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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지에서 산하의 [접속 1990]까지: 역사에서 승리하는 방법

초등학교 5학년 때인가.

학급문고 도서관에서 [소년 수호지]를 빌려 처음 읽었다. 얼마나 재밌는지 학교만 파하면 냉큼 집으로 달려와 읽었더랬다. 뭐랄까. 좀 에로스가 흐르면서(반금련 등장) 좀 강시적인 느낌도 있고(인육만두 등장), 좀 남성적이고 파괴적인 이야기(노지심, 흑선풍 이규 등장)에 유가적 느낌이(송강 등장) 물씬 밴 대서사에 나는 홀딱 반했다. 개인적으로 삼국지보다 더 재미있었다.

수호지

나이 먹고 다시 수호지를 펼쳤다.

얼마나 짜증스러운지 어떤 때는 북북 찢어버리고 싶었다. 어릴 때는 ‘방납의 난’에 대해 전혀 몰랐다. 도둑떼와 그 두령이 극성을 부리며 조정을 괴롭히는데 양산박의 영웅들이 이에 맞서 용감하게 진압하는 영웅담인 줄 알았다. 군웅들이 그 과정에서 칼 맞고 활 맞고 쟁기에 맞아 죽는 이야기에 살짝 눈물이 나기도 했다. 더구나 동관 장군이 요나라(거란족)가 점령한 남경을 함락하기 직전에 방납이란 나쁜 놈 때문에 회군해야 하는 대목에선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했다.

어린 시절 수호지 vs. 나이 든 수호지 

북송의 휘종은 오늘날로 치면 참 비교하기도 힘든 변태 통치자였다. 휘종은 측근 채경과 동관 등 중국 역사에서 6적으로 남은 인물들에게 전권을 넘기고 자기가 좋아하는 짓거리인 그림과 정원 가꾸기에만 몰두했다. 6적은 신법을 회복한다는 명목으로 세금을 마구 징발하고 백성들이 애써 개간한 땅을 황무지라고 하여 수탈했다. 다른 귀족 계층도 이 기회를 노려 토지를 약탈하기 시작해 불과 십 년 사이에 북송 자영농 대부분이 소작농으로 전락했다.

휘종(1082~1135)

휘종(1082~1135)

휘종은 특히 화석과 기목을 좋아해 수도에 큰 정원을 만들고 동남아 각지로부터 큰 배를 이용해 수도로 운반해왔다. 때로는 거대한 괴암을 운반하기 위해 백성들의 멀쩡한 집을 부수고 양식을 운반하는 선박도 징발하였다. 항주에 이를 전담하는 부서를 설치해 열을 올렸는데 이를 화석강이라 한다. 하여 백성은 점점 더 지옥의 도탄에 빠졌다.

나라를 망친 휘종의 '돌 사랑'

나라를 망친 휘종의 ‘돌 사랑’

1120년 마침내 강남의 농민 방납이 반란을 일으켰다. 참고 또 참았던 백성들은 낫과 쟁기를 들고 호응했다. 백성들의 원혼이 얼마나 깊었던지 관리를 사로잡으면 배를 갈라 간을 익혀 먹고 심장을 회로 처먹고 눈알을 뽑아 잘근잘근 씹어 삼켰다. 그 세력이 바람에 풀밭이 일어나듯 급속히 번져 강남의 핵심 항주를 함락했다. 이에 놀란 휘종과 조정은 화석강을 중지시키고 동관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고 조정의 대병력을 동원해 진압에 나섰다.

3년간 무려 3백만 명의 백성들이 희생되는 대참극이 벌어졌다.

수호지와  4·3항쟁 

소설 수호지는 이 대참극의 정중앙에 위치한다.

양산박으로 흘러들어온 인물을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 유형이다. 송강이나 노준의 호연작처럼 원래는 지주나 하급 관리로 복무하다 간신배의 모략이나 작은 실수로 인해 몰락한 지배층과 무송이나 시천, 흑선풍 이규처럼 지배층의 박해를 받거나 극악한 범죄를 저질러 도망자 신세가 된 피지배층. 이들의 융화와 갈등을 다룬 이야기다.

좀 특이한 인물이 노지심(魯智深)이다. 그는 지배층도 피지배층도 아니다. 가슴 깊이 유가의 높은 의기와 기개를 숨기고 있으면서도 소악과 충동을 거침없이 저지르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인상 깊은 캐릭터다. 수호지의 재미를 더하는 진짜 주인공이다.

