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많은 언론사가 착각하고 있는 게 있다. 우리는 지금 디지털 퍼스트를 하지 않아서 망하고 있는 게 아니다.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는 “이렇게 좋은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데 왜 무단펌질 콘텐츠로 채운 버즈피드 따위에 뒤처지는가” 하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콘텐츠를 만든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뉴욕타임스의 혁신은 그래서 어떻게 콘텐츠의 가치를 극대화할 것인가에 집중했다. 뉴욕타임스니까 가능한 고민이었다.

뉴욕타임스는 “우리가 만든 콘텐츠를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기술에서 뒤처져 있다”고 분석하고 조직과 업무 프로세스를 뜯어고쳤다. 그러나 한국 언론사들의 상황은 다르다. 전달하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콘텐츠가 문제다. 아무리 포장을 바꾸고 디지털 퍼스트니 모바일 퍼스트니 공허한 구호를 외쳐봐야 조직과 발상이 달라지지 않는 이상 떠나는 독자들을 붙잡을 방법이 없다.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 1. 혁신의 함정

새로운 실험이 계속되고 있지만 인정해야 할 것은 스브스뉴스가 SBS 뉴스를 구원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독자를 확보할 수 있고 일부 독자를 전통 뉴스 플랫폼으로 유인할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무너지는 낡은 뉴스 시스템을 대체할 대안은 아니다. 데이터 저널리즘 당연히 필요하다. 카드뉴스, 떠나가는 독자를 붙잡기 위해 당연히 해야 한다. 디지털 스토리텔링도 필요하다. 그러나 새로운 실험일 뿐, 모든 뉴스를 그렇게 만들 수는 없다.

여전히 시도는 계속해야 한다. 다만 서너 가지 새로운 시도가 나머지 뉴스를 방치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게 현실이다. 모든 뉴스를 카드뉴스나 디지털 스토리텔링으로 바꿀 수는 없다. VR(가상현실) 뉴스? 좋은데 그것도 수많은 뉴스 포맷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포맷을 넓혀가는 건 좋지만 중요한 건 진짜 재미없으면서도 중요한 뉴스를 읽게 만드는 방법. 일상적으로 버려지는 97개의 뉴스를 어떻게 포장하고 어떻게 독자들에게 떠다 먹일 거냐 하는 문제다.

[divide style=”2″]

2. 저널리즘 위기의 실체는 무엇인가?

위기의 일차적인 원인은 뉴스가 너무 많고 너무 많은 뉴스가 진짜 중요한 뉴스를 가린다는 데 있다. 독자들은 종이신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넘겨보지도 않고, 9시 뉴스를 8시 55분부터 기다렸다가 40분씩 들여다보지도 않는다. 어디선가 던져진 링크를 타고 들어가 기사를 끝까지 보지도 않고 닫아버린다. 브랜드 충성도도 없고 뉴스의 전후 맥락은커녕 기본적인 메시지조차도 전달되지 않는다. 편집원칙조차도 크게 의미가 없다.

미디어 산업에서 비즈니스의 위기는 오히려 부차적이다. 구독과 광고의 두 축이 모두 무너지고 있지만 애초에 신문은 구독으로 먹고살지 않은지 오래됐고, 광고 역시 광고 효과가 없게 된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방송 역시 마찬가지다. 본방 사수가 줄어들고 주문형 비디오가 확산하면서 공짜 방송에 광고 끼워팔기 수익모델이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핵심은 독자들이 뉴스를 더 이상 열심히 보지 않고 당연히 상품 가치도 크게 떨어졌다는 사실이다.

[divide style=”2″]

3. 온라인 저널리즘은 저널리즘을 어떻게 망가뜨리는가

과거 국내 뉴스 소비의 메인 플랫폼이 네이버 첫 화면 뉴스캐스트였다면 뉴스스탠드로 옮겨오면서 3분의 2 이상이 사라졌다. 그리고 상당수 언론사들이 줄어든 트래픽의 상당 부분을 검색 어뷰징으로 만회하고 있고 포털 사이트들도 이를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이건 뉴스라고 보기는 어렵고, 온라인에서 뜨는 정보를 알려주는 서비스 정도인데, 남들이 보기 때문에 중요한 뉴스가 되는 이런 뉴스들이 상당한 상품성을 갖는다는 게 문제다.

