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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채 잡은 그녀의 사진, 무엇을 말하나

19대 총선 과정에서 비례대표의 당내 경선 부정과 관련하여 벌어진 통합진보당 사태는 이석기, 김재연 두 국회의원의 사퇴 문제를 놓고 여전히 논란이 그치지 않는 상태다. 이번 사태로 가장 유명해진 이는 두 사람이겠지만, 이들처럼 스스로 공인으로 나선 것도 아니고 본인이 원한 것도 아닌데 덩달아 하루아침에 유명해진 사람이 있다. 지난 5월 12일 당 중앙위원회 회의장에서 벌어진 몸싸움 과정에서 조준호 전 공동대표의 머리를 뒤에서 잡아당기는 모습이 사진에 찍혀 유명해진 20대 여성 박 아무개 씨다.

이를 악물고 다부지게 머리채를 잡아당기는 박씨의 모습이 조 대표의 괴로워하는 표정과 함께 찍힌 이 사진은, 극단으로 치닫던 통합진보당의 당내 갈등과 혼란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평가되었다. 이-김 두 사람의 거취를 놓고 여전히 지지부진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것처럼, 사진에 찍힌 박씨의 문제도 현재진행형이다. 현재 경찰은 당내 폭력 사태 수사를 위해 박씨를 찾고 있지만, 박씨가 잠적한 탓에 소재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 사진은 중앙일보 조용철 사진기자가 찍었다. 당시 비슷한 장면을 잡은 다른 사진들도 있지만, 이 사진이 널리 알려졌다. 또 가장 잘 찍혔다. 이 사진이 나온 직후, 나는 슬로우뉴스 내부 논의에서 “개인적으로는 상 주고 싶은 사진입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한국사진기자협회는 6월 18일 ‘제113회 이달의 보도사진상‘ 시상에서 이 사진을 스팟뉴스 부문 최우수상으로 뽑았다.

그런데 이 사진이 보도되었을 당시, 사진과 관련해 몇 가지 논란이 일었다. 1) 찍힌 사람(박씨)의 권리가 침해되었을 가능성, 2) 사진이 보수 언론에 의해 지나치게 해석되고 악용되는 점 등이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논란을 짚어보고, 더 나아가 보도 사진과 관련해 언론 종사자와 독자들이 함께 생각해 봐야 할 점들을 훑어보고자 한다.

1. 비판의 일관성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기에 앞서, 우선 비판의 일관성을 먼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남을 깔 때에는, 자신은 그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운지 늘 미리 점검해 보는 게 좋다. 이 사진이 보도되고 큰 관심을 모았을 때, 일부에서는 본인의 뜻과 상관없이 사진이 찍혀 폭력 사태의 주인공인 것처럼 등장하게 된 박씨의 권리, 이를테면 초상권 등이 침해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예컨대 오마이뉴스는 ‘머리끄덩이 잡은 여성은 초상권 없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비슷한 문제를 꺼냈다(관련 기사). 이 기사에서는 중앙일보의 지면 이미지를 그대로 인용하면서도 박씨의 얼굴 부분은 모자이크 처리하는 세심함을 보였다.

그러나 오마이뉴스는, 작년 8월 15일에 60대 여성(이 사람도 박씨다)이 대중 집회에 참석중인 정동영에게 갑자기 다가가 폭행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는, ‘정동영, 보수 단체 회원에게 봉변’이라는 기사를 쓰면서 당사자의 얼굴이 명확히 노출된 사진을 그대로 실었다(아래 사진, 관련 기사).

통합진보당 박씨의 사진 보도에 보인 관심과 문제의식에 일관성이 있다면, 이런 자사 보도를 놓고 ‘정동영 폭행 여성은 초상권 없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마이뉴스는 정동영을 폭행한 박씨의 사진은 당시에도 지금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으며, 초상권을 따지는 기사도 쓰지 않았다. 오마이뉴스뿐만 아니라 당시 이 박씨의 초상권 침해 가능성을 제기한 이들은 거의 없었다.

