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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정부가 2016년 예산안을 공개했습니다. 여기에는 흥미로운 지점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바마 정부는 5가지 포인트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오늘, 우리는 전보다 더 많은 국민과 소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예산안에 대한 설명이 과거와는 조금 다르게 보일 겁니다. 2016년 예산안에 대한 5가지 새롭고 다른 점을 소개합니다.”

“Today, we’re able to communicate with more Americans than ever before, which means our budget presentation looks like a little different than it did decades ago. Here are five things that are new and different about the Fiscal Year 2016 budget.”

출처: 백악관 블로그 – 5 New Things About the Fiscal Year 2016 Budget

오바마 정부가 밝힌 다섯 가지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 첫째, 오픈소스 포맷으로 공개
  • 둘째, 읽기 쉬운 포맷에 맞춰 전체 예산안 문서를 공개
  • 셋째, 기존 기반 시설에 대한 유지보수도 포함
  • 넷째, 예산안을 한눈에 파악 가능한 인터랙티브 버전으로 공개
  • 다섯째, 이번 예산안은 기후 변화에 중점을 둠

이 중에서 셋째와 다섯째는 정책의 내용적인 측면이라 정치, 사회적인 관점에서 별도의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첫째, 둘째, 넷째 포인트 위주로 공개 형식에 관한 설명을 하겠습니다.

오픈소스 포맷으로 공개한 것의 의미

이번 공개 방식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입니다. 오바마 정부는 예산안과 예산안의 처리 과정 자체가 나라의 가치를 반영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예산안 데이터를 깃허브(GitHub)라는 오픈소스 형상관리 툴로 배포합니다.

[box type=”info” head=”형상관리란?”]소프트웨어를 개발하다 보면 기획, 개발, 디자인 등 다양한 곳에서 처음의 계획과는 다르게 수정사항이 발생합니다. 만약 수정할 때 그 변경 내역을 제대로 기록해두지 않으면 아마도 프로젝트는 산으로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또한, 중간 결과물들을 제대로 보관해두지 않으면 엉뚱한 방향으로 진행된 프로젝트를 되돌리거나 갑자기 날아간 결과물을 복구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문서 작업하다가 임시 저장으로 살려낸 문서들을 떠올려보세요.)

형상관리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바로 “버전 관리”입니다. 특정 시점으로 버전을 되돌릴 수도 있고, 새로운 버전이 어떤 개선사항을 가지고 만들어졌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줍니다. 개발과 관련한 모든 공식적인 기록이 남길 수 있으니까요.[/box]

깃허브(GitHub) 로고깃허브는 쉽게 말하면 버전을 관리하는 서비스입니다. 또한, 대부분의 형상관리 툴이 그렇듯 여러 명이 동시에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기능을 갖췄습니다. 페이지를 보면 벌써 8명의 기여자(contributor)들이 22개의 커밋(commit)을 했습니다. 커밋이란 프로젝트의 내용을 수정(업데이트)한 후 기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깃허브에 공개한 2016년 예산안은 실제로는 데이터를 담은 csv 파일 3개가 전부라 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데이터 정보(readme), 이용자 가이드(user guide), 라이센스를 알리는 문서가 담겨 있습니다.

일반 이용자는 실제 데이터에 대해 백악관에서 직접 관리하고 공개한 것이니 의견을 낼 수 없겠지만, 함께 포함된 문서들의 오타를 잡아주고, 링크를 추가하는 등 미 정부의 예산안 문서를 함께 만들고 있는 것이지요.

국민들과 함께 2016년 예산안 문서를 함께 작성합니다.
국민들과 함께 2016년 예산안 문서를 함께 작성합니다.

마크다운최초에 오바마 정부의 담당자가 저 문서들을 마크다운(Markdown) 형식으로 올린 것도 흥미롭습니다. 마크다운은 매우 간단한 문서 형식으로 문서 작업에 적합한 html과 호환이 됩니다. 배우기도 매우 쉽고 인터넷에 매우 친화력이 높은 포맷입니다.

마크다운은 깃허브의 공식 문서 포맷이긴 합니다만 사실 깃허브에는 어떤 파일 형식이든 다 올라갑니다. 하지만 백악관은 조용히 그리고 당연하게 깃허브의 룰을 따른 거죠.

