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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 독립문, 연세대 쪽으로 가다 보면 터널 나오기 바로 전 오른편에 공원이 하나 있다. 무성한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진 않고, 상점가 없이 차만 쌩쌩 다니는 길이라 지나만 가는 사람은 여기 이런 공원이 있는지도 잘 몰랐을 거다.

사직공원과 사직단이다.

사직단(사적 제121호), Eggmoon, CC BY, 위키백과 공용   https://ko.wikipedia.org/wiki/%EC%84%9C%EC%9A%B8_%EC%82%AC%EC%A7%81%EB%8B%A8#/media/File:Sajikdan_Shrine_in_Seoul,_Korea_02.jpg
사직단(사적 제121호), Eggmoon, CC BY, 위키백과 공용

사직단(社稷壇): 왕이 풍년을 빌던 제단

사직단은 옛날 조선시대 때 왕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사직단은 토지의 신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조선 태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하면서 좌묘우사(左廟右社)에 따라 경복궁 동쪽엔 종묘를, 서쪽엔 사직단을 배치했다. (위키백과 , ‘사직단’ 참고)

사와 직이시여, 풍년 들게 해주시옵소서.

사와 직이시여, 비가 오게 해주시옵소서.

그땐 그랬다. 이젠 조선이 망하고 하늘에 제사 지내던 미신은 사라졌으니 사직단의 실용적인 쓸모는 사라졌다. 아니, 실용적으로는 원래부터 쓸모가 없었다. 제사를 지낸다고 하늘에서 비가 떨어질 리 만무하다. 무슨 선사시대 원시인들인가. 남들은 군함을 띄우고 비행기를 만들어 날리면서 전쟁하는 판국에 조선 ‘황제’와 신하들은 20세기 초반까지 사직단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이런 왕조가 안 망하면 그게 더 이상하다.

사직단(사적 제121호), Eggmoon, CC BY, 위키백과 공용   https://ko.wikipedia.org/wiki/%EC%84%9C%EC%9A%B8_%EC%82%AC%EC%A7%81%EB%8B%A8#/media/File:Sajikdan_Shrine_in_Seoul,_Korea_01.jpg
사직단(사적 제121호), Eggmoon, CC BY, 위키백과 공용

사직단에서 사직공원으로 

사직단 그 제단 터는 사진처럼 남아있다. 제사, 즉 사직대제는 1908년(순종)에 끝났고(횟수를 줄였다는 얘기도 있다) 사직단은 사직공원이 됐다. 신문기사나 인터넷에 떠도는 얘기를 보면 창경궁이 창경원이 된 것과 마찬가지로 사직대제 폐지 역시 일제 강압 때문이라는 말들이 많다. 하지만 사직대제 폐지가 순종의 뜻 혹은 시대 변화 때문이 아니라 일제 강압 때문이라는 구체적 근거를 대는 문서는 없다.

참고로 일본이 한국을 병합한 건 2년 후 1910년이다. 또 당시 조선 국민이 창경궁과 사직단의 공원화를 아쉬워했다는 근거도 없다. 수백 년 동안 한 움큼의 왕족들만 들어갈 수 있었던 공간을 시민들에게 개방했으니 시민 대부분은 환영하지 않았을까? 0.0001% 왕족이 아닌 조선 시민들, 우리 조상들 대다수는 그때 근대적 의미의 공원이라는 걸 처음 봤을 것이다.

사직공원은 사직대제 폐지 이후 점차 변했다. 제단 주변에 있던 부속건물들이 점점 없어지고 일제시대 때 매동초등학교 건립(1932년), 그리고 독립과 대한민국 건국 이후 시립 아동병원 개관(1955년), 사직터널(1967년)과 사직로 개통, 종로도서관(1971년) 개관 등이 있었다. 특히 한국 최초의 근대식 도서관인 종로도서관과 역시 한국 최초의 어린이 도서관인 서울시립 어린이도서관이 여기 있다.