이래서야 아무런 설득력도 갖기 어렵다. ‘너는 불륜, 나는 로맨스’의 사례만 하나 더 생산했을 뿐이다. 통합진보당 사태 관련자의 초상권을 염려한다면, 예컨대 앞으로 새누리당 내부에서 친박계와 친이계가 몸싸움을 하여 각 계파의 두 당원이 주먹다짐하는 일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당사자들의 초상권 때문에 이런 사진을 보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야 한다. 그래야, 주장의 옳고그름을 떠나서 일관성은 유지함으로써 최소한 면피할 수 있다. 이 점은 일부 언론뿐 아니라 통합진보당 박씨의 사진을 놓고 초상권을 따지는 사람들 역시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다.

2. 그렇다면 초상권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사진으로 박씨의 초상권이 침해되었을 가능성은 없다. 정동영과 박원순을 폭행한 60대 박씨도, 통합진보당의 20대 박씨도, 또 앞으로 있을지도 모르는 새누리당의 또 다른 박씨도 모두 보도 사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게 옳다.

공인이 아닌 개인이 사진에 찍혀 유명 인사가 된 이 사진은, 구태여 따지자면 두 가지 점에서 얼굴을 밝혀 내보낸 보도 행위의 법률적 정당성을 점검해 볼 수 있다. 1) 프라이버시(사생활) 관련 이슈와 2) 재산권의 성격을 갖는 퍼블리시티권 이슈다.

우선 염두에 둘 것은, 두 이슈 모두에서 광고와 같이 직접적인 이익을 위해 활용한 경우와 독자나 시청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뉴스 보도의 경우에 대한 판단이 다르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전자는 규제가 엄하고, 후자는 약하다.

미국의 경우 뉴스 보도가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데 대한 규제 필요성이 처음 등장한 것은 1890년이다. 개인의 사생활을 가장 직관적인 방식으로 드러내는 매체인 사진이 처음부터 이러한 규제의 주요 대상이었음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프라이버시 침해와 관련한 초기 사례들은 주로 광고 사진에 집중되었다. 본인의 허락을 받지 않고 이름이나 사진을 광고에 쓰는 경우는 대부분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한 것으로 인정되었으며, 이러한 관행을 금지하는 법이 여러 주에서 속속 제정되었다.

그러나 뉴스 보도의 경우는 달랐다. 미국 법원들은 어떤 사건이 정당한 공공의 관심(public interest, 내용상 ‘이익’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게 협소하다)과 관련이 있는 경우, 거의 예외 없이 대중의 알 권리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쳤다. 1927년에 켄터키 주에서 나온 ‘브렌트 대 모건’ 판결은 프라이버시 권리에 대한 규정을 성립시킨 고전적 판결로 평가된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란 일반적으로 ‘혼자 있을 수 있는 권리’를 말하며, 다시 말해 당사자가 부당하게 공공에게 드러나지 않을 권리, 또는 공공의 관심사가 아닌 사안에 대해 대중으로부터 부당하게 간섭을 받지 않을 권리를 의미한다”고 밝혔다. 뒤집어 말하면, 혼자 남아 있으려는 상황이 아닌 때, 또 공공의 관심사에 연루되었을 때는 사생활 보호의 범위가 축소된다는 것이다.

