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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사는 사람들을 무엇이라 칭하면 좋을까?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로, 국민국가가 형성되면서 납세자와 유권자로, 그리고 자본주의가 심화하면서 소비자로 불려 온 세계의 시민들. 이제 이들을 소외된 노동과 맹목적인 소비를 벗어나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고 사용하고 공유하는 자, 즉 ‘메이커’(Maker)로 부르려는 움직임이 있다.

메이크 – 만드는 사람들을 위한 잡지

2005년, 미국에서 IT 기술 관련 서적을 주로 출판하는 오라일리 미디어가 기술과 DIY를 접목한 잡지를 하나 창간했다. 바로 전 세계적으로 메이커 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해온 “메이크”(Make:)다. 2005년은 오라일리 미디어의 창립자인 팀 오라일리가 ‘개방, 참여, 공유’를 키워드로 하는 웹의 혁신을 소개하는 “웹2.0이란 무엇인가”를 발표한 해이기도 하다.

메이크 표지 모음 (이미지 출처: 메이커셰드)
메이크 표지 모음 (이미지 출처: 메이커셰드)

잡지 메이크는 기술, 특히 디지털 기술과 DIY 제조/공예를 결합해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내는 방법과 사례를 안내하면서, ‘개방, 참여, 공유’가 온라인상의 개념에 국한되지 않고 물리적인 공간에서 확산하도록 자극했다.

그리고 이런 움직임을 한 자리에 모아 보여주는 ‘메이커 페어’(Maker Faire)라는 오프라인 이벤트도 개최하기 시작했다. 2006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열린 메이커 페어는 이제 전 세계 수십 개국에서 개최되는 메이커들의 축제로 발전했고, 한국에서도 2012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다.

메이크의 공동창립자이며 현재 메이크와 메이커 페어 등을 총괄하는 메이커 미디어의 대표인 데일 도허티는 2011년 TED 컨퍼런스에서 “우리는 만드는 사람들”이라고 선언하며 메이커 운동의 흥미로운 사례들을 보여주었다. 인터넷에 공개된 지식, 노하우, 설계도, 3D 프린터나 레이저 커터, 창고에 처박혀있던 고철, 옷감 등을 이리저리 조합해 ‘유별나게 높은 자전거’나, ‘유별나게 작은 스쿠터’, ‘전기 머핀’ 같은 기발한 물건을 만들어내고 즐거워하는 사람들 말이다.

메이커는 누구?

만들기 자체에 매료되어서, 새로운 기술을 접하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소비보다는 생산하는 삶을 원해서, 기존 체계에서 해결할 수 없는 사회문제를 풀기 위해서, 새로운 사업모델을 발굴하기 위해서 등 메이커의 동기는 다양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동기를 지녔든 간에 메이커는 직접 무언가를 만들고, 공유하고, 다른 기술과 경험을 익히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메이커는 스스로 익히거나 장인의 어깨너머로 배운 기술을 단지 자신의 몸에만 담아두지 않고 기술 그 자체뿐 아니라 성공, 실패, 고민의 이야기를 인터넷을 통해 공유하고, 다른 사람이 공유한 정보와 이야기에 자극을 받아 또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홀로 작업하면서 맞닥뜨리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기술, 도구, 소재의 영역별로 무수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메이커 페어 뿐 아니라 해커 스페이스, 팹랩(Fab Lab), 팹카페, 테크숍과 같은 ‘만드는 사람들의 공간’에서 서로 만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아이디어와 실험을 해나간다.

더욱 많은 자금과 설비가 필요한 프로젝트로 발전시키려 할 때에는 킥스타터, 인디고고와 같은 크라우드펀딩 서비스를 통해 기금을 마련한다.

킥스타터와 인디고고

메이커 운동은 왜 주목받는가

사실 거창하게 ‘선언’까지 하지 않더라도, 만드는 사람들은 항상 있었다. 자급자족과 대량생산/소비 사이에서의 고뇌도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다면 메이커 운동은 어째서 새로운 운동으로 주목받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평범한 개인이 거대한 공장과 컨베이어의 일부가 되거나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은 채 시작부터 끝까지 자발적이고 창의적으로 특정한 물건을 ‘창조’해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갖는 매력이 크다.

긴 시간 숙련이 필요하거나 대규모 설비가 필요하던 작업이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공개된 정보와 저렴한 기기 몇 가지로 해결되는 데다 그 결과물 또한 제법 근사하다. 너무 근사한 나머지(!), 만들어낸 시제품을 토대로 새로운 사업모델이 태어나기도 한다.