특히 종로도서관과 서울시립 어린이도서관은 ‘일제의 잔재’가 아니다.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 우리의 대한민국 정부와 서울시가 시민들과 고아들을 위해 지은 건물이다.

종로도서관 옥상에서 사직단과 사직공원을 내려다보고 찍었다. 왼쪽에 잔디밭 한가운데 제단같은 것이 있는 데가 사직단이고, 오른쪽에 공터가 사직공원이다. (사진:  indizio)
종로도서관 옥상에서 사직단과 사직공원을 내려다보고 찍었다. 왼쪽에 잔디밭 한가운데 제단같은 것이 있는 데가 사직단이고, 오른쪽에 공터가 사직공원이다. (사진: indizio)

복원: ‘사직단 테마파크’ 

사직공원

이렇게 사직단 빼고는 다른 모든 걸 다 헐어버린 다음에 조선시대 있었던 모습(추정)대로 이런저런 주변 부속건물들을 한옥으로 만들겠다는 거다. ‘사직단 테마파크’라 부르면 될 것 같다.

“역사는 사라지고 온갖 사람들이” 

출처: 예올 http://www.yeol.org/index.jsp?menu=introduction&sub=2
출처: 예올

사직단 복원, 아니 ‘사직단 테마파크’ 사업은 문화재청 산하 재단법인 ‘예올’이라는 곳에서 특히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예올 재단 이사장은 정몽준 전 국회의원의 부인 김영명 씨(사진)다. 그는 프로젝트를 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사직단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매우 낮은 탓에 지금에 와서 더 훼손되고 있다. 토요일에 사직단에 가보면 역사는 사라지고 온갖 사람들이 다 모이는 집합장소로 변해버린다. 그런 모습을 보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김영명)

– 연합뉴스, 김영명 예올 이사장 “사직단 역사성 되살릴 겁니다” (2013년 6월 14일)

재벌가 사모님이 보시기에는 주말에 “인식이 매우 낮은” “온갖 사람들이” 사직공원에서 여가를 보내는 모습이 마땅치 않으셨나 보다.

내가 그 “온갖 사람들” 중 하나다. 지금이 조선시대 신분사회도 아닌데 공원에 모이는 사람들을 저렇게 비하하는 건 ‘높은 인식’인지 의문이다. 조선이 망한 지 백 년도 넘었는데, 인제 와서 뭘 복원을 한다는 건지도 모르겠다. 무슨 민속촌 영화세트장 만드나. 그걸 다시 만들어서 뭘 어쩌겠다고.

기우제라도 다시 지내시려나?
왕조 판타지인가?

사직단 보러 사직공원 가는 사람? 

솔직하게 말해서, 지금 역사 유적으로서 사직단을 보기 위해 가는 사람 있나. 사직단이 그렇게 중요하다면서 거기 가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느냔 말이다. 가봐야 제단만 덜렁 있을 뿐 볼 것도 없다. 유적은 그냥 유적으로 남기면 되지 이걸 다시 크게 확장한다고 해서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에 무슨 좋은 일이 생기나. 민족정기니 국운이니 하는 미개한 이야기들이 21세기 대한민국에 판치는 걸 보면 한숨이 나온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민족정기 살린답시고 근대 건축물 헐어내고 콜로세움과 포로로마노를 로마시대 모습으로 복원하나. 그리스 사람들이 국운을 위해 파르테논을 헬레네 시대 모습 상상해서 다시 지어 올리나. 왜 한국 문화재청은 조선 테마파트 만드는 데 이렇게 열심인 걸까. 무슨 대단한 유적이라도 땅 속에 묻혀있다면 모를까. 그냥 한옥 몇 개 더 짓고 나무 심어서 옛날 모습 비슷하게 돌려놓겠다고 도서관들을 허물겠다니.

아예 서울 도성도 다시 다 쌓고 해 저물면 도성 밖 통행금지도 하지그래?

