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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허범욱(HUR) 作, 르네 마그리트 – The Son of Man(1946) 패러디

12. 대학원 수업 – 발표 발표 그리고 발표

2008년 3월, 석사 1기, 나는 3개(9학점)의 대학원 수업을 들었다.

지도교수의 수업, 동일 세부전공 교수의 수업, 지도교수가 추천한 동일 세부전공 외부 교수의 수업이 하나씩이었다. 나는 약간의 설렘과 기대, 두려움을 함께 가지고 1주차 수업에 들어갔다.

수강생은 5명 내외였다. 수업은 교수 연구실에서 진행되었는데, 교수가 8인용 테이블 끝단에 앉고, 학기 순에 따라 차례로 앉았다. 나는 당연히 맨 끝이었다.

Todd Binger, "Classroom", CC BY SA  https://flic.kr/p/9hbvmj
Todd Binger, “Classroom”, CC BY SA

수업계획서

교수는 우리에게 수업계획서를 한 부씩 나눠주었다.

  • 1주 차: 수업계획 설명 및 강의 전반 이해
  • 2주 차: 수강생 발표
  • 3주 차: 수강생 발표
  • 4주 차: 수강생 발표
  • 5주 차: 수강생 발표
  • 6주 차: 수강생 발표
  • 8주 차: 수강생 발표
  • 8주 차: 중간고사 기간 (휴강)
  • 9주 차: 수강생 발표
  • 10주 차: 수강생 발표
  • 11주 차 : 수강생 발표
  • 12주 차: 수강생 발표
  • 13주 차: 수강생 발표
  • 14주 차: 수강생 발표
  • 15주 차: 수강생 발표
  • 16주 차: 종강.

수업계획서를 몇 번이고 훑어봐도, ‘수강생 발표’만 눈에 들어왔다. 교수는 발표 순서를 정하자고 했다. 수강생이 5명이고 15주 중에서 13주가 발표 수업이었는데, 1주당 2명씩 발표를 해야 했으니 1인당 평균 5회 이상 발표를 맡는 셈이었다.

“저도 하겠습니다!” 

“2주차 발표는…”하고 교수가 우리를 둘러보았는데, 눈을 피해야 하나 아니면 “제가 하겠습니다!”하고 군대에서 이등병이 눈치껏 작업 나가듯 해야 하나 무척 고민스러웠다.

그때 내 바로 위 학기 선배인 L이 말했다.

“제가 하겠습니다.”

“그래 L이 관심 있는 주제니 잘 발표해줘.” 

교수는 웃으며 화답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저도 하겠습니다.”

“그래,  L이 많이 도와주렴.”

그 이후로 선배들 눈치를 보며 정신없이 손을 들었다. 나머지 두 개 수업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한 학기에 10번이 넘는 개인 발표를 선물로 받아들었다. 외부 교수는 갓 박사 학위를 받은 젊은 교수였는데도 커리큘럼을 수강생 발표로 가득 채웠다. 그제야 걱정이 됐다. 

‘배운 게 없는데 어떻게 발표를 하지…’ 

첫 번째 과제 준비  

내가 받아든 첫 과제는 지도교수가 연구한 어떤 작품의 한계와 성과를 발표하는 것이었다. 막연히 작품을 읽고, 지도교수의 논문을 읽고, 정리하면 되지 않을까 했는데 뭔가 대학원 수업이 주는 무게감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L에게 묻자 그는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었다.

L의 조언을 요약하자면, 작품이 실린 초기 판본 자료를 구해서 읽고, 지도교수님이 쓰신 논문을 꼼꼼히 읽고, 그간의 연구성과를 함께 정리하고, 너의 견해를 덧붙여 발표하라는 것이었다.

어떻게 자료를 찾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L이 이번 한 번뿐이라며 원본 매체와 지도 교수 논문을 내 연구소 자리에 올려 두었고, 주목할 만한 연구자 몇을 메모해 주었다. 감사한 일이었다.

