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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수령 인터뷰 12: 김대중-노무현의 햇볕정책 vs 이명박의 대북 강경책 (채승병 편)

리수령 인터뷰는 리승환 특유의 직설적인 질문과 거침없는 파격으로 다양한 전문가/관계자와 함께 현상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칩니다. 이번 회에선 군사와 안보에 대해 엄청난 지식을 갖춘 이 시대의 밀덕 SERI 연구원 채승병 님을 인터뷰했습니다. (편집자)

인터뷰어/인터뷰이 소개

Q. 리승환 : 8년 차 블로거, 4년 차 직장인. 군대에 가지 않고 병역특례로 4주 훈련만 받은 신의 아들. 여자들 앞에서는 훈련소 생활을 군대 생활인양 이야기하고, 남자들 앞에서는 조용히 술만 마신다. 디지털 한량을 지향하고, 통칭 웹에서는 ‘리승환 수령’으로 불리고 있음. 블로그 현실창조공간을 운영 중. 트위터는 @nudemodel, 페이스북은 /angryswan

A. 채승병 : 아이의 아버지이자 좋은 가장. 이과적 지식을 경제에 자유자재로 접목하는, 능력 있는 SERI의 연구원으로 위장하고 있지만, 그의 정체는 무시무시한 밀덕이다. 군사 자료를 찾기 위해 중국어, 러시아어, 독일어까지 공부했다고 하는 만렙 밀덕. 엄청난 능력으로 한 때 블로그계의 본좌로 불리기도 했다. 그의 저서는 여기를 참조, SERI에서 채승병을 검색하면 더 어마어마한 양의 책과 보고서를 볼 수 있다.

1. 프롤로그

리 : 블로그계의 본좌님을 뵙게 되니 그저 영광이옵니다. 굽신굽신.
채 : ……

리 : 죄송(…) 간단하게 소개를 해 달라.
채 : SERI에서 일하는 채승병이다. 전공은 통계물리학(세부전공은 경제물리학)이고 복잡계 경제, 군사사(軍事史, military history), 안보문제, 경영전략 등에 관심이 많다.

리 : 오오! SERI! 그것은 자본의 상징!
채 : SERI에 대해 이런저런 오해들이 많은데, 사실 다양성이 큰 집단이다. 요즘이야 워낙 학벌 인플레에다가 SERI가 커져서 좋은 학력의 사람들이 입사하는 예도 많지만, 그래도 국책 연구소 등에 비하면 스펙을 중시하는 편도 아니다. 정치적 지향성의 스펙트럼도 굉장히 넓고, 전공부터도 다양하다. 정통 주류경제학을 전공한 사람부터, 나 같은 자연과학을 포함해 공학, 인문학 전공자들까지 두루 있다. 융합력도 강해 협업을 통해 배울 것도 많다.

리 : 회사를 이렇게까지 빨다니? 이건희도 이렇게 삼성 자랑을 하지는 못할 것 같다!
채 : (…) 물론 조직 차원의 입장으로 나갈 때는 기업 연구소이다 보니 편향성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사람들이 지나치게 색안경을 끼고 볼 때는 좀 아쉬움이 있다. 내가 연구소 와서 참여하고 단행본으로 나온 연구 성과물만 해도 정책지식 생태계, 상생의 경제학, 사회적 자본, 창발적 기업조직, 기업의 사업 변신 등 나름 한국 사회와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앞서 짚은 것들이었다. 무책임한 거대담론을 최대한 배제하고 악순환에 빠져드는 경제사회 시스템의 재정렬 관점에서 많은 고민을 담아냈는데 사람들이 편견을 갖고 오독할 때는 답답할 때가 많다. 여하튼 회사 이야기도 할 말은 많지만, 오늘 주제가 아니니 여기까지.

짤방 저작권을 피하기 위한 피나는 노력의 결과, 아무짝에도 관련 없는 달샤벳 세리(…)

리 :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한 때 블로그계의 본좌라 불렸는데, 왜 글을 안 쓰는 건가?
채 : 귀찮다.

리 : ……
채 : …는 훼이크고 너도 애 낳아봐(…)

리 : ……
채 : 정말 애 키우면 주말 같은 거, 저기 하늘 위로 날아가고 없어진다. 2008년부터 글로벌 경제위기, 유로존 재정위기 연타를 맞으며 회사 일도 계속 늘어났다. 위기가 부각되면 직장인들 힘들어지는 거야 다 매한가지 아니겠는가. 거기다 애까지 생기니 완전 잉여력 고갈 상태이다.

리 :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채 : 트위터 같이 짧게 읊을 수 있는 매체도 잠시 시도해 봤는데 뭐랄까… 글의 길이에 따라 사유와 논리가 제한된다는 생각이 들더라. 일각의 유행대로 트윗을 모아 블로그 글을 구성하는 방식도 생각해봤는데, 나는 그런 식으로 생각을 토해내는 게 영 불편하다. 어떤 분들은 한숨에 좌르르 읊어도 명문이 되던데, 내가 그랬다가는 뒤죽박죽 난문이 되어버린다.
더군다나 매사에 의심이 많아서 공개하기 전에 이것저것 팩트 체크할 시간이 필요하다. 한 마디로 현재 내 호흡과는 잘 맞지 않는다. 무리하게 트위터에 맞추려다 보면 기존의 페이스마저 뒤죽박죽되겠다 싶어서 그만두었다. 또, 지금 집필하기로 약속한 책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상반기에 한 권은 쳐냈는데, 이번 달에 하나 더 나와야 하고, 연말까지 또 하나 더 내야 한다. 번역하는 책도 한 권 있고, 감수해야 하는 책도 있다. 당분간 남는 시간에는 책에 더 집중하고 싶다.

