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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망령과 싸우는 정치학자 정대화가 본 총선과 향후 정국 [특집]

Goya, "Disparates": The Folly of Fear (1819-23)

정대화(상지대 교수. 정치학)를 처음 만났던 건 약 2년 전, ‘길바닥’이었다. 당시는 ‘사학비리 1호’라 불리며 퇴출당한 김문기 전 이사장 측의 상지대 복귀 여부 결정을 일주일쯤 앞둔 시기였다. 지금도 물론이지만, 당시 상황의 긴박함은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이하 ‘사분위’)의 ‘비리재단 복귀’ 결정 직후 방영된 KBS 추적 60분, ‘벼랑 끝에 선 상지대, 과거로 돌아가나’라는 제목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정대화는 7월 내내 교과부 앞에서 상경 농성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때 그 길 위에서 짧게 담은 동영상 인터뷰의 추억을 잠깐 불러오자.

“졸업을 하려고 했더니 박정희 각하께서 돌아가셔서 졸업을 못했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기다렸다가, 전두환 각하 때 하려고 했더니, ‘아직 공부가 안됐잖아?'(전두환 성대모사) 그래서 안됐어요. 노태우 각하 때도 부탁을 했거든요. 그랬더니, ‘나는 물입니다. 몰라요.'(노태우 성대모사) 그래서 할 수 없이 문민정부 개혁 때 김영삼 대통령한테 부탁해서 겨우 20년 만에 졸업했습니다.”

사연도 많고, 아픔도 많았을 ’20년’을 장난스러운 성대모사로 아무렇지 않게 털어버리는 이 남자. TV 시사토론에 단골 패널로 출연하면서 명망을 쌓은 논객 정대화는 노무현 정권 말기, 당시의 정치적 한계를 전면 비판하고, <창조한국 미래구상>을 꾸리며 평론가에서 ‘선수’로 나선다. 그리고 곧이어 시민사회와 기성 정치권의 접목을 시도한 <대통합 민주신당>프로젝트, 정대화는 당대표 비서실장까지 역임하면서 그 실험 재료로 자신을 던졌지만, 결국 한 달 만의 비서실장직 사퇴로 씁쓸히 그 실험은 마무리된다.

다시 학교로 돌아온 그를 기다리는 건 ‘비리재단의 망령’. 일이 터지기 전, 비리사학의 대명사로 불리던 상지대는 각종 비리로 얼룩진 김문기 전 이사장 체제를 몰아내고, 정부(교과부)가 파견한 임시이사 체제에서 차근차근 정상화 과정을 밟아오고 있었다. 한겨레21은 <여의도통신> 정지환의 말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정대화, 서동만, 김정란, 홍성태, 배진한 등 진보적인 지식인 스타들이 대거 영입되면서 상지대는 부패 사학의 대명사에서 시민대학의 성공 모델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

정대화 (상지대 교수, 정치학)

하지만 2007년 5월 17일, 대법원은 그야말로 역사적 판결을 내린다. 8:5로 의견이 갈리긴 했지만, 결국 대법원 전원합의부는 각종 비리로 퇴출당한 과거 비리재단 이사들을 되살리는 놀라운 마법을 시전하고야 만다.  이로써 ‘종전이사’라는 기상천외한 세계 최초의 발명품이 만들어지고, 평온하던 학교에 다시 갈등과 분규가 찾아온다. 필연적으로 과거 비리재단으로부터 학교를 지키겠다고 나선 학생, 교직원과 교수들은 유령 아닌 유령과 맞서 싸울 수밖에 없었고, 정대화 역시 원주와 서울을 오가며 다시 거리의 싸움에 나서게 된 것은 물론이다. 그렇게 5년이 지나갔다.

