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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소수자 작가를 위한 최초의 서점은 1967년 뉴욕 머서가 291번지에 생겼다.

서점을 연 크레이그 로드웰은 유명한 동성애자 작가 중 한 명인 오스카 와일드를 기념하고자 아예 이름을 오스카 와일드 서점(Oscar Wilde Bookshop)으로 붙였다. 뉴욕 프라이드 퍼레이드의 아이디어가 처음으로 논의된 곳이라는 점만으로도 전설 그 자체다.

오스카 와일드 서점 (출처: gvshp.org) http://gvshp.org/blog/2012/10/16/happy-birthday-oscar-wilde/
오스카 와일드 서점 (출처: gvshp.org)

1960년대 동성애에 대한 적개심이 만연했을 당시, 로드웰은 감히 2015년 미국 내 동성혼 합법이 선언될 것을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것도 흑인이 대통령인 시대에 말이다.

최근 미국은 획기적인 LGBT 인권의 신장을 이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성커플의 결혼 증명서 발급을 거부해 구속된 법원 서기 킴 데이비스에 대해 미국 각지에서 보내는 뜨거운 지지는 제도 변화만큼 인식 변화가 따라오지 못함을 보여준다. 지난여름, 대한민국에서도 시청 앞 광장에서 뜨겁게 열렸던 러브 퍼레이드에 난장판을 벌인 동성애 혐오세력을 떠올려보라. LGBT가 전염병이나 범죄가 아니고 개인의 정체성일 뿐임을 언제쯤 그들이 알 수 있을까?

[box type=”info” head=”LGBT란?”]

LGBT는 성 소수자 중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성전환자(Transgender)를 합쳐서 부르는 단어이다. 퀴어(Queer)나 레즈비게이(lesbigay)에 비해선 논쟁이 덜한 용어다.

– 위키백과 ‘LGBT’ 중에서 [/box]

이태원에 문 연 ‘햇빛서점’ 

해가 기울어지면 그 화려함이 더해지는 이태원. 살짝 번화한 거리를 벗어나 이슬람 사원 쪽 경사진 언덕길을 올라가다 보면 어느덧 다다르는 곳이 우사단로이다. 철물점, 세탁소, 슈퍼마켓, 미장원 등의 오랫동안 개발되지 않는 옛 도심의 틈새 속에 전복적 기운을 귀여운 이름으로 살포시 위장한 작은 서점 하나가 지난 4일 개업했다.

차 한 대 지나가기 힘든 좁은 길에는 아주 특별하면서도 사적인 서점의 탄생을 축하하러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노란 네온사인이 반짝이며, 무지갯빛 칵테일과 떡 그리고 젤리가 개업 잔치의 분위기를 돋웠다. 한국 최초의 LGBT를 위한 서점, 햇빛서점이 작은 흥분 속에서 문을 열었다.

햇빛서점 사장님과 1문 1답

– 햇빛서점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내가 가고 싶어서 만든 서점이다. 게이로서 나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기에 게이 문화가 너무 음지에 있다고 생각했고, 나의 일상에 게이와 관련된 사물, 책이 있었으면 했다.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학교에서 조교로 일하며 적금을 들고 있었는데 어느 정도 돈이 모이니 서점을 만들고 싶어졌다. 이왕 만드려면 모두에게 보여줄 수 있는 쇼윈도가 있는, 낮에도 올 수 있는 게이 업소로 만들고 싶다.

– 주로 화집이 많아 보이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우리나라의 LGBT 컨텐츠는 손에 꼽는다. 그만큼 수가 부족한데, 장사를 빈 책장으로 시작할 수는 없었고 해외의 책을 수입하게 되었다. 외국어 컨텐츠는 읽기 힘드니 자연스럽게 화집 위주로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 서점이 어떤 방향으로 발전하게 되기를 바라는지?

빈 책장을 채워간다는 느낌으로 운영하고 싶다. 돈이 생기면 창작지원도 하고 싶고, 번역 및 출판 작업도 하고 싶다. 책만 파는 서점이 아닌 사람들이 모이는 커뮤니티로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햇빛 서점

– 현재 LGBT 분야에서 주목하는 작가나 활동가나 흐름이 있다면 소개 부탁한다.

요즘 부쩍 사람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는 것이 눈에 보인다. 국제연애 중인 ‘오토나쿨’는 자신의 여자친구를 위해서 계절마다 ‘도쿄일인생활’이라는 요리책을 만든다. 디자인스튜디오 ‘앞으로’는 ‘뒤로’라는 이름의 게이 잡지를 만들고 있다. ‘6699프레스’는 여섯 명의 게이와 이들이 커밍아웃한 이성애자 친구가 짝꿍이 되어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책으로 엮고 있다. 퀴어에 관련된 모든 것을 모으는 퀴어아카이브 ‘퀴어락’도 생겼으며, LGBT를 다루는 전시공간 ‘청량 엑스포’도 생겼다.

정말 신 나지 않는가? 서점을 막 시작한 사람으로서 너무 반가운 현상이고 이런 움직임들이 사회 및 커뮤니티 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매우 궁금하고 기대된다.

– 책 읽는 인구가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서점’을 선택한 이유가 있는지?

책 읽는 인구가 점점 줄어들수록 책을 읽어야 하는 사람은 점점 늘어나는 것이 아닐까? 서점은 생각을 나누고 전파하는 방송국 같은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잘 고른다면 내가 원하는 사람을 오게 만들 수도 있다. 그 두 가지 장점이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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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베 얀손 Tove_Jansson_1956최근 트롤 요정 ‘무민’의 작가 토베 얀손(Tove Jansson, 1914년 8월 9일 ~ 2001년 6월 27일, 사진)의 탄생 100주년, 캐릭터 탄생 70주년을 맞아 ‘무민 더 무비’라는 영화가 개봉됐다.

국내 무민의 인기가 날로 높아져 가는 가운데 무민 시리즈를 출간한 출판사 ‘작가정신’이 동성애자인 토베 얀손의 프로필에서 동성 파트너와의 삶을 완전히 삭제하고, 홀로 살았다고 왜곡해 한바탕 논란이 되었다.

moomin 무민

 

아직 한국은 이미 사망한 외국인 작가조차 동성애자를 동성애자로 부를 수 없는, LGBT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낮은 사회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멘트 바닥을 뚫고 민들레가 피어나듯이 그렇게 햇빛서점이 문을 열었다. 왜 이름을 햇빛서점이라고 지었는지는 묻지 않았다. 다만 LGBT에게 한국은 언제나 비 내리는 나라지만, 햇빛서점의 광선이 힘을 키워 언젠가는 사회 곳곳에 무지개가 두둥실 떠오르는 상상을 해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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