이후 프라이버시 침해와 관련한 수많은 소송과 판례가 나왔지만, 큰 그림은 이러한 규정 아래에서 그려졌다. 핵심적인 부분은 1) 쟁점이 되는 정보의 공개가 당사자에게 매우 중대한 피해를 가져오는가와 2) 해당 사건이 대중의 정당한 관심사인가의 두 가지다. 예컨대 <타임>은 식사 장애로 병원에 입원해 있던 여성 환자의 사진을, 본인의 허락을 받지 않고 보도했다가 프라이버시 소송을 당하고 패소했다. 이 경우는 환자 개인의 특정 질병을 공공 관심사로 보기 어렵고 따라서 단순히 환자의 사생활을 부당하게 침해한 것으로 인정되었으며, ‘게걸 들린 폭식가’ 같은 표현을 써서 부정적으로 묘사한 것도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시위, 행사 등 공공 장소에 나온 사람을 찍은 사진이 사생활 침해로 소송을 당하고 패소한 경우는 거의 없다. 저널리즘 교수인 로버트 로드와 <덴버 포스트> 사진 책임자인 플로이드 맥컬이 1961년에 미국보도사진가협회(NPPA)의 감수를 받으며 펴낸 고전적인 책 <보도 사진: 카메라로 보도하기>는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공공 행사나 사건에 참여하고 있는 개인은 해당 행사나 사건 보도의 일부분으로서 촬영되고 보도될 수 있다. 찍힌 사람 본인은 자신이 행사에 참석하였다는 사실을 다른 독자에게 알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해당인의 동의 없이 특별한 주목을 받도록 돌출되어 보도되어서는 안 된다. 다만 해당인이 공인의 성격을 갖고 있거나, 혹은 당시의 시점에서 뉴스 가치가 있는 상황이라면 예외가 된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다양하고 구체적 사례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좀 난감한 지침이지만, 공공 관심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다룬 보도 사진에서 프라이버시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할지 짐작하기에는 충분하다.

이러한 점을 종합해 적용해 보면, 통합진보당 박씨의 사진은 1) 당시 한국 정치에 큰 파란을 일으키며 공공의 지대한 관심사였던 통합진보당의 부정선거 시비 및 이와 관련한 폭력 사태를 보도하기 위한 사진이었으며, 2) 당사자는 이러한 공당의 행사에 자발적으로 참석한 사람이고, 3) 사진기자들이 취재 활동을 벌이고 있었음을 충분히 알고 있는 상황이며, 4) 해당 장면은 개인에 국한된 사적인 활동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공공의 상황에 개입한 것으로서 ‘혼자 있을 권리’라는 프라이버시의 본질에 접근하지 않는다는 정도의 평가를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 사진이 해당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했다고 볼 여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 사진을 재산권의 성격을 갖는 초상권이나 퍼블리시티 권리의 측면에서 보아도 비슷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1) 광고 등 상업적으로 이용된 사진이 아니며, 2) 공공의 정당한 관심사와 관련한 사진이기 때문에, 해당인은 초상권이나 퍼블리시티권을 주장하기 어렵다. 이것을, 출산 관련 장면을 찍으면서 산모의 동의를 받지 않아서 초상권 침해 판결을 받은 사건과 비교해 보면 그 사적/공적 성격의 차이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3. 박씨 사진과 비슷한 사례가 있는가?

널려 있다. 이런 사진을 뉴스 보도에 쓸 수 없다면, 뉴스에 나오는 사진이라고는 본인 허락을 얻은 인터뷰 사진이나 국무회의를 여는 대통령 사진, 혹은 곡식이 익어가는 황금 들판 사진밖에 없을 것이다. 앞서 예를 든 정동영 폭행범 박씨의 사진도 초상권 등의 논란이나 문제의식조차 없이 사진이 쓰인 경우지만, 사진 노출이 좀 더 심각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었음에도 보도 사진으로 문제없이 쓰인 경우들을 몇 가지 보자.

유명한 사진이다. 1960년 일본의 3당 당수 연설회 도중, 우익 청년 야마구치 오토야가 일본사회당 위원장 아사누마 이네지로를 칼로 찔러 살해하는 장면. 당시 17세이던 야마구치는 얼마 뒤 감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진은 당시 마이니치신문 사진기자였던 나가오 야스시가 찍었다. 야마구치의 얼굴이 그대로 드러났지만 초상권 침해는커녕, 그 해 세계보도사진 대상을 받았다.

1957년 미국 아칸소에서 고등학교의 흑백 통합 교육을 둘러싸고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난리법석을 피울 때의 사진이다. 통합 교육에 반대하기 위해 몰려온 불량배들이 등교하는 흑인 학생들에게 돌을 던지고 있다. 사진 전문 통신사 매그넘의 버트 글린이 찍었다.

