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아나운서 27명이 ’17년 8월 2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방송 거부 및 업무 거부를 선언하며 부당노동행위와 사내 갑질 행태를 폭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참여 아나운서의 명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변창립, 강재형, 황선숙, 최율미, 김범도, 김상호, 이주연, 신동진, 박경추, 차미연, 한준호, 류수민, 허일후, 손정은, 김나진, 서인, 구은영, 이성배, 이진, 강다솜, 김대호, 김초롱, 이재은, 박창현, 차예린, 임현주, 박연경 이상 27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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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년 8월 22일 오전
- 상암동 MBC 사옥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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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일후 아나운서
MBC 아나운서 조합원들이 방송 출연 거부 및 업무 거부에 들어갔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어떻게 해서 저희가 이 자리에 서게 됐고, 지난 5년 동안 2012년 파업 종료 이후 MBC 아나운서국 내에서 그리고 밖에서 벌어졌던 아나운서들의 잔혹사를 여러분들께 알리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김범도 아나운서
2012년 파업 이후 저희 MBC 아나운서들은 대한민국 방송 역사상 그 유래가 없는 비극과 고통을 겪었습니다. 11명의 아나운서가 부당전보되고, 불과 얼마 전에 지속적인 방송 출연 정지에 절망한 나머지 김소영 아나운서가 사표를 던짐으로써 12명의 아나운서가 회사를 떠났습니다. 오늘 저희는 그동안 김장겸 사장 등 현 경영진과 신동호 국장이 저지른 잔인한 블랙리스트 행위, 막무가내 부당노동 행위, 그리고 야만적인 갑질의 행태를 온 세상에 알리고자 합니다.
이재은 아나운서
얼마 전 퇴사한 김소영 아나운서의 동기 이재은 아나운서입니다. 저희 동기는 누구보다 실력있고 유능한 아나운서였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뉴스투데이에서 갑자기 하차하게 된 이후로 무려 10개월 동안 방송을 할 수 없었습니다. 수많은 프로그램에서 섭외가 들어왔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배제당했고, 결국 떠밀리 듯 회사를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난 5년 동안 이렇게 11명의 선배들이 그토록 사랑하던 회사를 쫓기듯 떠나고, 11명의 선배들이 마이크를 빼앗기고, 마지막으로 제 하나뿐인 동기가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슬픔을 넘어 자괴감과 무력감, 패배감 때문에 괴로웠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남아 있는 아나운서들 모두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면서 우리가 돌아갈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된다는 선배님들 말씀대로 자리를 지키고 실력을 키우고, 회사가 나아자길 기다리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도 전혀 좋아질 기미를 보이질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무실의 빈자리는 더 많아졌고, 우리의 상처는 더 깊어졌습니다.
뉴스를 진행하는 동료 아나운서들은 늘 불안했고, 마음을 졸였습니다. 오늘, 어떤 뉴스가 있을까 두려웠습니다. 뉴스를 전하는 사람으로서 확신을 가지고 사실을 전해야 하는데, 이미 방향이 정해져 있는 뉴스, 수정하고 싶어도 수정할 수 없는 앵커멘트를 읽어야 했습니다.
아나운서들에게 언론인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하게 만들었습니다. 뉴스가 아닌 다른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아나운서들은 뉴스에 들어갈까봐 두렵고 무서웠습니다. MBC 뉴스를 하는 게 자랑이고, 명예였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멍에가 되어 버렸습니다.
지난 5년 동안 아나운서국에 남아 있는 우리는 침묵하며 지내왔습니다. 방송뿐 아니라 아나운서국 안에서도 우리의 생각을 마음대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후배 피디의 부당한 해고 조치에 항의하는 글을 썼다가 마이크를 빼앗긴 오승훈 아나운서는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섭외가 들어오는데도 방송을 하지 못하고, 벽만 보고 있다 떠나야 했던 저의 동기 김소영 아나운서 다음 차례가 누가 될 지 알 수 없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계속해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 보면서 두려웠습니다. 다음은 나일까 아니면 내 옆자리에 있는 선배님일까. 정당하게 할 수 있는 말들도, 사소한 의견 개진도, 건전한 비판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동료들이 쫓겨나고, 견디다 못한 회사를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게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늦었지만, 저희가 이제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하는 방송을 미련없이 내려놓고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그 누구도 떠나는 모습을 가만히 앉아서 지켜볼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언제 다시 마이크 앞에 설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다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선배님들이 그랬던 것처럼 드라마 소품실이나 스케이트장 관리를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더 이상 저희는 겁내지 않겠습니다. MBC 아나운서들이 온전히 제자리로 돌아올 때까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선배님들과 함께 부끄럽지 않은 어디서든 떳떳하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방송을 하고 싶습니다.
