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안(현수)이 그의 새로운 조국 러시아에 금메달을 선물했다. 이에 비해 한국의 전통적인 금메달 밭으로 여겨졌던 쇼트트랙의 부진이 극적인 대비를 보이며 한국빙상협회의 난맥상은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안현수 vs. 빅토르 안?
그 와중에 우리 사회의 전통적인 민족주의(nationalism)와 국적(nationality) 문제가 새삼스럽게 주목의 대상이 되었지만, 이것은 사실 최근의 현상은 아니다. 다만, 빅토르 안이 과거 한국 국적을 가진 선수, 그것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의 선수였지만 석연치 않은 이유로 한국을 떠났다가 러시아로 귀화해 다시 금메달을 땄기 때문에 더욱 두드러지게 되었을 뿐이다.
베이징 올림픽 당시 탁구 종목에 출전했던 21개 국가 대표팀 중에 과거 중국 국적의 선수가 귀화해 대표로 출전했던 나라가 절반을 넘었었다. 당시 한국의 국가대표로 여자 탁구 단체전에 출전했던 당예서(탕나) 선수도 중국 국적을 가졌다가 한국으로 귀화한 경우였고, 당시 여자 양궁 분야에서 일본 여자 양궁 선수로 출전했던 하야카와 나미 선수는 전북체고 출신의 엄혜랑이 일본으로 귀화해 출전한 경우였으며 호주 양궁 대표선수 스카이 김(김하늘)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국적을 취득했던 당예서는 준결승전에서 패배하고 동메달을 획득했다. 국내에선 별다른 비난이 없었지만, 중국 국민들의 끝없는 야유 속에서 경기를 치러야 했다. 반대로 일본 국적을 취득해 출전했던 하야카와 나미 선수의 경우엔 여자 양궁 8강전에서 한국의 박성현 선수(하야카와 나미의 2년 선배)와 맞붙게 되자 ‘하필 일장기’, ‘조국을 향해 활을 쏜다’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귀화’ 그리고 ‘민족’과 ‘국적’
사실, 귀화(歸化)란 용어 자체가 문제이기도 하다. 이 말은 ‘귀순(歸順)’과 다를 바 없는, “적이었던 사람이 반항심을 버리고 스스로 돌아서서 복종하거나 순종함”을 뜻하는 말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귀화(歸化)란 말이 가진 첫 번째 뜻은 “왕의 어진 정치에 감화되어 그 백성이 됨”이라고 정의된다.
‘nationality’ 란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국적이고, 다른 하나는 민족이다. 만약 우리가 ‘국적’을 더 중시한다면, 외국 국적을 가진 우리 동포(민족)의 선전을 우리 민족의 자부심처럼 여기거나 부추긴 언론 보도 태도가 우스울 것이다. 그러나 ‘민족’이 중요하다면 다른 나라에 귀화한 선수라도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둘은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에서 이율배반(antinomy)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이런 문제가 비교적 잠잠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 국적을 가진 선수가 타국에 귀화한 선수와 치열한 경합을 벌인 사례가 그리 많지 않았고, 한국 국적으로 금메달까지 땄던 선수가 그랬던 적은 더욱 없었기 때문이다.
빅토르 안과 청년세대의 동감
그런데 이번에 빅토르 안의 사례에서 흥미로운 것은 그에게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비난의 강도가 적거나 거의 없으며 도리어 그의 입장을 헤아리려는 태도들이 상당히 많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우리나라의 민족주의가 약화했기 때문이라고 보지 않는다. 조국에 봉사했으나 조국에서 부당하게 버림받고, 타국에 가서 다시 한 번 자신의 진가를 보여줬다는 빅토르 안의 일화에선 ‘영웅 서사의 구조’마저 엿보인다.
