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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주민이 말하는 민변

1996년, 신도림역 부근, 세 가구만 남은 아주 작은 철거촌. 더는 기댈 곳 없는 이들이 찾은 곳은 서울대 법대 학생회였다. 학생들은 철거촌에서 함께 잠자며, 고민을 나눴다. 그렇게 몇 개월이 흘렀다. 당시엔 영구 임대주택을 구청장이 지정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마지막 희망인 구청장을 만나기 위해 아침부터 길을 나섰다. 크리스마스이브였다. 그때를 박주민은 이렇게 기억한다.

“그때 눈이 엄청 왔어요. 철거민 가족 꼬마도 있었거든요, 두 명. 구청장이 만나준다고 해놓고, 아침에 갔는데 5시까지 안 나오는 거에요. 들어오라는 얘기도 안하고… 주차장에서 꼬마들이랑 머리에 눈이 이렇게 쌓일 때까지 맞았어요. 그래서…  결국 못 만났죠.

돌아가는 저녁 버스 속에 차창에 막 눈발이 휘날리고, 에이씨, 왜 우리가 하루종일 기다려도 안만나주는걸까? 그때 처음으로 사법시험 볼 생각을 했어요. 내가 변호사가 돼서 운동하면,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줄 것 같다. 그때가 4학년 때였어요. 좋다, 그럼 내가 5학년 때까지 학생운동 1년만 더 하고, 군대 갔다 와서 공부해 변호사가 돼야지. 그때 처음 마음먹었죠.”

2012년, “야간집회금지 헌법불합치판결의 주인공” 박주민은 7년차 변호사로 활발하게 ‘운동’하고 있다. 트위터 @2mb18nomA 에 대한 행정소송 1심 패소 직후, 박주민을 그가 일하는 <한결>에서 만났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에서 ‘가장 많이 일하는 변호사’로 알려진 그에게 우선 민변의 이모저모와 그의 ‘운동’에 대해 물었다. (@2mb18nomA 계정의 주인공인 ‘임영박’과 함께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상대로 한 시정요구 취소 행정소송의 쟁점 인터뷰는 곧, 별도 발행할 예정이다.)

민변은 다른 시민단체와는 다르다

– 민노씨: 민변에선 소장파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활동은 얼마나 하셨죠?

박주민: “허리라고 하기에도 좀 그렇고, 허리 바로 아래 정도죠. 민변 회원이 된지는 7년이 됐습니다.”

박주민 변호사

– 우선 민변 내부의 속성, 역학이랄까요. 누가 주도하고, 어떻게 운영되는지, 이런 것들 많이 알려지지 않잖아요?

“그렇죠. 잘 알려지지 않았죠. 대부분 민변이라고 하면 참여연대와 같은 시민단체와 똑같은 조직인 걸로 아세요. 그래서 ‘민변 변호사’라고 하면, 민변이라는 단체에 속해서 거기서 마치 시민단체 활동가들처럼 그렇게 활동을 하는 아는데요. 상근 변호사는 세 명 있습니다. 나머지는 다 비상근이고요. 자기 회사와 자기 사무실이 있는 상태에서 민변 회원으로서 민변이 부여하는 과제라든지 역할을 수행하는거죠. 그게 우선 차이점이고요.

두 번째로 일반 시민단체들은 시민들에게 후원금을 받잖아요. 그런데 민변은 변호사 회원들로부터만 회비를 받아 운영되는 조직입니다. 그래서 회비가 상당히 세요. 3년 차 이상이면 월 10만 원씩 회비를 내요. 회비 이외에 일반 후원금 같은 건 없습니다. 물론 나꼼수의 ‘표현의 자유 기금’이라든지, 2008년의 ‘촛불 소송 기금’ 등을 모으긴 했었는데요. 그 이유는 워낙에 민변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니까 회비만으로는 충당이 안 되는 상황에서 기금을 모아 변론기금으로 쓸 수 있도록 해주신 거죠.”

– 민변의 활동 재원이 일반 시민단체와는 다르다는 말씀을 주셨는데요.

“나꼼수 기금, 촛불 기금 같은 예외적인 기금 외에는 시민들에게 돈을 받지는 않기 때문에 시민들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부분이 있죠. 다른 시민단체들은 당연히 후원해주시는 시민회원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겠지만, 민변은 그냥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가는 거죠.”

– 일반적인 시민단체들과 달리 시민회원들이 아예 없으니 간섭이 적다?

“네, 그런 압력이 없죠. 일반 시민들로부터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곤) 후원을 받지 않고, 회원들의 의사합치로 진행되니까, 독립성이랄까요. 좋은 말로는 독립성, 나쁜 말로는… 뭐랄까, 자칫하면, 시민들과의 호흡이 떨어질 수 있는 그런 측면이 있죠. 또 대규모 사업도 못하고… 돈이 없으니까.”

