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난리법석을 겪은 끝에 정부는 슬그머니 0~2세 보육료 지원, 이른바 무상보육에서 후퇴하려 한다. 지난해 연말 국회에서 걱정할 거 없다고 큰 소리 치던 기획재정부 장관과 당시 예산실장(현재는 차관)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입을 싹 씻으며 무상보육 때문에 나라가 망하기라도 할 듯이 호들갑을 떤다. 과연 그런가. 무상보육을 둘러싼 몇 가지 예산 쟁점을 정리해봤다.
1. 생색은 중앙정부, 부담은 자치단체
영유아보육료지원은 저출산 대책 예산의 48.2%를 차지할 정도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2005년도 3349억원에서 2011년도 결산기준 2조원으로 6배 이상 증가했을 정도로 정부에서도 나름 신경을 많이 쓰는 분야다. 지원 범위도 꾸준히 확대됐다. 2011년에는 영유아가정 소득하위 70%까지 보육료 지원을, 2012년에는 만0~2세와 5세 모든 소득계층 아동에게 이른바 ‘무상보육’을 실시했다.
국무총리실 등은 2012년 1월18일 부처합동 보도자료를 냈는데 “내년 만 3~4세아도 ‘누리과정(공통과정)’ 도입 및 0~2세아에 대한 양육수당 대폭 확대”라고 돼 있다. 쉽게 말해 내년부터는 3~4세 모든 소득 계층 아동에게도 ‘무상보육’을 실시한다는 내용이다. 이렇게 되면 만 0세부터 5세까지 모든 영유아가 무상보육 대상이 된다.
문제는 보육료 지원은 매년 늘면서 매칭사업(국고보조율 서울 10~30%, 지방 40~60%)을 해야 하는 지방 부담이 급증한다는 점이다.
영유아보육료지원을 위해 정부가 제출한 2012년도 중앙정부 예산안 규모는 아래 [표]에서 보듯 당초 2조 215억원이었지만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심사 과정에서 급작스럽게 0~2세 무상보육 예산 3697억원을 추가 책정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 의원 주승용이 문제를 제기하고, 기재부 장관 박재완이나 예산실장 김동연 등이 반박하기도 했다.
결국 영유아보육료 지원 예산은 2조 3913억원으로 본회의에서 의결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3697억원은 0~2세 무상보육을 하기엔 예산규모가 너무 적다는 것이 금방 드러났다. 그동안 0~2세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던 부모들이 이제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부·여당은 이렇게 될 거라는 걸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 안일한 수요예측은 예산부족 사태를 초래한 기초적인 요인이 됐다. 사실 올해 초부터 자치단체 등에서 지금과 같은 사태를 경고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계속 무시했다.
2 민간 어린이집 체제에선 답이 안나온다
보육예산 대폭증액이 왜 필요할까. 아래 표와 그래프를 유심히 비교해 보기만 해도 답은 나온다. 저출산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부는 관련 예산을 급격히 늘렸다. 2011년도 7조 3950억원 대비 14.8% 증가한 8조 4924억원을 2012년도 예산안으로 책정했는데 이는 2006년도 2조 1445억원에서 4배 가량 증가한 규모다. 정책별로는 일·가정 양립 일상화에 6720억원, 결혼·출산·양육부담 경감에 7조 2745억원, 건전한 아동·청소년 성장환경 조성에 5459억원을 책정했다.
정부부처별로는 보건복지부가 지방비 포함 5조 8483억 원으로 전체 저출산 대책 예산의 68.9%를 차지한다. 교육과학기술부는 교부금 포함해 1조 4535억 원, 고용노동부 6685억 원, 여성가족부 2656억원, 행정안전부 1835억 원, 문화체육관광부 692억 원, 농림수산식품부 19억 원 등이다. 이 중 가장 재정규모가 큰 사업은 영유아보육료지원(4조 921억원, 보건복지부), 유아학비지원(1조 1388억원, 교육부), 모성보호사업(6122억원, 노동부) 라고 할 수 있다. 가족복지 지출 관련 예산규모가 급증하고 있는건 분명하다. 하지만 선진국과 비교하면 아래 그래프에서 보듯 여전히 턱없이 부족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지금 수준으로도 부족하다.
