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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간강사다: 친구 허벌에게

지방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허범욱(HUR) 作, 르네 마그리트 – The Son of Man(1946) 패러디

10. 꿈과 현실에 대한 이야기 – 친구 허벌에게

내 페이스북 개인 계정은 돌보지 않은 지 몇 개월이 되어 간다.

석사 4기쯤이었던가, 2010년으로 기억하는데 박사과정 선배 S가 보낸 초대 메일에 ‘아, 어쩌지 이건 뭔지 모르지만, 초대에 응해야겠다’고 생각해 가입한 계정이었다. 막상 초대한 선배는 몇 번 근황을 올리는 듯하다가 곧 빠져나갔지만, 나는 공부하는 근황을 올리거나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기록하는 용도로 종종 사용했다.

그러다가 ‘SNS는 인생의 낭비다’라는 퍼거슨의 명언을 떠올릴만한 일이 한 번쯤 벌어지고, 그 일을 계기로 페이스북과 결별하는 평범한 순서를 밟았다. 별것 아닌 글에 대학원 선배 누군가가 반응했고, 술자리를 통해 행동을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계정을 닫았다가 일부 공개로 전환했다.

정말 오랜만에 페이스북에 다시 접속한 것은,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을 같은 처지의 대학원생들이 공유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실제로 내가 페이스북에 쓴 글은 좋아요를 얻고, 공유되었으며, 공감의 댓글을 적당히 얻고 있었다. 특히 누군지 궁금해하는 글들이 많았다.

5년 만에 SNS에서 만난 고등학교 친구

그러던 어느 날 친구 요청이 한 통 도착했다. 연락이 끊긴 지 5년 정도 된 고등학교 친구, 내가 ‘허벌’이라고 부르던 녀석이었다.

이름이 허 씨였는데, 첫 만남 때부터 그냥 ‘허벌’이라고 부르면 되겠다 싶은 부담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반가워서 정신없이 수락 버튼을 누르고,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바로 통화했다.

서른이 갓 넘어 소원했던 친구에게 연락이 오면 보통 ‘결혼’이나 ‘돌잔치’ 초대 같은 것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 친구는 그런 이유가 아니었을 것이고 내가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나는 고등학교 때 소설을 쓰겠다고 항상 책을 가지고 다니며, 노트에 무언가 끄적였다. 쓰고 싶은 소재가 생기거나, 어떤 좋은 표현이 떠오르면 기록했다. 오답 노트나 단어 암기장 대신 습작노트를 곁에 두며 소설을 쓰고 여러 종류의 습작을 했다.

입학할 때 문과 3등 안에 들었던 성적이 어느새 반에서 3등으로, 그리고 다시 쭉쭉 떨어졌지만,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누구나 서울대를 꿈꾸겠으나, 나는 국문과라면 어디나 상관없겠다 싶었다. 국문과가 아니면 가지 않겠다고 중학교 때부터 마음먹고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날 닮은 녀석들 

그런데 나와 닮은 녀석들이 한 교실에 몇 있었다. 내 뒷자리에 앉은 C는 음악을 하겠다고 했는데, 항상 음표를 그리고 이런저런 코드가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했다. 나를 부를 때 ‘야, 작가!’ 하고 불렀는데 나는 그런 그가 좋았다.

한 번은 나를 지역 청소년 문화센터에서 지원하는 자신의 밴드 공연에 초대해 다녀오기도 했다. 내게 작곡을 부탁하기도 했는데, 뭔가 메탈한 음악이라고 하던가… 내가 해줄 수 없는 일 같아 그만둔 기억도 있다.

허벌은 만화를 좋아해서 만화책을 자주 보고 애니메이션 같은 것에 대해 잘 알았다. 그래서 만화를 그리겠다는 것 같더니 시 한 편을 읽고서는 갑자기 문학을 하겠다고 했다. 모교의 문학 교사인 정희성 시인이 자신의 대표 시 [저문 강에 삽을 씻고]를 직접 낭독해 준 일이 있다. 그 후 그는 문학이 가진 힘에 매료되었다.