2. 햇볕정책의 명과 암

리 : 자, 그러면 안보 이야기를 해보자. 사람에 따라 의견이 너무 심하게 엇갈리는 분야다.
채 : 모든 정책 현안에 해당하는 말이지만, 안보 정책도 객관적 평가는 불가능함을 알아두자. 일단 평가를 하려면 가치에 기반을 둔 일관된 잣대가 필요한데, 다들 알다시피 대한민국은 서로가 지고지선이라고 주장하는 여러 가치가 극심하게 대립하고 있다. 정책의 궁극적 목표와 달성해야 할 비전이 제각각 다르니 여러 안보정책에 대한 평가가 오락가락할 수밖에 없다.

리 : 비전이라… 예를 들자면?
채 : 햇볕정책을 예로 들어 보자. ‘남한 중심의 안정’을 중시한다면 햇볕정책은 (DJ 정부) 당시로써는 꽤 득이 많은 정책이었다. 하지만 가치를 즉각적인 통일, 북한 인권, 북한 인민의 고통 해결에 둔다면 실이 더 큰 정책이었다. 여기서 옹호론과 비판론이 갈라진다. 옹호론자들은 햇볕정책을 통한 대북지원이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비용이라고 한다. 비판론자들은 독재체제를 연장하고, 북한 인민의 고통을 늘리는 퍼주기였다고 비판한다.
이게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문제인가? 따져보면 둘 다 맞는 말이다. 햇볕정책을 써서 남한은 북한발 리스크를 줄일 수 있었고, 대신에 북한체제는 어쨌건 3대까지 연장되었다. 양자는 중심에 둔 가치가 다를 뿐이다.

한반도의 김정은, 뭔가 적절한 짤방(…) 출처는 TV조선 캡처 ⓒ TV 조선

리 : 그렇다면 당신은 북한 인권보다 안정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채 : 결국 선택이다. 북한이 통제 불가능하게 무너지는 상황을 국민 모두가 감당할 수 있다면 북한 인권’만’ 우선시해도 좋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아마 북한 인권을 외치는 이들조차 속으로는 ‘누구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북한에 대한 통제력을 갖고 상황 전개의 완급을 조절하고 싶어한다. 두루 만나봐도 북한 인권을 중시하는 보수라고 앞뒤 안 재는 무개념 꼴통들이 아니고, 반대 측이라고 북한 인민들이 어떻게 살든 말든 상관 안 하는 이기적인 철면피가 아니다. 다들 어느 정도의 ‘안정’을 바란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리 : 요즘 들어 두괄식 글이 인기라는데, 과감하게 당신의 답부터 내고 시작하자.
채 : 뒤에 설명하겠지만, 나는 북한 체제의 극단적인 상황을 막고 대한민국의 안정적인 존립을 위해서는 유화정책이 생각보다 많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물론 억압 체제에서 북한 주민들이 굶어 죽고 탄압받는 일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북한 문제에 고삐가 풀리면 최종 독박을 쓰는 것은 어쨌건 대한민국이다. 내부의 경제적, 사회적 갈등도 제대로 봉합하지 못하는 현재 대한민국의 허약한 정치력, 외교력으로 북한을 온전히 껴안는 것은 불가능하다. 유감스러워도 이 부분에서 좀 더 갈피를 잡을 때까지 안정을 해쳐서는 곤란하다.

리 : 수고하셨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채 : ……

리 : 그러면 내 밥줄이 끊기니까 계속하겠다. 햇볕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채 : 굳이 평가하라면 시기와 개념은 나쁘지 않았다. YS 시대는 김일성의 급사 이후 김정일 체제로의 전환기였기 때문에 스탠스가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DJ 시대는 김정일 체제의 대남정책을 규정지을 수 있는 숙명적인 시기였다. 북한은 당시 체제 와해에 대한 공포가 극에 달하고 있었다. ‘고난의 행군’으로 내부 통제력이 크게 느슨해져 선군정치를 내세우며 군에 대한 의존도가 올라갔다. 이렇게 자칫 극단적으로 매파 쪽으로 쏠릴 수 있는 북한 내부 상황에, 대북 포용정책은 북한 내 비둘기파의 힘도 실어줄 수 있고 남한의 통제력을 높일 수 있는 카드였다.

리 : 그렇게 보면 아주 좋은 정책으로 보인다.
채 : 다만 아쉬운 점은 결과적으로 표현이 과했다. 쨍쨍 햇볕을 쬐면 북한이 옷을 점점 벗고 나온다는 것이 복잡한 외교를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차별점을 설명하기는 좋은 비유이다. 하지만 이걸 맛깔난 양념이 아닌 정책 브랜드로 자리 잡은 것은 오버였다. 결과적으로 반대진영은 ‘햇볕’ 이미지를 역공작하여 ‘무조건 삥 뜯겨주기’로 프레이밍해버리지 않았나?
이는 햇볕정책의 실체와도 거리가 멀다. DJ의 생각도 자세히 뜯어보면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었다. 북한도 바보가 아닌데 그냥 나 잡수쇼~하고 옷을 훌떡 벗어주겠나? 나름의 밀땅(밀고 당기기)과 로드맵이 있지만, ‘햇볕’이 전면에 나서버리니 디테일은 완전히 무시되었다. 이렇게 찬반이 복잡하게 엮인 정책일수록 총론은 두리뭉실하게 넘어가야 하는데, 햇볕정책은 그 점에서 간판이 너무 선명했다.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은 타임 표지를 장식했다(…) ⓒTIME magazine