비슷한 시기에 찍힌 사진. 새로 백인 학교에 등교하게 된 흑인 여고생을 동료 백인 학생들과 학부모가 따라가며 괴롭히는 장면이다. 이 사진에서 인종차별적인 구호를 외치던 학생들은 그 뒤 모두 신원이 밝혀져서 유명 인사가 되었다. 가운데 입을 벌리고 악다구니를 치고 있는 여학생은 헤이즐 브라이언트, 왼쪽에서 책을 잔뜩 들고 비실비실 웃으며 보조를 맞추는 여학생은 앤 톰슨이다. 톰슨은 자식 둘, 손자 둘을 낳고 아칸소에서 평생 잘 살았는데, 나중에 말하기를 당시 나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세상이 자기네를 그렇게 만들었을 뿐이라고 변명했다. 물론 초상권 침해 소송 따위는 제기되지 않았다. UPI의 코비스 뱃먼이 찍었다.

1976년 보스턴에서 흑백 학생을 통학버스에 함께 타도록 한 정책에 반대하는 백인 학생들이 시위를 벌이는 현장에서, 근처를 지나던 흑인을 시위대가 공격하는 장면이다. 실컷 두들겨 맞은 흑인은 얼굴과 몸에 큰 부상을 입었다. 역시 초상권이나 프라이버시 따위는 명함도 못 내밀었으며, 사진을 찍은 <보스턴 헤랄드 어메리칸>의 스탠리 포어맨은 이 사진으로 1977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이상의 사례는 언론 보도의 자유가 비교적 넓게 인정되는 미국과 일본에서 나온 것이지만, 그 기본적인 판단에서는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에서 초상권 등이 인정된 경우를 보면 모두 나름의 이유가 있다. 예컨대 보도 사진과 관련한 초상권 소송의 대표적인 경우로 손꼽히는 이화여대 학생들과 <뉴스위크> 간의 소송은, 여학생들의 사진이 기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도 그렇게 오해할 수 있도록 쓰였기 때문에 초상권 침해가 인정되었다.

4. 사진 자체는 그렇다 쳐도, 그것이 쓰인 맥락은?

통합진보당 박씨 사진과 관련하여 이 부분은 짚어볼 여지가 있다. 아래는 이 사진을 1면 머리기사로 올린 5월14일자 중앙일보 모습이다. 이러한 지면은, 이 사진과 관련한 문제의 핵심은 사진 자체가 아니라 이를 둘러싼 부당한 메시지 이식이라는 점을 한눈에 보여준다.

백문이나 백독(百讀)은 불여일견이고, 한 장의 사진이 수천 단어 분량의 기사를 대신하기도 하며, 보는 것이 믿는 것이기도 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작품 사진이 아닌 보도 사진에는 늘 텍스트가 동반되며, 이 텍스트는 사진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를 지시하고 인도한다. 이미지의 메시지를 텍스트 메시지가 제한하고 간섭하는 것이다. 많은 경우 이러한 텍스트는 사진의 맥락을 제공해 이해를 높이려는 정당한 목적과 필요에 따라 쓰인다. 그러나 어떤 경우는 이미지에서 직접 추출되지는 않는 메시지를 의도적으로 삽입하는 목적으로 쓰이기도 한다.

위의 중앙일보 1면 제목 ‘이 장면, 올 대선 구도 흔드나’는 이처럼 이미지에 텍스트를 더해 그 메시지를 사진과 직접 관련이 없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경우를 생생히 보여주는 사례다. 해당 사진이 제시하는 액면 메시지는 최대한 넓게 잡는다 해도 ‘야당에서 폭력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것이 반년이나 남은 대통령 선거와 연결될 수 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으며,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 사이에 수많은 연결 고리가 필요하다. 그런데도 이 신문은 독자가 사진을 보면서, 이런 고리를 건너뛰고 사진의 장면과 직접 관계없는 12월 대선을 생각해 보라고 직접 들이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연계성이란 그들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을 정도로 모호하기 때문에, ‘흔드나’처럼 선무당 점괘 내는 것 같은 표현을 썼다. 이런 메시지가 얼마나 중요했던지, 스트레이트 뉴스가 아닌 해설 기사(‘뉴스 분석’)를 1면 머리기사에 올리는 보기 드문 일을 벌였다. 이것이 언론의 정도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는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믿는다.

