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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핀스키 초상화 (P.I. 네라도프스키 그림)
카르핀스키 초상화 (P.I. 네라도프스키 그림)

알렉산더 카르핀스키는 1847년에 태어난 러시아의 지질학자이자 고생물학자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광업학교를 졸업한 후 우랄산맥의 지질을 연구하고 1868년부터 광업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페테르부르크 과학원의 조교수와 연구원을 거쳐 1917년에는 러시아과학원의 초대 선출 회장이 된 알렉산더 카르핀스키는 1936년에 사망할 때까지 광물학을 비롯해 층서학, 암석학, 고생물학 등 러시아의 지질학 전반에 걸쳐 큰 영향과 업적을 남겼다.

헬리코프리온의 등장

카르핀스키의 이름을 따서 카르핀스카이트라는 광물의 이름이 지어졌고, 달에는 카르핀스키 크레이터가 있으며, 러시아 스베르들롭스크 주에 카르핀스크라는 도시도 있지만, 카르핀스키가 남긴 업적들은 그 내용을 들을 기회가 있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그저 먼 나라의 옛날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온갖 과학기술이 정신없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21세기 초반에 와서 19세기 말, 유럽에서도 변방이라고 할 수 있는 러시아의 과학자, 그것도 노벨상과는 거리가 먼 지질학자의 이름을 떠올려 볼 기회는 좀처럼 없게 마련이다. 이 글에서 살펴볼 헬리코프리온처럼 뭔가 특별한 계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러시아의 디비아층에서 발견된 헬리코프리온 화석. 스케일 바는 2cm. (타파닐라·프루이트, 2013년)
러시아의 디비아층에서 발견된 헬리코프리온 화석. 스케일 바는 2cm. (타파닐라·프루이트, 2013년)

알렉산더 카르핀스키는 1899년의 논문을 통해 러시아의 우랄 지역 페름기 지층에서 발견한 화석에 헬리코박터…가 아니라 헬리코프리온(Helicoprion)’이라는 이름을 붙여 보고한다. 소용돌이처럼 말려 들어가 있는 괴상한 형태의 화석이었다. 정체가 무엇일지 한 번 추측해보시길. 화석은 맞을까? 누가 장난으로 만들어낸 가짜 화석 아냐? 이런 생각을 하더라도 놀랄 일은 아니다.

사진에 스케일 바가 없었다면 고사리의 끝 부분이나 포도 같은 덩굴식물의 덩굴손이 아닌가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화석에 원래 관심이 좀 있었다면 특이한 암모나이트의 일종이 아닌가 짐작할 수도 있겠다. 실제로 얼핏 헬리코프리온과 비슷해 보이는 에테오데로케라스(Eteoderoceras) 라는 암모나이트 종류도 있다.

[box type=”note”]위 트윗의 사진은 카디프 국립박물관 (National Museum Cardiff)의 소장품인 에테오데로케라스 오베숨(Eteoderoceras obesum)이다.[/box]

카르핀스키는 헬리코프리온을 보고한 논문에서 이것이 상어의 일종, 그중에서도 에데스투스류(edestid)라고 서술하고 있다. 즉, 소용돌이 모양의 화석만 발견된 것이 아니라 그와 연관된 몸의 다른 부분도 발견되어 상어의 일종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헬리코프리온이 확실히 상어의 몸 한 부분이라고 해도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대체 이 물건의 정체는 정확히 무엇이며, 몸의 어디에 붙어있던 물건일까? 바로 이것이 고생물학자들을 100년도 넘게 괴롭혀 온 난제였다.

소용돌이의 정체는?

메갈로돈(검은색)과 백상아리(흰색)의 이빨 (출처: 위키백과 공용 CC BY-SA 3.0)
메갈로돈(검은색)과 백상아리(흰색)의 이빨 (출처: 위키백과 공용 CC BY-SA 3.0)

눈썰미가 있는 독자라면, 헬리코프리온의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고는 소용돌이 모양을 구성하고 있는 부분들 하나하나가 이빨처럼 생겼다는 것을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다. 상어는 연골어류에 해당해서 몸속의 골격이 모두 연골로 되어 있다. 그와 대조적으로 사람의 골격은 대부분 딱딱한 경골로 되어 있고 연골은 무릎처럼 관절 부위에 자리 잡고 있거나 코와 귀의 모양을 유지해주는 역할을 한다.

상어의 골격이 말랑말랑한 연골로 되어 있다는 것은 상어가 죽어 시체가 되었을 때 피부와 근육 등은 물론이고, 골격까지 다른 생물들에게 먹히거나 썩어 없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대신 상어의 이빨은 사람의 치아와 비슷하게 에나멜질로 덮여 있으므로 매우 단단해서 화석으로 남기가 쉽다.

상어 종류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라면 신생대에 살았던 거대 상어 메갈로돈이 있다.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거대한 검은색 이빨이 메갈로돈의 것이고, 옆의 흰색 이빨이 우리가 흔히 “조스(Jaws)”로 기억하는 백상아리의 이빨이다. 식인상어라는 무시무시한 이미지, 그리고 6미터에 달하는 최대 몸길이를 가진 백상아리도 메갈로돈 앞에서는 그저 귀엽기만 할 뿐이다.

