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 정치 » 약칭의 정치학: "’여성부’가 아니라 ‘여가부’입니다"

약칭의 정치학: "’여성부’가 아니라 ‘여가부’입니다"

여성가족부 홍보담당관실이 최근 출입기자들에게 이런 내용의 협조 당부 메일을 보내왔다. 나는 현재 이 부처를 출입하고 있지 않지만, 게임을 비롯한 정보산업(IT) 업계를 출입하는 기자로서 게임 규제와 관련한 정보를 얻고자 보도자료를 받아보고 있다.

제목: 여성가족부의 공식 약칭을 ‘여가부’로 하였으니, 앞으로 기자님들의 많은 협조 부탁드립니다.

항상 여성가족부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에 감사합니다.
그동안 여성가족부 공식 약칭이 ‘여가부’ 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여성부’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정부는 여성가족부의 공식 약칭을 ‘여가부’로 하였으니, 앞으로 기자님들의 많은 협조 부탁드립니다.

여성가족부의 공식 약칭이 ‘여가부’인데 언론이 자꾸 ‘여성부’라는 표기를 고집하자, 공식 약칭에 따라 표기해달라는 당부다.

여성가족부

약칭을 “여성부”가 아닌 “여가부”로 불러달라고 여성가족부

약칭의 정치학

정부 부처나 정당은 약칭을 오히려 풀 네임보다 더 자주 사용하기 때문에 ‘공식 약칭’의 이미지를 신경 쓰는 일이 많다. 가령 이번 정부 들어 신설된 미래창조과학부를 ‘미창부’나 ‘미창과부’ 아니라 ‘미래부’로 통칭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최광식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체육 단체를 만날 때는 ‘문체부’라고 하고, 관광 단체를 만날 때는 ‘문광부’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온다. 고용노동부의 약칭을 고용부로 하느냐, 노동부로 하느냐를 놓고도 갑론을박이 있었다.

정치권에서도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새정치민주연합의 약칭을 ‘새정련(새정연)’이라고 하느냐 ‘새정치연합’이나 ‘새정치’로 하느냐를 놓고 여야 간 논란을 벌일 만큼 약칭에 민감하다. 통합진보당이 ‘통진당’이냐 ‘진보당’이냐, 진보정의당이 ‘진정당’이나 ‘정의당’이냐도 정치권 논란의 대상이었다.

한데 여성가족부의 이번 당부는 다소 이상하다. 여가부라는 명칭은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의 여성가족부가 절대 쓰지 않았던, 기피 약칭이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가 ‘앙갚음’을 뜻하는 보복(報復)과 발음이 같아서 보복부라는 이름을 쓰지 않듯, 당시 여성가족부도 ‘일이 없어 남는 시간’을 뜻하는 여가(餘暇)와 발음이 같아 여가부를 쓰지 않았다. 자칫 레저부로 불리거나 일이 없어 노는 부처라는 이미지가 박힐 것을 염려해서다. 대신 여성부라고 불리길 원했다.

풀밭 위에서 책 읽는 청년

‘여가부’라는 약칭은 자칫 ‘일이 없어 노는 부처’라는 인상을 줄까봐 꺼렸던 약칭이었다. (사진: Brian Talbot, CC BY NC)

하긴 그러고 보니 4년 전 이 부처를 출입하던 때 비슷한 내용의 메일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여성부는 2010년 보건복지가족부로부터 가족·청소년 업무를 이관받아 여성가족부가 됐다. 당시 여성가족부는 나를 포함한 출입기자들에게 메일을 돌려 약칭을 ‘여성부’가 아니라 ‘여가부’로 해달라고 당부했다. 왜 그랬을까.

‘미니부처’ 설움 간직한 여성가족부

그걸 설명하기 위해서는 여성(가족)부의 역사를 먼저 조금 늘어놓아야 할 것 같다.

1. 김대중 정부 시절 ‘독립’

한국의 정부조직에서 여성부는 김대중 정부 시절 처음으로 독립된 부처로 자리 잡았다. 1981년 정무제2장관실로 시작했다가 1998년 여성특별위원회를 거쳐 2001년 여성부가 신설됐다. 초대 여성부 장관은 나중에 총리까지 지낸 한명숙이었다.

