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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2016년 2월 29일, 역사교육연대회의는 초등학교 6학년 국정 사회 교과서의 내용 분석 결과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국정화 발표 이후 처음 발행한 교과서인 셈입니다. 역사교육연대는 해당 교과서의 내용이 박정희 정부를 합리화하고, 찬양하고 있다고 분석 결과를 전했습니다.

첫 국정교과서, 어떻게 봐야 할까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역사 강사인 심용환 님께서 문제의 단계적 해법에 관한 논의를 기고해주셨습니다. 국정 교과서 문제에 관한 다양한 의견과 기고를 환영합니다. (편집자)[/box]

초등 국정 교과서를 두고 시끌시끌하다.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수정했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수립이라는 모호한 용어로 대체했다. 이승만은 무려 14번, 박정희는 무려 12번 반복되고 5.16 군사 쿠데타와 유신을 합리화하는 문장이 들어갔고 독재라는 말이 사라졌다.

올해부터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배울 사회과 국정 교과서: 2014년 발행된 실험본 (위쪽), 최종본(아래쪽) (자료 제공: 역사교육연대)
올해부터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배울 사회과 국정 교과서: 2014년 발행된 실험본 (위쪽), 최종본(아래쪽) (자료 제공: 역사교육연대)

1. ‘그들’의 콘텐츠는 매우 빈약하다 

수년 전 교과서 포럼 때부터 주장되던 내용이었고,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도 이렇게 쓰였고, 국정화 논란 때도 바로 이 주제들이 논란이 되지 않았던가. 새로운 내용이 하나도 없다. 수년간 ‘이런 방식’으로 바꾸겠다고 수차례 시도를 했다. 이 사태들로 미루어보면 이번 고등학교 국정화 교과서의 내용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연구자들이야 교과서가 나오면 분석하고 알려야 하는 것은 응당 당연한 일이다.

이번 교과서를 통해 더욱 명확해진 사실은 적어도 그들이 매우 ‘콘텐츠가 빈곤’하며 참으로 ‘정직’하다는 점이다. 예상 그대로 매번 강조하던 것 그대로 강조를 한다. 그렇게 비판을 하고 지적을 하더라도 역시 똑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아마 내년에 나올 고등학교 교과서도 그렇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기분은 나쁘지만, 상황은 오히려 단순하고 대응도 편하다.

어떻게 보면 쟁점은 그리 많지 않다. 건국절 논란은 몇 가지 반박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꾸었다는 것 역시 그다지 심각한 내용이 아니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결국 이승만-박정희 미화밖에 없다.

이승만 (1956)
이승만 (1956)

박정희

2. 대안 교과서? 이미 좋은 책은 많다

대한민국은 역사 콘텐츠가 부족한 나라가 아니다. 대안교과서를 만든다고도 하지만, 이미 교양 역사서는 풍부하다. 자녀와 함께 책을 읽자.

  •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전국역사교사모임, 휴머니스트)
  • 아틀라스 한국사(교원대학교 교수진, 사계절)
  •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서중석, 웅진)
  • 역사적 쟁점에 답해주고 싶다면 역사전쟁(심용환, 생각정원)

그 밖에도 좋은 책은 너무나 많다.

가족이 함께 책을 읽고, 몇 가지 심각한 이슈에 대해 툭 터놓고 가족 간에 대화를 나누든지, 부모가 직접 자료를 준비한 후에 차분하게 가르치고 토론해 보면 좋다. 가족 분위기도 매우 좋아지고, 대화의 수준도 올라가고, 단 몇 주 만에 가족 분위기가 확 바뀔 것이다. 결코 어렵지도 않고, 유익한 이야기들을 많이 만들어낼 수 있다.

그리고 학교 선생님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일제 시대 나운규가 만들었던 아리랑이라는 작품의 엄청난 흥행을 주도했던 것은 현장 ‘변사’였다고 한다. 결국, 텍스트를 어떻게 풀어내는가가 중요하다. 역사 선생들은 그 정도로 무능하거나 파렴치하지 않다.

3. 정치에만 기대지는 말자 

어쩌면 가장 쉬운 국정화의 해법은 정권 교체다. 하지만 (협의의) 정치에서만 기대고, 그래서 좌절하거지는 말자. 정치에 관심을 두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정치에만 기대지 말자는 것이다. 정치는 긴 여정이다.