소득에 상관없이 모든 영유아가 보육시설 이용비용 중 일부인 보육비를 지원받는 ‘무상보육’ 시대가 됐다고 하지만 여기에는 치명적인 흠결이 있다. 지금 같은 민간어린이집 중심 보육체제에선 보육료를 보편복지로 하건 선별복지로 하건 바로 부모들이 실제 부담하는 비용면에서는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회입법조사처(2012) 보고서 ‘보육료 지원정책의 실효성’은 이런 점을 지적하면서 그 근거 가운데 하나로 2004년과 2009년 보육시설 이용아동 비용을 비교해보니 전체 총비용은 그대로였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한다. 이 연구에 따르면 2009년 보육료 전액지원을 받은 아동들이 보육시설 이용시 아무 비용도 지불하지 않은 경우는 23%에 불과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부모가 민간 어린이집에 지불하는 비용은 ‘보육료+기타 필요경비’로 이루어져 있다. 정부가 보육료를 전액 지원해도 기타 필요경비가 그만큼 인상되면 부모 부담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민간 어린이집은 실제로 기타 필요경비를 계속 인상해왔다. 수익을 더 많이 올리려는 목적도 있지만, 현행 보육료 수납한도액이 표준보육비용보다 상당히 낮게 책정돼 있다는 점도 중요한 요인이다.
기타 필요경비 중에서도 가장 문제가 되는 게 특기활동비(특별활동비, 현장학습비, 입소료, 재입소료, 차량운행비 등)다. 국회입법조사처(2012) 보고서는 이에 대해 “영리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개인사업체인 보육시설 입장에서는 영유아들에게 특별 활동을 많이 시킬수록 특별활동 비용을 많이 청구할 수 있다. 이로 인해 한돌, 두돌이 갓 넘은 아가들까지 ‘특별활동’ 이름으로 각종 수업을 받게 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라고 말한다.
기타 필요경비는 지자체 단체장이 지방보육정책위원회 심의 거쳐 항목별 상한선 정하는데, 그러다보니 지역별 차이가 많고 일부 지역에선 과도하게 책정하기도 한다. 실제 2010년에 서울시 25개 자치구 가운데 13개는 특기활동비 수납한도액이 10만원 이하인 반면 11개 자치구는 ‘10만원 초과~20만원 이하’였다. 강남구는 월 23만원이나 된다. 또 서울시 일부 자치구는 기타 필요경비 중 가장 비중 큰 특기활동비 수납한도액을 전년대비 33.3~53.3%까지 인상한 적도 있다. (2010년 물가인상률은 2.9%였다.)
3 보육 공공성 확보 방향으로 예산 재구성해야
결론은 분명하다. 지금같은 민간 어린이집 중심 공급구조에선 보육 공공성을 확보하는데 한계가 분명하다. 국공립어린이집을 늘려서 공공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현실은 정반대다. 2011년 국공립보육시설은 2116개다. 전체 보육시설 가운데 5.3%에 불과하다. 2005년 5.2%(1473개)에서 7년 동안 0.1%만 늘어난 셈이다. 그러다보니 서울같은 경우는 국공립보육시설은 626개에 정원은 5만 3755명인데 입소대기자수는 6만 7969명으로 대기자비율이 무려 126.4%나 되는 실정이다(국회 예성가족보건복지위원회 ‘2011년 예비심사검토보고서-복지분야’).
현재 국공립보육시설은 국가예산으로 지원하지만 시설 설치비와 운영비 상당부분은 기초자치단체가 부담한다. 바로 여기서 구조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무상보육이 중앙정부와 기초자치단체간 국고보조 때문에 자치단체 부담이 급증하는 것처럼 국공립보육시설 신축도 자치단체에겐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한다.