리 : 요즘은 햇볕 2.0, 햇볕 3.0이라는 용어까지 나온다.
채 : 좋은 지적이다. 나는 그래서 요즘 이야기하는 햇볕 2.0, 햇볕 3.0 등의 용어는 무조건 쓰면 안 된다고 본다. 설령 과거 정책을 계승하는 의미라고 해도 쓰면 안 된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외교는 밀땅이고, 충분히 유연하게 행동할 여지를 남겨야 한다. 타이틀에 발목 잡혀 지리한 색깔논쟁에 말려들면 곤란하다. 지금 햇볕을 다시 쓰면 무조건 퍼주기라는 부정적 낙인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화해 분위기는 강조하되, 좀 더 세련된 표현으로 세간의 오해를 차단해야 한다.

리 : 외부적인 요인은 어떻게 작용했는가?
채 : 예기치 않게 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것도 문제를 꼬이게 했다. 앨 고어가 클린턴 정부 로드맵을 계승했으면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던 문제들이 계속 꼬이면서 정책 효과가 크게 떨어졌다. DJ-노무현 정부 시절에 부시가 연임하는 거 보면 한국은 운을 믿을 게 못 되는 나라라는 생각이다.

리 : 햇볕정책이 북한 정권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채 : 사실이다. 햇볕정책이 북한 정권 연장에 기여했음은 많은 탈북자들의 증언에서도 드러난다. 1990년대 중반의 북한 위기는 전례가 없는 것이었다. 북한 주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던 김일성은 비명에 쓰러졌고, 사회주의 동맹은 산산이 붕괴했다. 우호적인 외부 환경의 붕괴와 취약한 내부 리더십, 식량 위기가 합쳐진 퍼펙트 스톰이었다고 보면 된다. 북한 당국의 내부 통제력은 심각히 떨어졌다. 정말 거기서 큰맘 먹고 작정하고 북한을 압박했으면 심하면 체제 와해, 덜하면 현재의 시리아처럼 반복되는 피바다가 연출되었을 거다.

리 : 아아… 그렇다면 결국 홍어드립치는 인간들의 말이 사실이었단 말인가!
채 : 그런데 그게 사실이라 해도 햇볕정책이 나쁜 정책이었다고 일방적으로 비판할 수는 없다. 당시 남한도 뭐 나을 게 있었나? 역시 전례 없는 IMF 외환위기로 개발연대에 형성된 경제 사회구조가 뿌리부터 흔들리는 상황이었는데, 북한이 흔들리면 외환위기 극복은 제대로 되었을까?

리 : 그렇다면 용어의 느낌 외에, 햇볕정책의 문제점은 무엇이 있는가?
채 : 진짜 문제는 햇볕정책 이후이다. 햇볕정책으로 우리는 북한 리스크를 완화하고 안정성을 높였다. 그런데 너무 북한의 안정성을 중시하다 보면 변화에 필수적인 내부 불만세력이 제거된다. 독재체제를 다룰 때 전쟁 같은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내부에 반체제기반이 튼튼해야 외교적 약발도 먹힌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예상대로 햇볕을 쬐고 숨을 돌린 북한 정부는 다시 내부 통제력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행여 있을지 모르는 내부 위험요인의 싹을 밟아 버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밀땅이 발휘되어야 할 이유가 나온다. 우리로서는 북한을 적당히 불안한 상태로 만드는 게 좋다.

리 : 내부의 싹? 붕괴 유발 요인을 의미하는 것인가?
채 : 내부의 싹이라고 해서 딱히 반체제 인사와 비밀 결사조직 이런 것만 연상하면 안 된다. 가장 치명적인 내부의 싹은 바로 자발적 시장화다. 시장은 배급으로 사회를 통제할 힘이 사라진 북한이 자포자기 심정으로 인민 경제를 방치하면서 태동하였다. 그러니 시장이 크려면 통제수단인 배급이 유지되어서는 안 된다.
고난의 행군 이후 몇 차례의 확장과 축소를 겪으며 이미 북한은 상당한 시장경제로 빠져들었다. 배급제는 핵심계층 10~20%에나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상당수 중간계층은 영세상인, 소상공인 노릇하며 먹고 살고 있다. 이미 인민폐가 공식 화폐처럼 쓰이고 있다. 화폐개혁으로 이 흐름을 돌리려 해봤지만 결국 뒷감당이 안 되면서 외화 선호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리 : 남한의 지원이 시장화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인가?
채 : 대북포용이 지나쳐서 북한 정부가 통제할 수 있는 물자가 늘어나고 배급이 다시 확대되면 또 과거로 회귀해버리려 애를 쓸 것이다. 반대로 원조가 들어가지 않으면 시장은 커질 수밖에 없다. 시장이 커지는 것은 자본주의의 맹아를 의미하고 이는 궁극적으로 부르주아 계급의 탄생을 의미한다. 역사 속에서 이들은 언제나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는 반대세력으로 커 왔다.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자, 자본주의의 혜택을 맛본 평양 시민이나 개성공단 직원과 삼수갑산 촌구석의 협동농장 농장원 가운데 누가 더 억압에 저항하겠는가? 사람은 똑같다. 북한 체제 내에서 돈과 시장 권력을 쥐는 신흥 부르주아들이 성장하면 그들이 알아서 체제 반동에 저항한다.