문화연구학자 스튜어트 홀에 따르면, 보도 사진의 가치는 공식적인 뉴스 가치와 그 뒤에 깔리고 해석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이데올로기적 차원으로 이루어진다. 나는 위에서, 머리채를 잡는 박씨의 사진을 놓고 ‘상 주고 싶은 사진’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이것은 이 사진이 표현하고 있는 공식적인 뉴스 가치 때문이다. 이 사진은 사진기자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기고 있는 브레송의 ‘결정적인 순간’ 개념을 잘 구현했으며, 극적인 장면이고, 큰 논란이 벌어진 중요한 사건을 집약적으로 표현하였으며, 사회적 논란을 촉발했다.

반면 이 사진이 지면에 사용되고 해석되는 방식은 철저히 이데올로기적 가치를 반영하고 있다. 중앙일보의 1면 머리기사에 배치된 이 사진이 말하는 이데올로기적 메시지는 ‘진보의 폭력성과 비민주성’이며, 이 때문에 국민이 이들을 외면하여야 한다는 당위이다. 심지어 동반한 제목을 통해 ‘올 대선 구도를 흔드는 장면’이 되기를 희망하는 정치적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까지 했다. 사진은 ‘이달의 보도사진상’을 받더라도, 사진이 쓰인 기사는 ‘이달 최악의 기사상’을 줄 만하다.

5. 사진 메시지의 이데올로기적 전용에 성공한 사진들

사진 이미지가 이렇게 전용되거나 악용되는 것은 어떤 점에서 숙명이기도 하다. 보도 사진은 일견 현실을 명확하게 그려 보여주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함축성 때문에 언제나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 해석의 여지에서 이데올로기가 개입할 여지가 생긴다.

한창 잘 나가던 배우이자 열렬한 반전/여성 운동가 제인 폰다는 위의 사진으로 한 방에 갔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72년에 베트남 현지에 가서 찍은 사진이다. 그런데 폰다가 찾아간 곳은 미국이 후원하던 남베트남이 아니라, 미국과 싸우고 있던 북베트남의 하노이였다. 이곳에서 베트남인들의 생활을 살펴보고 미국의 무차별 폭격을 비난하던 폰다는, 현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얼떨결에 베트콩군의 대공포 사수 자리에 앉게 됐다. 바로 위의 사진이다.

이 사진 한 장 때문에 제인 폰다는 많은 미국인 사이에서 두고두고 쳐죽일 여자가 됐다. 사이가 안 좋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빠인 헨리 폰다의 후원 때문인지 완전히 매장되지는 않았고, 지금도 잘 활동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그녀는 그때 찍힌 빨갱이 낙인을 아직까지도 완전히 벗지 못하고 있다. 미국 젊은이가 끝도 없이 희생되는 전쟁 상황에서, 적국에 찾아가서 자기네 나라 병사들이 탄 비행기나 헬기를 쏘아 거꾸러뜨리는 대공포에 태연하게 앉아서 희희낙락하는 장면은, 어떤 미국인에게는 반역자나 다름없는 행동인 것으로 비쳤던 것이다.

폰다는 나중에, 자신은 무기에 대한 지식이 없었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던 터라 어디 앉았는지 의식조차 하지 못했다고 말했으며, 그러면서도 전쟁 희생자 가족을 포함한 국민에게 백배사죄했다. 폰다가 어디 앉았는가는 사실상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그녀는 짚단 위에도 앉을 수 있었고 바위 위에도 앉을 수 있었다. 마침 거기 대공포가 있어서 앉았을 뿐이다.

대공포에 앉은 폰다를 미워하는 사람들은 그녀가 그런 일을 벌이지 않았더라도, 하노이를 찾아갔다는 것만 가지고도 똑같은 감정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잠깐에 지나지 않았던 상황을 찍은 이 사진은 이러한 감정을 극단적인 방식으로 증폭해 토해내도록 하는 배출구 역할을 했다. ‘미국 연예인이 북베트남의 촌락에서 주민들을 만났다’라는 사진의 명목상의 메시지를 넘어 ‘조국의 병사들 가슴을 겨누는 포대에 앉은 반역자 연예인’이라는 이데올로기적 메시지로 확장되어 해석되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반전 운동을 하는 이들에게 도매금으로 빨간색 페인트를 덮어씌우기에 안성맞춤인 사진이었다.

