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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고시’라는 말이 있다. 언론사 입사 시험을 이르는데 이는 언론사 입사 시험이 진짜 고시라서가 아니라 워낙 경쟁률이 높아 고시만큼 합격이 어렵다는 뜻이다. 언론사 공채 경쟁률은 여전히 높지만 1997년 IMF 이후 언론사 인력 구조가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단지 언론사에 들어가 경험하는 것만이 목표라면 공채가 아닌 길도 있다.

정규직은 대체로 기자만…

언론사는 최소한의 필수인력만 정규직으로 고용한다. 대개 기자만 정규직이다. 그 외에 기자를 돕는 기자보나 조판 담당자, 교열기자, 영상 편집자 등은 없으면 업무에 차질을 빚는 중요한 인력임에도 이들은 언론사가 아닌 자회사나 도급 회사 소속이다. 심한 경우 파견직이나 프리랜서로 고용한다.

자회사나 도급 회사는 대개 본사 소속이었다가 본사가 비용 절감이나 경영 효율을 이유로 내세워 분리한 회사다. 처음부터 자회사나 도급 회사로 들어간 사람은 몰라도, IMF 이전에 입사해 연차가 높은 사람들은 본사 소속이었다가 다른 회사로 분리해 쫓아내면서 급여까지 깎아버리니 그 상황이 유쾌할 리 없다. 그런데도 본사가 계약을 해지해버리면 당장 생계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본사 직원의 눈치를 보며 일해야 한다.

자회사나 도급 회사는 법적으로 본사 개별 직원의 지시를 받지 못하게 되어있다. 자회사의 사장이나 도급 회사의 사장을 통해서만 업무를 넘기고 결과물만 받아야 하며 업무 처리 과정이나 내용에 대해 본사가 간섭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를 지키는 언론사는 거의 없다.

도급 회사 소속의 교열기자와 본사 소속의 취재기자는 기사 오류나 문장의 의도를 확인하기 위해 수시로 통화하고 역시 본사 소속인 방송기자는 자회사 소속인 편집자에게 세세한 부분까지 직접 편집 지시를 한다. 실질적으로 자회사나 도급 회사의 역할은 본사 내부 인력과 다를 것이 없으나 분리 과정을 거치면서 처우는 물론이고 직원들의 자부심과 자긍심에 상처를 입힌다.

파견직, 가장 나쁜 일자리…

흔히 파견직을 가장 나쁜 일자리라고 한다. 나에게 업무를 지시하는 사람과 나에게 사직서를 받는 사람이 다르다. 그리고 파견업체 사람은 절대 내 편이 아니다. 그들은 내가 소리소문없이 회사에서 일하고 자신들이 수수료를 챙길 수 있기만을 바란다.

파견업체가 아무 이유 없이 무상으로 일자리를 주선할 리 없다고 생각한 사람은 많았다. 그들 가운데 수수료 부분을 직접 물어본 사람들이 있었지만 하나같이 급여에 파견회사가 손대는 것은 불법이라고 대답한다. 사용사업주가 파견업체에 지급하는 액수를 알게 된 사람이 구체적인 수치를 갖고 다시 질문하면 근로자 신원보증 명목이라고 말이 바뀐다. 좀 더 솔직한 에이전트는 파견업체의 수익을 알려주기도 한다.

상당수의 파견업체 사람들은 파견 직원이 파견업체 사람이 아닌 사용사업자와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것 같다. 파견업체 에이전트는 계약 문제로 1년에 두세 번 만날까 말까 한 반면, 사용자와는 매일 얼굴을 맞대고 같이 일한다. 그런 상황에서 사용자가 나를 쓰기 위해 지급하는 돈이 얼마인지 알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돈은 내 통장에 들어오는 액수의 1.5배를 넘어섰다.

한번은 사용사업주가 파견직 직원들에게 일괄적으로 어떤 서류에 사인할 것을 요구했다. 시간 외 수당을 일절 받지 않겠다는 서약서였다. 나는 시간 외 업무를 할 일이 거의 없기는 했지만, 시간 외로 얼마를 일하든 돈을 받지 않겠다고 내 손으로 사인하라는 것이라 이건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인을 받아야 할 정도로 중요한 게 아니라면 나에게 사인을 요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보다 먼저 들어온 파견직 선임은 어차피 다들 내는 거라며 별것 아니니 그냥 하라고 했다. 그때 에이전트가 무슨 일로 나에게 전화를 했고 나는 이 문제에 관해 물어봤다. 공식적으로 시간 외 수당을 안 받겠다는 서명을 받고 있는데 여기 서명하는 게 맞는 거냐고 물었다. 에이전트는 내게 되물었다.

“시간 외 많이 하세요?”