3. MB정부의 강경책은 성공했는가?

리 : 그렇게 본다면 MB 정부의 강경책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채 : MB 정부의 안보 라인은 햇볕정책 10년 동안 얻은 게 별로 없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안보의 핵심 쟁점인 북핵문제 등은 진척이 거의 이뤄지지 못했고, 되려 북한체제의 결속만 다졌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이 역시 전적으로 틀린 판단은 아니었다. 대북 특검 등 우여곡절이 있기는 했으나, 10년 동안 포용정책 기조가 유지되어왔으니 MB 정부쯤에는 압박을 높이는 것도 괜찮았다. 햇볕정책은 대대손손 계승해야 하는 정책도 아니고, 현실적으로 그럴 수도 없다. 무엇보다 한국은 포용정책이 뚜렷한 효과를 발휘할 만큼 일관되게 지지여론을 유지할 수 없다.

리 : 서독은 포용정책을 잘 실시했고, 이를 바탕으로 통일을 이룰 수 있지 않았나?
채 : 과거 동서독과 근본적으로 다른 환경인 것이, 남북한은 3년간 서로 총부리를 맞대고 쉽게 씻기 어려운 증오를 쌓았던 상대이다. 동포이면서 원수라는 이중적인 감정이 격하게 출렁이는 여론지형 위에서 강온책이 병행되지 않으면 국민들의 불만이 누적될 수밖에 없다. 같은 민주당인 노무현 정부도 대북 특검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하물며 정권이 교체된 상황에서 정책 수정은 불가피했다고 본다. 설령 그게 눈속임일지라도 말이다.

리 : 하지만 그간 잘 가지고 오던 평화 무드를 버린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역행이지 않은가?
채 : 물론 최소한의 정책의 연속성은 필요하다. 남북관계에서는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의 양대 사업이 그 시금석이었다. MB 정부가 출범할 때는 그 선은 지키면서 밀땅에서 ‘밀’을 써도 무방한 때였다.

밀땅은 어떤 환경이든 어렵다. 출처: 다음 카페

리 : 그렇다면 강경책의 목표는 무엇인가?
채 : 강경책을 추진한 이들조차도 목표가 북한의 붕괴와 흡수통일로 일관된 것은 아니었다. 다시 강조하지만, MB 진영 사람이라고 꼴통이 아니다. 이들의 목표는 북한이 안보 수준에서 위협이 되는 것을 제거하고, 정상국가 로드맵을 세우게끔 하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북한 민주화다. MB의 관료들은 절대 북한이 순순히 자기 스스로 옷을 벗지는 않을 거로 생각했고, 체제 안정을 최우선으로 고려할 거고 생각했다. 이런 북한에 민주화가 이루어지도록 압박을 넣는 것이 목표였다.

리 : 실제 강경책들이 안보에서 성공적 결과를 가져온 적이 있는가?
채 : 기본적으로 미국 등 해외 사례에서부터 온 생각이기도 하다. 그간 미국이 얻은 교훈은 골치 아픈 독재정권을 다룰 때 미국이 꿀리고 들어가 좋을 게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고분고분 달래 봤자 쉽게 성공하는 경우가 없다. 외부에서 지속적으로 압박을 넣어야 한다. 물론 외부 압박만으로 망하지는 않기에, 내부 분열을 야기하는 스토리를 함께 진행한다.

리 : 구체적 사례를 하나 들어 본다면?
채 : 리비아의 카다피가 바로 장기적 압박을 통해 결국 길들인 사례다. 이번 리비아 내전에서도 목격했듯이 리비아는 고질적인 내부의 지역, 부족갈등이 심했다. 카다피는 그걸 계속 억눌렀고. 그런데 한창 대립할 시기 미국의 압박은 리비아 내부의 갈등을 표면화시켰다. 카다피 정권은 그걸 견디다 못해 내부의 적부터 잡기 위해 미국과 화해를 청한 거다. 내부 적대 세력이 통제불가라고 판단할 때는 어쨌든 외부와의 화해하여 한숨을 돌릴 수밖에 없다. 이는 독재체제의 숙명이나 다름없다. 북한이 1990년대에 끝없이 북미대화에 집착한 것도 내부 결속이 불안했기 때문이다.

리 : 오오… 각하께서는 해 본 것만 아는 게 아니라, 간접경험도 중시하는 것이군! 역시 천하의 성군이로다!
채 : ……

리 : 그래서 MB의 강경책은 결과적으로 성공했는가?
채 : 그렇지 않다. MB의 결정적 실책은 비현실적인 조건을 달고 거기에 묶여버린 것이다. 비핵개방 3000 계획은 북한의 선제 핵 포기가 있을 때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실질적인 알맹이도 없는 허울뿐인 강경책에 허세만 높인 경우였다. 북한 정권에게 핵 포기는 사실상 항복이나 마찬가지이다. 즉, 백기 투항하면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는 이야기나 똑같다. 북한이 미쳤나? 그런 제안을 받게. MB 스스로 유연하게 대북외교를 가져갈 여지를 끊어버린 것이다. 외교적인 강경책은 사생결단이 아니다.