올해 4.11 총선. 그에게 다시 한번 ‘선수’로 뛸 기회가 찾아왔다. 교육계를 대표해 국회에서 뛰어달라는 요청이었다. 교육계 대표로 추천된 정대화는 민주통합당 비례 대표에 응모하고, 민주당 공천심사위원회(이하 ‘공심위’)는 당선 안정권에 배정함으로써 교육계의 기대에 답한다. 이제 민주통합당 소속 정대화 선수의 플레이가 ‘대학 교육 정상화’라는 필드에서 벌어질 찰나였다. 하지만 공심위의 추천를 민주당 최고위원회는 거부하고, 그는 최종 비례대표 후보에서 결국 탈락한다.

정대화에게 올해 19대 총선이 더 각별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에게 이번 총선의 의미를 묻고, 또 정대화 개인의 체험에 깊이 박힌 한국 정치에 대한 애증과 전망을 물었다.

1부: 19대 총선이 남긴 과제들

0. 4.11 총선의 키워드

– 4.11 총선을 되돌아보는 지금 이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와 그 이유를 듣고 싶다.

“야권연대, 정권심판, 불법사찰, 김용민 막말, 공천파동 다섯 가지 단어. 이번 선거는 처음부터 끝까지 민주통합당이 야권연대를 결성하여 주도한 선거이며 새누리당은 비대위를 구성하고 당명을 바꾸면서까지 절치부심 방어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던 선거였다. 디도스 공격, 이상득 돈봉투, 불법사찰 등 (야당 측)공격 소재가 무궁무진한 선거였다.

그러나 정권심판은 ‘닥치고 심판’으로 변질하여 버렸고, 불법사찰은 ‘노무현 정권의 80% 사찰’ (공격이 먹혀들어) 공범으로 전락했으며, 정권심판은 더욱이 김용민 심판으로 적반하장의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 이면에는 총선의 출발점인 지역구 공천에서 범한 실책을 수습하지 못하고 논란에 휩싸였을 뿐만 아니라 그 논란을 비례대표 선출에까지 연장함으로써 공세적인 선거구도를 수세로 역전시키고, 그 흔한 정책과제 하나 변변하게 제시하지 못한 전략적, 정책적 실책이 작용하고 있다.”

1. SNS, 나꼼수, 이미지 정치의 한계에 대해

– SNS의 정치적 가능성에 대한 거품론, 나꼼수 팬덤 현상의 한계 등 대중적 이미지 정치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다. 더불어 정책적인 이슈가 영향력을 발휘한 것 같지도 않다. 정책 부재와 이미지 정치의 한계가 동시에 드러난 선거라는 생각이 든다.

“SNS는 본질 문제가 아니다. 이미지가 실질적 화두와 담론으로 뒷받침되지 못했다.”

“모든 정치, 모든 선거의 기본은 국민 혹은 유권자와의 관계 설정과 소통의 문제이다. 따라서 소통의 방식과 도구는 부차적인 문제이다. 국민과의 진솔한 소통은 과거 신문과 방송이 없었던 사발통문의 시대에도 큰 힘을 발휘했다. 그러므로 전자민주주의가 강조되고 SNS의 역할이 강조되는 것은 방법과 도구의 문제이지 본질의 문제가 아니다. 정권심판의 콘텐츠가 없는데 유권자들에게 SNS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다만, 소통의 절대 비중 측면에서 파업중인 방송사와 조중동의 압도적인 물량 보도가 다른 여타의 소통수단을 압도하면서 유권자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한 측면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 경우는 대체로 거의 모든 선거에서 작동하였던 고정적인 프레임이다. 언론 보도에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것은 정당의 책임을 면책시키는 오류를 범할 수 있으므로 제한적인 범위에서만 그렇게 보아야 할 것이다.

나꼼수의 팬덤 현상과 이미지 정치의 한계 역시 이런 맥락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총선 이전 시점에서 나꼼수가 폭발시킨 대중적 감성의 분출은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막상 선거가 시작된 시점에서 나꼼수는 유권자가 필요로 하는 정보 제공에 한계를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대중선동가가 후보로 출마하고, 출마한 후보의 과거 부적절한 발언이 파문으로 조성되는 등 역기능도 함께 노정했다. 이 파문은 새누리당과 조중동 등에 의해 과장된 측면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과장되었다고 한계 자체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지 정치의 한계도 분명하다. 그러나 오디오를 압도하는 비주얼 시대에 이미지 정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오히려 비현실적이다. 따라서 이미지 정치를 현실로 수용하지 않을 수 없다. 상대평가하면 새누리당이 이미지 정치에서 우월한 지위를 가졌다. 따라서 문제는 이미지 정치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정당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 먼저이며, 일부 이미지 정치가 실질적인 화두나 담론 등 내용에 의해 뒷받침되지 못한 한계를 지적해야 할 것이다.

