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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이 글은 소용돌이 화석의 비밀 1/2에서 이어집니다.[/box]

마침내 밝혀진 헬리코프리온의 모습

2013년 2월, 바이올로지 레터(Biology Letters)라는 학술지에 미국 아이다호주립대학의 레이프 타파닐라를 비롯하여 뉴욕에 있는 미국 자연사 박물관, 로드 아일랜드 대학, 밀러스빌 대학 등의 과학자들로 이루어진 연구팀이 헬리코프리온에 대한 논문을 하나 발표한다.

이들은 CT 스캐닝 기법을 이용해 헬리코프리온의 표본을 연구했다. CT 스캔이라고? 그거 병원에서나 쓰는 거 아닌가? 맞다. X선을 이용하여 물체 내부의 3차원 영상을 얻어내는 CT 스캐너는 병원에서 환자의 몸 내부를 들여다보기 위해 많이 쓰인다.

고생물학에서 화석을 연구하는 방법도 기술의 발전에 따라 계속 바뀌고 있는데, 야외에서 망치로 돌을 깨서 화석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구시대의 고전적인 방법이었다면, 20세기 후반 이후에는 일단 확보한 화석 표본의 겉모습을 연구하는 것은 물론, CT 스캐너와 같은 첨단 기기들을 이용하는 것도 중요한 연구방법 중 하나가 되었다.

이전에는 화석의 내부를 확인하려면 표본을 잘라서 안을 들여다보는 파괴적인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표본에 손상을 입히지 않고도 내부를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3차원 모델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타파닐라 팀의 연구에 사용된 표본 IMNH 37899 (Tapanila et al., 2013)
타파닐라 팀의 연구에 사용된 표본 IMNH 37899 (Tapanila et al., 2013)

타파닐라의 연구팀이 조사대상으로 삼은 헬리코프리온 표본은 아이다호 주립대학 내의 아이다호 자연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IMNH 37899라는 표본이다. 1966년에 벤딕스-알름그린의 연구에 사용된 표본이기도 하다. IMNH 37899 표본은 소용돌이 이빨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두개골 밑 위턱에 해당하는 다른 연골조직도 같이 화석화된 경우였다.

1966년 당시에는 표본의 표면만을 보면서 연구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벤딕스-알름그린이 접할 수 있는 정보는 제한적이었다. 타파닐라의 연구팀은 CT 스캔을 통해 소용돌이 이빨 외의 연골조직에 대해서도 더 많은 정보를 얻어낼 수 있으리라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CT 스캔으로 얻은 3차원 영상을 여러 각도에서 본 것 (Tapanila et al., 2013)
CT 스캔으로 얻은 3차원 영상을 여러 각도에서 본 것 (Tapanila et al., 2013)

예상했던 대로 3차원 영상을 통해 실제 내부의 연골조직이 어떤 형태였는지 더 자세히 드러났다. 위의 그림에서 초록색은 위턱, 파란색은 아래턱에 해당하고 붉은색으로 보이는 것은 소용돌이 이빨을 지탱해주는 역할을 했던 연골이다. 즉, 소용돌이 이빨은 헬리코프리온의 입 내부, 아래턱의 한가운데에 있었으며 여러 학자가 추측했던 것처럼 몸의 중심선을 따라 회전하는 형태를 띠었던 것이다.

몸의 중심선을 따라 회전하는 이빨이라니, 이것도 다시 생각해 보면 상당히 이상한 모양이다. 척추동물은 턱 가장자리에 좌우대칭으로 이빨이 나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때문에 앞서 살펴보았던 퍼디와 패리쉬의 복원도에서는 헬리코프리온이 보통 상어처럼 턱 가장자리의 이빨도 가지고 있고, 소용돌이 이빨도 입 한가운데 있는 형태로 그려졌다.

하지만 CT 스캔을 통해서 드러난 헬리코프리온의 모습을 보면 소용돌이 이빨을 제외하면 다른 이빨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기묘하다면 기묘한데, 이런 척추동물이 또 있을까?