헬리코프리온의 소용돌이를 구성하고 있는 부분 하나하나는 바로 메갈로돈이나 백상아리의 이빨과 유사한, 상어류의 이빨이다. 문제는, 이빨은 턱뼈의 가장자리를 빙 두르는 형태로, 위에서 봤을 때 반원형을 이루고 있어야 할 것 같은데, 헬리코프리온의 저 소용돌이 모양이 정말 이빨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헬리코프리온이 살아있을 때 대체 어디에 붙어 있었을까?

카르핀스키의 최초 복원도 (O. A. 레베데프, 2009년)
카르핀스키의 최초 복원도 (O. A. 레베데프, 2009년)
카르핀스키의 1911년 복원도를 레이 트롤이 다시 그린 것 (출처: 내셔널지오그래픽)
카르핀스키의 1911년 복원도를 레이 트롤이 다시 그린 것 (출처: 내셔널지오그래픽)

카르핀스키가 1899년에 최초로 제시했던 헬리코프리온의 복원도는 위의 첫 번째 그림과 같았다. 즉, 소용돌이 모양의 이빨은 헬리코프리온의 위턱에 붙어있고, 소용돌이는 바깥쪽에 위치하여 이빨들이 항상 외부에 노출되어 있었으리라고 추측했다. 소용돌이 이빨을 어디에 붙인들 그럴듯해 보일까마는, 중세 상상동물 그림에나 나올 것 같은 모습이다. 또 10여 년 후에는 소용돌이 “이빨”이 상어의 등지느러미 부근에 달려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기도 했다. 이 경우에는 모양이 두 번째 그림과 비슷했을 것이다.

“아니, 이빨이라면서? 이빨이 어떻게 등지느러미에 달려있다는 거야? 말이 돼?”하며 어처구니 없는 소리라고 화를 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생물계, 더군다나 화석들의 세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 더 기묘한 것이라서…

연골어류의 피부를 덮고 있는 비늘을 ‘방패비늘(楯鱗; placoid scale)’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구조적으로 척추동물의 이빨과 상동인 것으로 알려졌다. 즉, 어떻게 보면 상어의 피부는 무수히 많은 작은 이빨들로 덮여 있는 것이다. 그러니 등 쪽에 있는 이빨들이 좀 크다고 해서 딱히 이상할 것은 없지 않은가. 딱히 이상하다고?

다모클레스 세라투스(Damocles serratus) (리처드 룬드, 1986년)
다모클레스 세라투스(Damocles serratus) (리처드 룬드, 1986년)

위의 사진은 미국 몬태나의 석탄기 지층에서 발견된 다모클레스 세라투스(Damocles serratus)라는 화석 상어의 사진이다. 머리 위에 뿔 같은 것이 길게 뻗어있고, 그 끝 부분에 작은 가시 같은 것들이 늘어서 있다. 이것을 ‘덴티클’이라고 하는데, ‘작은 이빨’이라는 뜻이다. 앞서 설명한 ‘방패비늘’보다 조금 더 우리가 생각하는 이빨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머리 위에 저렇게 괴상한 이빨 같은 것을 매달고 있다니! 이름을 보고 알아챈 사람도 있겠지만, 키케로의 책에 등장하는 시라쿠사의 왕 디오니시오스와 다모클레스의 고사, 즉 권력을 가진다는 것이 말총 한 가닥으로 천장에 매달아 놓은 칼 바로 밑에 항상 앉아있는 것처럼 불안한 일임을 깨닫게 해주는 이야기에서 착안하여 이 화석의 머리 위에 있는 뿔과 덴티클이 마치 다모클레스의 칼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이 상어의 이름은 다모클레스가 되었다.

“다모클레스의 칼”에 붙어 있는 덴티클들을 적당한 크기로 키우는 상상을 해보면 카르핀스키의 1911년 복원도가 아주 터무니없어 보이지는 않는다.

한 쌍의 팔카투스(Falcatus) (출처: Environmental Biology of Fishes)
한 쌍의 팔카투스(Falcatus) (출처: Environmental Biology of Fishes)

약간 곁으로 새는 얘기지만, 다모클레스와 같은 지층에서 발견된, 다모클레스와 매우 비슷하게 생긴 화석 상어 팔카투스(Falcatus)의 경우 암수 한 쌍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발견되기도 했다. 둘이 거의 동일한 모양이지만 머리 위에 칼, 혹은 뿔이라고 불릴만한 저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과 없는 것 두 형태가 있으니 성적 이형성(sexual dimorphism)을 보여주는 것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암컷이고 어느 쪽이 수컷일까? 답은, 머리 위에 뿔을 달고 있는 쪽이 수컷이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아래쪽에 있는 팔카투스는 머리 위에 뿔을 달고 있을 뿐 아니라 배지느러미 뒤쪽에 뭔가 길쭉한 물건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연골어류의 수컷에서 볼 수 있는 기관, 성기에 해당하는 클래스퍼다.