2. 선거결과 및 선거전략 평가

– 민주당이 못했나? 새누리가 잘했나? 아니면 다른 원인들이 존재한다고 보나?

새누리당의 승리가 아니라 ‘민주통합당의 패배’라고 말하는 이유

“선거에 참여한 주체들은 모두 승패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므로 새누리당이 잘했느냐, 민주통합당이 잘못 했느냐 하는 것은 2등이 잘못해서 1등이 만들어졌다고 하는 것처럼 부분의 말장난일 뿐이다. 경쟁이 이루어지는 승부사회에서 절대 1위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절대 승자 역시 존재할 수 없다.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잘했고 민주통합당은 잘못한 것이 맞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의 승리가 아니라 ‘민주통합당의 패배’라고 말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선거가 새누리당의 이니셔티브에 의해 주도된 것이 아니라 민주통합당의 이니셔티브로 주도된 것이며, 민주통합당의 승리가 거의 확실하게 예상되는 구조였는데 민주통합당의 잘못으로 패배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좀 더 긴 안목으로 평가한다면, 새누리당의 이니셔티브가 없는 선거였기 때문에 총선 승리의 여운이 대선까지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치는 생물이며 선거 상황은 수시로 바뀌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에 새누리당이 어부지리를 얻었다고 해서 다음 대선에도 손님 실수에 의존하여 어부지리를 얻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너무 안이한 판단이다. 오히려 총선 직후 상황만을 감안한다면, 새누리당의 안정감과 달리 민주통합당이 총선 패배의 후유증을 조기 수습하지 못하여 그나마의 상황적인 이점까지 잃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3. 박근혜 불패신화 및 MB차별화 전략에 대한 평가

– 올 총선에서도 박근혜 불패신화는 이어졌다. 이 점은 올해 대선에서도 야권의 가장 커다란 숙제로 남아 있다. 많은 이들이 박근혜 중심의 새누리당 비대위체제가 적어도 총선에선 MB 차별화에 성공했다고 지적한다. 과연 박근혜 체제는 MB 차별화에 성공했다고 보나? 더불어 그것이 선거전략의 차원을 넘어서 의미 있는 노선상, 정책적 변별점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보나?

“박근혜의 MB 차별화 전략은 국민적 요구에 답하는 측면도 있다.”

“박근혜는 이명박과 구별되는 사람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한 점 오류가 없다. 그러나 박근혜가 이명박과 같은 당 소속이라는 정치적 구조의 한계를 벗어나기는 어렵다. 따라서 박근혜가 개인적 행위 측면에서 이명박과 차별화될 수는 있겠지만, 구조적으로는 한통속으로 범주화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좀 더 과감한 유보조항을 추가한다면, 이러한 구조적 한계가 대선 가도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으로 판단된다면, 박근혜는 새누리당이라는 정당 자체를 부인할 가능성도 있다. 지난 대선이 끝나고 이명박 정권이 출범하여 한반도 대운하 사업과 광우병 쇠고기 문제로 정권에 큰 타격이 왔을 때, 이미 새누리당의 많은 사람들은 이명박보다 박근혜를 뽑았어야 했다는 푸념을 할 정도로 박근혜는 이명박과 구별되고 있다.