유네스코 유산? 창조경제? 

예올 재단 김영명 이사장은 또 사직단을 확장하면 종묘처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 상상력이 놀랍다. 조선의 메인 궁전인 경복궁도 유네스코 유산에 이름을 못 올리는 판에 사직단 테마파크가 무슨 수로 유네스코 유산 등록이야. 그게 그렇게 쉬우면 웬만한 동네마다 유네스코 유산 하나씩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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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단 내 들어선 시설물들을 다른 곳으로 옮긴 뒤 사직단을 이 녹지와 연결해 문화·역사·환경 벨트를 조성하는 것이 예올이 꿈꾸는 그림” (김영명 예올 이사장)

김영명 이사장이 ‘꿈꾸는 그림’을 ‘속보’로 보도한 연합뉴스는 이렇게 화답한 바 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중략) 하지만 그 일을 추진하는 김 이사장이 다름 아닌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의 부인이자 김동조 전 외무장관의 막내딸이기 때문에 기대가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 연합뉴스, 김영명 예올 이사장 “사직단 역사성 되살릴 겁니다” (2013년 6월 14일)

재력가이자 권력자의 부인이 추진하는 사업이라서 기대가 생긴다는 기자의 인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다. (편집자)[/box]

요즘 창조경제가 유행인데 ‘유네스코 유산 등록 추진’도 창조경제 아이템 중 하난가? 상상은 자유지만, 그 상상의 대가가 너무 크다.

종로도서관 

종로도서관

사직단이 확장되면 허물어지게 될 건물 1번 종로도서관. 가뜩이나 한국은 공공 도서관이 부족한 나라인데, 전국 1호 공공도서관을 없애고 조선시대처럼 제사 터를 넓히겠단다. 미치겠다. 종로도서관에 놓여있는 훌륭한 장서들도 다 사라진다. 왜? 조선시대 세습 왕족들이 제사 지내던 터의 부속건물들을 모방해서 짓기 위해 도서관을 허물어야 한다고 하시니. 누가? 예올과 문화재청이.

종로도서관종로도서관

열람실에서 공부하는 분들도 이젠 다른 곳을 알아봐야 한다. 왜? 문화재청이 사직단 넓히겠다고 하니까. 이 건물은 헐어버리고. 옥상 휴식공간도 없어진다. 왜? 조선 왕족들이 제사 지내던 터를 다시 꾸며놓기 위해서 이 건물을 없애겠다니까.

종로도서관 이범승

“지우 이범승 선생은 3.1 운동 직후에 우리 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일반 대중에 널리 공개하는 공공도서관이었던 구 경성도서관을 종로 2가 파고다 공원 옆에 창설하시었다. 경성도서관은 도서 열람뿐만 아니라 어린이와 부녀자들을 위한 교육을 실시하였고 아울러 동화회, 음악회, 영화감상회 등을 개최하여 당시에는 유일한 문화센터로서 초창지를 빛내었었다. 이제 그 후신인 종로도서관을 서울시가 이곳에 옮겨 크게 지음에 따라 선생의 동상을 함께 모시고 그 선구적 업적을 길이 추념하고자 하는 바이다.

– 1971년 9월 17일 서울특별시 교육위원회 교육감 하점생, 제작 김영중, 글씨 장인식”

비석에 쓰여있는 글이다. 이런 유래를 가진 도서관을 없앤단다. 나선화 문화재청장(사진)도 사직단을 “신성한 공간”, “일제 강점기에 빼앗긴 민족의 얼”이라고 말한다.

출처: 문화재청  http://www.cha.go.kr/html/HtmlPage.do?pg=/introduce/director_01.jsp&mn=NS_05_04_01
출처: 문화재청

-올해 광복 70주년을 맞아 특별히 조명하거나 재정비해야할 사업들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나선화 문화재청장: (전략) 대표적인 것이 일제시대에 훼손된 ‘사직단’의 복원입니다. 원래 사직단은 토지신과 곡식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신성한 공간이었지만 사직공원 조성과 도로 개설, 도서관 건립 등으로 본래 의미를 잃어버렸어요. 일제강점기에 빼앗긴 민족의 얼을 되찾고 잃어버렸던 정신문화를 되찾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거든요.