어부들이 홍어를 잡을 때 암컷이 더 맛있고 비싸므로 수컷이 잡히면 암컷인 것처럼 속여 팔기 위해 잘라낸다는 이야기가 있는, 홍어 수컷이 가지고 있는 한 쌍의 성기가 바로 클래스퍼다. 타임머신을 타고 고생대로 가서 팔카투스를 잡아온다면 수컷의 경우 머리 위에 뿔까지 달려 있으니 암컷인 것처럼 속여 팔기는 아마 더 어려울 것이다.

시기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다모클레스와 팔카투스는 무척 가까운 관계이니 다모클레스의 경우도 팔카투스처럼 머리 위에 뿔을 가진 것이 수컷이었으리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물론, 다모클레스나 팔카투스의 머리 위에 괴상한 뿔이 달려 있다고 해서 헬리코프리온의 머리 위에 소용돌이 이빨이 달려 있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큰 분류로 보면 ‘상어’라고 말을 하지만 분류학적으로 봤을 때 헬리코프리온과 다모클레스가 사실 그렇게 가까운 관계는 아니다.

다모클레스와 팔카투스는 상어와 가오리, 홍어 등을 포함하는 ‘판새류(Elasmobranchii)’에 속하고, 헬리코프리온은 은상어, 퉁소상어 등이 포함된 ‘전두어류(Holocephali)’에 속한다. 골치 아픈 분류학 용어를 빼고 간단히 말하자면, 다모클레스와 헬리코프리온보다는 상어와 가오리가 서로 더 가까운 관계라고 생각하면 된다.

카르핀스키가 1911년의 복원도에서 소용돌이 이빨을 등지느러미 있는 위치에 가져다 놓은 것도 다모클레스나 팔카투스에서 힌트를 얻은 것은 아니다. 다모클레스와 팔카투스는 헬리코프리온이 발견되과 나서 거의 80년 이상 지난 1980년대 중반에 미국에서 발견된 화석이기 때문이다.

헬리코프리온이 발견된 장소들 (타파닐라·프루이트, 2013년)
헬리코프리온이 발견된 장소들 (타파닐라·프루이트, 2013년)

1899년 카르핀스키의 보고 이후, 헬리코프리온은 세계 각지에서 발견되었다. 위의 지도는 고생대 페름기 당시의 대륙 분포를 재구성한 것으로 1-7은 현재의 북미지역, 8은 북극권, 9-10은 러시아 우랄 지방, 11-14는 아시아와 호주 지역이다. 상당히 널리 분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는 100개 이상의 소용돌이 이빨 화석이 알려졌으며 특히 미국 서부의 아이다호 부근에서 그중 절반 이상이, 러시아 쪽에서 1/4 정도가 발견되었다. 지금의 우리가 보기에는 굉장히 특이한 모양을 가진 생물이지만 과거에는 상당히 넓은 지역에 분포하고 꽤 성공적으로 생존했던 생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로버트 퍼디와 메리 패리쉬의 복원도. 혀가 있어야 할 부분에 소용돌이 이빨이 있다. (출처: 스미스소니언 미술관)
로버트 퍼디와 메리 패리쉬의 복원도. 혀가 있어야 할 부분에 소용돌이 이빨이 있다. (출처: 스미소니언 국립자연사박물관)

카르핀스키가 초기에 소용돌이 이빨의 복원도에 대해 두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지만, 여기에 설득당하지 않은 학자들도 많았다. 세계 각지에서 꾸준히 발견되는 새로운 표본들의 발견에 힘입어 헬리코프리온의 새로운 복원도도 계속해서 등장했다.

소용돌이 이빨이 때로는 아래턱에 붙어 바깥쪽으로 소용돌이를 그리기도 했고, 아래턱 속에 파묻혀 있는 모습도 있었고, 피자 커터 같은 모양을 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꼬리에 소용돌이 이빨이 붙어 있는 형태로 복원도를 그려낸 사람도 있었다. 또, 줄지어 서 있는 이빨들이 몸의 중심선에 한 줄로 위치하고 있다는 의견이 대다수였지만, 일부는 턱의 양쪽에 모두 소용돌이 모양의 이빨이 늘어선 형태로 복원된 경우도 있었다.

보통의 상어들처럼 턱 가장자리를 따라 이빨들이 나 있는 것에 더해 혀가 있어야 할 곳에 소용돌이 이빨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퍼디와 패리쉬의 복원도도 기묘하기로 치자면 손꼽힐 것이다.

헬리코프리온 복원도 총정리 (출처: 내셔널지오그래픽)
헬리코프리온 복원도 총정리 (출처: 내셔널지오그래픽)

화가이자 음악가이자 고생물학 애호가인 레이 트롤은 2013년에 그때까지 제시되었던 모든 헬리코프리온의 형태 23가지를 모아 한 장의 커다란 그림으로 그려냈다. 헬리코프리온은 아마 화석으로 발견된 생물 중 그 구조에 관해 가장 다양한 의견이 존재했던 종류가 아닐까 싶다.

[box type=”note”]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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