– 민변 상근 인력이 세 명뿐이란 건 새삼 놀라운데요. 민변을 대표하시는 분들인가요?

“아니요. 대표나 실제로 사무를 총괄하는 사무총장은 비상근이시고요. 회원교육을 담당하는 교육팀, 회원을 관리하는 회원팀, 변론사정 지정을 담당하는 변론팀. 이렇게 세 팀을 상근변호사께서 맡고요. 사무처 나머지는 또 비상근이죠. 전체적으로 보면 민변 사무처 변호사들도 비상근이 훨씬 더 많아요.”

– 올해 민변의 주력사업은 뭔가요?

“올해엔 시민들과의 접촉면을 넓혀가는 것에 주력하려고 합니다. 여러 가지 대중서적을 출간할 예정이고, 시민들께서 쉽게 민변에 대해 알 수 있도록 홈페이지도 개편하려고 하며, 시민들과 직접 만날 수 있는 시민강좌도 개설하려고 합니다.”

과대평가와 과소평가 사이에서  

– 민변 변호사로 7년 동안 활동하셨는데요. 민변을 보는 시선은 과대평가도 있고, 폄하된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일단 과장된 이미지에는 어떤 게 있을까요?

“일단 민변 변호사들이 엄청나게 많은 걸로 알고 계세요. 사실 회원수는 꽤 돼요. 이제 뭐, 800명 정도 되니까. 하지만 실제 왕성하게 활동하는 분들은 많지 않아요. 근데 많은 분들이 ‘민변’하면 변호사들도 엄청 많고, 활동하는 변호사들도 엄청 많은 걸로 알고 계신 데요. 그렇진 않다는 거죠.”

– 열혈 변호사는 적다는 거죠?

민변, 왜 이렇게 오만해? 사실은…

“네. 그러니까 엄청나게 적은 인원이 과부하 걸리도록 일하고 있는 조직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래서 의외로 연대사업을 할 때 기민하게 못 움직여요. 왜냐면 사람이 없거든. 그런데 일반적인 시민단체들은 그걸 잘 모르시고, ‘아씨, 왜 민변 이렇게 오만하게구냐’이러시기도 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거죠. 두 가지인데요.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게 첫 번째고, 한편으론 재는 부분이 있긴 해요.  왜냐하면, 법률가 조직이기 때문에 한쪽에 너무 치우치면 말에 신빙성이 사라져요. 민변에서 의견을 냈을 때 최소한 그 말 자체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 면에서 정치적 색채가 강한 연대사업에 대해선 주저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적극 참여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가 않다. 하하.”

– 폄하된 부분은?

어휴, 저 변호사 같지도 않은 놈들!

“그러니까, ‘어휴, 저 변호사 같지도 않은 놈들’ 이런 식으로 얘기해요. 법률가 집단 내부에서요. 그러면서 이런 식으로 얘기하기도 하죠. ‘쟤네들은 무슨 맨날 기본권만 얘기해?’라든지, ‘쟤들은 법조인 같지가 않아!’ 어떻게 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지금 기존에 확립된 판례라든지, 현행 법질서가 뭔가 문제가 있다고 계속 제기하다 보니까, 기존 법조인들이 봤을 때는, ‘아니 판례가 이런데 왜 저런 주장을 해’ ‘아니 법이 이렇게 있고, 법원이 이렇게 계속 해석해 왔는데 왜 틀렸다 그러는 거야, 이런 공부도 안 하는 놈들’ 이런 식으로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저희가 봤을 때는 말이죠. 그래서 그런 부분에선 법조인들 사이에선 많이 폄하된 것 같고…”

– 민변의 전문성에 대한 지적에 대해선 어떻게 보세요.

당장 싸워야 할 적은 앞에 있는데…

“민변이 전문적이지 않다고 그러시는데, 그런 비판에 대해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당장 싸워야 할 적은 앞에 있고, 시간은 급하고’ 저희가 참조할 수 있는 자료는 상당히 빈약한 상황이었고. 그러다 보니까 바깥에서 보기엔 상당히 논리가 빈약한 걸로 비쳤던 면도 있는 것 같아요. 요즘은 조금씩 나아진 것 같아요. 민변 내부에서도 뭐라고 할까, 네트워킹 같은 게 생기면서 필요하면 바로바로 교수님들과의 토론회 같은 거 잡아버리거든요. 그러면 교수님들이 바로 생산을 해주세요. 그래서 그렇게 얻어진 자료를 통해서 소송에 임하고요. 그런 식으로 요즘은 좀 기민하게 작업을 하고 있죠.”