Nic McPhee, CC BY https://flic.kr/p/4zGJDo
Nic McPhee, CC BY

읽고 읽고 읽고 다시 생각하고 썼다 

학과 사무실 조교, 연구소 조교, 과목 조교와 각종 잡일을 하느라 해가 떠 있는 동안은 과제를 할 시간이 없었다.

교수와 교직원, 정규직들이 퇴근하는 시간이 되면 자료를 읽을 시간이 났다. 대학원생의 과제와 연구는 행정실과 강의실의 불이 모두 꺼진 후에 비로소 시작된다. 3일 동안 거의 밤을 새우며 첫 발표를 준비했다.

읽고, 읽고, 필요한 부분을 인용하고 다시 읽고, 생각하고, 썼다.

Leon Fishman, CC BY https://flic.kr/p/bgtvkD
Leon Fishman, CC BY

수업 당일에 함께 발표를 맡은 L과 학과 사무실에서 마주쳤다. L은 피곤함이 얼굴에 쉽게 묻어나는 스타일이었다. 눈그늘이 정말이지 뺨을 덮을 만큼 내려와 있었다. 내가 웃으니 L은 말했다.

“너도 똑같은데 뭘 웃냐? 들어가자.”

떨리는 첫 발표 

떨리는 마음으로 첫 발표를 했다.

그런데 지도교수는 시작부터 끝까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뭔가 코멘트를 기대했지만, 그저 발표문만 들여다볼 뿐이었다. 다른 선배들도 모두 뭔가 열심히 쓰고는 있는데 무엇을 하고 있나 싶었다.

“선생님, 이 부분은 제가 의미가 있다 싶어서 따로 인용했는데 한 번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음, 그래 잘 봤네. 고생했다.”

그렇게 내 첫 발표는 끝이 났다. 이어서 L이 발표했는데, 내가 쓴 것과 그다지 다른 점이 없어 보였지만, 지도교수는 깔끔하고 꼼꼼하게 잘 보았다고 칭찬했고 다른 선배들도 칭찬 일색이었다.

선배들의 조언 

수업이 끝나고 먹먹한 발걸음을 옮기는데 L과 S가 나를 불러세웠다. 그리고 자신들이 수업 중에 보던 내 발표문을 함께 내밀었다. 내 발표문에는 L과 S가 메모한 코멘트가 적혀 있었다.

OO 연구를 참조하면 좋겠다.
이 부분은 문장이 너무 길다.
이런 표현은 선생님이 싫어하신다 (…)

연구소에 돌아와 차근차근 살펴보니 L과 S가 고쳐 준 표현이 내가 쓴 것보다 확연히 좋았다. 대학 제도권의 ‘문체’라는 것이 있었고 그걸 익히는 게 우선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kathryn, CC BY https://flic.kr/p/8D1e12
kathryn, CC BY

그렇게 대학원생이 된다 

석사 1기가 끝나갈 무렵, 나는 10번이 넘는 개인발표를 모두 성실하게 해냈다. 조교 활동과 대학원 수업을 도저히 물리적으로 병행할 수 없을 것 같았는데, 그래도 어떻게든 한 학기를 마무리 지었다.

외부 교수는 10주차쯤에 이르러 이렇게 말했는데, 그말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OO 씨 발표가 이제는 좀 들을만 하네. 좋아요.”

첫 주차에 그렇게 낯설었던 논문의 문체와 형식이, 질감이, 조금이나마 익숙해졌다. 그렇게 나는 대학원생이 되어 갔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L과 몇몇 선배들에게 말했다.

“많이 조언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석사 1학기 때 네 문장은 정말 소설 한 편 보는 것 같았어.”

모두가 웃었다. 반박할 것 없이 나도 공감하는 바였다.

Elisabeth Audrey, CC BY ND https://flic.kr/p/5d3b7b
Elisabeth Audrey, CC BY ND

좋은 수업 vs. 나쁜 수업 

석사 4기, 박사 4기의 대학원 생활 동안 많은 수업을 겪었다.