사실 깃허브는 대중적인 서비스는 아닙니다. 깃허브에 데이터를 올린다고 해서 대중의 접근성이 더 넓어졌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솔직히 개발 인력이 아니면 누가 깃허브를 알았겠어요.) 그렇다면 깃허브에 올리는 의미는 뭘까요.

문서 작성의 모든 과정이 투명해진다

일단 대중에 문서를 공개한 후 수정되는 과정이 깃허브에 모두 기록되고 누구나 열람할 수 있습니다. 깃허브는 형상관리 서비스니까요. 언제 무엇을 수정했고 누가 피드백을 줬는지, 어떤 피드백에 답했는지 모두 알 수 있습니다. 과정이 투명해집니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많은 것들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완벽했다가도 시간이 흐르면 부족함이 생깁니다. 그럴 때마다 업데이트하고, 공지사항으로 알리고, 이용자의 동의도 받고 참여를 받아 함께 성장합니다. 구글은 지메일을 약 10년간 베타버전으로 유지했습니다. 과거 현실에 존재하기 힘들었던 참여와 소통, 민의의 반영이 가능한 공간이죠. 오바마 정부는 이번 예산안을 가장 인터넷스러운 방법으로 공개한 것입니다.

함께 다양한 대안을 주고받을 수 있다

이용자들은 공개된 자료에 대해 단순히 피드백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걸 제안할 수도 있습니다.

국민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정부는 적극적으로 소통합니다.
국민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정부는 적극적으로 소통합니다.

실제로 현재는 csv, 쉽게 말해 엑셀 문서 3개만 들어있지만 여러 제안을 통해 점점 더 데이터 포맷도 지원할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이 과정은 모두 투명하게 공개됩니다.

데이터를 이용하여 자신만의 업그레이드 버전 가능

깃허브에는 포크(fork) 기능이 있습니다. 즉, 다른 사람의 프로젝트를 그대로 복사해 온 다음에 기존 프로젝트는 그대로 두고 복사 버전을 자기 마음대로 수정할 수 있는 기능입니다. 현재 69개의 포크가 발생했습니다. 그냥 테스트로 포크한 사람들도 있을 테고 이걸로 뭔가 해보려고 마음먹고 포크한 사람도 있겠죠.

예쁜 표로 만들어주는 버전을 만들 수도 있고, 그래프로 표현해주는 버전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건 공식 버전이 아니지만 백악관이 누구나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CC0 라이센스로 데이터를 공개했으니 마음껏 활용할 수 있는 겁니다.

진짜로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심지어 저 같은 외국인에게도요.
진짜로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심지어 저 같은 외국인에게도요.

읽기 쉽게 공개

데이터를 그냥 던져 주거나 읽을 사람만 읽으라고 보도자료로 (hwp 파일 형식으로) 뿌리는 것이 아니라 아예 홈페이지에 항목별로 자세히 나눠 공개했습니다. 이처럼 미디엄(medium)에 공개한 것과 인터랙티브 버전으로 공개한 것은 이용자들이 읽기 쉽게 하도록 노력했음을 의미합니다.

미디엄은 2012년에 트위터 창업자 에반 윌리엄스와 비즈 스톤이 만든 블로그 서비스입니다. 여러 잡다한 기능들보다는 독자들이 글에 집중할 수 있게 많이 공들인 서비스로 유명합니다. 실제 독자들이 읽는 화면은 매우 단순합니다. 화면에는 글의 제목, 내용, 필자 정보 등 글과 직접 관련된 것만 보이며 전체적인 타이포도 매우 시원합니다. (물론 한글에 최적화되어있진 않습니다) 가독성이 매우 좋죠.

2016년 예산안의 상세 내용은 미디엄에 공개를 했다
미디엄에는 목차부터 시작해서 여러 개의 글로 나누어 각종 도표와 함께 공개했습니다.

페이스북처럼 대세가 된, 방문자가 많은 서비스를 이용하지도 않고 백악관 홈페이지가 아닌 다른 곳에 글을 올린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 다른 곳이라는 게 정부가 만든 서비스도 아닐뿐더러 글을 가장 집중해서 읽을 수 있는 플랫폼으로 유명한 곳이라는 건 의미가 큽니다. 같은 내용이라 하더라도 어떤 매체에 실리는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고 반응이 달라지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겠죠. 저는 여기서 우리가 공개한 내용을 자세히 파악해 달라는 의도를 읽었습니다.

