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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키캐스트, 변할 수 있을까 – 윤종수 서비스자문위원장 인터뷰

최근 피키캐스트에 대한 기성 언론의 관심이 부쩍 늘었다.

시사IN(제407호/2015년 7월 4일)은 커버스토리로 ‘큐레이션 미디어’를 다뤘고, KBS 미디어인사이드에서도 큐레이션 미디어를 꼭지로 다룬바 있다. SBS 취재파일은 큐레이션 토론회를 취재했다. 나는 시사IN에 칼럼을 기고했고, KBS에는 인터뷰이로, 토론회에는 패널로 참여했다.

피키캐스트

슬로우뉴스는 이미 수년 전부터 소위 큐레이션 서비스에 대해 비판적 관심을 이어오고 있다.

이런 비판을 의식한 걸까. 피키캐스트가 최근 서비스자문위원회를 발족했다. 자문위원장의 이름이 낯익다. CC Korea(이하 ‘CCK’) 리더인 윤종수 전 판사. 윤 위원장에게 피키캐스트와 자문위원회의 이모저모를 물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Creative Commons)

크리에이티브 커먼즈(Creative Commons)란
자발적 공유의 표시방식(CCL)을 통해 창작자에게 자동으로 부여되는 저작자의 권리를 최소화하여, 자신의 창작물을 인류의 공동자산화하는 개념입니다.

이를 위한 자발적 공유의 표시방식이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입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는 상업적인 자본이 들어간 창작물에도 무조건적인 공개와 공유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창작자의 창작물이 더 많은 이들에게 소개되고 만날 수 있는 환경과, 창작자가 꾸준히 창작을 지속할 수 있는 대안적 보상에 대해서 고민합니다.

CC Korea 소개 중에서(발췌)

피키캐스트

  • 일시: 2015년 7월 7일
  • 인터뷰이: 윤종수 피키캐스트 서비스자문위원장 

– 이전에도 피키캐스트에 대해 알고 있었나? 체험치는? 

물론 알고 있었다. 자주 보진 않았다.

– 피키캐스트가 말하는 ‘큐레이션’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나. 

다른 원작자의 컨텐츠를 재료로 쓰고 있는데, 그동안 개인 이용자가 해오던 패러디 등을 기업이 영리적인 목적으로 한다는 차이가 있다. 법적인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대안을 모색하고,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CC를 찾으려고 노력도 하고, 원작자의 승낙을 받는 방법도 모색하고, 결국은 공정이용에 들어갈 수 있는지도 모색하는 것 같다.

– 피키캐스트의 저작권 침해 논란에 대해선. 

‘영리 목적’이 공정이용에서 절대적인 판단 조건은 아니다. 기존 저작물을 활용한 새로운 가치 창출이 더 중요하다.

  1. 기존 권리자(원작자)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2. 이용에 필요한 최소한의 방법으로
  3. 새로운 가치를 창출(변용)할 수 있다면 공정이용에 해당할 수 있다.

그 방법론을 마련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기업에 새로운 숙제를 던져주고 있다. 이는 표현의 자유와의 관계에서도 문제가 될 것으로 본다.

– 피키캐스트 컨텐츠는 위 세 가지 기준에서 보면 ‘단순 모방’으로 보인다. 

해결해야 할 문제다. 자문위를 구성한 취지도 개선하겠다는 의지라고 본다. 완전한 모방에 해당하는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지에 대해 판가름날 거다. 보통 큐레이션이라고 할 때 실망스러웠던 것은 그 컨텐츠가 새로운 가치 창출을 인정하기 어려운 단순 모방이었다는 점이다. 만약 피키캐스트가 계속 그런 단순 모방에 머문다면 공정이용에 관한 판단에서도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나는 기존의 시장 가치와 충돌하지 않는다면, 패러디나 공정이용을 확대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영리 목적은 절대적인 판단 조건은 아니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원작자의 승낙을 받고, 서로 상생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 피키캐스트는 CC 라이센스 정책을 지키지 않을뿐더러 출처 표기도 엉망이다. 

출처 표시가 잘못됐다면 개선해야 한다. 개개 피키캐스트 컨텐츠를 살펴보지 않았지만, 장윤석 대표 이야기로는 줄여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안다.

피키캐스트의 주된 표현 방식 중 하나인 영화 '움짤'(움직이는 이미지 파일)의 출처 표시는 무려 "텀블러+개인사용자"다.

피키캐스트의 주된 표현 방식 중 하나인 영화 ‘움짤'(움직이는 이미지 파일). 그 출처 표시는 “텀블러+사용자 아이디”다. 피키캐스트에선 흔한 모습이다. ‘출처’에 관한 기본 개념조차 없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캡처 시각: 2015년 7월 9일 오전 11시 50분)

– 피키캐스트는 다른 창작자의 컨텐츠를 무단으로 가져와 이용하면서 정작 자사 웹 서비스에서 마우스 우클릭조차도 허용하지 않는데. 