리 : 뭔가 어렵다. 사생결단으로 가지 않으면서 유화책에서 강경책으로 돌리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채 : 굳이 실리를 챙기자면 다르게 갈 방법도 있었다고 본다. 북한도 보수정권이 10년 만에 들어섰으니 이전과 똑같을 수 없다는 각오쯤은 했을 거다. 시작도 나쁘지만은 않았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은 유지했으니.
진짜 중요했던 시기는 금강산 피살사건과 DJ 서거 사이의 시간이었다. 금강산 피살은 우발적인 사건이었다. 외교는 수많은 우발적 사건으로 말미암은 위기에 직면하기 마련이다. 거기서 적당히 체면 챙기고 악순환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중요하다. 민간인 1명이 죽고도 그냥 관광 유지하면 그것도 개망신이니 당장 강경자세는 필요했다. 하지만 냉각기 이후 정상화를 위한 대책이 필요했다. 1년 뒤 DJ 서거 즈음해 특사 파견되고 했을 때는 뭔가 이면 메시지라도 던졌어야 하는데 그것도 그냥 지나쳤다. 결국, 이 조치가 서해교전(제2연평해전), 연평도 포격, 천안함 피격으로 이어졌다.

리 : 이런 불운에 불운이 겹치는 데 또 다른 요인이 있다면?
채 : 이런 식으로 꼬여버린 외부 요인도 있긴 했다. 광우병 파동으로 혼쭐이 난 MB 정부는 국내건 국외건 유연성을 발휘할 자신감을 잃었다. 비핵개방 3000도 성과가 영 시원찮으니 금강산 관광이라도 지렛대로 쓰려고 했을 것이다. 이게 다 정치력 부족한 정권의 한계이다. 결국 MB정부는 남북 관계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강경책이라고 하지만 대결도 화해도 아니었다.
내가 종종 인용하는 ‘닉슨 중국에 가다’ 효과가 그래서 중요하다. 1970년대 미중 데탕트를 연 대통령은 다름 아닌 전형적인 반공 보수주의자 닉슨 대통령이었다. 닉슨이라면 설마 빨갱이들이랑 내통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과감한 정책을 내지를 수 있었다. 이처럼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선택은 역설적으로 반대 성향의 정치가가 내디딜 수 있다. MB는 그런데 대북정책에서 보수건 진보건 어느 쪽에도 신뢰를 주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닉슨과 마오쩌동의 역사적 회동, 이미지 출처는 ⓒchina.org.cn

리 : 각하 까지 마셈 ㅠㅇㅠ 안 그래도 정권 말기에 형님까지 잡혀가는 불쌍한 사람인데…
채 : (…) 앞으로도 어느 정권이건 북한과 밀땅을 할 수밖에 없다. 남녀관계도 종종 싸움이 있기 마련이지만 나중에 화해할 여지는 남겨둔다. 그런데 MB는 이게 없이 어느 쪽도 다시 해보자고 말도 못 할 정도로, 너무 대책 없는 조건을 걸었다. 현재는 이미 대선정국에 접어들었고, 김정은 체제로 넘어가면서 더 힘들어진 상황이다. 모든 대북정책은 그냥 올스톱이고 정권 바뀌기만 기다릴 것이다.

리 : 강경책이 북한 정권의 붕괴를 앞당기는 시나리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채 : 앞서 말했듯이 사실 햇볕정책이 없었다면 북한 체제의 붕괴 가능성도 있었다. 근데 그것도 아무 때나 적용되는 게 아니다. 지금 강경책 쓴다고 북한이 갑자기 망하지는 않는다. 1990년대 말에는 전례 없는 위기였지만, 지금은 비슷한 패턴의 위기가 반복되는 국면이기 때문이다. 북한도 나름 상황에 대처하는 노하우가 생긴 상태이다.

리 : 북한이 붕괴하면 당장 난민이 스타크래프트 유즈맵 세팅처럼 쏟아지는데, 감당이 됐을까?
채 : 당연히 감당이 안 된다. 요즘 사회적 양극화 이야기가 많은데, 현재 생활보장대상자보다 더 빈곤한 사람이 1천만 명이 늘어난다고 생각해 보라. 한국은 초유의 삼극화를 겪는다. 지금 북한이 갑자기 붕괴되거나 민주화되면 ‘그리고 지구는 멸망했다’ 급이다. 냉정하게 한국은 통일에 대해 머리와 입으로만 떠들고 있지 몸으로 받아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리 : 북한이 그렇게 관리가 힘든 막장 상황인가?
채 : 어떤 상황인지 다른 예를 들어보자. 평화를 부르짖는 분들 중에는 북한을 너무 압박하면 히틀러처럼 전쟁을 일으킬 거란 말을 하는 분들도 있다. 근데 진짜 그럴까? 독일은 지금 북한처럼 모든 경쟁력을 상실한 상황은 아니었다. 최소한의 공급 라인이 있어 전쟁에 필요한 물자 조달 정도는 가능했고, 자체 스톡으로 일정 기간 전쟁을 지속할 역량도 갖추고 있었다. 이에 비해 현재의 북한은 경제적으로 전쟁을 치를 물자 조달 자체가 불가능하다. 혹시라도 미친 척 전쟁해봐야 북한군은 죄다 전선을 이탈해서 산적(…)이 되어 약탈할 게 뻔하다.