– 머니투데이, “국보·보물도 1호만 외우죠? 관리하는 번호를 1,2등으로” (2015년 1월 19일)

일제시대 종로도서관을 세운 이범승 선생이 무덤 속에서 꾸짖으실 거다. 고작 이러려고, 신분제 조선시대로 되돌아가려고 일제에서 독립하고, 광복한 거냐고 물으실 거다.

어린이도서관 

서울시립어린이도서관 (출처: nlid.nl.go.kr)  http://nlid.nl.go.kr/able?act=internalView&bbsId=2600&bbsSeqn=8351&currentPage=14#
서울시립어린이도서관 (출처: nlid.nl.go.kr)

종로도서관 옆에는 서울서립어린이도서관이 있다. 이 건물도 역시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원래 이곳은 시립 아동병원이었다. 일제시대부터 구세군 구호소 등이 있던 자리였는데 한국전쟁 직후 전쟁고아들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 건물이 만들어졌다.

오래된 신문 기사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아동병원의 흔적 (출처 미상)
1967년 독일 대통령 부인이 어린이 병원을 찾았던 걸 보도한 기사

문화재청은 어린이도서관도 없애겠다는 거다. 왜? 조선시대 왕족들이 비 오라고 제사지던 터를 다시 닦는 게 어린이 도서관보다, 아동병원의 역사보다도 중요하다고 그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문화재청에는 조선시대만 역사고 대한민국은 역사가 아니다.

사직공원 운동장 

마찬가지로 사라질 운명에 놓인 사직공원 운동장은 소박한 동네 쉼터다.

사직공원 운동장
사직공원 운동장

게이트볼이나 족구를 하는 사람들도 있고, 나무 그늘 아래서 쉬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많다. 여름이면 밤 늦은 시간에도 더위를 피해 나온 사람들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이 주변에 이렇게 평지에 있는 탁 트인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운동장을 없애고 사직단 테마파크를 만들면? 아마도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문을 여는 엄숙한, 즉 주민들에겐 불편한 공간이 될 거다.

예올과 문화재청에 고함 

사직공원을 없애고 종로도서관을 없애고 어린이도서관을 없애서 ‘사직단’ 제사 터를 만들려는 사람들아! 솔직히 당신들과 우리 조상 대부분은 조선시대 사직단에 발도 들이지 못했을 쌍놈(상민)들이야. 인구 10% 양반 아니면 사람대접도 못 받고, 귀족한테 찍히면 재판도 없이 모가지가 날아가던 시절이라고. 조선 왕족 몰락한 거 너희가, 우리가 걱정해줄 필요가 없어!

사직단을 확장하면 민족정기니 국운이니 살아난다고들 하는데, 그래 사직단 덕분에 민족정기가 왕창 살아서 조선시대 500년 동안 한반도에 좋은 일 많았니? 사직단 덕분에 국운이 좋아서 일본에 통째로 나라를 뺏겼니? 역사 유적은 남아있는 대로 잘 보존하면 됐지, 100년 전에 사라지고 없는 부속건물들을 이제 와서 왜 다시 짓겠다면서 종로구에 안 그래도 부족한 도서관을 헐어? 도서관도 근대문화유산이야. 왕족의 제사 터 따위보다 훨씬 더 소중하다.

왕족과 신분사회를 증오하는 내 목소리가 너무 과격하게 들린다면, 좀 더 점잖은 로버트 파우저의 의견을 소개한다.

