되는 셈입니다.

그렇기에, 영화의 마지막 싸움은 승자가 나올 수 없는 전투이기도 하지만 승자가 나와서도 안 되는 전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언맨이 승리하면 부모의 원수를 갚는 살인자가 탄생하는 셈이고 캡틴이 승리하면 억울한 피해자만 남게 되니까요.

그래서 원자로의 불빛은 꺼지고 캡틴은 방패를 내려놓게 됩니다. 개인의 복수 실현도 정의가 아니요, 범죄자의 비호도 정의가 될 수 없다는 것이죠. 그런 그들의 뒤편에서 역시 피해자이면서도, 자신의 문제를 모두의 문제로 풀어가는 존재가 *에필로그를 마무리합니다.

*이 에필로그는 엔드크레디트 중에 등장하는 쿠키 형식의 영상입니다.

“내 아버지, 토니 부모님, 버키 반즈, 모두 거대한 범죄의 희생양이야. 그저 내가 찾아줄 수 있는 평화라면 한 사람에게라도 찾아주고 싶다.”

에필로그 영상 속에서 세 편의 영화를 통틀어 버키 반즈의 뒤를 쫓아온 캡틴 아메리카는 블랙팬서의 나라 와칸다에서 버키와 작별을 하고 그가 갖고 있던 무거운 짐을 마침내 내려놓게 됩니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캡틴 아메리카는 왜 버키 반즈를 쫓는가?

세 편의 영화에 모두 등장하면서도 색다른 이유와 답을 만들게 되는 이 질문은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가 보여주는 드라마의 핵심이자 ‘정의라는 이름의 철학’ 앞에 관객의 지성을 인도하는 일종의 안내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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