리 : 이쯤에서 당신이 생각하는 대북 안보를 정리해 본다면?
채 : 현 단계에서는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우리가 정말 원하는 건 우리가 잘 먹고 잘 사는 거다. 북한 민주화, 폭정으로부터의 해방도 중요한 가치이지만, 그보다 우선이기는 어렵다. 우리도 먹고살기 바쁘니 북한은 말썽 안 부리고 적당히 가는 게 진짜 속내 아닌가?
문제는 그 조건에서 북한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어느 길로 가든 적극적 제어는 불가능하다. 북한은 어디로 갈지 모른다. 특히 김정은 체제 들어와서 더욱 그렇다. 당장 망해도 이상하지 않고, 오래오래 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솔직히 10년~20년 갈지는 매우 불확실하다. 그런 면에서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정변, 쿠데타 등의 비상계획은 항시 세워둬야 한다. 망하게 하자는 소리는 멍멍이 소리니, 비상계획은 준비하되 내세우지 말아야 한다.

4. 북중 관계에 대한 오해

리 : 강경책 이후 북한 경제가 중국에 흡수된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채 : 이건 막을 수 없는 일이다. 북한 시장의 상황은 당연히 중국이 북한의 인큐베이션이 될 수밖에 없다. 인민폐가 이미 시장통화가 된 것은 물자가 오가는 자생적 거래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 곳이 사실상 중국밖에 없기 때문이다.

리 : 하지만 햇볕정책을 통해서 경제협력을 강화해 나갔다면, 한국에 흡수될 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채 : 절대로 불가능하다. 남북경협을 확대하면 추가 남한으로 넘어갈 거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는 북한정권붕괴의 가속을 촉진할 수 있는 요인이기에, 북한체제 속성상 절대 한국으로 추가 넘어가지 않는다.

이런 일은 베네통 광고에서나 볼 수 있다 ⓒBENETTON

리 : 북한이 정치적으로 중국에 통합될 수 있다는 위험제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채 : 이 역시 매우 희박한 가능성이다. 북한 인민은 남한보다 중국을 적대한다. 주체사상을 주입하다 보니 우리보다 민족주의가 훨씬 강하다. 심지어 남한보다 중국인을 더 무시하고, 배척대상으로까지 생각한다. 남한은 체제적으로는 적대 관계이지만 우리 민족이라는 사고체계를 가지고 있기에, 정치적으로 중국과 일체감을 갖는 일은 없을 것이다. 문제가 생겼을 때 북한이 중국의 성이 된다는 생각은 완전히 빗나간 생각이다.

리 : 그럼에도 경제유착이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가?
채 : 머리와 money는 따로 논다. 중국과의 경제유착을 피할 수는 없다. 시장경제를 배우게 하는 건 중국을 통해 배우게 내버려 둘 수밖에 없다. 남한이 아무리 경제협력을 늘려도, 북한 상인들이 남한 상인들과 직접 거래할 교역 통로는 없다. 항상 북한 정권의 손을 거쳐야 하기에, 중국과는 엄연히 통로가 다르다. 개성공단도 결국 간접적으로 북한 정권에 돈이 넘어갔다가 풀리는 형태이다. 시장을 통합할 수 있는 경로가 남한은 없다.

리 : 그렇다면 남한, 북한, 중국과의 경제 삼각관계에서 남한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채 : 여기에 직접 개입하려다가는 역효과만 나니까 욕심부려서는 안 된다. 물론 시장 경로에 북한 사람들이 익숙해지고, 그들이 정치적 변화가 생겨서 남한과의 관계가 뚫린다면 그때는 스위칭이 가능할 수 있다.

리 : 하지만 지금 당장 북한의 자원이 중국으로 점점 넘어가고 있지 않은가?
채 : 이건 오해다. 계산을 아무리 해도 북한의 자원은 일부 낙관적인 주장만큼의 경제성이 없다. 바로 말한다면 지금 통일된다고 유의미하게 가치가 빛날 자원은 거의 없다. 중국이 자원 먹으려 드는 건 그냥 중국이 자원의 블랙홀이라 뭐든 확보하려 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2000년대 중반 폭발하는 중국 수요로 전 세계 원자재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갈 때, 중국에서는 정부의 자원확보용 눈먼 돈 지원도 많았고 상인들의 투기자금도 많이 쏠렸다. 그런데 경제위기 이후 수요부진으로 원자재 가격이 고꾸라지니까 지금은 그 열기도 한참 식었다. 또 남한이 북한의 자원을 손에 넣어봐야 근본적인 성장동력으로 써먹을 수준이 안된다. 이미 대한민국은 지식경제로 나아간 지 오래다. 석유가 좔좔 흐르고 희토류가 잔뜩 쌓였다면 모를까, 북한 자원의 경제성은 생각만큼 높지 않다.