게다가 이것이 그(빅토르 안)와 그의 러시아 귀화를 적극적으로 뒷받침한 부친의 진심이던, 언론 플레이(난 이마저도 나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던 이런 사태의 주요 타깃으로 ‘국가 대한민국’보다 ‘빙상협회’의 부조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도 국민의 환심을 사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청년 세대가 빅토르 안의 성공에 함께 박수를 보낼 수 있었던 것에는 분명 국가주의나 국적의 문제가 약화한 측면도 일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굳이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열심히 노력했으나 성공의 가능성은 점점 더 좁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성공을 위해 새로운 선택지를 찾아간 것에 대한 청년세대의 동의와 동감이 있었다고 추측한다. (대개 운동선수의 귀화는 자국에서는 대표를 노릴 수 없을 만큼 강세 종목 선수들의 몫이다.)
세계화와 자기계발의 내면화
긍정도, 부정도 하기엔 다소 이르지만, 나는 이것을 세계화와 자기계발 논리의 내재화가 그만큼 진행된 결과라고 보고 있다. 자기계발 논리란 일종의 실력제일주의이자, 업적주의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그와 같은 입장과 태도에서 국적이나 민족 혹은 가문 같은 개념은 그것이 나의 실력이나 업적에 보탬이 될 때만 가치가 있다. 약자나 소외된 자의 입장이나 구조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는 현재 자신이 가진 물적, 인적, 상속적인 재화를 총동원하여 자신의 입지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에 모든 관심과 노력의 최우선을 두고 있다.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 세계화였던 것처럼 노동자들의 자유로운 이동 역시 일부, 특히 매우 능력이 있거나 자국에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조건을 가진 자들에게는 가능해진 셈이다. 그와 같은 귀화 선수들이 자본과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의 자유로운 직업 선택, 행복 추구의 꿈을 대변하고, 상징하지만 결국 세계 상위 1% 이내에 해당하는 이들만 가능한 꿈이란 점에서 여전히 닫힌 미래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추성훈 “한국에선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니었다”
재일동포 4세 추성훈은 할아버지의 나라 한국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싶어 한국에 왔지만, 꿈에도 그리던 한국이 그에게 준 것은 ‘편견과 차별’뿐이었다. 결국, 그는 지난 2001년 “일본에 살 때는 한국인이었는데, 한국에서는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니었다”는 말을 남기고 일본으로 귀화했다. 오직 마음 편히 유도만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나는 한국인”이라고 말한다. 반대로 중국에서 한국으로 귀화했던 당예서도 중국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비슷한 말을 했다. “한국대표가 된 것은 세계대회 참가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일 뿐” 이라며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중국인” 이라고 말했다.
하나가 옳다고 다른 하나가 틀린 것은 아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몰라도 우리 대다수는 그런 선택을 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국가주의적 업적을 과시하기 위한 소재로 활용될 가치가 없는 한 우리의 국적이나 민족성에 관심을 두는 이들도 없을 것이다. 어쨌든 빅토르 안의 금메달을 축하하고, 그것이 우리 쇼트트랙 대표선수들이 부당하게 태극마크를 달았다는 식의 마녀사냥으로 이어지지 않기만을 바란다.
무엇 하나가 옳다고 해서 다른 하나가 반드시 틀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PS.
빅토르 안(현수)의 금메달과 한국 대표팀 부진의 희생양이 빙상협회일까? 난 아니라고 본다. 이 사건의 진정한 희생자는 서울시청 공무원 간첩 조작 의혹의 피해자인 유우성 씨다. 빅토르 안의 금메달과 대표팀 부진 덕분에 ‘서울시청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을 일으킨 자들은 무관심이라는 반사 이익을 누리고 있다.
빙산연맹이나 대한체육회에서는 국민의 소리는 전혀 안 듣겠다고
게시판은 하나도 없네 하는 짓이 에휴~~
민족은 타고나는 것이지만 국적은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다
그게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사회에서 국가란 편의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자격, ‘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파벌 싸움으로 폭행까지 당한 안현수의 극적 상황이 그걸 증명해준 것이죠..
물론 대개는 안현수 파문과는 별개로 그 역시 능력있는 자, 돈가진 자들을 위한 편의로 변해버린 것이.. 문제라면 문제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