저문 강에 삽을 씻고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 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 정희성, [저문 강에 삽을 씻고](창작과비평사, 1978)

허벌은 ‘orphan2000’이라는 아이디로 인터넷에 종종 습작을 올렸다. 이러한 친구들이 내 곁에 있다는 것은 내색하지는 않아도 무척 감사한 일이었다. 그때는 정작 몰랐지만, 시간이 흐르고 보니 서로를 지탱해 주고 있었던 게 아닌가. 오래된 기억은 흔히 따뜻하게 추억 혹은 미화된다.

허벌은 고등학교 졸업 후 한동안 소원했다가, 내가 대학원에 진입했을 즈음 연락이 왔다.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 공부 중이라고 했다. 그때 우리는 스물여섯이었다. 대부분 또래들이 취업준비에 바쁠 때, 나는 대학원에 갔고 그는 한국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갔다.

“야 이 미친놈아!” “너도 미친놈이네!” 

우리는 아직 어렸고, 삶에 지쳐 그만둔다고 해도 아무도 비난하지 않을 것이었고, 그래서 큰 감흥 없이 서로를 격려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다시 5년 만에 그와 전화하며 물었다. 첫마디는 “살아있냐?”였다. 그리고 이어서 물었다.

“아직도 하고 있냐?”
“당연히 하고 있지.”
“야 이 미친놈아! 만나서 더 이야기하자.”

나는 정말 기뻤다. 허벌도 나에게 물었다.

“넌, 아직 글쓰냐?”
“아직 쓴다.”
“너도 미친놈이네!”

친구 맥주병 우정

서른둘이 되어 아직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는 건, 그 자체로 격려받을 만한 일이었다. 정말 많은 친구들이 ‘나는 무엇을 하겠다, 저것을 하겠다, 취업은 가치 없는 일이다’라며 호기를 부리다가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던 일반 기업의 신입사원이 되어 오히려 자신을 변호하는 일을 지겹게 보아왔다.

그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살다 보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나 역시 소설을 쓰겠다고 했지만, 대학 제도권의 우산 안에 들어와 연구하며 정해진 양식의 글을 쓰고 있다. 나는 허벌과 서로 근황을 조금 더 묻고 답하다가, 서른이 넘어 하는 여러 지키지 못할 약속 중 ‘언제 밥 한번 먹자’는 것이 대표적이었지 싶어서 아예 달력을 가져왔다.

허벌을 만나다 

나는 수업이 있는 목요일이 아니면 언제든 시간을 낼 수 있었고, 그 친구도 딱히 직장이 있는 것이 아니니 아무 때나 괜찮다고 했다. 참 만나기 쉬운 사이가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10월 8일, 한글날 하루 전에, ‘홍대입구’에서 만났다.

허벌이 소주 한 잔 사겠다고 해 홍대 기찻길 근처의 삼겹살집으로 갔다. 생삽겹이 1인분에 만 원이 넘었는데, 그는 1인분에 5천 원하는 벨기에산 냉동삼겹살을 시켰다. 나는 그게 정말 마음에 들었다. 마음이 편했고, ‘정말 친구를 만나는구나’ 하는 느낌이 자연히 들었다.

허벌은 의외로 말끔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몇 년에 걸쳐 장편 애니메이션을 한 편 만들었고, 그 작업이 얼마 전 끝나서 어깨까지 내려오던 머리카락을 잘랐다고 했다. 그 역시 ‘반사회적인 인간’이었다. 정해진 출근 시간도 없고, 서비스 제공을 위해 대면할 사람도 없고, 무엇보다도 돈이 되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나도 사실 학기 시작을 앞두고서야 머리를 단정하게 자른다. 학기가 끝날 때쯤 되면 머리가 좀 길다 싶은데, 방학 동안 강의가 없으니 그대로 기르다가 다시 새 학기가 시작할 즈음에 머리를 손질한다. 1년에 두 번, 많아야 세 번 미용실에 간다.