네이버 뉴스스탠드 속 서울신문
네이버 뉴스캐스트가 뉴스스탠드로 전환하면서 트래픽은 급감했지만, 여전히 ‘노출’ 경쟁은 계속된다.

대부분 독자들은 뉴스를 거의 또는 전혀 읽지 않으면서, 신문도 읽지 않고 방송 뉴스도 보지 않고, 그러면서도 충분히 뉴스를 읽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페이스북에서 누군가가 걸어놓은 링크, 카카오톡이나 텔레그램에서 던져주는 링크, 포털 사이트에서 스쳐 지나가다 본 기사 제목 정도다. 열독 계층이 급격히 엷어지고 있다. 동료 집단과 뉴스를 공유하면서 특정 성향의 뉴스가 확대 재생산되는 경향도 굳어지고 있다.

[divide style=”2″]

4. 종이신문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종이신문은 한동안 버틸 가능성이 크다. 구독과 광고, 수익모델의 두 가지 축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건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한국에서는 주요 출입처에 기자를 꽂아넣을 수 있다면 일정 수준의 광고가 보장된다. 발행 부수가 얼마나 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신문 기사의 퀄리티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일반 독자가 거의 없고 기업 홍보실에만 조금 들어가는 신문이라고 해도 일단 일간지 카르텔에 들어가면 광고가 배정된다.

죽는소리를 하지만 사실 기업들은 광고가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 기업과 언론이 적당한 긴장을 유지하면서 공존공생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면 이 정도 비용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상당수 기업들이 광고를 줄이면서 협찬이나 후원을 늘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광고 효과는 떨어지지만, 지면을 동원하면 광고 이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독자들에게 버림받고 있지만, 한국의 유력 일간지들은 앞으로도 꽤 오래 살아남을 것으로 보인다.

[divide style=”2″]

5. 독자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독자들은 여전히 뭔가를 보고 듣고 읽는다. 다만 그게 뉴스가 아닌 경우가 많다. 뉴스의 외연이 확장됐다고 볼 수도 있지만, 콘텐츠 소비의 총량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뉴스를 읽는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독자를 잃는다는 건 정말 공포스러운 일이다. 단순히 비즈니스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기사를 써도 반응이 없거나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면 생존의 문제와 별개로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없게 된다. 언젠가부터 1면 전략이 먹히지 않게 됐다.

이미 독자의 상당수가 피키캐스트나 빙글이나 인사이트, 위키트리 따위로 빠져나갔고 계속 빠져나가는 중이다. 이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필요하다면 뉴스를 더 쉽고 재미있게 만들고 숟가락으로 떠다 먹여야 할 수도 있지만, 모든 뉴스를 당의정으로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어떤 뉴스는 길고 딱딱하고 재미없을 수도 있다. 지루하고 꼰대스럽지만 꼭 읽어야 할 뉴스도 많다. 그러나 독자들의 인내심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게 현실이다.

피키캐스트

[divide style=”2″]

6. 모바일은 기회가 될까

모바일 시대 저널리즘의 가장 큰 위기는 독자 유입 경로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한국 언론은 지난 10여 년 동안 네이버와 다음에 종속돼 왔다. 그런데 뉴스 콘텐츠 소비의 80% 이상을 차지했던 포털 사이트들이 모바일로 넘어오면서 뉴스 콘텐츠를 버리고 있다. 뜨내기 독자들은 언론사 브랜드에 아무런 충성도도 없고 뉴스를 체계적으로 읽지 않는다. 모바일에서는 특히 프론트 페이지라는 게 거의 의미가 없다.