당장 밥이 급한 곳에 많은 걸 바라면 안 된다 (출처: memebase.com)

리 : 이런저런 긍정적 분석도 있던데 너무 단정적인 것 같다. 최근 종북 논쟁 때문에 너무 보수적인 스탠스를 취하는 건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SERI 직원을 당권파로 의심하지는 않을 테니 솔직히 이야기해 봐라.
채 : 물론 경제성 분석은 다양해서 긍정적 리포트는 있다. 광업진흥공사가 북한 광물자원의 잠재가치를 총 7,000조 원, 개발 유망자원만 따지면 3,600조 원 정도로 계산한 적이 있긴 하다. 그러나 단순히 매장된 것과 이를 캐내어 경제적 가치로 전환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북한의 저열한 인프라를 싹 정비하고 채굴에 들이는 비용을 생각하면 당최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그리고 저 경제성 분석에는 결정적인 맹점이 있다. 저 가치 중 대부분, 그러니까 대략 3/4인 2,700조 원이 마그네사이트이다. 그런데 마그네사이트는 그렇게 핵심적인 광물도 아니고 수요도 많지 않다. 수요에 맞춰 파내면 수만 년에 걸쳐 조금씩 빼 써야 한다. 2,700조 원을 예치해놨다고 해도 그걸 수만 년에 걸쳐 찔끔찔끔 인출할 수 있다면 당최 무슨 도움이 되나? 더군다나 지금은 북한체제 유지라는 리스크도 있다. 완벽한 통일 후라면? 이건 더 골치다. 1천만 극빈층을 끌어안는 대가로는 너무 비싸다. 어느 쪽이든 손해 보는 장사임은 분명하다.

5. 군축은 가능한가?

리 : 군축에 대한 논란도 많이 일어나고 있다.
채 : 군축으로 국방예산을 빼내면 사회적 문제가 해결될 게 많아 보이지만 그게 그렇지 않다. 전반적으로 진보진영의 군축 생각은 좀 나이브하다. 무엇보다 국방비를 가지고 먹고 사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 군축에서 일어나는 보수 – 진보 간의 갈등 비용은 장난이 아닐 것이다. 군인집단 중심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의 밥줄을 끊으면 그 원성은 상상 이상일 것으로 생각한다. 이는 뿌리가 꽤 깊어서 건드리기 시작하면 갈등이 너무 커진다.

리 : 그 군인들의 밥그릇이 욕먹고 있지 않나?
채 : 사실 MB도 다른 의미에서 군축을 시도했다. 60만 병력의 관리비는 어마어마하다. 실제 직접적인 전투력 강화와 관계없는 경상비가 국방예산의 상당 부분이다. 그래서 MB는 군수 조달을 민영화해 효율성을 높이고자 했다. 이미 유럽은 전투와 직결되는 부문 외에 아웃소싱으로 해결하고 있다. 하지만 군인공제회와 현직 장성이 물리고 물려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의 밥줄을 빼앗아서 투명하게 가려고 했으나 번번이 좌절됐다. 건드리려 하면 이런저런 태클이 들어와 욕만 먹고 끝났다. MB가 레임덕 오기 전에 정권 초부터 의욕적으로 추진했는데도 이렇게까지 접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어느 정권이 들어서도 5년 단임의 한계로는 불가능하다.

리 : 북한과의 합의를 통해 군축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채 : 남북관계는 미소 핵무기 협정처럼 쌍방 협정을 통한 군축이 불가능하다. 그럴 여지가 상호 간에 전혀 없다. 상호검증이 불가능한데 어떻게 군축에 동의할 수 있겠는가? 사람들도 공감하는 것 같지만 정작 시행하면 많은 저항을 낳을 것이다. 군축은 위협이 확실히 줄었다는 인식이 있을 때나 가능한데 이를 검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핵무기야 비교적 확인이 쉬우니 잡아냈지만, 재래식 무기 감축은 감추기가 쉽기에 확인이 매우 힘들다.

리 : 실시간으로 사람이 굶어 죽는 북한인데, 군축으로 쌀 한 톨이라도 아낄 수 있는 유인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채 : 더군다나 북한이 자기 발목을 잡는 군축에 응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북한에서 군은 크고 아름다운(…) 실력 집단이기에, 밥줄을 내려놓을 리 없다. 북한 정권 입장에서도 체제 존속을 위해서는 군의 충성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이들을 함부로 대할 수 없다.

리 : 그렇다면 군축을 어떻게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채 : 결과적으로 군축은 자연적 동력에 의존해야 한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북한은 산업, 인구 구조상 자연스러운 군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남한보다 청년 조달이 어려운데 어떻게 하겠는가? 애를 낳을 수 있는 계층은 부르주아인데, 이들이 아이들을 군대에 10년이나 보내려 하겠는가? 이는 한국처럼 장기적으로 불만을 터지게 하고 사회 갈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리 : 남한이 꼭 미국을 통한 무기를 구매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채 : 사실 미국에서의 무기 구매는 단순히 무기 구매이 아니라, 미군에 바치는 관리비용이기도 하다. 유사시에 미군은 언제든지 보험이다. 다만 이게 비싼 돈 들여서 유지할 가치가 있는지는 좀 의문이다. 보험수가는 올라가는데 보장혜택은 줄고 있는 상태다. 가뜩이나 미군도 요즘 재정적자로(…) 슬슬 맛이 가고 있다. 한 마디로 삥 뜯기는 건데 전략적으로 좀 줄일 필요가 있다는 데는 동의한다.

리 : MB의 외교가 너무 친미적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론 각하는 한우를 먹겠지만(…)
채 : MB가 친미외교로 욕을 먹고 있는데, 이는 둘로 나눠봐야 한다. 현실적으로 미국으로 무게중심이 쏠리는 것까지 비난할 수는 없다. 아무리 욕을 해도 미국은 상당히 ‘관대한’ 외세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외세와 협력할 수밖에 없다. 협력을 유지하려면 어느 정도는 깡패가 관리비 걷듯(…) 털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이왕 털릴 거 적당히 털려야 하는데, 미국이 그렇게 더러운 상대국은 아니다.