돌이켜 보면, 석사 과정에 할당된 발표는 대부분 기존의 연구사를 요약하거나 간단한 자료를 보고 나름대로 정리하는 것이었고, 박사 과정은 주로 소논문 각 챕터를 완성해 학기 말에 완성된 한 편의 논문을 제출하는 것이었다. 수강생 발표로 90% 이상의 수업이 구성되는 것은 어느 수업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기억에 남는 수업과 그렇지 않은 수업이 있다.

교수 수업 강의 선생님

좋은 수업을 하는 교수는 수강생의 발표 수준에 맞춰 그에 따른 피드백을 해 준다. 분야의 권위자와 주목할 만한 신진 연구자를 소개해 주고, 학계 최신 동향을 일러준다. 어느 부분을 수정하면 어느 학회에 투고할 만한 수준의 논문이 되리라는 것을 한 눈에 포착해 조언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교수가 더 많다. 그저 대학원생 발표에 전적으로 의존해 수업을 진행한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를 의미 없는 발표가 이어진다. 제대로 된 피드백도 없이 ‘고생했어요’, ‘이 책은 다 읽어봐야죠’하는 식으로 수업이 끝난다.

자신이 장악하지 못한 텍스트를 과제로 내고 함께 토론한다는 명목으로 오히려 대학원생의 시각에 끌려다니기도 한다. 이런 수업은 학생들이 주도하는 학술 세미나이지, 학기에 5백만 원씩 내며 듣는 대학원 수업이 아니다.

최악의 교수들  

내가 기억하는 최악의 교수는 자신이 쓴 논문과 관련 자료를 들고 와서 수업을 진행했다. 논문을 정말 못 썼던지라 석사과정이었음에도 한숨이 나왔다. 자신이 비싸게 주고 산 자료라며 바리바리 들고 와 만져보게 했다.

“이게 조선 시대에 직접 유통되던 물목이에요.”

그게 도대체 연구자료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종강할 때까지도 듣지 못했다. 조선 시대에 새색시가 시집가며 치마저고리 두 벌 해갔다는 자료 한 줄에 흥분하는 건 좋은데, 그걸 수업 시간에 들고 와서 자랑하는 걸로 끝이라면 개인 박물관을 짓는 게 더 낫지 않은가 싶었다.

대학원 수업을 학부 수업보다 편하게 여기는 교수들이 많다.

“대학원 수업인데 담배 한 대 태우면서 편하게 합시다.” (S 교수)
“지방까지 오는 게 힘드네. 격주로 수업하는 게 어떨까요?” (M 교수)

‘편함’이 아니라 ‘우스움’이다. 학생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는 것이다. 석사 3기생만 되어도 첫 주 차에 오간 몇 마디로 교수에 대한 내부 평가가 끝난다.

우선 그가 해당 분야의 권위자인가, 주목할 만한 신진연구자이거나 그에 준하는 성과를 곧 낼 만큼 열심히 연구하는가. 무엇보다도, 우리와의 수업에 진지하게 임할 것인가. 연구와 수업 모두라면 진심으로 감사한 일이고, 하나만 충족해도 그런대로 좋은 일이지만, 모두 아니라면 서로에게 불행한 일이다.

내 지도교수를 비롯해, 좋은 수업을 성심껏 해 준 여러 선생님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인문학을 사유하는 방법론과 제도권의 문체에 익숙해졌고, 무엇보다도 연구자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배웠다. (계속) 

Kevin Dooley, Teacher, CC BY https://flic.kr/p/45obrR
Kevin Dooley, “Teacher”, CC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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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댓글

  1. 교수를 꿈꾸고 있는 대학생입니다.
    처음에는 부모님의 권유였습니다. 그러기에 전혀 저에게는 와닿지 않았던 진로였습니다.
    그러던중 어떤 계기로 공부를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나아가 내가 하는 공부를 정말 올바르게 가르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학교 3학기를 남겨두고 대학원을 생각하고있습니다. 이제서야 준비하면서 늦은 감에 혼자 마음고생이 심한데 이 글들이 저에게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것 같습니다.
    대학원은 스스로 모든 공부를 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 외에도 지도교수님이나 수업을 하시는 교수님들의 역량도 중요하다고 생각 되네요.
    저에게 도움되는 글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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