이슈로 제기하겠다.

– 자문위원회는 CCK 차원에서의 참여인가, 개인적인 참여인가.

개인적인 차원이다.

– 윤종수 전 판사는 CCK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피키캐스트의 저작권침해 논란을 희석하는 수단으로 CCK나 자문위원회가 이용될 측면은 없다고 보나.

여러 가지 노력한다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어필은 되겠지만, 실질적으로 저작권을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명망가 몇 명을 자문위원으로 초빙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자문위원 입장에서도 현재 서비스가 정당하다는 입장으로 참여한 것은 전혀 아니다. 앞으로 개선점을 실질적으로 지적하고, 문제의 소지를 제거할 수 있도록 조언하기 위해 참여한 것이다.

– 격월로 회의한다고 보도됐는데, 격월로 실효적인 자문과 서비스 반영이 가능하겠는가.

일전에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구체적인 일정은 잡힌 게 없다. 내부적으로 자료를 받을 예정이고, 앞으로 활동 계획을 잡아갈 생각이다.

– 앞으로 활동의 방향은? 

나는 자문위원장으로서 다양한 방식으로 법적 리스크를 줄이는 방안을 조언해줄 것이다. 실질적으로 결정은 피키캐스트에서 할 일이다. 무엇보다 기존 권리자와 피키캐스트가 활발하게 상호 논의할 수 있기를 바란다. CC도 맥락상 법률적으로 명확하지 않은 것을 원작자의 선택으로 명확하게 하려는 측면이 있지 않나.

민노씨가 이야기한 부분(피키캐스트 측의 개선 의지와 진정성이 최종적으로 컨텐츠에 반영되지 않는 점)은 적극적으로 전달하겠다. 필요한 이야기가 있으면 계속 전해달라. 물론 내 조언을 선택할지는 그들(피키캐스트)이 판단할 문제지만.

후기: 세 가지 기준 

우선 하나 짚고 가자. 나는 피키캐스트를 큐레이션 서비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큐레이션이란 이용하는 원작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큐레이션은 원작의 시장 가치를 파괴하거나 원작이 더 많은 향유자와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선 안 된다.

피키캐스트 부류의 서비스는 원작(혹은 패러디)의 가치를 훔쳐 그들이 마땅히 누려야 하는 시장 가치를 빼앗고, 그 작품을 독자와 이어주기는커녕 그 만남의 기회까지 자신이 독식한다. 그 맥락에서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피키캐스트를 비판해왔다.

내가 판단하는 기준은 세 가지다.

1. 인간보다 개와 고양이가 중요한 세계 

소위 큐레이션 서비스로 불리는 ‘소매치기 미디어’가 의미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가치평가를 배제한 모든 논의는 피상적이다. 새로운 미디어는 매체 소비의 제로섬 게임(여러 사람이 서로 영향을 받는 상황에서 모든 이득의 총합이 항상 0인 것 혹은 그 상태)에서 어떻게든 기성매체와 미래에 태어날 매체에 영향을 미친다. 그 영향은 최종적으로, 독자의 매체 소비 시간을 빼앗는 것으로 나타난다. 결국, 미디어의 게임은 독자의 관심과 시간을 어떻게 빼앗느냐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피키캐스트 부류의 서비스가 예정하는 세계는 인간보다 개와 고양이가 더 중요한 뉴스 가치를 가지는 세계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라 현실이다. 뜰 것 같은 이슈라면 내 컨텐츠든 남의 컨텐츠든 상관없다. 잘 포장해서 빨리 많이 팔아먹으면 장땡이다. 이들은 자극적이고, 잘 팔리는 아이템, 가령 개와 고양이의 애교 ‘움짤’과 동영상과 섹스 그리고 ‘셀럽’에 관한 모방 욕구를 자극하는 컨텐츠 등을 무한 복제하고, 가공해 적극적으로 의미 유통의 속도를 가속한다.

물론 고양이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물론 고양이와 애묘인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인간의 인지능력은 도덕적인 판단을 전제하지 않는다. 인간 역시 특정한 자극에 조건반사로 반응하는 ‘파블로프의 개’에 불과하다. 노동자 파업 투쟁보다 고양이가 재롱떠는 ‘움짤’이나 동영상에 우리는 조건반사로 반응한다. 그렇게 획득한 ‘트래픽’은 광고 단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시장의 성공은 투자로 이어지고, 그렇게 축적된 자본으로 사회적 신분 세탁이 이루어진다. 이에 대한 가치 평가 없는 논의는 탁상공론이다.