파견업체들은 인력을 보내 그 수수료로 유지되는 업체임에도 철저히 사용사업주에게 맞추느라 정작 수수료를 받게 해주는 인력의 고충에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나와 함께 일했던 기자들이 내 페이 수준을 듣고 충격을 받아 내 봉급을 올려주기 위해 근로 시간 변경 등 나름대로 해결책을 제시했다. 결과적으로는 모두 허사로 돌아갔지만 그렇게 마음 써주는 것이 나로서는 참 고마웠다.

프리랜서 무시하는 열악한 방송국 현실

구직 기간 중, 한 공중파 보도국에서 트위터 관리자 선발 공고를 낸 적이 있다. 나는 면접까지 갔다가 탈락했다. 내부 규정 운운하며 급여를 사전에 밝히지 않는 일자리는 허다하다. 그래도 공중파에 프리랜서 아르바이트 조건이면 중간에 파견회사가 돈을 가져가지도 않을 것이고, 2년이라는 비정규직 계약 기간에 걸리지도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파견직 입장에서는 프리랜서를 선망하기도 했다. 프리랜서는 회사와 직접 계약을 할 수 있어 중간에 수수료로 날아가는 돈이 없고,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대신 계약 기간의 제약이 없어 팀과 잘 맞으면 오래 일할 수도 있다.

그런데 면접 자리에서 들은 처우는 뜻밖이었다. 주4일 근무에 하루 8시간씩 일하고 급여는 하루 5만 원에 계약 기간은 최대 23개월이라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이들이 이 일자리를 어떻게 취급하는지 알 수 있었다. 주5일 만근을 해야 주휴수당이 발생하는데 이것을 줄 생각이 없으니 4일만 일을 시킬 것이며, 24개월이 넘어가면 정규직으로 전환을 해주니 마니 하는 문제에 혹시라도 휘말릴 수 있으니 아예 23개월까지만 쓰고 안전하게 자르겠다는 뜻이다.

이렇게 계산하면 한 달 급여는 80만 원 정도가 되고, 이것은 생활비에 한참 못 미친다. 그렇다고 4일 일하고 다른 일자리를 구하기도 쉽지 않은 게 4일 중 평일과 토요일, 일요일이 교묘하게 섞여 있고 하루 8시간씩 일하니 나머지 날짜에 맞출 다른 자리를 구해 투잡을 한다는 게 체력은 둘째 치고 그런 자리가 있을 리도 없었다.

공중파 프로그램에서 프리랜서로 FD나 리서치를 채용하겠다는 공고도 심심치 않게 있다. 경력이 없거나 경력이 있어도 인정하지 않을 경우 페이는 놀랄 만큼 낮은 수준으로, 파견직보다도 적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신입이라면 말이 좋아 프리랜서지, 언제 잘릴지도 알 수 없고 4대보험도 없고 급여도 대개 최저임금에 못 미친다. 그나마 장점이라면 한 회사에 매이지 않고 남은 시간에 다른 회사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쪽도 연예계와 비슷해서 소수의 몇 명에게 일이 몰리고 나머지는 일자리 한 곳을 얻기도 어렵다.

봉급을 받는 입장에서는 최저임금의 파견직이나 그에 못 미치는 프리랜서나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어차피 적은 돈이기는 마찬가지지만, 프로그램 제작사는 파견직 한 명을 쓰는 비용의 절반으로 프리랜서 한 명을 고용한다. 공고 말미에 파견직 T/O가 나면 파견직으로 전환해주겠다고 적혀 있기도 하다. 이는 방송경영을 담당하는 곳에서 할당한 인원으로는 방송을 만들기에 역부족이라 제작팀에서 자체적으로 제작비를 할애해 사람을 쓰겠다는 의미다. 공중파라는 곳도 일자리가 이 정도로 열악하다.

재주는 프리랜서가 부리고 돈은 정규직이 챙긴다

실업급여가 끊기고 점점 가진 돈만 까먹게 되면서 나는 종합편성채널 보도국까지 지원했다. 당시 공고에는 작가, VJ를 모집한다고 적혀 있었고 나는 VJ가 아닌 작가 쪽으로 이력서를 제출했다. 서류 단계까지는 합격해 면접을 보게 되었다. 면접을 보면서 이 회사가 지금은 잠깐 잘 나가는지 몰라도 오래가지는 못하겠다는 결론을 얻었다. 물론 나는 떨어졌다.