결국, 중요한 사실은 정권의 변동 여부와 상관없이 학계의 자율적 연구 성과가 그대로 교과서에 반영되어야 할 것이며 검인정에서 자유발행제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대학 입시 때문에 자유발행제는 어렵다고? 그렇지 않다. 선진국을 보더라도 대학 입시를 위한 공통의 항목이 존재하고 나머지 부분에서 자율성을 허락하는 형태다.

우리 역시 시험을 위한 교육 내용을 확정하고 나머지 부분에서 뉴라이트든 극우파든 편하게 교과서를 발행하게 놔두면 그만이다. 그 이후에는 시장에서 결정날 것이다. 격렬한 공방이 정치권이 아니라 시장과 교육계에서 자율적으로 이루어질 것이고 혼란스러운 부분이야 생기겠지만, 이 과정을 통해 학계와 시민의 자율성이 확보될 것이다.

희망 꽃 용기 바람 소망

4. 토론 수업 의무화를 요구하자  

더 시급한 게 있다. ‘토론 수업’ 의무화다. 교과서에 어떻게 쓰여 있느냐보다 교과서를 어떻게 ‘이해하고 수용할 것인가’가 훨씬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역사 관련 자원이나 자료가 부족한 나라가 아니다. 역사 스페셜을 비롯하여 학습 자료로 사용할 수 있는 영상 자료 또한 매우 방대하다.

3시간이 한국사에 배정된다면 1시간 정도를 의무 토론 수업으로 만들자. 굳이 뉴라이트를 비판하고, 이승만과 박정희를 어떻게 생각하니 식의 예민한 문제부터 건드리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랜 시간 동안 역사는 암기 과목이었고, 교과서는 그 자체로 신성한 것들이었다. 언제까지 밑줄 긋고 아무 생각 없이 정답만 외울 건가.

역사라는 교과는 그 어떤 교과보다도 할 얘기가 많다. 더구나 근현대사는 그 자체로 훌륭한 현실 정치 교육이기도 하다. 관심거리다. 당연히 예민한 주제도 다룰 수 있고 보수적인 입장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무책임한 주장이나 이념을 위한 역사 왜곡 은 토론 수업에는 자리 잡기 어렵다. 교육 현장의 변화와 극복해야 하는 역사 왜곡의 위기를 한번에 해결할 수 있다.

교실 학생 수업

5. 교과서뿐 아니라 EBS 교재, 모의고사를 주목하자 

크게 착각하는 게 하나 있다. 학생들은 교과서를 읽지 않는다. 교과서를 읽더라도 시험에 나오는 것 위주로 암기한다. 실제로 교학사 교과서가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더라도 EBS 교재라든지,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 그리고 교육과정평가원이나 교육청에서 내는 모의고사, 수능 문제만 확실하게 출제하면 학생들은 역사 왜곡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만큼 현재의 역사 교육은 입시 위주, 암기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그런데 언제나 이슈가 되는 것은 교과서다. 한발 더 나아가 보자. 감시 영역을 효과적이고 섬세하게 전개할 필요가 있다. 고1 내신 시험 또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절대다수의 역사 교사 그리고 학교 분위기 자체는 결코 역사 왜곡에 우호적이지 않다.

만약에 한국사 교과서가 이대로 주저앉으면 국어 교과서를 비롯하여 온갖 것들이 뭉개질 수밖에 없기에 결코 교육 공간에서 왜곡은 쉽지 않다. 더구나 한국 교육의 특성상 교육은 비정치적이어야 한다는 기조가 확고하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학교 교육이 정치 투쟁의 장으로 변질되는 것에 우호적이지 않을 것이다.

교과서

더불어 매해 출간되는 EBS 교재를 분석해야 한다. 어떤 것이 강조되고, 어떤 것이 누락되었는지, 어떤 형태의 문제가 주를 이루는지, 어떤 문제가 사라졌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모의고사 문제도 검토해야 한다. 편향성을 가진 문제를 끊임없이 이슈화해 사회적 관심사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어떤 문제가 출제되는지에 관해 민감해진다면 또 하나의 견고한 방어막을 확보할 수 있다.

교과서를 감시해야 한다. 그리고 검인정을 넘어서 자유 발행제까지 나아가야 한다. 정치권이 아니라 시민사회와 학계가 역사교육을 장악해야 한다. 이런 것들은 여전히 장기 과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편에서 저편으로 건널 수 있는 징검다리다. 토론 수업을 의무화하고, 교사를 책임 있게 만들며, 학생들이 암기하는 교재와 수학능력시험을 관리해야 한다. 그렇다면 권력은 결코 쉽사리 역사를 왜곡하지 못할 것이다.

절망하지 마시라. 아직 희망은 도처에 널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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