2. 노무현 정부, ‘여성가족부’ (약칭은 ‘여성부)

그러다 노무현 정부 들어 장하진 장관 시절인 2005년 가족 정책과 영유아 보육 등 업무를 추가하면서 부처 이름을 여성가족부로 바꿨다. 앞서 말했듯 이때는 약칭이 여가부가 아니라 여성부였다. 이 당시에는 약칭이 문제가 아니었다. 여성가족부의 소관업무 자체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성평등을 관장하는 여성부에 가족정책 업무를 부여한 것에 대해 일부 여성계가 반발한 것이다. 가족을 돌보는 일은 결코 여성만의 일이 아닌데, 이런 고정된 성역할 인식을 바꿔나가야 할 여성부가 가족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어 오히려 성역할 고정을 더욱 강화한다는 주장이었다.

3. 이명박 정부, 도로 ‘여성부’ 

여성계의 반발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여성가족부는 가족 업무를 보건복지부로 넘기고 도로 여성부가 됐다. 나는 이 당시부터 여성부를 출입했다. 많이 만나본 것은 아니지만, 변도윤 당시 여성부 장관은 나름대로 의욕적으로 업무를 추진하려고 했지만, 부처의 위상이나 예산 등 때문에 힘들다는 말을 종종 했던 걸로 기억한다. 변 장관은 교체되기 불과 1주일 전에도 출입기자들을 모아 연 오찬 자리에서 “기자 여러분이 여성부에 더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는 기사를 많이 써줘야 우리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취지의 호소를 했다.

실제로 이 당시 여성부의 세출예산 현황을 분석한 서울신문 기사를 보면 2007년 여성가족부의 세출예산은 1조 2,643억 원이었으나 2008년에는 702억 원으로 무려 95%가 줄었다. 2009년에도 784억 원으로 한해 전보다 소폭 늘어나는 데 그쳤다. 2008년부터는 보육과 가족 업무가 빠졌다는 점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예산이 축소 규모가 엄청났다.

한국의 2008년 국방 예산이 26조 6,490억 원이었다는 기록과 비교하면, 당시 여성부의 예산은 정부의 한 부처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실제로 당시 ‘미니부처’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 여성부가 폐지된다는 소리까지 있었던 터였다. 부처가 살아남은 것만 해도 선방한 것이라는 인식도 있었을 정도였던 시절이다.

여성가족부 역대 장관

여성가족부 역대 장관들과 공식 명칭 변천사 (이미지: 여성가족부)

‘미니 부처’ 꼬리표 떼고 칼자루 쥔 여성가족부

1. 백희영 장관의 등장

변 장관의 후임인 백희영 장관은 여성계 경력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백 장관은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내정될 당시 대한가정학회 회장과 한국영양학회 회장을 지내고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로 있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한식 세계화에 관심이 많던 김윤옥 여사의 영향으로 장관이 된 것이 아니냐는 소문도 돌았다.

김윤옥 한식 세계화

한식 세계화에 관심이 많았던 김윤옥 여사 (이미지: 구글 검색 갈무리)

백 장관이 내정되던 날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고 프로필 기사를 쓰려고 보수 성향의 여성단체 모임인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여협)와 진보 성향의 여성단체 모임인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 양쪽에 열심히 전화를 돌렸지만 아무도 그를 알지 못한다는 말에 망연자실했던 기억이 난다. 여성부를 출입하던 다른 언론사 선배들도 당시 전혀 취재가 되지 않았다며 “연합뉴스 기사가 언제 뜨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너무 늦게 떠서 힘들었다”고 며칠 뒤 내게 하소연했다.