“사직단의 역사적 가치 및 그 회복을 존중하면서 20세기 서울의 역사, 나아가 ‘가까운 과거’의 추억이 담긴 공공시설을 애용하는 시민의 요구도 존중하고 배려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가장 적합한 답은 2027년까지 제례 공간의 복원으로 매듭을 짓고 공공시설은 그대로 두어 사직단의 역사적 서사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 동아광장, 로버트 파우저, 사직단 복원을 어떻게 할 것인가 (2015년 3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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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 head=”편집자 후기 “]

슬로우뉴스는 이 글을 발행하기에 앞서 문화재청 담당자를 취재하고, 이 사안을 직접 취재한 경향신문 임아영 기자에게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물론 필자와도 협의했습니다. 그 결과를 요약합니다.

1. 문화재청 담당자와 직접 통화(2015년 6월 19일)한 결과, 문화재청은 ‘도서관 철거’와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 발표를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계획은 없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2015년 1월에 발표한 계획에도 애초에 ‘도서관 철거’는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2027년 이후로 유예된 것으로 봐야 할지 도서관 철거를 하지 않겠다고 확정한 것으로 봐야 할지 해석상 논란이 있었습니다.

2. 아래는 2015년 1월 문화재청 계획 자료 공개 이후 이 사안을 직접 취재한 임아영 경향신문 기자의 기사입니다.

이는 이 사안을 직접 취재한 (지금까지 확인한 바로는 유일한) 기사입니다. 다만 이 기사는 사실상 “철거 안 한다”는 문화재청 담당자의 전화 확약을 보도한 것이지 대외적으로 문화재청이 공표한 “공식 입장”을 확인해 보도한 것은 아닙니다. 기사로서는 훌륭한 사실 취재 기사지만, 문화재청의 공식 입장을 확인해주는 보도는 아닌 셈입니다.

3. 그렇다면 도서관은 철거하는 것일까요? 철거하지 않는 것일까요?

결론적으로 당분간은 철거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이것은 공식적인 확인이 아니라 여전히 사실 진술로서 국가기관 해당 사업 담당 부서(궁능문화재과)의 답변에 근거한 것입니다. 슬로우뉴스는 문화재청 궁능문화재과에 다음과 같이 문의했습니다.

– 도서관 철거 하는 건가? 

도서관 철거하지 않는다.

– 왜 도서관 철거가 논란이 됐다고 보나. 

2015년 1월 보도자료를 통해 핵심 사업을 알렸을 때부터 도서관은 복원사업(의 일부로서 철거공사)에는 빠져 있었다. 일부 시민들께서 계속 오해를 하고 계신 것이다.

–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 공식논평이나 보도자료를 낼 계획은 없나?

1월 핵심사업 발표 때부터 빠져 있었던 것이라서 따로 공식논평이나 보도자료를 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논란을 종식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간단한 방법은 문화재청이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이 간단한 해결책을 사실상 거부하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4. 문화재청이 ‘도서관 철거는 없다’고 답변하지만, 2015년 1월 발표한 복원사업에 관한 보도자료를 보면 1구역(핵심 구역)을 우선 진행하고 2구역(종로도서관과 어린이도서관)은 협의를 거쳐 사업추진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되어있습니다. 따라서 경향신문 보도를 ‘사실상’ 인정하지만, 이에 관한 공식 논평을 내지 않겠다는 문화재청의 말은 기존 입장에서 변화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5. 주민 반발이 가시적으로 나오고 언론에도 비판적인 의견이 나오니 도서관을 당장 철거하겠다고 나설 가능성은 줄어들었다는 게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보도자료에서 보듯 종로도서관과 어린이도서관이 “장기 사업영역(2영역)”에 계속 포함되어있는 것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도서관 자리가 장기 사업영역 지정이 해지되지 않는 이상 향후 사업 추진 가능성은 그대로 남아있다고 봐야 합니다.