Keith Kissel, 3D Printer at the Fab Lab (CC BY)
Keith Kissel, 3D Printer at the Fab Lab (CC BY)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면서 정밀한 부품을 컴퓨터로 제어해 생산하는 CNC(Computer Numerical Control), 재료를 자르거나 깎아서 만드는 게 아니라 입체로 뽑아내는 3D 프린터, 손바닥만 한 보드에 비교적 단순한 프로그래밍으로 물건을 전자적으로 제어할 수 있게 해 주는 아두이노, 라즈베리 파이와 같은 기기들이 대중화되고, 관련 지식이 오픈 소스로 공개되고 있는 환경은 메이커 운동의 발달에 중요한 기반이 되고 있다.

이런 기술과 도구를 바탕으로 하기에, 기존의 수공예 제조 작업을 디지털과 결합해 혁신적인 기능을 입히거나, 막대한 자본과 대형 생산설비가 없이는 만들 수 없었던 부품이나 물건을 개인이 집에서 만들어내는 일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메이커 운동이 세상의 문제를 창조적으로 해결하거나, 제3의 산업혁명으로서 새로운 방식으로 지역 경제를 활성화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도 자주 제시된다.

'정상에서' 님과 함께한 프로젝트 팀 '정상에서'. (사진 제공: 만드로용 이상호 대표)
우연히 읽은 게시판 글이 계기가 되어 의수를 제작한 이상호 대표(좌)와  ‘정상에서’ 님(우) (사진 제공: 만드로용 이상호 대표)

새롭게 보기, 다르게 만들기

한편, 메이커 운동은 그저 신기하고 근사한 물건을 만드는 작업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콘크리트로 가득한 도시의 얼굴을 바꾸어놓기 위해서 비밀스럽게 땅을 가꾸고, 흙에 씨앗을 넣어 뭉친 씨앗 폭탄을 던지고 다니는 ‘게릴라 가드닝’이라든지, 저항의 의미 또는 예술적 행위로서 뜨개 실과 편물로 거리를 뒤덮는 ‘얀 바밍’처럼 기존의 ‘만드는 작업’을 전혀 새로운 목적과 형태로 활용하여 사회적 담론을 제기하는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다.

얀 바밍(yarn bombing) (위키백과 영문판 캡처)
얀 바밍(yarn bombing) (위키백과 영문판 캡처)

국내에서 개인이 티셔츠를 팔아 모든 돈으로 인공위성을 발사한 사례로 많이 알려진 송호준의 경우, 자신이 특별한 도전을 한 희망의 아이콘으로 인식되기를 강하게 거부한다. 오픈 소스로 공개된 지식과 정보를 활용해 인공위성을 만들고 쏘아 올리는 과정 자체를 공개함으로써 모두가 특별하고 대단하게 여겨 엄두도 못 내는 일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만들어, 기존의 틀을 깨는 다양한 생각과 행동을 자극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고민과 과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이커 운동이 이전에 항상 존재해온 만들기의 역사와 왜 구분돼야 하는지 질문이 끊이지 않는다. 또한, 메이커 운동이 가리키는 미래가 유토피아일지 디스토피아일지 의견도 분분하다.

제조업의 미래는?

메이커는 최소한 자립을 할 수 있을까?

메이커는 기존 수공예 장인, 숙련 노동자와 어떻게 만날 것인가?

정부, 기업, 학계 지원으로 성장한 메이커 운동이 사회 혁신을 시도할 수 있을까?

‘백인/중산층/고학력/남성 주도 메이커 문화가 기존 불평등 구조를 더 심화하는 건 아닐까?

‘우리는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메이커 운동의 선언은 이런 질문에 과연 어떤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궁금하긴 하지만, 지금 그 답을 예상하기에는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는 듯하다. 그러니 머리로만 가늠할 게 아니라 일단 스스로 만들고, 부수고, 또 만들어보면서 답을 함께 찾아가 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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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ube 동영상

OK Go – The Writing’s On the Wall (2014)
(메이커의 마음을 설레게 할 좋은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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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깊이보기:

이 글은 시민/공익활동 미디어 [플랜B]에 올라온 입니다. 플랜B, 필자(신비)와의 협의를 거쳐 슬로우뉴스 편집원칙에 맞게 퇴고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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