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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부 노동자: 대학 청소 노동자가 말하는 ‘관계’의 의미

2014년 11월부터 진행된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지부(페이스북 페이지)의 집단교섭이 2015년 5월 현재 7개월째 접어들며 마무리 국면이다. 그동안 서울지역 14개 대학분회 미화경비시설 노동자들은 고용안정, 임금 인상, 단체협약 이행을 요구하며 20개 용역회사를 상대로 한 집단교섭을 진행했다.

정부가 지침으로 정한 시중노임단가만이라도 지켜달라는 노동자의 요구에 한참 못 미치는 시급 인상안이 타결되는 과정에서 서울여대분회는 지난해 실제 지급된 시급보다 낮은 단가로 올해 용역계약을 체결한 원청을 상대로 파업에 돌입했다. 이삼옥 서울여대 분회장이 일주일간 단식을 감행해도 총장 대면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집단교섭을 통해 최저임금을 넘어 생활임금을 요구하는 임금안이 타결되어도 별도로 진행되는 원청과 용역회사 간 계약에 따라 상황이 다시 원점이 되는 간접고용 노동자의 투쟁은 그렇게 매년 반복되는 ‘일상’이 된다.

간접고용 노동자의 투쟁이 단순한 임금 인상 또는 고용승계를 위한 투쟁으로만 비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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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1일 서울여대 집회 모습 (사진: 유이지운)

연대 송도 국제캠 노동자, “투쟁은 관계 개선 위한 것” 

서울여대분회 조합원들이 “목숨을 내놓겠다”는 현수막을 걸고 단식까지 감행한 것은 단순히 시급 350원을 인상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파업 현장에서 노동자들은 외친다.

“집에서 밥해주고 빨래해주고 집안일 도맡아 하는 가족에게도 그럴 수 있나?”

“우리는 온갖 궂은일 마다치 않고 학교를 매일 쓸고 닦고 한다.”

“총장님, 우리도 학교의 가족이에요.”

연세대 송도 국제캠퍼스 청소경비 노동자 23명은 올해 초 5.5시간 95만 원 ‘점오 계약’(30분 단위 계약; 근로기준법상 8시간 노동에 따른 의무를 피하기 위한 편법 계약) 서명을 거부해 해고됐다.

이들은 4개월간 연세대 본교에서 천막 농성했다. 연세대학교 비정규직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가 꾸려지고 결국, 108일간의 고된 투쟁으로 연세대 송도 청소경비 노동자는 4월 30일 교섭을 통해 “근로조건 저하 없는 고용승계”를 지켜냈다.

연세대 본교에 천막을 치고 연대 투쟁을 진행한 민주노총 전국여성노조 이학금 지부장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한다.

“우리의 투쟁은 관계 개선을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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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말하는 “관계” 

대학 청소 경비 노동자는 어떤 ‘관계’를 이야기하는 것일까?
이들이 행하는 노동의 가치는 어떤 이유로 계속 낮아지는 것일까?
어떻게 이들의 임금은 매년 깎이고 심지어 노동시간마저 줄어들고 있는 것일까?

그들의 투쟁 현장인 연세대 서울 캠퍼스는 대규모 건설 공사 현장이기도 하다.

미로처럼 꼬인 간이 벽을 따라 노동자들은 그들의 요구를 빼곡히 적어놓았다. 오래된 대학 교정의 산책로와 나무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대규모 호화 건물들이 대학의 새로운 상징물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청소, 시설, 경비 노동의 가치는 왜 계속해서 낮아지는 것일까?

노동자의 하루는 8시간 노동시간을 제외하면 자신의 노동력 재생산을 위한 일상의 시간이다. 가정에서 무상으로 제공되던 재생산 노동이 시장에서 상품으로 거래되며 재생산 영역의 모순이 수면 위로 떠오른 셈이다. 오래된 가부장제의 모순과 자본주의의 모순이 중첩되어 경계에 놓인 고령 여성 노동자의 삶을 사회의 주변으로 내몰고 있는 거다.

“노동3권 보장되면 툭 하면 파업할 것” (새누리당 김태흠 의원)  http://slownews.kr/16034

“청소 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되면 툭 하면 파업할 것” (새누리당 김태흠 의원) 김태흠 의원에게 청소 노동자는 동반자적 ‘관계’를 떠나 대한민국 국민이기나 한 걸까?

마르크스의 “은밀한 장소”

마르크시스트 정치철학자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다시 불붙은 자본주의에 대한 논쟁이 여전히 문제의 핵심을 비껴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에만 치우쳐 ‘자본주의 사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고 있다고 본다.

마르크스가 노동력이 상품으로 거래되는 “은밀한 장소(hidden abode)” 라고 묘사한 자본의 생산 영역을 프레이저는 세 가지 경계를 통해 설명한다(김수행 역, [자본론 I상] (2008,제 2개역판) 비봉출판사, 230쪽). 자본주의 체제하의 끝없는 잉여가치의 축적은 생산 – 재생산, 경제 – 정치, 인간 – 자연의 분리를 통해 가능했다.

자본주의 사회는 재생산 영역의 끝없는 축소, 정치체제(polity)로부터 분리된 자유시장경제 확대,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무한대로 활용 내지는 파괴할 수 있는 자연 자원에 기대 잉여를 축적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본주의 사회의 중층적 모순을 극복하려면 생산영역에 국한된 노동자 계급 대 자본가 계급의 투쟁을 넘어서는 인식틀이 필요하다. 프레이저가 정통 마르크스주의 계급투쟁을 넘어 “사회 투쟁(social struggle)”을 주장하는 이유이다(Fraser, Nancy. “Behind Marx’s Hidden Abode.” New Left Review, II, No. 86 (April 2014): 55–72.).

경계 투쟁: 임금인상 고용안정 넘어 관계 재설정 요구 

한국 사회에서 서경지부와 전국여성노조 투쟁을 자본과 노동의 모순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들의 투쟁은 단순한 임금인상과 고용안정을 넘어 ‘관계’의 재설정을 요구하는 “경계 투쟁”(boundary struggle)으로 보아야 한다. 여기서 ‘관계’는 인간관계를 넘어 사회적 경계(생산 – 재생산, 경제 – 정치, 인간 – 자연)에 대한 요구로 읽어야 한다.

대학의 공공기능 축소와 맞물려 진행되고 있는 청소, 경비, 시설 노동자들의 투쟁은 사회 재생산 노동의 가치가 끝없이 추락하고 있는 현실과 함께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자본의 축적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현장이다.

이들의 투쟁이 한국 사회 노동자 일반의 ‘일상’과 무관하지 않으며 이들 투쟁의 성패로 우리의 삶의 조건도 변화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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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유이지운
초대필자. 연구자

페미니즘, 노동, 삶 연구자. → 이메일: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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