추. 경향신문 보도가 의미 있는 것은 문화재청을 직접 취재해 담당자의 발언을 끌어냄으로써 시민들에게 ‘도서관 철거 안 한다’라는 인식을 심어줬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임아영 기자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이는 필자께서도 같은 마음입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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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댓글

  1. 안녕하세요 글쓴이입니다. 이 글은 원래 제가 도서관에 갔다가 철거한다는 소리를 듣고 화가 난 상태에서 개인 블로그에 우다다다 올렸던 글이라 슬로우뉴스 같은 평판있는 외부 매체에 싣기에는 너무 저렴해보이는 표현들이 들어있습니다. 이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일부 표현은 슬로우뉴스쪽에 수정 요청을 드려놓은 상태입니다.
    글에 대한 비판, 반대의견을 들려주시면 감사히 듣겠습니다. 단발적인 인신공격 (‘이 글 쓴 새X 무뇌아’ ‘이게 글인가 똥인가’ 이런 류의 한풀이식 댓글)은 참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 읽고 표현이 너무 격해서 짜증이 나던 차에 글 밑에 있는 편집자 후기에서 모든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해주셔서 모든 상황을 이해했습니다. 표현만 빼고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저도 전에 그 주변에서 살던 사람이라서.

  3. 많이 공감가는데, 일단 조선에 대한 관점에서 문제제기를 좀 해야 할 것 같아서 글을 씁니다. 성리학에서 제사가 어떤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하시나요? 미신? 귀신을 모시는 행위? 공자는 일찍이 미신을 부정한 바 있습니다. 성리학은 그 어떤 초자연적 존재도 믿지 않는 철학이며, 불교의 우주적 원리를 파악하려는 추상적 접근과 유학의 강력한 현실정치주의를 주자가 조합한 것이 바로 주자학이며, 이를 오늘날 우리는 성리학이라는 큰 학문적 사조에서 배웁니다. 이게 이과 학생으로써 부족하게나마 제가 파악하는 조선의 학문 체계입니다. 다만, 제사는 과거의 전통을 보전하고 그 미신적으로 보이는 행위 뒤에 숨은 진짜 의미와 조상들의 사고관을 배운다는 형식주의적 관점에 그 의미가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비슷한 게 볼테르의 철학사전에도 나옵니다. 중국은 유럽에서 흔히 느끼는 바와 달리 무신론자들만으로 이루어진 사회라고 분석하죠. 최소한 중국의 정부에는 미신이 없다고 분석합니다. 이유는 앞에서 말씀드린 형식적 예의로써 이루어지는 제사에 있습니다. 한 에세이에서 갑골 신탁에 관한 일화를 설명하며 볼테르는 중국의 미신적으로 보이는 풍습이 모두 과거의 조상들의 풍습을 기억하고 존중하는 과정의 일환이라 부르죠. 물론 제가 여기서 들은 볼테르는 중국을 과도하게 찬양하는 부류의 사람입니다. 하지만 제사가 최소한 교육받은 계층에게는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졌는지는 이해하시고 넘어가야 하실 것 같습니다. 다른 나라들이 전함으로 전쟁할 때 조선의 “황제”는 제사를 지내서 미개한 나라가 마땅히 망했다-이것은 왜곡되어도 더 이상 왜곡될 수 없는 극한의 멸시적, 곡해적 역사관입니다. 조선은 그럴게 단순한 나라가 아니었고, 제국주의와 “강대국”이라는 오늘날까지도 한국인에게 컴플렉스로 남아 있는 개념은 전함이랑 비행기 몇 대로 설명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또한, 로마를 언급하셨는데, 이탈리아는 콜로세움을 이미 수십 번도 넘게 복원한 바가 있으며, 현 콜로세움은 그 자체로 이미 수십 번 짓고 고친 흔적으로 역사를 충분히 증거한다는 분석 아래 남긴 거지 과거의 것이 쓸모없어서 버린 것이 아닙니다. 콜로세움이 그냥 평범한 폐허로 보이세요? 폐허같지만 그 폐허의 벽돌 한 조각이라도 가져갔다간 경찰들에게 이탈리아식 인사를 받을 게 뻔합니다. 누구든지 다들 문화재를 최대한 의미있는 방향으로 복원하고자 합니다. 그건 여기 사직단도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사직단의 의미를 가장 살리는 길이 로마의 콜로세움처럼 폐허인 채로 남기는 길인지, 아니면 다시 복원하여 역사적 의미를 가지는 테마파크로 만드는 길인지 구분할 수 있어야죠. 보아하니 도서관에도 깊은 역사가 깃든 것 같으니 이 둘을 잘 함께 살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문화재청이 자꾸 그대로 복원만 하고 발굴 작업으로 박물관을 만드는 거로 충분히 의미를 살릴 수 있는 유적들을 자꾸 어린이전용 테마파크로 만드려는 상업주의를 지향하는 건 반대하거든요.