리 : 이건 위험 발언이다! 어차피 맞을 거 덜 맞자니! 이 무슨 환빠가, 아니 10만 원 권에 실릴 광개토대왕이 노할 소리인가?
채 : 역사적으로 봐도 한국이 중국 종속 상황에서 기를 펴고 산 적이 있는가? 반면 일본이 메이지 유신과 근대화에 성공한 원인 중의 하나가 영국과 미국을 잘 이용했다는 점이다. 잔학한 직접지배와 식민통치, 노골적인 경제침탈을 우선시해온 여느 외세에 비해 이들은 영향권 내에서 관리하는 정도로 만족했다. 그걸 ‘상국의 관대함’으로 칭송할 필요도 없지만, 중국은 대표성도 모호하고, 너무 가까워지려 하면 되레 무시하고는 한다. 위치가 가까운 것도 그리 좋은 조건은 아니다.

리 : 이런 중국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예가 있다면?
채 : FTA 과정에서도 노무현 정부 때 한중 FTA 연구에는 시큰둥하다가, 한미 FTA를 비준하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오며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 FTA가 옳든 그르든 이런 식의 밀땅이 중국에 통한다. 미국과의 관계 진전이 중국을 좀 애끓게 하는 측면이 있다. 미국에 중심을 두고 약간 기울어져야, 중국에 콕콕 찌르는 자극을 적당히 유지하며 중국을 편하게 상대할 수 있다.

리 : 하지만 떠오르는 깡패(…) 중국을 너무 무시한다는 문제는 있지 않은가?
채 : 중국을 너무 도외시하고 소홀한 부분은 분명 문제이다. 대중 외교는 내부 핵심 인사와 인적 네트워크가 중요한데, 너무 관리가 부족했다. 특히 박근혜를 이용하지 못한 건 실책이다. 중국 지도부는 뜻밖에 박정희에게 우호적이다. 당시 정치적으로는 대체관계였지만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주제 중 하나가 박정희를 배우는 것이었다.

리 : 오오… 세계 속으로 뻗어 나가는 우리의 박씨 왕실…
채 : 경제성장과 산업화를 어떻게 이뤘는지 학습할 수 있는 좋은 길이 박정희였다. 심지어 천안문도 광주민주화운동의 벤치마킹이었다는 설도 있을 정도고… 그래서 과거 군부 세력은 권위정부를 학습할 기회를 준 박정희의 딸 박근혜에게 우호적이고 친밀감을 가진 주요 파트너로 대접한다. 공주님이 어쨌든 중국어도 할 줄 알고… 그래서 MB도 초기 박근혜를 대사로 보내자 말자 하다가 실패했다. 그런 인간적 관계와 끈을 활용했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게 하지 못했다.

리 : 북한 정권이 무너지면 장기적으로 국방비가 줄어든다는 측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채 : 기업에서도 구조조정을 할 때 비용이 든다. 하물며 군대는 어떻겠는가? 기업에서 사람 빼내는 수준이 아니다. 북한, 남한 양쪽 모두 군대를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군대를 보면 알겠지만, 어리바리한 군인들이 자생력이 있을 리도 없다. 서독도 통일 후 동독군 실업자에 엄청나게 고생했다. 그나마 동독은 사회주의권 중에서 기술도 좀 있고 나라도 그럭저럭 살았다. 하지만 북한은 자원은 젖혀두고, 북한 사람들이 현 자본주의 가치에 너무 뒤떨어져 있다. 스스로 축적하고 자립할 수 있는 인프라가 북한은 거의 전무한 상태다.

리 : 군축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듯한데, 당신이 생각하는 군축의 대안은?
채 : 군축은 장기적으로 세월의 힘에 의지해야 하는 변화다. 조바심 난다고 앞당기고 재원을 복지에 투여하려 하는 건 위험한 생각이다. 굳이 외교나 개혁으로 군축하지 않아도 자연적 군축은 일어난다. 인구 구조상 저출산이 너무나 심각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저출산은 우리보다 더 심각하다. 최근 15년간 출산율은 남한 이하이다.

리 :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인가?
채 : 북한과의 관계는 장기적으로 봐야 한다. 안정적인 변화를 순탄하게 가져가는 게 좋고, 조금 빨라지도록 관리하는 게 전부이다. 급격하게 가면 부작용만 커진다. 이상론으로 가속하려다가는 북한의 변화를 그다지 이끌어낼 수 없다는 게 햇볕정책의 10년간 교훈이고, 급격하게 북한을 굴복시키려는 보수의 민주화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는 게 MB 정부의 교훈이다.

리 : 대북 안보정책에서 잊어서는 안 되는 점에 대해서도 마지막 한 마디를.
채 : 안정을 원한다면 화해가 필요하다. 갑자기 망하면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대신 내부에서 변화의 싹이 트지 못하도록 지원하면 곤란하다. 북한의 가장 큰 미래변화 동력은 바로 ‘자발적 시장’과 이 과정을 통해 탄생하는 ‘부르주아 계급’이다. 이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세심한 밀땅이 필요하다. 북한의 시장세력은 일반인들이 상상도 못할 만큼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귀공자 포스를 풍기는 채승병 옹의 간지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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