과거의 박근혜는 정책 노선상 당시의 이명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 아래서 자신을 스스로 대선후보로 준비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차별성을 부각시켰다. 신행정수도를 폐기하려는 이명박 대통령의 구상을 좌절시키고, 무상급식 등 복지논의가 분출하고 정치권이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로 논란을 벌일 때 과거의 ‘줄푸세’(세금을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바로 세운다) 수준을 넘어 “생활주기별 맞춤형 서비스”를 복지구상의 대강으로 제시한 것 등이 사례로 지적될 수 있다.

박근혜의 변화를 통한 차별성은 일차적으로 국민에게서 외면받고 있는 이명박 정권이 초래할 역기능을 사전 차단하기 위한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시대의 국민적 요구에 화답하는 측면도 있다. 박근혜가 무작정 차별화가 아니라 민심을 파악하고 민심에 반응하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박근혜가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한 변화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박근혜가 아무리 변한다고 해도 민주통합당이나 통합진보당 수준으로 나아갈 것으로 예상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정책의 진보성 여부가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논점도 아니고, 유일한 논점은 더욱 아니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과도한 진보성이 감표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통상 선거에서 유권자 평가는 무수히 많은 요소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정책의 진보성 외에도 사회적 통합과 갈등해소, 정치사회적 안정감, 지도자로서의 개인적 자질 등 비정책적이지만 정책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들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4. 야권의 수도권, 호남 고립에 대해

– 이번 총선에서 야권은 수도권과 호남에 고립되는 현상을 보였다. 더불어 진보세력이 노동자 벨트를 잃었다는 평가도 있다. 이 현상을 어떻게 해석하나? 

“정권심판론은 수도권에만 국한해 작용했을 뿐이다.”

“총선 결과를 한 마디로 평가하면 민주통합당은 전통적 지지기반인 호남과 변화를 요구하는 수도권을 제외한 거의 모든 지역에서 패배했다. 민주통합당이 영남지역에서 낙동강 벨트를 구축하는 데 실패한 것이나 충청과 강원지역에서 패배한 것이 이를 입증한다. 제주도는 경향적으로 새누리당과 거리를 두었지만, 강정마을 해군기지 이슈가 작용한 예외적 상황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수도권도 서울에서는 압승한 반면 경기도에서는 신승했고 인천에서는 무승부로 비긴 상황이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이유는 민주통합당과 야권연대가 주장한 정권심판론과 불법사찰 등의 변화 바람이 서울에 국한해서 작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도권 경우에도 야권연대 힘이 없었더라면 결코 기대할 수 없는 결과라는 사실을 정당별 득표율에서 확인할 수 있다.

통합진보당은 야권연대의 효과로 지난 총선 대비 두 배 이상 의석을 획득했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이 획득한 득표율과 의석수가 대중정당인 국민참여당과 통합한 결과라는 사실을 감안해야 하고, 아울러 서울에서 표를 얻고 노동정치의 근거지인 울산 등 노동자 밀집지구에서 전패한 것은 향후 노동정치의 발전 가능성에 대한 한계를 예고하는 징표이기도 하다. 이명박 정권의 역주행적 상황이 아니거나 민주통합당이 집권할 경우 야권연대는 성립하기 어려울 것이며, 이 경우 통합진보당은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5. 소선거구제 ‘포크 배럴’ 정치에 대한 평가

– 특히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의 패배 원인으로 소선거구제 하에서의 ‘포크 배럴’ 정치 관행에 대한 무관심과 전략 부재를 지적하는 의견이 있다. 소위 노무현의 열린우리당에 뿌리를 두는 정치세력은 ‘포크 배럴’ 정치에 대한 탈피를 정치개혁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고, 친노세력이 주도권을 행사한 민주당의 총선 실패가 여기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견해인데, 이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정치에서 이익담합을 의미하는 포크 배럴(pork barrel, 특정의 선거구만을 우대하는 보조금·법안), 로그롤링(logrolling, 의원들이 각자가 지지하는 법안이 통과되도록 서로 짜고 돕는 것)은 비단 소선거구제 문제는 아니다. 이러한 경향은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선거제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우선, 정부 당국자가 총선 전후로 제기된 복지 관련 예상 증액 문제를 포크 배럴로 매도한 것은 아주 잘못된 태도이다. 국민들이 필요하다고 요구하는 곳에 예산을 배정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 이것을 돼지 여물통에 여물 먹으러 몰려드는 돼지로 비하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발언이다.

