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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마구’, ‘슬러거’, ‘프로야구매니저’, ‘야구9단’ 등 국내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유명 야구게임에서 양준혁 선수의 이름과 얼굴이 일제히 삭제되고, ‘장남식’이라는 가상의 인물로 대체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현재, 야구선수들의 이름, 외모 등에 대한 권리는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와 일구회에서 가지고 있는데, 양준혁 선수의 퍼블리시티권이 재단법인 양준혁 야구재단으로 넘어가게 되면서 게임회사에서 더이상 양준혁 선수의 이름이나 외모를 사용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이번 사건에서 문제가 된 퍼블리시티권(right of publicity)이란 성명이나 초상 등 자기동일성이 가지는 경제적 가치를 상업적으로 사용하고 통제할 수 있는 배타적 권리를 의미합니다. 정의가 약간 어려운데, 쉽게 설명하면, 가수, 배우, 탤런트, 운동선수 등 유명인이 자신의 초상이나 성명을 광고와 같은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허락하는 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주로 본인의 동의를 얻지 않고, 이름이나 초상 등을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행위가 주로 문제가 됐었는데요, 기술의 발달로 퍼블리시티권과 관련된 문제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는 퍼블리시티권과 관련한 흥미로운 미국 사례를 하나 소개할까 합니다.

Band Hero ©Activision

액티비전밴드히어로라는 유명한 리듬액션 게임을 개발한 회사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콘솔보다는 PC 게임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인지도가 그다지 높지 않지만, 밴드히어로의 전신인 기타히어로 시리즈는 누적판매량이 4,000만 장을 넘어서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입니다.

밴드히어로는 리듬액션 게임이기 때문에 게임을 위해서는 당연히 음악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게임에 유명한 음악이 많이 수록되어 있을수록, 많은 아티스트가 등장할수록 게임성이 더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액티비전은 밴드히어로라는 게임을 만들면서 노 다우트(No Doubt)라는 인기그룹과 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노 다우트는 계약을 통해 액티비전에게 밴드히어로에서 노 다우트의 노래 3곡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하고, 노 다우트의 이름과 외모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습니다.

그런데 밴드히어로에는 소위 잠금해제(unlock) 기능이라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잠금해제 기능이란 요즘 대부분의 게임에서 사용되고 있는 기능인데, 경험치가 일정수준에 도달하거나, 특정 미션을 수행하면 보다 어려운 스테이지나 새로운 캐릭터, 새로운 아이템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기능입니다.

밴드히어로는 플레이어가 일정한 레벨에 도달하면, 그룹 멤버들을 잠금해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습니다. 일단 멤버들이 잠금해제되면, 독주를 시키거나, 노 다우트가 아닌 다른 그룹의 멤버들과 새로운 그룹을 구성하는 것도 가능했습니다(참고로, 노 다우트는 4명의 멤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보컬은 윤도현, 기타는 김태원, 드럼은 전태관인 가상의 그룹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죠.

그런데 노 다우트는 이런 잠금해제 기능이 노 다우트의 퍼블리시티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왜냐하면, 노 다우트는 액티비전에게 노 다우트의 노래 3곡만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했고, 이 3곡에 대해서만 노 다우트의 이름과 외모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했는데, 밴드히어로의 잠금해제 기능 때문에 멤버들의 이름과 외모가 다른 가수들의 노래에도 사용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액티비전은 노 다우트의 주장이 미국 수정헌법 제1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하지만 원심과 항소법원은 이와 같은 액티비전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액티비전의 행위가 표현의 자유로 보호받기 위해서는 유명인의 모습을 그대로 묘사해서는 안되고, 이를 넘어서는 창조적인 요소가 있어야 하는데, 액티비전은 밴드히어로에서 노 다우트의 외모를 그대로 묘사했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통해 보호받을 수 없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습니다.