    왕족과 신분사회는 글쓴이분이 생각하는 과격한 방식으로 설명되는 개념도, 조선의 500년 약사를 요약하는 개념도 아닙니다. 문화재청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은, 이미 전두환 대통령 시대에 민족주의적 잔체주의를 키우기에는 약발이 끝나 기억 속으로 사라진 “민족 정기” 라는 걸 언급하며 “조선 500년 동안 좋은 일이 많았느냐”며 비꼬시는데, 조선 500년은 단순한 약사가 아니며, 충분히 아주 자랑스럽고 찬란한 역사입니다. 과거가 그렇게 싫으신가요?

  4. 말씀 감사합니다. 생각해보니 말씀대로 조선시대 사직단이나 혹은 가정에서 지내는 제사에 종교적인 의미는 적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질문에 답해드리면, 조선의 역사 중 자랑스러워할 부분도 있겠지만 ‘찬란하다’라고까지 표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조상님이 아주 잘나가는 양반가문이나 왕족이었다면 모를까요. 19세기 조선 일반 민중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는지 상상만 해도 토가 나옵니다.

  5. 개인적인 의견으로 전혀 공감가지 않는 글이네요.
    물론 도서관과 어린이집이 일제강점에 의한 건축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이전의 원형을 복원하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미신을 숭상한다기보다 농경국가로서 민심을 안정되게 함과 동시에 국가에서 백성의 농사가 잘 되기를 기원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봐도 충분할텐데요.
    지금 말씀하신 사직단은 농경국가 조선에서 굉장히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지금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종묘와 동급먹는 곳이었죠.사극에서 말하는 종묘사직이 이 사직단을 말한다는 것을 아시리라 믿습니다. 복원한답시고 한옥건물 짓는 게 무슨의미냐고 하시는데, 그렇게 하면 국가에서 열심히 복원하고 있는 경복궁도 의미가 없어지죠.
    저는 동대문구에 사는데, 동대문구에는 선농단이 있습니다. 동대문구 자체에서도 이를 활용해 선농제 축제를 열기도 하고요. 이처럼 새로운 문화콘텐츠의 활용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선농단조차 이렇게 활용되는데, 그보다 더한 의미를 가진 사직단입니다. 복원돼야하고, 사실은 우리가 역사 공부할때 다들 알고 있어야 할 조선의 중요국가 시설이었습니다.
    물론 도서관 좋죠. 중요하고요. 말씀하신바처럼 그 역시 역사적 가치가 있다는 것도 알겠습니다. 하지만 도서관을 옮겨서 보존조치하고, 사직단도 복원한다면 더 좋을 것 같은데요? 참고로 저는 국문과 출신이라 저도 책 굉장히 좋아합니다.
    아 그리고 요즘 국가적으로 서울 시 자체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하려하는데, 이것도 이와 연관된 사업 아닌가 싶은 개인적인 추측도 있네요.
    물론 사람마다 의견은 다를 수 있기에, 글쓴님의 의견은 존중합니다. 다만 역사를 더 생각해주셨으면 해서 지나는 길에 글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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