<한결>에서 만난 박주민

민변의 사회적 의미

– 민변이 갖는 사회적 의미는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법률 전문가 집단이 개혁적인 성향을 갖고 계속해서 사회의 부조리와 제도의 모순에 대해 발언을 한다는 그 자체에 굉장히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법이라는 것 자체가 굉장히 보수적이잖아요. 그런데 법과 판례를 개혁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사회적 발언을 계속하는 거.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고요. 민변이라는 조직이 없더라도 누군가는 했을 텐데, 민변이라는 조직이 있어서 좀 더 강하고, 효율적으로 해왔던 것 같습니다. 또 그런 역할을 해오는 사람들이 지치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고…”

– 민변이 주도하고, 참여한 소송들 가운데 의미가 있는 소송을 뽑자면?

“제가 민변의 역사를 꿰고 있진 못합니다. 제가 경험한 7년 정도에서는 여러 가지 소송이 있어요. 하나만 꼽기는 참 어려울 것 같고, 예를 들면 ‘긴급조치 위헌’ 판결도 작년에 나왔었지요. 현대차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판결, 야간집회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법이 위헌이라는 판결도 저는 상당히 중요한 판결이라고 생각해요. 몇십 년 동안 유지됐던 틀을 깨는 중요한 소송들이었던 것 같아요.”

– 박주민 개인에게 가장 의미가 있는 사건은?

“제가 개인적으로 성과를 낸 소송인 야간 집회 금지와 관련 소송이죠. 그때 엄청 기분이 좋았고, 뭔가 역할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었고요. 그 힘으로 아직까지 운동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헌법의 전문에 기록된 현대사의 주요한 사건 두 가지, 3.1 독립운동과 4.19혁명은 모두 집회, 시위였고 현행 헌법을 탄생시킨 1987년 민주항쟁 역시 국민들의 뜨거운 참여로 이루어진 거대한 집회, 시위였다.”

– 박주민, ‘아름다운 밤이에요!’, <호모 레지스탕스>, 서울: 해피스토리, 2011, 106쪽

대한민국에서 변호사라는 직업

– 변호사란 직업이 어때요?

“일단 자유로운 부분이 있어요. 로펌에 속해 있더라도 정해져 있는 틀이 없기 때문에 빡빡한 노동통제가 안 되죠.두 번째는 남들이 봐줄 때 좀 전문적이라고 봐주기 때문에, 말을 하면 똑같은 말을 해도 좀 더 믿어주시죠. 뻔하게 틀린 소린데도 믿어주시고… 하하. 그래서 운동하기 편한 면이 있긴 해요. 다른 활동가들에 비해서, 약간 죄송할 정도로 그런 게 있죠.”

– 자연스럽게 질문이 연결되는데, 변호사는 대한민국에서 특권층으로 분류될 수 있잖아요. 사람이니까 ‘으쓱’하기도 하고, 또 한편 실존적으로 경계하기도 하고 그럴 것 같은데요.

“저는 1,2년차 때엔 분명히 그런 부분이 있었는데, 부딪히면서 체험하다 보니까 별거 아니라는 생각을 스스로 갖고 있고, 오히려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을 때가 일이 더 잘되고요. 활동하면서 만난 활동가들이 대단하신 분들이 너무 많아요. 예를 들어 진보넷 장여경 선생님 같은 경우에는 정보통신 파트에선 엄청난 수준이시잖아요? 정보공개 파트에선 전진한 사무국장 뭐 이건 말할 수 없고, 학생인권의 배경내 씨는 엄청난 철학적 깊이를 갖고 계세요. 우리 운동 역사가 꽤 됐잖아요? 이제 활동가들 가운데 전문가라고 부를 수 있는 분들이 더 많아요. 풀도 커지고, 수준도 높아진 거죠.”

– 본인은 그런데 다른 법조인들은 어떤 것 같아요?

“그런데 다른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 분들이 검찰이에요. 검찰은 어떠냐면, 검사가 처음 되면 ‘영감님, 영감님’하고 존중해주잖아요? 처음엔 본인들도 불편해하데요. ‘저 좀 편하게 해주세요.’ 하다가, 어느 순간, 거기에 취해버려요. 취하면서 깨닫게 되죠. ‘아, 내가 이렇게 존중을 받는 건, 내가 잘났기 때문이 아니라 검찰이라는 가문이 훌륭해서 그렇다.’ (목소리 톤이 다소 높아지며) 가문의 영광을 위해서 매진하게 돼요. 가문의 수족처럼. 그런 방향으로 움직이는 거죠.