노 다우트와 액티비전 사례는 유명인의 퍼블리시티권이 어디까지 인정받을 수 있느냐에 대한 고민을 안겨줍니다. 노 다우트는 자신들의 아바타가 다른 가수들의 노래도 연주할 수 있도록 조작되는 것은 노 다우트의 명성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음악가들의 명예와 자존심이 존중받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FIFA Soccer 12 ©EA, FM2012 ©SEGA

축구게임을 예로 들면, FC바르셀로나의 푸욜이나, 리버풀FC의 제라드처럼 한 번도 이적을 하지 않고 팀을 지킨 상징적인 선수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선수들도 축구를 소재로 한 많은 게임에서 자유롭게 트레이드되고 있습니다. 만약 푸욜이나 제라드가 트레이드 기능을 통해 다른 팀으로 이적될 수 있는 기능이 자신들의 퍼블리시티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면, 노 다우트 사례와 동일하게 취급해야 할까요? 노 다우트의 멤버가 다른 그룹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 그들에게 불명예가 될 수 있다면, 푸욜이나 제라드같은 선수들이 다른 팀에서 뛰는 것도 그들에게 불명예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기술의 발달은 항상 새로운 법률적 이슈를 발생시킵니다. 그리고 사회에 새로운 숙제를 안겨줍니다. 이런 이슈들을 어떤 방식으로 처리하는지에 따라 사회가 나아갈 방향이 결정됩니다. 우리가 만약 퍼블리시티권에 대한 나름의 기준을 정해두지 않는다면, 나중에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모릅니다. 물론, 비정규직과 청년실업이 넘쳐나는 참담한 현실에서 연예인들의 명예와 자존심까지 걱정하는 게 그다지 내키는 일은 아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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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댓글

  1. 저러한 권리들이 정작 가장 중요한 팬들이나 이용자들이나 지지자?들에대한 아무런 배려없이 무리를 넘어 무례하게 남발? 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차피 무대에 나왔고 그라운드에 섰다면 무엇보다 그 팬들의 취향?이 먼저 존중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겠네요. 명성이나 명예는 결국 거기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일테니 말입니다.

    예시로든 풋볼매니저의 경우 푸욜이나 제라드의 그러한 현실에서의 상황이 그대로 반영되어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단지 돈으로만 영입이 쉬운 것은 아니더군요.-_-;;

  2. 보통 사람들은 자기와 대중의 공익측면을 우선하는 경향이 높으나,
    실제 저런 권리(재사권 등)은 개인의 사적영역이 더 우선 합니다.

    팬들의 입장에서야, 모든 장르에서 본인이 원하는 것을 접하고 싶겠지만,
    그 범위에 대한 결정은 권리자가 결정하게 되어 있습니다. 실제 이 범위라는게 자신은 합리적이지 라고 하지만, 이게 워낙 상대적 인거 아니겠습니까,

    물론, 가끔 예외적인 경우에 따라 공익이 우선하는 경우도 만들어 놓죠 (애매하게 ~)

    저런 경우에 대해서도 게임회사 등은 일단 허락했으니까, 이 정도는 되겠지 하고 계약하고 사용했겠지만, 권리자 입장에서는 (완벽한 계약은 없을테니) 내가 속아서 이용당하고 있다 라는 생각을 가질수 도 있을 겁니다.
    기술의 발달은 새로운 영역(틈)을 만들어내니, 생각하지 않았던 이벤트들은 계속 생겨나겠죠.

  3. 핑백: 민노씨.네
  4. 이 흥미진진하기 짝이 없는 글에 이토록 논문스럽고, 심심한 제목이 안타까워서(?) 제 개인블로그에 독자이자 동료로서의 마음을 담았습니다. : ) 시간나실 때 한번 읽어주세요!

  5. 유명인의 퍼블리시티권이 광범히하게 사용되는 것이 팬이나 게이머들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면도 있지만, 게임회사의 경제적 이익에 기여하는 부분도 있어서 어느 쪽이 옳다고 쉽게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6. 예. 앞으로도 유사한 문제가 계속 발생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고, 이런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지 나름의 기준이 정립되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7. 제가 봤을 때는 EA가 삽질한 것 같네요. 초상권과 음악 저작권을 함께 구매해야 했는데, 음악 저작권을 구매할 때 서비스로 음악 플레잉 시에 노다우트의 맴버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초상권으로 착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법률에는 문외한이지만 이게 맞는 것 같네요.

    법원에서 말한 창작도 양준혁을 장남식으로 사용한 정도를 요구한 것 같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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