일반적으로 보도국에서 작가를 구할 때는 구성작가를 구한다. 보도국 구성작가는 몇 분 정도의 코너 하나를 맡아 뉴스에 내보낼 아이템을 선정하고 그 내용을 잘 전달하기 위해 영상을 내보내는 순서를 정한 후 대본을 작성하는 일을 한다. 작가를 구한다고 해서 나는 이 직무를 맡길 사람을 구하는 줄 알았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간혹 취재작가라는 특수한 직무로 사람을 쓰는 경우는 있다. 이는 소수의 PD가 규모가 큰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제작 시간이 모자라 현재 보유 인력만으로 충분한 정보를 얻지 못할 때 취재 전담 인력을 고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보도국 작가 면접 자리에 갔더니 취재작가를 구하고 있다며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나가 영상을 촬영해오는 것은 물론 취재까지 모두 해야 한다고 한다. 이는 작가가 아닌 VJ의 업무였다. 단, 기사는 쓸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렇게 촬영하고 취재한 것은 어디에 쓸까? 당연히 다른 기자의 바이라인으로 기사가 나갈 것이다. 내가 촬영하고 취재해 주면 기자는 기사 쓰고 쓴 기사를 읽어 내보낸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사람이 챙기는 전형적인 행태다. 그나마 VJ는 이름이라도 나가겠지만 이런 형태로 일하는 작가는 그런 것도 기대할 수 없었다. 사람을 이런 식으로 대하는 게 화가 났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유럽에서는 비정규직에게 고용 안정을 보장하지 않는 대신 높은 임금을 주는데, 우리나라는 반대로 정규직에게 고용 안정은 물론 높은 임금과 지위까지 보장한다. 실제로 내가 만난 기자 한 명은 이 회사에서 비정규직들이 정규직 다 받쳐주고 있다는 자조 섞인 말도 했고, 회사가 2년 동안 비정규직들의 단물을 다 빨아먹고서 버린다는 이야기도 했다.

언론사는 파견직이나 프리랜서로 들어온 사람이 일을 아무리 잘해도 정규직으로 전환해주지 않는다. 언론사 공채 합격 여부는 카스트와 다를 게 없다. 대다수 언론사는 스스로 비정규직 문제를 안고 있는 데다가 기자도 비정규직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비정규직 문제를 제대로 보도할 수 없다. 사안이 발생하니 어쩔 수 없이 보도는 하지만 같은 기준으로 파고들면 더 먼지가 많은 곳이 언론사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속담이 적확하게 맞아 떨어진다.

소모품으로 버려지는 언론계 비정규직

기자는 노동 강도가 매우 높은 직업이다. 고용노동부 출입 기자가 자신의 근로 시간을 계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노동시간 2위로 2,163시간을 일하는 반면, 본인은 3,500시간 이상을 일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지금껏 본 다수의 기자는 고강도 노동에 시달렸고 시험 한 번 붙은 것으로 호의호식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들의 고생을 깎아내릴 생각은 없다. 하지만 언론계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그들이나 혹은 회사의 소모품으로 사용되다가 버려지는 행태는 잘못되었다고 본다.

언론사는 24시간 돌아가야 하는 조직이다. 사건·사고는 시간을 정해놓고 터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1일 8시간 근무, 1시간 점심시간에 최저시급 적용 조건으로 어뷰징 업체에 입사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조항은 포괄임금이었다. 즉 내가 몇 시간을 일하더라도 정액으로 1일 8시간 일한 것에 대한 급여만 받을 수 있었다. 그러니 나는 언론사의 필요와 무관하게 단 1초도 회사를 위해 더 쓸 이유가 없었다. 회사의 재정 사정이 나쁘기는 했지만, 그것은 내 처우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없었다. 회사는 나를 쓰기 위해 파견업체에 내가 받는 페이에 수십만 원을 더 지급했다. 그 변명이 성립하려면 나를 적어도 계약직으로 써야 했다.

어뷰징 업체의 대표는 회식 자리에서 열정적으로 일할 것을 강조했다. 열정이란 일을 싫어할 수 있지만 그래도 돌아볼 때 후회가 남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라고 했다. 이 말 덕분인지는 모르겠으나 딱히 기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좋아해서 예능 프로그램이나 축구, 야구 경기를 보고 오는 직원들도 있었다. 경기장까지 가서 보고 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나는 이 일을 좋아하지 않았고 내가 열정을 가진들 회사가 열정에 대해 무엇도 줄 생각이 없다는 사실은 내 월급 통장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나는 스스로 열정적으로 일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사전에 열정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회식 자리에서 들은 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표에게 들은 게 열정의 바른 의미라면 나는 정말 열정적으로 일했다. 더 열심히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면 돌아볼 때 후회가 남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처우 문제를 무시하지 못했다. 기존에 일했던 회사의 급여는 이 회사에서 반 토막이 났고, 해고하기에도 세금 문제에도 편리하게 사람을 파견직으로 쓴다는 게 회사가 나를 어떻게 취급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또 나는 언론인으로서의 성취감이나 사명감도 모조리 빼앗겼다. 내가 여기서 하는 일은 최소한의 보도 윤리조차 저버리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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