스마트폰 아이폰

모바일로 옮겨오면서 뉴스의 파편화 현상이 더욱 심해졌다. PC 기반 온라인 뉴스에서는 첫 화면에 기사가 많게는 100개까지 들어갔는데 모바일에서는 20개가 넘지 않는다. 독자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사가 제한적이고, 그나마 눈길을 끌기 위해서는 좀 더 자극적이고 눈길을 끌기 좋은 기사를 배치하는 수밖에 없다. 좋은 기사가 안 읽히는 것보다 좀 떨어지는 기사라도 많이 읽히는 편집을 할 수밖에 없다. 편집이 기사 가치를 배반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divide style=”2″]

7. 새로운 플랫폼은 어디에 있나

뉴스를 찾아보는 시대가 아니라 뉴스가 찾아오는 시대로 가고 있다. 철저하게 기사가 낱개 단위로 소비되는 시대에 독자들을 붙잡을 방법이 없다. 뉴스 패키지가 해체되면서 팔리는 뉴스만 팔리게 된다. 뉴스 대부분이 서너 시간이 지나면 의미가 없게 되고 어떤 뉴스는 만들어지는 즉시 버려지게 된다. 낱개 단위 기사를 내다 팔 플랫폼이 있어야 하는데 검색 엔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검색으로 뉴스를 찾아보는 훈련도 안돼 있다.

페이스북 인스턴트 아티클은 한국 언론에도 또 한 차례 큰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당장 페이지뷰가 크게 늘지는 않겠지만, 독자의 뉴스 소비 행태를 바꿔놓을 것이고 페이스북 의존도를 더욱 높일 가능성이 크다. 공유되는 콘텐츠 중심으로 뉴스의 기획과 생산, 유통 방식에 변화가 시작되고 있고 살아남는 언론사들 중심으로 어젠더 시스템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변화를 원하든 원치 않든 올라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facebook-76658_640

[divide style=”2″]

8. 파괴적 혁신을 위한 아이디어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 혁신와 새로운 저널리즘을 이야기하지만, 미디어는 자동차 산업과 다르다는 사실을 전제해야 한다. 모바일과 소설 네트워크의 시대, 뉴스 산업의 시스템이 전반적으로 지각 변동을 겪고 있지만, 사실 확인과 아젠다 셋팅, 비판과 대안 제시 등의 저널리즘의 본질을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혁신의 방향이 비즈니스적 기회나 새로운 헤게모니 뿐만 아니라 저널리즘적 가치를 높이는 방향이 돼야 하는 이유다.

부랴부랴 페이스북 좋아요를 늘리느라 아우성이고 카드뉴스와 디지털 스토리텔링, 인포그래픽&인터랙티브 뉴스, 데이터 저널리즘, 증강현실까지, 새로운 서비스가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정작 저널리즘을 보호하는 혁신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은 매우 부족한 상태다. 언론사 차원에서는 버리고 떠날 것인가 고쳐서 갈 것인가의 고민이 필요하고 사회적으로는 가치 있는 콘텐츠를 추천하고 공유하는 새로운 플랫폼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상황이다.

[divide style=”2″]

9. 저널리즘적 접근

브랜드가 해체되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브랜드는 중요하다. 우선, 지나간 기사를 살려내는 방법이 필요하다. 독자들의 충성도를 제고하고 1회 방문당 페이지뷰를 높여야 한다. 소모적인 인력 운용을 전면 쇄신해야 한다. 기자들의 심장이 뛰게 만들어야 한다. 비용을 절감하고 생산성을 극대화해야 한다. 어뷰징은 사라지지 않겠지만 어뷰징에 매몰되지 않도록 단기 성과주의를 극복할 성과 보상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좋은 뉴스가 돈이 되지 않는 게 현실이지만 좋지 않은 뉴스로 돈을 버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 브랜드를 망치고 기자를 망치는 일이다. 에버그린 콘텐츠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에버그린 콘텐츠로 만드는 전략도 필요하다. 그러려면 지저분한 뉴스로 진짜 뉴스를 가리는 시스템을 뜯어고쳐야 한다. 뉴스의 유통 기한을 늘리고 계속해서 업데이트하고 게이트 키핑이 아니라 아젠다 키핑을 지원하는 시스템을 고민해야 한다.