뭐 변호사들도 그렇게 갈 수도 있겠죠. 변협(대한 변호사협회)에선 변호사 숫자 늘리는 건 절대 반대하거든요. 왜? 적으면 먹고 살 게 많아지는데, 이것 뿐만 아니라 많아지면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가문의 영광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거죠.”

– 얘기 나온 김에 변협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변협은 이익단체의 성격이 많죠. 의사협회, 약사협회 같은 거니까요. 민변하고 변협은 많이 다른 거죠. 변협은 직업으로 묶여 있는 거고, 민변은 직업으로 묶여 있는 게 아니라 ‘이념’으로 묶여 있는 거니까.”

전공인 ‘헌법’과 박주민이 존경하는 사람

– 공저자로 참여한 <호모 레지스탕스>를 읽으니 헌법에 관심이 많은 것 같던데요.

“법을 하려면… 헌법은 밥을 먹여주는 법은 아니거든요. 저는 헌법, 특히 표현의 자유에 관심을 두다 보니까.. 헌법이 우리 사회의 합의 기본내용이고, 그런 내용들이 사회적으로 지켜지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 답변이 너무 당위적인데요. 헌법에 관심을 갖게 된 박 변호사만의 사연이나 계기라든가.

“표현의 자유를 위해 싸우다보니까 기댈 수 있는 법이 헌법밖에 없어요. 기존 법이 아시다시피, 집시법이나 이런 법들이 너무 형편없잖아요. 그래서 상대편과 똑같이 집시법이라는 플레이그라운드에서 놀고, 싸우면 져요. 그러면 당연히 싸움을 헌법으로 가져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헌법에 관심을 가지게 된거고… 어떻게 보면 슬픈 현실이죠.”

– 전범이나 롤모델, 존경하는 법조인이랄까.

“저는 옛날부터 박원순 변호사를 좋아했어요. 변호사로서의 어떤 것 때문이 아니라, 상당히 아이디어가 많으신 분이잖아요. 변호사도 저렇게 할 수 있구나. 변호사 아닌 것처럼 할 수 있구나. 아이디어 풍부하게. 변호사가 고정적으로 스테레오타입화되는 게 아니라, 그렇게 새롭게 치고 나간달까, 그런 모습이 보기 좋았고, 아, 저런 식으로 해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었죠.”

–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데요. 아, 이 분 참 존경할 만 하다 싶은 경우가 많을 것 같아요.

“민변에서도 존경할 만한 사람들이 많죠. 또 참여연대 안진걸 팀장 같은 경우는 와, 정말 존경할만하죠. 사람들을 다 공범으로 만들어버리고. 하하. 천주교 인권위원회의 김덕진 국장 같은 사람들은 야, 저렇게 어려운 환경 속에서 저렇게 열심히 할 수 있을까… 저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들어주시는 분들이고.

선배들 가운데 존경할 만한 분들은 지금 민주노총 법률원의 권두섭 변호사 같은 분. 정말 10년 가깝게 표 안 나게 정말 치열하게 사신 분이고요. 김선수 변호사 같은 경우도 민변 회장이라서 존경하는 게 아니라, 그분이 소송을 진행하는 걸 보면 워낙 뛰어나세요. 김형태 변호사 같은 경우도 와, 정말 소송하는 거 보면 잘하시고, 그 성실함과 꼼꼼함 존경할만 하죠.”

어느 날 후원 주점에 가면…

박주민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하나 있다. 후원 주점들이다. 용산 일일호프, 쌍용차 일일호프… 빠지지 않는 단골손님이다. 그때마다 좀 비싸다 싶은 경매품들을 싹쓸이하는 박주민. 요즘 표현을 빌자면 ‘경매 종결자’다. 내가 본 것만 해도 서너 번 된다. 그 이야기를 물었다.

“으하하. 저도 그런 얘기 많이 듣습니다. 저도 그런 얘기 많이 들어서. 사실 제가 없는 게 돈밖에 없다고 이야기하는데. 실제로 쌍용자동차 같은데 가면 노동자분들이 저에 대해선 딴 건 모르고, ‘일일호프 때 와서 경품 비싸게 사간 사람!’, 이렇게 기억하세요. 사실 경매라는 게 흥행을 하려면 누군가가 계속 가격을 높여야 되잖아요. 가격을 높이다 보면 제가 사게 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평소엔 ‘노동’으로 서포팅을 해드리다가, 하하, 일일호프 같은 곳에 기회가 되면 기부하는 마음으로 하려고 하죠.”

당신이 언젠가 후원 주점에 간다면, 거기에서 박주민을 볼 수 있으리라. 가장 비싼 경매품을 결국 낙찰받고 있는 파마머리의 순한 미소를 가진 그를.

* 인터뷰 ‘전문’은 2 페이지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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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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