에데스투스의 복원도 (위키백과 공용)
에데스투스의 복원도 (위키백과 공용)

헬리코프리온이 최초로 발견되었을 때 카르핀스키가 헬리코프리온을 에데스투스류(edestid)로 분류했다는 이야기를 앞에서 했다. 에데스투스(Edestus)라는 화석 상어 속, 그리고 그와 가까운 관계인 종류들을 묶어 에데스투스과(Edestidae)로 분류하는데, 연구가 아주 잘 되어있는 것은 아니지만, 석탄기부터 트라이아스기까지 살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에데스투스류에서 볼 수 있는 특징 중 하나가 중심선에 있는 이빨이다. 헬리코프리온처럼 360도 이상 회전하는 형태는 아니지만, 위의 복원도에서 볼 수 있듯이 바깥쪽으로 휘어 있으면서 좌우대칭으로 난 것이 아닌, 중심선에 있는 이빨이라는 점에서 헬리코프리온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헬리코프리온이 발견된 19세기 말에 에데스투스류의 화석이 이미 알려졌기 때문에 카르핀스키도 헬리코프리온을 에데스투스류로 분류했던 것이다.

적어도 중심선에 한 줄로 늘어선 이빨이 3억 년쯤 전에는 지금의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기묘한 이빨의 형태는 아니었던 셈이다.

헬리코프리온 아래턱과 소용돌이 이빨의 구조. (©레이 트롤, 출처: 내셔널지오그래픽)
헬리코프리온 아래턱과 소용돌이 이빨의 구조. (©레이 트롤, 출처: 내셔널지오그래픽)

CT 스캐닝을 통해 드러난 헬리코프리온의 모습을 재구성하면 위에서 볼 수 있는 레이 트롤의 그림과 같이 된다. 즉, 소용돌이의 뿌리 부분에서 이빨이 생겨나면 새 이빨이 그 이전에 있던 모든 이빨을 앞쪽으로 밀어낸다. 밀려나는 이빨들은 사람의 경우처럼 빠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계속 앞으로 밀려갈 뿐이다.

어느 정도 선에서 이 과정이 멈춘다면 앞에 아마 에데스투스와 비슷한 형태의 이빨을 가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헬리코프리온은 어릴 때 났던 이부터 시작해 모든 이빨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새로운 이빨이 추가되기 때문에 아래 그림처럼 이빨이 붙어있는 조직을 바깥으로 길게 늘어뜨리거나, 턱 안쪽으로 끌어들이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CT 스캐닝으로 확인한 바에 의하면 소용돌이 이빨 전체가 아래턱을 이루는 연골 내부에 위치하기 때문에 아래에 있는 존 롱의 복원도는 정확하지 않고, 소용돌이 이빨이 완전히 턱 안쪽으로 들어와 있는 위의 복원도가 정확한 것이 된다.

존 롱의 1995년 복원도를 레이 트롤이 다시 그린 것 (©레이 트롤, 출처: 내셔널지오그래픽)
존 롱의 1995년 복원도를 레이 트롤이 다시 그린 것 (©레이 트롤, 출처: 내셔널지오그래픽)
메갈로돈 아래턱의 모형 (위키백과 공용)
메갈로돈 아래턱의 모형 (위키백과 공용)

헬리코프리온의 소용돌이 이빨을 더 잘 이해하고 싶다면 상어의 이빨이 어떻게 자라고 어떻게 교체되는지를 보는 것이 좋다. 위의 사진은 메갈로돈의 아래턱을 복원한 것으로, 앞쪽 측면에서 턱 안쪽을 찍은 것이다. 가장 바깥쪽 줄(사진에서 오른쪽)에 똑바로 서 있는 이빨들이 현재 사용되고 있는 이빨들이다.

시간이 지나면 다음 줄에 있는 이빨들이 밀고 나오면서 오래된 이빨들은 빠져서 없어지고 사진에서 왼쪽, 즉 입의 안쪽으로 가면서 누워있는 이빨들을 볼 수 있는데 이 이빨들이 새로 만들어지는 이빨들이다. 한 자리에 들어설 일련의 이빨들을 톱니바퀴의 이 하나하나라고 보면 메갈로돈의 위와 같은 턱 구조는 톱니바퀴 수십 개가 나란히 늘어서 있는 형태가 된다.