백악관 자체 홈페이지에 인터랙티브 버전을 실은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색상별로 나뉜 블럭을 통해 각 예산의 규모와 사용처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이 인터랙티브 버전의 예산안 보기는 모바일 버전을 지원하지 않습니다. 모바일 디바이스에서도 잘 보이나 모바일 디바이스의 가로 화면이 아니라 일반 데스크탑 화면만을 지원한다는 뜻입니다. 다행히 플래시를 이용하지 않아 자바스크립트가 지원되는 요즘 스마트폰, 태블릿에서 작동이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백악관 홈페이지 실린 2016년 예산안 인터랙티브 버전
인터랙티브 버전은 미니멀한 구성으로 백악관 홈페이지에 실렸습니다.

인터랙티브 버전에서 느껴지는 세심한 선

한 가지 더 제가 여기서 주목한 것은 바로 “줌 백 아웃”(Zoom Back Out) 버튼입니다. 예산안 블럭은 마우스 좌클릭을 하면 줌인해서 더 상세히 들어갑니다. 그리고, “줌 백 아웃” 버튼을 누르면 다시 그 이전으로 빠져나옵니다. 이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과 같은 터치 디바이스를 배려해 준 인터페이스입니다. 웹페이지에서 터치 디바이스는 보통 터치만 가능하니까요.

혹시라도 여기에 사용성을 높인다고 추가 제스처나 많은 기능을 추가하고 그걸 또 설명한다고 각종 설명문을 추가하면 굉장히 잡다하게 보이고 더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인터랙티브 버전을 제작한 사람들은 사용성과 시각성에서 열심히 줄타기를 한 것 같습니다.

  • 직관적이고 쉬운 버전으로 만들자.
  • 이 버전을 보러 올 정도의 사람이면 이런 인터랙티브 조작에 익숙할 것이다.
  • 따라서 버튼이나 설명을 두되 최소화함으로써 직관적을 확보하자.
  • 터치 디바이스로 위한다고 여러 가지를 추가로 구현하려면 눈에 안 보이는 작업이 월등히 많아지니 이 정도로 깔끔하게 처리하자.
  • 그래도 조금 더 사용성을 좋게 해줄까? 마우스 우클릭을 하면 이전으로 빠져나오지만 이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제가 머릿속으로 그려 본 대략의 개념은 이렇습니다. 물론 이 결정의 선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더 화려하게, 더 친절하게, 더 다양한 버전을 원할 수도 있죠. 하지만 저는 그 선의 위치가 아니라 완결성과 사용성 사이에 목표를 세운 후 그 목표를 구현하고 타협하는 선을 지키려고 노력한 것이 보였다는 것입니다.

열린 정부, 디지털 정부를 위한 노력

이상으로 오바마 정부의 2016년 예산안 공개 형식이 가지고 있는 특징들을 살펴봤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우리나라는 이미 오래전에 정부 3.0이라는 이름 아래 다양한 공공정보를 개방, 공유하고 부처 간 소통, 협력하는 운영 패러다임을 천명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모두 서비스를 직접 하려고 하면서 물의를 일으키거나 각종 공인인증서와 액티브엑스를 비롯한 플러그인으로 포장해서 접근성조차 제대로 확보하지 않은 서비스들이 대부분입니다. 정부 서비스이면서 검색을 막기도 하죠.

이번 오바마 정부의 예산안 공개는 디지털과 인터넷에 관한 좋은 접근은 화려하고 완벽한 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음을 보여줬습니다. 디지털 시대에 참여를 시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파악하고 있음도 보여줬습니다. 디지털 서비스의 시작이 단순히 이미지 파일이나 몇몇 동적으로 작동하는 웹페이지가 아님을 말이죠.

[box type=”note”]참고로 물론 우리 정부도 방향을 잘 잡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으니 잘못한 것은 이야기하고 잘한 것은 칭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좋은 예가 있습니다. 바로 민간 서비스와 유사하거나 활용도가 낮은 공공기관의 서비스를 전체적으로 정비한다는 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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