허벌이 내민 책, [창백한 얼굴들] 

그는 나에게 책 한 권을 내밀었다. 자신이 직접 쓴 것이라고 했다.

“이게 뭐냐?”고 물으니 자신이 감독한 장편 애니메이션 [창백한 얼굴들]이 곧 개봉 예정이며 그 책은 으레 쓰는 ‘제작일기’ 같은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허벌은 계속해서 애니메이션을 공부했고, 결국 자신이 감독한 장편 애니메이션의 개봉을 앞둔, ‘감독님’이 되어 있던 것이다.

나는 너희들과 같이 살고 싶다.
너희들처럼 가족들의 손을 잡고 거리를 걷고 싶다.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뛰고 싶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 들여 주길 바란다.
나의 특별함은 너희들을 해치지 않는다.
나는 틀린 것이 아니다.
너희들과 다른 것뿐이다.

-허범욱, ‘감독의 연출 의도’ 중에서

그간의 생활이 얼마나 혹독했을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하루에 두 개 이상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림을 공부했다고 했다. 자신이 청춘을 바친 곳에서 어떠한 형태로든 만족할만한 결과물을, 성과를 내었다는 자체로 얼마나 훌륭한 일인가.

허범욱 감독, [창백한 얼굴들] 중에서

허범욱 감독, [창백한 얼굴들](2014) 중에서

버팀, 가장 감사한 일 

하지만 무엇보다 감사한 일은, 어찌 되었든 그가 서른둘이 되는 동안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는 점이다. ‘버팀’처럼 힘든 것도 없다는 것을, 나는 지난 석사 1기부터 박사 4기, 수료 후 강사 생활 등을 통해 뼈저리게 느꼈다. 그러한 친구와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 정말 오랜만에 고양과 행복을 주었다.

나도 그에게 내가 2011년에 통과시킨, 제일 마음에 드는 논문을 한 편 선물했다. 서로 무언가 청춘을 바쳐 얻어낸 어떤 결과물을 전달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혹은 누군가 아직 마음에 드는 무언가를 줄 수 없다고 해도 크게 상관은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버텨냈고, 버티고 있으니까…

적당히 삼겹살을 2인분씩 먹고, 맥주를 한잔 더 하러 갔다. 허벌은 내게 자신의 단골집이 있는데, 맥주가 무척 싸다고 했다. 아니 뭐… 맥주가 싸봤자 얼마나 싸고, 비싸봤자 얼마나… 아니, 비싼 맥주는 한없이 비쌌던 것 같기는 하다.

친구 우정 남자 사람 인간

그와 홍대를 지나 상수까지 걸었다. 고등학생 시절 교복 넥타이 휘날리며 함께 걷던 홍대 거리다. 이제는 영화감독이 된 녀석과 십수 년 만에 다시 걸으니 비로소 감회가 새로웠다. 그는 어느 가정집 같은 곳으로 나를 안내했는데, 내가 여기 뭐 간판은 어딨어, 하니 요즘 촌스럽게 무슨 간판이야 하고 웃었다.

정말 가정집을 개조한 것 같은 그곳은 빈 테이블 없이 손님으로 가득했다. 그래서 카운터 간이의자에 앉았는데, 일회용 커피컵에 맥주가 가득 담겨 나왔다. 한 잔에 1,500원이라고 했다. 안주도 5천 원이 넘지 않았다. 예술인이 단골로 삼을만하네, 하고 웃었다.

‘외로운 배’라는 필명을 쓴 한 소설가 

그의 아이디는 앞서 이야기했듯 ‘orphan2000’이다. ‘orphan’, 즉 고아라는 뜻이다. 한동안 힘들었을 것이다. 외로웠을 것이다. 가끔은 죽고 싶었을 것이다.