손정은 아나운서
안녕하세요. 저는 MBC 아나운서 손정은입니다. 사실 아나운서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게 이제는 좀 어색합니다. 5년 동안 방송 업무에서 거의 제외가 됐었고, 그리고 아나운서라는 명칭을 쓰지 말라는 이야기까지 계속 들어왔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려는 이야기는 제가 어떤 과정으로 방송에서 배제되었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저에게는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다시는 이런 일이 MBC에서 대한민국 땅에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간절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2012년 파업 이후 저는 여러 방송 업무에서 배제되었고, 휴직 후 돌아온 2015년 이후에는 오로지 라디오 뉴스만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나마하고 있던 라디오 저녁 종합뉴스마저도 내려오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전 이유를 알 수 없는 채로 라디오 뉴스에서 하차했고, 직후에 들려 온 소문은 정말 황당한 것이었습니다.
임원진 회의에서 모 고위직 임원이 ‘손정은이 자신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라는 발언을 했고, ‘그로 인해 라디오 뉴스에서 하차하게 된 것이다’ 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것입니다. 더 황당한 것은 저는 그 당시 그 고위직 임원과 마주친 적조차 없었습니다.
허일후 아나운서
저 역시도 2012년 파업 이후 7월 17일에 그날 저녁에 생긴 미래전략실이라는 곳으로 발령이 납니다. 다음날 그곳으로 갔더니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정수기도 없어서 옆 사무실에 물을 얻으러 갔습니다. 그곳에 제가 있을 때 제 대학교 모교에서 특강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뭐, 직업 탐구 이런 거였죠.
그때 당시 부서장님은 저에게 “네가 지금 아나운서가 아니니까, 넌 지금 아나운서가 아니지 않느냐, 아나운서국에 있는 아나운서를 보내라”라고 저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불과 몇 달 후 그 부서장은 저를 따로 불러 본인 지인의 딸이 아나운서 시험을 준비하고 있으니 한번 만나달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정도로 한 사람의 직업에 대한 가치와 존중이 없는 사람이 현재 지역사 사장입니다.
신동진 아나운서
회사는 말합니다. 부당 전보자들의 발령지는 그 기준은 그 사람이 가장 능력을 잘 발취할 수 있는 곳으로 발령을 낸다고.
그러면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주조(방송국 주조정실)의 MD(마스터 디렉터)입니까? 김범도 아나운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MBC 스케이트장 관리입니까?
제 뒤에 있는 황선숙 아나운서 입사 31년 차 아나운서입니다. 라디오 건강 프로그램을 10년을 진행해서 저희 동료들 사이에서는 건강 프로그램의 전문자로 통합니다. 본인이 그런 전문성 강화를 위해서 의약 관련 대학원까지 진학해서 주경야독으로 공부했습니다. 그런 황선숙 아나운서의 마이크를 빼앗고,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지금 심의국에서 프로그램을 심의하는 일입니까?
아나운서 조직은 50명입니다. 50명 조직에 12명이 퇴사했고, 11명의 아나운서가 부당 전보되었습니다. 이 모든 아나운서 잔혹사 중심에 있는 신동호 국장은 아직까지 이 사안에 대해서 그 어떤 관련된 언급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무려 5년 동안 국장으로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에게 더 이상 양심 운운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합니다. 말이 필요 없습니다.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 동료 아나운서들을 팔아 치운 신동호 국장은 즉각 사퇴하여야 합니다.
김범도 아나운서
아울러 이들 세력과 영합해서 악랄한 언론 탄압에 앞장섰던 아나운서 출신 공범자들에게도 적절한 시기에 명단 공개를 비롯한 응분의 조치를 취할 것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저희 MBC 아나운서들은 사상 초유의 방송 거부와 업무 거부라는 최후의 수단을 선택할 수밖에 없어서 정말 안타깝고 죄송합니다. 부끄럽지 않은 방송, 떳떳한 방송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