헬리코프리온의 경우 입 안쪽에서 이빨이 새로 만들어지고 가장 오래된 이빨이 앞쪽으로 밀려나는 것 자체는 동일하지만, 여러 개의 톱니바퀴가 아닌 단 하나의 톱니바퀴만을 가지고 있으며, 오래된 이빨이 빠져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턱 안쪽으로 파고들어 가는 것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좀 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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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ube 동영상

위의 비디오 5분 2초부터 금속으로 제작한 소용돌이 이빨과 거기에 잘려나간 연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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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돌이 이빨은 과연 포식자인 헬리코프리온에게 먹이를 잡아먹는 데 효과적인 도구였을까? 앞서 소개했던 레이 트롤은 금속으로 소용돌이 이빨을 만들어 그 성능을 연어에 시험해 보기도 했다. 받침대 위에 연어를 가져다 놓고 소용돌이 이빨을 높이 들었다가 작두처럼 내리치자 연어의 목은 여지없이 잘리고 만다.

아래턱의 윗부분에 소용돌이 이빨이 노출되어 있고, 위턱의 모양이 사진에서 보는 받침대처럼 생겼다면 아마 이런 식으로 먹이를 절단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헬리코프리온이 두족류를 물었을 때 각 이빨에서 힘이 어느 방향으로 작용하는지 보여주는 그림 (Ramsay et al., 2014)
헬리코프리온이 두족류를 물었을 때 각 이빨에서 힘이 어느 방향으로 작용하는지 보여주는 그림 (Ramsay et al., 2014)

이 문제를 좀 더 학술적으로 접근한 사람들도 있다. 램지와 타파닐라 등은 2014년의 연구에서 헬리코프리온의 소용돌이 이빨이 역학적으로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위의 그림은 헬리코프리온이 소용돌이 이빨로 먹이인 두족류의 일종을 물었을 때 어느 방향으로 힘이 가해지는지를 보여준다.

소용돌이 이빨 중 뒤쪽, 즉 뿌리에 가까운 쪽에 있는 이빨은 먹이를 입 안쪽으로 세게 잡아당기게 된다. 중간쯤에 있는 이빨은 뒤쪽, 그리고 위쪽으로 먹이를 잡아당긴다. 제일 앞쪽에 있는 이빨은 먹이를 약하게 위쪽으로 잡아당긴다. 먹이의 어느 부분이 이곳에 있느냐에 따라 앞쪽에 있는 이빨은 먹이의 해당 부분을 입 바깥쪽으로 밀어내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논문의 저자들은 헬리코프리온이 턱을 닫기 위해 힘을 가하면 소용돌이 이빨에 걸린 먹잇감의 앞쪽은 그 자리에 머물게 될 것이고, 나머지 부분은 소용돌이 이빨에 걸려 안으로 끌려들어 갔으리라고 설명하고 있다.

레이 트롤의 최종 헬리코프리온 복원도 (출처: 내셔널지오그래픽)
레이 트롤의 최종 헬리코프리온 복원도 (출처: 내셔널지오그래픽)

예술가들에게도 영감을…

이렇게 기묘한 모습을 가진 헬리코프리온은 예술가들에게도 흥미로운 소재가 되는 모양이다. 앞에서 여러 차례 언급된 레이 트롤은 다양한 헬리코프리온의 복원도를 직접 그렸을 뿐 아니라 자신의 밴드인 레이 트롤과 랫피쉬 랭글러스(Ray Troll and the Ratfish Wranglers)의 음반에서는 CD에 헬리코프리온의 소용돌이 이빨 그림을 인쇄해 놓았다.

레이 트롤과 그의 밴드가 2009년에 발표한 음반 "Cruisin' the Fossil Freeway"의 CD에는 보시다시피 헬리코프리온이 그려져 있다. 성공한 덕후(...)
레이 트롤과 그의 밴드가 2009년에 발표한 음반 “Cruisin’ the Fossil Freeway”의 CD에는 보시다시피 헬리코프리온이 그려져 있다. 성공한 덕후(…)

한편, 캔자스시티 출신의 뮤지션들로 이루어진 쓰리 트레일스 웨스트(3 Trails West)라는 컨트리 밴드는 “아이다호의 소용돌이 이빨 상어(The Whorl Tooth Sharks of Idaho)”라는 제목의 싱글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컨트리 밴드인 쓰리 트레일스 웨스트의 "아이다호의 소용돌이 이빨 상어(The Whorl Tooth Sharks of Idaho)"
컨트리 밴드인 쓰리 트레일스 웨스트의 “아이다호의 소용돌이 이빨 상어(The Whorl Tooth Sharks of Idaho)”