[divide style=”2″]

10. 시장의 적들

한국의 미디어 시장에 혁신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시작돼야 한다. 독자들이 뉴스를 외면하는 요인 첫 번째는 KBS와 MBC 등 공영방송 지배구조 문제와 기자 PD들의 자기검열 문제, 두 번째는 조중동과 반대편의 한겨레 경향 등의 (조·중·동 종편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정파성의 문제도 크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정파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비즈니스적으로나 저널리즘적으로나 굉장히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미디어 산업 측면에서 몇 가지만 짚자면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지상파 죽이기, IPTV 가 과점 상태의 통신 3사의 끼워팔기 상품으로 전락하면서 저가 출혈 경쟁에 방송산업을 몰아넣기도 했고 일관성 없는 정책으로 MMS니 클리어쾀이니 8VSB니 DCS니 등등 이권 사업을 움켜쥐고 업자들의 애간장을 태우면서 정작 지상파의 공공성을 보호하지도 못했고 이종결합과 새로운 서비스를 창출하는 데 오히려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divide style=”2″]

11. 앙시앵 레짐을 보호하는 정치적 타협

이명박 정부 때 네이버는 평정됐고 다음은 손봐야 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청와대와 정부 여당의 생각은 아직 그 수준에 머물러 있다. 포털의 공정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포털의 공정성을 정부가 나서서 관리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사회적 압박보다 정치적 압박이 더 큰 게 현실이다) 결국 뉴스제휴평가위원회를 만들어서 포털 뉴스의 진입과 퇴출을 평가하기로 하고 위원회가 최근 발족했지만 우려가 큰 상황이다.

몬스터 종이신문
epSos.de, CC BY

이미 포털이 뉴스를 버리고 있고 독자들도 떠나고 있는데 한 줌 포털의 권력을 누가 나눠 갖느냐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한정된 광고시장을 두고(기업들이 괴롭다고 하니까 잔챙이 언론사들을 퇴출시키기 위해) 신문법을 개정해 5인 미만 언론사를 퇴출한다는 위헌적인 발상까지 나왔다. (신문은 허가 산업은 아닌데.) 혁신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고 기득권을 보호하면서 퇴행을 부추기는 정책이다.

[divide style=”2″]

12. 그렇다면 무엇이 필요한가

혁신은 필요하다. 이대로 가면 피키캐스트나 위키트리 같은 유사 뉴스 서비스들이 뉴스를 대체하고 공론의 장이 작동하지 않거나 위축되고 어젠다 셋팅 기능이 붕괴되는 상황까지 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뭐가 필요한가. 페이스북 인스턴트 아티클이 시작일 뿐 본격적인 뉴스의 파편화에 대비해야 할 때다. 패키지가 해체되고 추천과 공유를 통해 뉴스가 유통되는 소셜 뉴스의 시대. 아직 한국 언론은 전혀 준비가 안 돼 있다.

네이버 뉴스캐스트 회원사와 비회원사, 포털에서 검색되는 언론사와 그렇지 않은 언론사의 격차가 컸던 것처럼 소셜 네트워크에서의 수확체증 효과가 갈수록 커질 것으로 보인다. 지금이라도 좋아요를 늘려야 하지만, 근본적으로 콘텐츠에 대한 접근 방식을 바꿔야 한다. ‘좋아요’도 쓰레기 ‘좋아요’가 있다. 개인 입장에서는 타임라인이 지저분해지고 페이지 차원에서는 독자 퀄리티가 낮아진다. 그거라도 일단 많으면 좋겠지만, 한계가 분명하다.

진지하게 미디어 생태계를 고민하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좋은 뉴스를 추천하는 플랫폼도 좋지만, 진짜 좋은 뉴스를 지속해서 만들기 위한 사회적인 관심과 후원 모델도 구축해야 한다. 뉴스의 파편화가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라면 독자들이 적극적으로 뉴스를 소비할 수 있도록 새로운 뉴스 소비 플랫폼을 고민해야 한다. 뉴스 소비자 교육도 필요하다. 외형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콘텐츠 혁신을 시작해야 한다.

사각형

[box type=”note”]

이 글은 지난해 12월 16일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전문대학원 세미나에서 발표한 토론문을 보완한 것입니다. 이 주제와 관련해 저널리즘의 미래를 고민하는 컨퍼런스가 2016년 1월 14일 홍대입구역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열립니다. 위 배너 광고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필자)

[/box]

관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