노지심(魯智深)

노지심(魯智深)

다시 읽다가 왜 짜증이 치밀었느냐 하면 ‘방납의 난’에 대해 알고 읽으니 자꾸 제주 4·3항쟁과 마디마디 겹쳤다. 북송 조정은 송강에게 사면복권과 벼슬을 주기로 약속하고 진압군의 선봉으로 세웠다. 어릴 때는 그저 영웅들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양아치였던 거다.

비교하자면 제주에서 무자비하게 학살을 저지른 서북청년단. 한편, 속 시원하기도 했다. 서북청년단은 일방적으로 학살을 저질렀지만, 양산박의 양아치들은 농민군의 만만찮은 대반격에 과반 이상 죽어 나갔다. 죽을 때마다 속이 시원했다.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제주도에서 4.3 폭동 사태라는 게 있어 가지고 공산주의자들이 거기서 반란을 일으켰어요."

한때 총리 후보자였던 사람의 역사 인식

다른 점도 있다. 북송 조정은 ‘방납의 난’ 진압 이듬해 양산박을 도적 떼로 규정하며 대규모 토벌에 나서 토사구팽시켰다. 반면 서북청년단은 이 나라 주류의 한 축에 편입됐다. 그 증거가 지금 명동 노른자 땅에 위치한 영락교회다. 당시 영락교회 청년부가 서북청년단의 핵심이었다는 사실은 재야학자의 증언이 아니다. 한경직 목사 스스로 자랑스러운 행동이었다며 책을 펴내기도 했다.

난 우리 현대사 전반에 벌어진 슬픈 역사에 대해 편향적이지 않고 오히려 관대한(?) 편이다. 나라 없이 살았던 46년간 친일파의 행적에 대해서도 웬만하면 이해하련다. 흔히 전후 프랑스의 친독 부역자에 대한 처벌과 비교하는데 그때는 4년이고, 우리는 36년간 나라가 없었다. 내가 당시에 살았어도 어떤 선택을 했을지는 감히 장담 못 하겠다. 해방 전후 좌파와 우파의 혼란상에서도 누가 옳았다고 감히 규정할 수 있겠나.

하지만 제주도에서 벌어진 이 기막힌 반인륜적 대학살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용서가 안 된다. 절대로 그럴 수 없다. 이 어마어마한 영락교회 입구에 두령 한경직의 두상이 버젓이 있다. 어느 날 우연히 지나가다 마주쳤을 때 영혼의 한쪽이 한없이 꺼지는 느낌이었다.

4.3항쟁을 다룬 영화 [지슬]

4.3항쟁을 다룬 영화 [지슬]

그들이 아니었다면… 작가란 무엇인가?

중국은 사가들뿐만 아니라 작가들도 철저히 지배층의 논리에 따라 이야기를 남겼다. 백성과 민중의 이야기는 가려지고 숨겨지고 거의 도적 떼로만 규정되었다. ‘황건적’, ‘홍건적’, ‘비적떼’, ‘00의 난’ 등으로 규정되며 이야기를 남기지 않았다. 루신이라는 탁월한 작가가 등장하기까지 중국인은 스스로 어떻게 살아가는지 몰랐다. 더 황당한 건 공산 혁명 이후에도 이런 흐름이 지속하였다는 것. 철저한 언론 통제가 있었고, 87년을 지나 인터넷 시대를 통해 이제 겨우 스토리를 주고받는 단계다.

최근 파리리뷰가 엮어낸 [작가란 무엇인가]란 책을 읽었다. 움베르트 에코, 밀란 쿤테라, 하루키, 스티븐 킹 같은 세계적인 인기 작가들을 대상으로 인터뷰한 내용이다. 읽다가 난 우리의 소중한 작가들을 떠올렸다.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조정래, 고 김종학 PD, 송지나 등등…

그들이 아니었다면

고백건대, 그들이 아니었다면, 난 여전히 4·3항쟁을 정부에 덤빈 빨갱이들로만 생각했을 것 같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여전히 지리산 빨갱이들을 그냥 빨갱이로만 알았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여전히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왜곡된 시선을 거두지 못했을 것 같기도 하다.