우리나라에서라면… 많이 알려진 우리나라 대중가요에서 고생물학과 관련된 내용을 다루었던 노래가 1985년 “꾸러기들의 굴뚝여행” 앨범에 실렸던 김창완 작사·작곡의 “아주 옛날에는 사람이 안 살았다는데” 외에는 딱히 기억나지 않는다.

https://www.youtube.com/watch?v=8NLy1AqyfwY

홍대에서 활동하는 인디 밴드가 한국에서 발견된 화석, 예를 들면 뿔공룡인 코레아케라톱스를 소재로 한 노래를 발표하면 무척 재미있을 것 같긴 하다. 우리나라 음악인 중에 나이 들어서도 공룡과 화석과 고생물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몇 명은 있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흥행은 보장할 수 없겠지만, 저는 최소한 두어 장 정도는 사도록 하겠습니다.

수수께끼는 모두 풀렸…을까?

제정 러시아 시절인 1899년 카르핀스키의 논문에서 보고된 헬리코프리온은 100년 이상 많은 고생물학자의 골머리를 앓게 하다가 2013년에 와서야 그 정확한 모습이 밝혀졌다. 게다가 소용돌이 이빨과 위·아래턱이 어떤 식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도 어느 정도 확인이 되었으니 이제 헬리코프리온에 대한 연구는 다 끝난 것일까?

그럴 리가.

화석을 하나 발견했을 때 과거에 살던 그 생물이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었고, 무엇을 어떻게 먹고 살았는지를 알아내는 것은 고생물학의 일부분이지 전부가 아니다. 그만큼 중요한, 혹은 그보다 더 중요한 과제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생물의 모습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가지게 되었다면, 그 정보를 활용해 이것과 가까운 친척관계인 생물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리고 그들 서로 간의 정확한 관계는 무엇이며 새로 알게 된 정보가 다른 종들에도 적용될 수 있는지, 이들 그룹의 관계에 대해서 조금 더 잘 알게 되었다면 더 큰 맥락에서 어떻게 진화가 이루어졌는지, 주변 환경과의 관계는 어떤 것이었는지,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게 된다.

헬리코프리온을 예로 들면, 새롭게 알려진 헬리코프리온의 모습을 접했을 때 헬리코프리온과 가까운 종이라고 알려진 여러 종… 파라헬리코프리온이라든지 사르코프리온, 톡소프리온 등이 헬리코프리온과 어떤 면에서 비슷하고 어떤 면에서 다른지를 알아보고 싶어지는 것이 정상적인 고생물학자라고 할 수 있다.

파라헬리코프리온(위)과 사르코프리온(아래) 복원도 (위키백과 공용)
파라헬리코프리온(위)과 사르코프리온(아래) 복원도 (위키백과 공용)

조금 더 범위를 넓히면 카르핀스키가 100년도 더 전에 이미 헬리코프리온과 가까운 관계라고 인지하고 있었던 에데스투스 및 그 근연종들에도 마찬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특히 에데스투스류의 이빨은 입 바깥쪽에 고정된 형태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 경우는 헬리코프리온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이빨을 활용했을 것이다. 톱가오리처럼 먹잇감을 썰어서 잡았을 수도 있고, 어쩌면 우리가 추측한, 앞에서 보았던 에데스투스의 모습이 틀린 것일 수도 있다.

아니, 심지어 헬리코프리온은 정말 저 모습이 맞는 거라고 확신할 수 있는 걸까? 과학자들이 내리는 결론은, 특히 본질적으로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화석기록과 씨름하는 고생물학의 경우는, 항상 잠정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새로운 증거가 나타나면 그것에 맞게 또 우리가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수정해야 하고, 질문 하나에 답을 했다 싶으면 새로운 질문 열 개가 생겨나는 것이다.

어느 경우든, 고생물학자들이 풀어야 하는 수수께끼가 더는 남지 않게 되는 일이 인류의 멸종보다 먼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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