100년 전에도 비슷한 아이디를 쓴 소설가가 있었다. [무정]을 쓴 이광수다. 그는 고아가 되어 일본으로 건너가 홀로 유학했는데, 그의 필명은 항상 고주(孤舟), ‘외로운 배’라는 뜻이었다. 그가 일본에서 겪었을 생활고와 그에 따른 외로움을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그는 그런 과정을 통해 1917년 매일신보에 소설 [무정]을 연재할 기회를 얻는다. 매일신보는 당시 조선에 존재하는 유일한 신문이었다. 어째서 이광수가 그런 축복을 받았는가는 모르겠지만, 그는 자신의 결과물을 생산하고 유통해 최초의 장편 소설가라는 칭호를 얻게 된다.

이광수, 봄의 정원으로 피다 

그즈음 이광수의 필명, 아이디는 ‘외로운 배’에서 ‘봄의 정원’으로 바뀐다. 춘원(春園), 급작스러운 태세전환이다. 그토록 외로웠던 한 인간이, 버티고 버텨 청춘의 결과물을 내놓으며 그만큼 행복에 고양되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이광수는 조선 최고의 소설가로 우뚝 서고, 춘원은 그를 대표하는 아이디가 된다.

아마 허벌도 이제 ‘고아’라는 아이디를 고집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에게 이광수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자 무척 재미있어했다. 100년이라는 세월 이전의 인간과 이렇게 교감할 수 있는 청춘이라는 것도 좋지 않은가 싶었다.

그래도, 앞으로 오랫동안 외로울 것이다. 현실은 계속해서 돈으로, 세월로, 그 무엇으로 압박할 것이고 부모님의, 친척들의, 친구들의 눈치를 보는 것도 괴로운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자신이 만든 따뜻한 정원 안으로 모두를 초대할 날을 기다린다.

조금씩 나무를 심고, 돌멩이를 골라내고, 물길을 내면, 그렇게 논문을 쓰고, 좋은 강의를 하고, 혹은 그림 그리고, 시나리오를 쓰면 나의 정원이 완성될 것이다. 나무 하나만 덩그러니 있는 실망스러운 곳일지라도, 괜찮다. 계속해서 그곳을 가꿨다는 자체로 존경할만한 정원사다.

친구야, 꿈의 정원에서 만나자

함께 꿈꾸던 친구들은 서른이 넘어 다시 만난 자리에서 보통 자신의 과거를 철없던 행동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여유가 생기면 다시 시작할 ‘취미’로 ‘꿈’을 격하시킨다. 괜찮다, 살다 보면 그런 것이다. 비난할만한 일도 아니고 오히려 ‘사회인’이 되었음을 축하해야 한다.

하지만 허벌과 같은, 혹은 제도권에 한 발 걸치고 있지만, 여전히 반(反,半)사회적 인간인 나와 같은 인간들과 대면했을 때, 그것을 철없음으로 여기는 일만은 없었으면 한다. 그것은 서로의 과거에 대한, 그리고 아직도 후진 기어를 넣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과거 진행형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우리도 어쨌든 자신이 선택한 도로에서 열심히 달리고 있다.

허벌과 나는 맥주 두 잔씩과 과일 안주 한 접시를 먹고, 다시 작별했다. 영수증에는 만 원이 채 안되는 금액이 찍혀 있었다. 언제 다시 만날지는 기약이 없고, 서로 힘든 삶을 살아갈 것도 안다. 하지만 쉽게 포기하지 않고, 다시 버텨낼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이 글을 허벌을 위해 쓴다. 그가 계속해서 좋은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내고, 그의 정원에 나를 초대해주길 간절히 바란다. 나 역시 그러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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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309동 1201호
초대필자. 대학강사

지방대 시간강사, 인문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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