진짜 그들이 아니었다면, 우리 대다수는, 내가 수호지를 읽고 잘못 해석했듯, 여전히 ‘똘이장군’ 세계관에 갇혀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가진 발군의 재능을 헛되이 서북청년단 따위를 미화하는데 보태지 않고 우리가 진실을 직면하는 데 쓴 것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

철저한 반공 판타지 [똘이장군](김청기, 1979)

철저한 반공 판타지 [똘이장군](김청기, 1979)

역사는 결국 많이 남기고 전한 쪽이 승리한다

한국의 민주화가 골짜기에서 산봉우리로 힘겹게 오르던 1990년. 나와 친구들은 대학 입시에 한창 목매야 할 고2 시절을 맞았지만 어른들 말로 헛딴 데 신경을 곤두세우기 일쑤였다. 매미가 맴맴 울던 여름날 한 친구가 헐레벌떡 뛰어와 외마디 비명을 지르듯 “야! 소련에 쿠데타가 일어났대!”라고 하자 모두 교실에서 우르르 뛰쳐나가 분식집 TV에 시선을 집중했다. 미·소 간의 핵전쟁이 발발하나 두려움이 덮쳤던 것 같다.

당시 임수경 누나의 재판을 두고도 옥신각신 다투다 그녀의 부친과 형제들이 직장을 잃었다는 소식에 함께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기도 했다. 그렇게 우린 90년대를 시작했고 끝 무렵엔 외환위기와 덮쳤다. 말이 좋아 분사 시스템이지 본격적인 ‘파견’과 ‘용역’의 시대가 열렸다. 우리네 지갑엔 이영애 언니가 모델로 나오는 카드 따위만 가득했고, 다들 개털이었지.

90년도 제일서적에 수학 참고서를 사러 갔다가 우연히 잡은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그 자리에 서서 다 읽었다. 정신없이 읽었더랬다. 80년대가 남긴 서사에 일종의 경외감을 느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남기지 못했다. 케이블 방송 ‘응답하라’ 시리즈에 대한 열광은 그런 갈증이었지만, 실은 현실과 매우 동떨어진 연애 이야기가 주가 아니던가.

응답하라 1994 포스터

김형민 PD(‘산하’)의 [접속 1990]  

이런 갈증을 씻어줄 발군의 재능을 지닌 한 작가가 등장했다. 김형민 PD(온라인 필명: ‘산하’)가 펴낸 ‘접속 1990’. 그가 말하듯 우리는 마치 ‘백 년 같은 10년’을 지나왔다. 김대중과 호남폄하, 무장공비침투, 삼풍백화점, 서해 페리호, 분신 정국, 양심선언, 모래시계, 장군의 아들, 서편제, IMF 사태와 눈물의 비디오, 맨발의 박세리와 이단옆차기의 박찬호, ’20세기 최후의 전위예술’이었다는 정주영의 소떼 방북, 영원한 가객 김광석까지 등등…

동시대를 산 우리 기억에 다 생생하지만, 이야기로 남기지 못한 걸 그는 재구성해냈다. 사학과 전공자답게 굵직하게 시작해 방송인답게 섬세하고, 꼼꼼하게 마무리해 읽는 재미가 아주 풍부하다.

김형민 PD는 최근 [시사IN]에서 ‘딸에게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 이 책은 그 연재의 프리뷰 같다. 인도의 네루 수상이 감옥에서 딸에게 보낸 서신을 묶어 [세계사편력]으로 펴냈듯 김형민 PD도 딸에게 자신이 살아온 시대의 이야기를 올바르게 전하려는 의지가 돋보인다.

지난해 파주 출판단지에 갔다가 주저 없이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시리즈를 샀다. 마침 2권이 없길래 인터넷에서 별도로 주문했다. 이미 몇 번이나 본 책이지만, 당시 한 살배기 동욱이가 크면 꼭 보여주기 위해서. 나중에 혹 절판될 수도 있으니 바로 샀다. 그럴 가치가 있었다. ‘접속 1990’도 그렇다. 트렌드에 편승한 책이 아니다. 우리 남기고 전해야 할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았다.

혹시 또 아나. 송지나 작가가 이영희나 백낙청의 책을 읽고 모래시계를 펴냈듯 우리 자식 중 누군가도 뛰어난 작가가 돼 [접속 1990]을 바탕으로 우리의 90년대를 재구성해낼지. 다시 강조컨대 이야기를 많이 기록하고, 그 기록을 더 풍부하게 이야기로 만들고, 후세에 전하는 쪽이 승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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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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