백희영 여성부장관

2011년 5월 1일 교사 체험을 하는 당시 백희영 장관 (사진: 여성가족부)

어쨌든 그런 백 장관은, 변 장관과 달리, 그 원천이 어디였는지는 몰라도 힘이 있는 장관이었다. 장관 중에서는 한직으로 통했던 여성부 장관이었음에도 취임 직후 퍼플칼라 또는 퍼플잡이라는 이름의 ‘유연근무제’ 아이디어를 내서 업무 친화적이었던 공무원들의 근무시간을 가족 친화적으로 바꿔보려는 노력도 했다. 원래대로라면 이런 업무는 공무원의 인사와 복무 등을 담당하는 행정안전부가 담당해야 할 일이지만, 신기하게도 바깥에서 보기에는 사실상 백 장관이 이끌어가는 모양새로 보였다.

EBS 초대석 ‘세상의 중심은 가정에 있다’ 편에 출연한(2010년 5월 23일) 당시 백희영 여성부 장관. ‘퍼플잡’ 정책의 추진 배경과 구체적인 내용에 관한 답변은 동영상 5분 41초 이후에 들을 수 있다.

그리고 2010년 백 장관의 재임 시절 여성부는 가족 업무와 청소년 업무를 복지부로부터 가져와 여성가족부로 재차 이름을 바꿨다. ‘여성부’ 대신 ‘여가부’를 약칭으로 써 달라는 메일을 내가 처음 받은 것도 이 무렵이다.

여성부는 가족·청소년 업무를 복지부에서 넘겨받으면서 더 이상 ‘미니 부처’가 아니게 됐다. 당시 보도를 보면 기존 여성부의 조직 정원은 109명이었지만 가족·청소년 업무 이관 이후에는 211명으로 배 이상 늘었다. 예산도 기존에는 1108억 원이었지만 업무 이관으로 4,223억 원으로 4배 가까이 증가했다. 소관 법률도 기존에는 불과 5개였지만 청소년 분야 7개와 가족 분야 6개가 추가되면서 모두 3배 이상인 18개로 늘었다. 대략 덧셈 뺄셈만 해봐도 기존 여성부보다 새로 넘겨받은 가족·청소년 업무의 덩치가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니 부처’로 불리던 설움을 떨치게 된 것이다.

2. 욕만 먹던 여성부, ‘청소년 업무’를 넘겨받다

단순히 숫자가 배 이상으로 늘었다는 의미만 있는 것도 아니다. 기존의 여성부 소관법은 여성발전기본법과 같은 성평등 관련 기본법 계열이거나 성폭력 피해자를 보호하는 취지의 법률뿐이었다. 성평등 기본법은 그야말로 기본법이고, 성폭력 피해자 보호법 역시 가해자를 잡는 일이 아니라 피해자를 보호하는 일만 소관 업무였기 때문에 빛이 안 났다. 거꾸로 보호를 조금이라도 소홀히 하면 언론이나 여론의 질타를 받을 일만 있었다.

사람들은 성폭력 사건이 있거나 성평등과 관련한 이슈가 있을 때 “여성부는 어디서 뭐 하고 있나”, “여성부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실제로 여성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성폭력 사건이 있을 때 범죄자를 잡는 일은 당연히 검찰과 경찰의 몫이다. 성폭력 범죄의 양형 기준을 높이는 것은 판사들과 법원이 결정하는 것이고, 성폭력 범죄의 처벌을 강화하는 것은 법무부나 국회가 해야 할 일이다. 여성부가 관련은 돼 있지만, 적극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직장생활 등과 관련한 성평등 이슈도 마찬가지다. 민간 부문은 노동부나 산업부 소관이고, 공공 부문은 행정안전부가 맡은 일이다. 여성부의 일은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그다지 빛이 나는 일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 초기 여성부가 크게 위축된 데는 이 같은 원인도 있다.

하지만 청소년 업무를 넘겨받으면서 상황이 다소 바뀌었다. 청소년보호법 때문이다. 청소년보호법은 기존의 여성부 소관법률과 달리 강력한 규제를 법률에 담을 수가 있기 때문에 권력을 행사하는 일이 많아지게 된 것이다. 여성부가 ‘미니부처’라는 꼬리표만 뗀 것이 아니라 칼자루까지 쥐게 된 셈이다.

