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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언론들을 볼 때마다 한 가지 부러운 게 있다. 바로 ‘원본 중시’ 정신이다. 무슨 얘기냐고? 인용 보도할 경우엔 관련 사실을 명기할 뿐 아니라 원본 기사를 하이퍼링크로 연결해준다. 자사 기사 뿐 아니라 경쟁사 기사까지도 연결해준다.

하이퍼링크

미국 언론이 부러운 이유

예를 들어보자. IT 전문 매체 버지는 2014년 6월 6일 자 기사에서 애플이 2014년 10월 헬스케어 관련 웨어러블 기기를 내놓을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또 다른 IT 매체인 리코드 기사를 인용한 기사였다. 당연히 원본 기사를 링크해줬다. 그뿐 아니다. 버지는 아예 리코드를 소개하는 문구까지 기사 안에 넣었다.

Recode, which is made up former All Things D employees, has a very good track record of predicting when Apple holds its press events.

이런 예의를 보여주는 건 버지 뿐만이 아니다. 미국 대부분 언론에서 원본 기사를 철저하게 밝혀준다. 그뿐 아니다. 관련 자료 같은 것들도 기사 안에서 충실하게 링크로 연결한다. 그 덕분에 기사를 읽을 때 큰 도움을 받는다. 삼성과 애플 간 특허 소송 관련 기사를 쓸 때는 기사에 연결된 원본 자료를 찾아 읽으면서 기사를 작성했던 기억이 있다.

미국 인터넷 언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호 링크. 사진은 더버지가 리코드 기사를 인용하면서 링크로 해당 기사를 연결해주고 있다.
미국 인터넷 언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호 링크. 버지는 리코드 기사를 인용하면서 링크로 리코드 해당 기사를 연결해준다.

미국 언론들의 관행이 부러운 건 크게 두 가지 때문이다. 하나는 상대방의 저작물을 철저하게 인정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더 주목하는 건 인터넷이란 매체 특성에 잘 맞는 스토리텔링 방식이다.

무슨 얘기냐고? 나는 2003년 쓴 [인터넷신문과 온라인 스토리텔링]에서 “인터넷신문은 기존 신문의 확장”이라고 규정했다. (물론 ‘미디어는 인간의 확장’이란 마셜 매클루언의 금언을 살짝 비튼 것이다.) 멀티미디어는 형식의 확장이요, 하이퍼링크는 내용의 확장이란 게 나의 이론(?)이었다. 특히 나는 ‘형식의 확장’보다는 ‘내용의 확장’이 인터넷 미디어의 더 큰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두꺼운 담장으로 둘러싸인 한국 인터넷 저널리즘

388눈을 우리 쪽으로 한번 돌려보자. 한국 인터넷 미디어는 ‘월드 가든’(walled garden), 흔히 하는 말로 ‘가두리 양식장’이다. 자사 기사 외에는 일절 하이퍼링크를 활용하지 않는다. 물론 경쟁사 기사 링크가 없는 건 인터넷 언론만의 문제라고 보긴 힘들다. 그건 경쟁사 특종을 인용해서 보도하지 않는 한국 언론 특유의(?) 관행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니 인터넷 저널리즘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그 부분을 논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

문제는 관련 자료 링크다. 원본 자료를 링크해주게 되면 좀 더 풍부한 정보를 제공해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난 하이퍼링크는 종이책의 각주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무슨 얘기인지 애매하다고? 그럼 우리가 책을 읽는 관행을 한번 떠올려보자.

책을 읽을 때 우리는 각주를 만나면 따라가서 읽을지 말지 갈등한다. 본문의 이야기 흐름에만 관심 있으면 그냥 쭉 읽어나간다. 하지만 부가 정보에 좀 더 관심이 생기면 본문 읽기를 멈춘 뒤 각주를 읽는다. 하이퍼링크가 하는 역할이 각주와 비슷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내가 하이퍼링크를 ‘내용의 확장’이라고 규정한 것은 이런 생각 때문이었다.

그럼 국내 언론들은 왜 (경쟁사 기사를 논외로 하더라도) 외부 하이퍼링크를 하지 않는 걸까? 가장 큰 이유는 그 부분에 대한 문제의식이 크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원본 자료를 충실하게 연결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많지 않다는 얘기다. 각사의 기사 전송 시스템이 블로그 서비스만큼 편리하지 못한 점 역시 이런 정책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여기까지는 전적으로 언론사들의 ‘배려 부족’이다. 하지만 다른 부분도 영향을 미쳤다. 인터넷 뉴스 소비의 중심 플랫폼 역할을 하는 포털이다. 네이버, 다음 등 포털이 외부 링크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언론사들이 그 부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는 얘기다.

포털의 가두리 전략이 인터넷 저널리즘에 미친 영향

(이하 서술은 체험에 바탕한 추론이다.) 포털은 원칙적으로 본문 내 하이퍼링크를 허용하지 않는다. 관련 기사는 아랫부분에서 자동으로 연결하도록 ‘권장’한다.

국내 포털이 ‘폐쇄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난 기사 본문에 관련 자료를 아웃링크로 연결하지 않는 것도 비슷한 비판 거리가 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포털은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부분이라고 믿는다.

포털 기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단의 관련 기사 표시 방식
포털 기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단의 관련 기사 표시 방식

물론 포털들의 고민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포털들이 외부 링크를 허용하지 않는 이유로 표면적으로는 내세우는 문제는 ‘악성 코드’(라고 한)다. 하지만 또 다른 걱정도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추론하면, 본문 내 아웃링크가 또 다른 광고 수단으로 악용될 수도 있는 가능성이다. 뉴스캐스트 당시 언론사들의 무분별한 편집 정책으로 이미 한 차례 홍역을 치른 걸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걱정’이기도 하다. (서글프지만, 인정할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런 관행은 앞으로 개선해야 한다. 담장 안에 모든 걸 가두는 전략에서 외부 링크에 문호를 여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국내 최대 인터넷 뉴스 플랫폼이 인터넷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건 분명 아쉬운 일이다. 참고로, 미디어다음은 링크를 허용하고 있고, 주요 매체들 가운데 한국일보(닷컴)는 인용을 표시하는 링크를 적극적으로 설정하고 있다. (하나 더, 네이버 뉴스는 기사 본문 내 링크를 막고 있지만, 언론사가 편법으로 링크를 표시하기도 한다. 다만, 표시되는 링크가 다른 본문과 색으로 구별되지 않아서 독자로선 링크가 있는지 없는지를 알 길 없다. 게다가 이런 링크들은 대개 광고성 기사의 광고주 링크들이다.)

그래서 이렇게 외쳐본다.

“네이버여, 이젠 아웃링크를 좀 더 과감하게 허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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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 [Hyper/Text]에서도 발행했습니다. 글의 표제와 본문은 슬로우뉴스의 편집원칙에 맞게 수정하고, 보충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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