한국의 현대 학생운동사에서 이 사진을 빼놓고 넘어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노태우 정부 때인 1991년 6월에 국무총리로 임명된 정원식이 외국어대에 수업하러 갔다가 봉변을 당한 장면을 찍은 사진이다. 마지막 강의를 끝내고 나가는 신임 총리서리에게 학생들이 달걀, 밀가루, 페인트, 빈 병 등을 닥치는 대로 던지고 폭행했다. 공격을 당한 정원식의 충격적인 모습을 담은 사진은 다음날 신문들의 1면에 큼지막하게 실렸으며, 한국 사회를 발칵 뒤집었다.

동아일보는 사진 설명으로 ‘왜들 이럴까’라는 말을 달았는데, 왜들 그랬는지는 누구나 다 잘 알고 있었다. 정원식은 노태우 정부에서 문교부장관을 지내며 전교조를 불법화하고 해직 교사를 양산한 장본인이다. 그 뒤 국무총리로 레벨업이 된 상황이었다. 당시는 87년 이후 사회 전 영역에서 솟아오른 저항의 기운이 전두환 군사독재를 계승한 노태우 정부와 격렬히 충돌하던 때다. 분신자살이 잇달아 벌어지고 시위 진압 과정에서 학생이 사망하기도 하는 등, 격앙된 감정이 한국을 휩싸고 있던 때였다. 학생들이 정원식 개인을 공격한 일은 정당화될 수 없지만, ‘왜들 이럴까’ 하는, 순진함을 가장한 위선적인 말은 붙일 상황이 아니었다.

어쨌든 이 충격적인 사진 한 장으로 정국은 완전히 바뀌었다. 중앙일보 제목 식으로 말하자면 ‘이 사진, 정국 뒤집나’였으며, 그렇게 뒤집었다. 87년 6월 민주화 운동을 일궈내며 정당성을 인정받던 학생운동에 대해 정권과 보수 언론들은 ‘스승을 패는 패륜 폭력 집단’ 같은 딱지를 붙이며 선전전을 펼치기 시작했고, 공격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학생운동 전반을 탄압하는 다양하고 집요한 조처가 병행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하여 반정부 운동은 대중적인 지지에 큰 손상을 입은 채 소강상태에 들어갔으며, 이 사진 한 장은 이러한 정국 변화의 일등 공신이었다.

이러한 사례들은, 사진이 그 액면의 메시지, 혹은 공식적인 뉴스 가치를 넘어서 흔히 이데올로기적으로 해석되고 활용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제인 폰다와 정원식의 사진은 이미지에 담긴 이데올로기적 가치를 극대화시켜 활용하려 한 시도가 성공한 사례라 할 수 있다.

통합진보당의 박씨 사진을 놓고 보수 언론들이 비슷한 시도를 하는 노골적인 모습을 읽어낼 수 있다. 이 사진의 문제는 사진 자체가 아니라 이렇게 메시지 전용 및 변질이 이루어지는 점에 있다. 찍은 사진기자는 자랑스러워 할 만하지만, 편집자들은 부끄러워해 마땅한 일이다. 보수 언론의 바람대로 이 사진이 ‘대선 구도를 흔들’ 것인가는 확실하지 않다. 사진 자체가 주는 느낌은 강하지만, 통합진보당 폭력 사태는 그간 계속되어 온 부정 선거 시비와 당내 갈등의 연장에서 벌어진 일이라서, 사진 한 장이 정국을 흔들만큼 큰 충격을 주기에는 독자들의 면역력이 이미 높아진 상태다. 사진이 아니라도 떨어져 나갈 사람은 이미 충분히 떨어져 나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흔들릴 만한 대선 구조랄 것도 여전히 별로 없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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