위키백과 여성가족부

여성가족부는 늘 ‘욕’먹는 부처 중 하나다. 위키백과에는 “대한민국 여성가족부 관련 논란”이라는 항목이 존재할 정도다.

“청소년 보호해야 하니 힘을” … 이름도 여성가족청소년부로 바꾸나

내가 보기에는 이때부터 여성가족부에서는 청소년 관련 조직이 주도권을 가진 것 같다. 실제로 예산이나 소관법률 수 등을 고려하면 당연한 수순일 수도 있다. 복지부로부터 가족·청소년 업무를 이관받은 이후 차관이 된 김태석 전 차관과 그 후임자로 있다가 최근 사임한 이복실 전 차관 둘 다 청소년가족정책실장을 지낸 직후 차관 자리에 올랐다는 것은 상징적이다. 물론 두 사람 모두 정무제2장관실과 여성특별위원회 때부터 여성부에 몸담아오면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긴 하다.

어쨌든 나는 여성가족부가 이런 상황 때문에 약칭을 ‘여성부’가 아니라 ‘여가부’로 써 달라고 했다고 본다. 우리가 더 이상 미니 부처가 아니고 이제는 규제 업무까지 맡아 칼자루도 생겼다는 점을 한껏 강조하려는 모양새다. 여성가족부가 왜 성폭력 방지나 성평등 확산 업무는 마치 안 하는 것처럼 보이고, 가요 노랫말 규제와 이른바 ‘강제적 셧다운제’로 대표되는 게임 규제 등에만 열을 올리는 것처럼 보이는지에 대한 해답도 아마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김희정 신임 여성가족부 장관도 청소년 업무를 중요시하는 인물이다. 김 장관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이었던 지난해 초 조윤선 당시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부처 이름을 여성가족청소년부로 바꿀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번에 장관으로 지명된 이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부처 이름을 ‘여성가족청소년부’로 바꾸는 것에 대해 (청와대 등에) 적극 건의하겠다”고 답변했다. 예산이나 인력뿐 아니라 명칭에서도 조금씩 여성보다는 가족이나 청소년 쪽에 방점을 찍는 분위기가 된 셈이다.

여성가족부 김희정 장관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 (2014년 6월 14일~ 현재)도 ‘청소년 업무’를 중시하고, 부처 명칭을 “여성가족청소년부”로 바꾸는 데 적극적이다. (이미지: 여성가족부)

하지만 청소년 업무가 지나치게 강조되면 자칫 정책 결정 과정에서 위험한 일이 있을 수 있다. ‘청소년을 보호해야 한다’는 당위가 전가의 보도가 되면 다른 영역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성가족부의 청소년 쪽 담당과 업무 협의를 했던 일부 부처에서는 “협의가 합리적으로 돼야 하는데 ‘지금 우리 청소년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무슨 소리냐’, ‘그럼 청소년들이 죽어가게 둬야 한다는 말이냐’라면서 여성가족부가 자신들의 의견만 내세우는 일이 많다”는 불만도 조금씩 터져 나오는 상황이다.

여성가족부 역할

여성가족부의 설립목적과 주요업무 (이미지: 여성가족부)

좋은 기사 공유하고 알리기
슬로우뉴스에 커피 한잔의 여유를 후원해주세요. 필자 원고료와 최소한의 경비로 이용됩니다.

필자 소개

권영전
슬로우뉴스 초대 필자

연합뉴스 기자입니다.

작성 기사 수 : 9개
필자의 홈페이지

©슬로우뉴스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슬로우뉴스 안내 | 제보/기고하기 | 제휴/광고문의
(유)슬로우미디어 | 전화: 070-4320-3690 | 등록번호: 경기, 아51089 | 등록일자 : 2014. 10. 27 | 제호: 슬로우뉴스 | 발행인: 김상인 | 편집인: 강성모
발행소: 경기 부천시 소사로 700번길 47 1동 506호 (원종동, 삼신) | 발행일자: 2012. 3. 26 | 개인정보관리/청소년보호책임자: 강성모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