현재는 국가 50%, 시도 25%, 기초단체 25%를 분담하기로 돼 있지만 실제로는 건축비 지원단가(제곱미터당 109만원)가 낮아 단가 차액은 자치단체가 부담해야 한다. 평균 5~15억원 정도인 부지매입비와 설계용역비도 자치단체 부담이다. 거기다 70명 기준 보육시설 한 곳에 연평균 8000만원이 넘는 지방비를 써야 하는데 이것도 자치단체에겐 큰 부담이다. 거기다 기득권을 갖고 있는 민간어린이집 원장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국공립보육시설을 늘리기 위해서는 결국 중앙정부가 나서야 한다. 국공립보육시설 신축과 유지에 필요한 자치단체 부담을 덜어줘야 하고 신축만 고민할게 아니라 경영이 어려운 민간보유기설을 매입하는 것과 초등학교 시설을 이용하는 것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
어쨌든 정부는 국공립어린이집 확충에 무척이나 소극적이다. 2012년도 저출산대책 예산안은 ‘취약지역내 국공립 보육시설 지속 확충’ 예산안으로 559억원 책정했다. 이는 2011년도 622억원에 비해 10.1% 감소한 규모다. 국공립 보육시설 신증축 예산은 2011년 146억원에서 2012년도 119억원으로 역시 줄었다. 반면 민간육아시설 서비스개선에는 442억원을 책정했는데 이는 2011년도 291억원보다 51.9%나 증액된 액수다.
글쎄요, 지금 실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는 엄마 입장에서… “지금 같은 민간어린이집 중심 보육체제에선 보육료를 보편복지로 하건 선별복지로 하건 바로 부모들이 실제 부담하는 비용면에서는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는 전혀 와닿지 않아요…
강남같은 곳은 모든 어린이집이 그렇게 20만원 이상 내고 그러는지 몰라도, 최소한 저나 제가 아는 분들(서울과 경기 곳곳에 살고 계신 분들) 어린이집 보육비가 30만원이고 그 외에 과외로 납부하는 돈은 그 달 활동에 따라서 2만원~5만원, 정말 많아봤자 10만원 선에 그치는데 그게 한달에 35만원 내다가 5만원 내는 게 큰 차이가 아니라고 볼 수가 없잖아요;;
그런 면에서 중간에 2004년과 2009년의 보육비용 비교한 그래프가 이해가 안 되는데, 순비용이 10만원 선이라는 건 혹시 하위 70% 가정이 이미 보육료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에 나온 평균적인 수치인 것 아닌가요? 그렇다면 말씀하신 부분이 더더욱 의미가 없는 게, 하위 70%인 사람들에게는 어차피 처음부터 돌아가는 혜택이었기 때문에 민간중심/공공중심의 차이가 선별/보편복지에 따라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주장이 의미가 없고, 상위 30%인 사람에게는 실제로 큰 혜택이 돌아가기 때문에 주장이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만…
물론 보육이 공공중심으로 흘러가야 한다는 주장 자체에는 동의합니다만, 그에 대해 든 근거가 옳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민간어린이집의 과외비용은 사실 보육비의 현실화, 보육교사들의 낮은 처우와 강도높은 노동 등의 문제와 더욱 관련되어 있지요… 돌쟁이 아기에게 체육수업한다고 할 때, 정말로 애들 데리고 체육수업한다고 기대하는 학부모는 없습니다. 그 시간동안 다른 특기교사가 와서 아이들과 놀아줄 것이고 그 동안 보육교사들은 휴식을 취하거나 다른 준비를 할 여유가 생길 것이라고 이해하죠.
그래프의 2004년과 2009년 내역은 정부지원을 받은 금액을 반영한 1인당 평균비용이 맞을 것 같은데, 이렇게 시기를 구분한 취지가 정책에 따른 혜택범위의 변화를 보여주려는 건지 저도 그래프의 내용을 읽어내기 힘드네요. 순비용과 추가비용의 의미도 알려주시면 이해하는 데 더 편하겠습니다. 그리고 민간, 공립에 대한 주장은 민간체제에서는 정부지원금의 한도가 정해져 있어 사업체별로 제도적/자의적으로 추가비용이 발생시키거나 수납금액을 높일 여지가 크단 점에 대한 지적으로 보이네요.
여하튼 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 며칠 전 발표를 보니 보편에서 선별로 다시 되돌리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 같은데 후속 기사도 부탁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