신세대는 이들 서비스가 기성 미디어를 대체하는 ‘핫’하고 ‘쿨’한 것으로 이해한다. 소위 ‘스낵 컬처’로 불리는 이 현상의 토대를 제공한 건 디지털 복제 기술 그리고 ‘우라까이’와 ‘미끼 기사’로 상징되는 저널리즘 실종 상태다. 시장에서의 승리, 다수 소비자의 선택은 그 자체로 악하거나 선하지 않다. 하지만 의미를 다루는 미디어 행위의 본질에는 그 처음부터 끝까지 가치 판단이 있다. 있어야 한다. 이 판단이 없는 논의는 공허하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이것이 모든 미디어 행위의 시작이자 끝이다.

2. 창작 생태계의 파괴 

홉스나 루소를 굳이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성공만이 유일한 가치인 사회에서 그 성공의 수단과 방법을 규율하는 원칙과 규칙이 붕괴하면 남는 건 약탈과 파괴다. 힘 센 놈이 장땡이고, 먼저 훔쳐서 팔아먹고, 성공하는 놈이 장땡이다. 그 밖의 이야기는 모두 ‘루저의 넋두리’에 불과하다.

그렇게 원작자의 열정과 땀과 눈물을 빼앗는 미디어 약육강식이 상식으로 자리 잡고, 시장에서의 성공과 소비자의 선택만이 유일한 판단 기준으로 변질할 때 피키캐스트의 아류들이 등장한다.

우선 성공한 다음에 나누겠다. 어디서 많이 들은 이야기다. 나는 이들이 입만 열면 스스로 합리화하기 위해 이야기하는 ‘사회적 증여’, ‘사회적 환원’의 실체를 아직 본 적 없다.

피키캐스트 류의 소매치기 미디어가 성공하면 성공할수록 남는 건 결국 폐허뿐이다.

소매치기 미디어가 성공하면 성공할수록 남는 건 결국 폐허다.

3. 중요한 건 저작권법 자체가 아니다 

존경하는 한 정보인권 활동가는 슬로우뉴스가 실정법인 저작권법의 틀에 갇혀 피키캐스트를 판단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표한다. 나는 실정법으로서 저작권법을 인정하는 것은 별론으로 저작권자와 향유자 사이에 생겨난 힘의 불균형을 우려하고, 또 향유자로서의 권리, 가령 공정이용의 폭이 더 넓어져야 한다는 그 목소리에 동의하고, 또 공감한다.

세상의 모든 컨텐츠가 모두에게 이용될 수 있다면, 저작권이라는 발명된 개념이 완전히 사라질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저작권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부익부 빈익빈의 왜곡된 컨텐츠 생태계가 끝장날 수 있다면, 나는 그 세계를 기꺼이 원한다. 그런 ‘성숙한’ 세계라면 원작자를 무시하고 자기 것인 양 하는 소매치기 행태는 아예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원작자든 향유자든 그 성숙한 시스템 속에서 권리를 누리고, 또 보호받을 것이다.

창작이든 모방이든 도둑질이든 그 뿌리는 욕망이다. 이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스스로 자문하면 답은 자명하다. 남의 창작을 훔치는 일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사회, 그렇게 공유정신이 만개한 사회는 반대로 당신의 창작을 누군가 훔쳤을 때 그것을 기꺼이 인정할 수 있는 사회라는 의미다. 하지만 우리는 관념을 살지 않고, 현실을 산다.

현존하는 실정법인 저작권법 위반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최소한 그 저작권법이 사회적 합의로 존재할 때, 그 법이 예정해 놓은 사회적인 기능, 그 법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관한 성찰이 필요하다. 공유와 카피레프트의 이상이 왜 중요한지를 고찰하는 것만큼, 카피라이트가 왜 현존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현실 감각과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나는 일부 로펌이 자행하는 저작권 삥뜯기에 분노하고, 인터넷이라는 대지에서 태어난 극소수 IT 업체들이 전 세계의 모든 정보를 독식하며 ‘가두리 양식’ 제국으로 성장하는 현실을 우려한다. 하지만 정보의 공유와 개방과 나눔이라는 이상은 몇 가지 현실 원칙 속에서 재고되어야 한다.

그것은 윤종수 위원장도 인터뷰에서 확인한, 1) 원작자에 대한 존중(원작의 시장 가치를 파괴하지 않는 것) 2) 필요한 최소한의 방법과 수단 3) 패러디로 불리든 큐레이션으로 불리든 그 행위를 통한 새로운 가치의 창출이다.

더불어 정보의 공유와 개방과 나눔은 의미 생태계의 지속가능한 성장에 도움이 되는 한도에서 의미가 있다. 이것이 일부 사기업의 이윤 창출 행위 수단으로 변질하고, 원본 없는 무한 복제 문화를 확장하는 것이라면 이 현상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필요하다. 이런 현상을 방치한다면, 우리 문화는 하찮은 것으로 전락하고, 특정 기업의 정책에 의해 우리 삶이 좌우되며, 더 거대한 정보 차단과 왜곡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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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민노씨
슬로우뉴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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