그러나 친노 세력이 포크 배럴 정치를 탈피하는 것을 정치개혁의 과제로 설정하고 있는지, 혹은 이번 총선에서 그러한 전략을 사용했는지는 알지 못하고 있다. 만약 박재완 장관이 정치권을 향해서 이 발언을 한 것이라면, 적어도 정부 시각에서는 민주통합당도 포크 배럴 정치를 했다는 것이 되니, 친노세력이 포크 배럴 관행을 탈피하고자 했다는 전제와 모순된다. 개인적으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생소한 용어를 현직 장관이 현학적으로 사용하여 논란을 일으킨 정도로 이해한다.”

6. 친노의 가능성과 한계

– 이번 총선은 박근혜의 새누리와 친노세력의 민주당이 중심이 된 싸움이었다.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정치권에서 부활한 친노세력의 가능성, 그리고 그 한계를 이번 총선을 프리즘 삼아 평가한다면?

“친노 vs. 친박은 경계해야 할 저급한 구도다. 노무현을 넘어서야 한다.”

“누가 친노인지, 어디까지를 친노 세력이라고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모호함이 있다. 이 막연함을 감안하고 용어를 사용할 때, 친박과 친노의 대결구도는 새누리당이 가장 선호하는 구도라고 해야 할 것이다. 박근혜는 이 맥락에서 친노를 과거 권력으로 비판하면서 자기를 미래권력이라고 구분했다. 이 구분법은 별로 타당하지 않지만, 이명박이 사라진 뒤 박근혜가 부각하고, 민주통합당이 사라지고 친노가 부활하면, 이 프레임이 대선에서 현실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노무현 정권은 2007년 대선에서 참패했다. 대선에서 참패하게 된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으로 정권이 교체된 직후 노무현 대통령은 MB 정권의 탄압 때문에 서거한 것으로 많은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졌다. 당연히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애도 물결이 일어났고 아쉽게도 노무현 정권에 대한 사후 평가가 유보 혹은 실종됐다. 그러다 혁신과 통합을 통해 친노 세력이 당의 전면에 등장하고, 잠재적인 대선후보로 주목받으면서 친노와 친박의 대결구도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점에서, 노무현 정권에 대한 평가가 진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만들어지는 친노와 친박의 대결은 자칫 대선수도를 2007년 상황으로 되돌릴 수도 있으며, 이런 점에서 민주통합당이 경계해야 할 구도다. 여기서 친노가 박근혜를 박정희의 딸로 공격하고, 친박이 친노를 노무현의 후예로 공격하는 상황은 매우 저급한 구도이다.

아울러, 만약 친노가 존재한다고 가정할 때, 그 친노가 노무현 개인에 대한 호불호 차원이 아니라 노무현 정권 문제이고, 노무현 시대를 대변하는 것이라면, 노무현 시대를 넘어서지 못하는 친노세력으로는 폭넓은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어려울 것이다. 노무현 시대는 이미 지나갔고, 우리는 김대중과 노무현을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를 지향하고 있으며, 노무현과 노무현 시대에 대한 여러 논란과 복잡한 감정이 존재하는 상황이다. 친노세력이 미래지향적인 의미를 가지려면 가장 먼저 노무현을 넘어서야 한다.”

7. 안철수는 정도령?

– 올해 초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에서 “안철수를 정도령”에 비유했다. 안철수 현상에 대해선 여전히 대중적 이미지 정치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물론 이는 현실 정치인 박근혜에 대해서 마찬가지지만. 여전히 ‘안철수를 정도령’으로 평가하나? 더불어 ‘정도령’이라는 표현이 함축하는 바를 좀 더 풀어서 설명해달라.

“대중의 열망과 그걸 받아줄 존재가 중요하다. 특정 개인은 부차적이다.”

“한겨레 칼럼에서도 지적한 것이지만 나는 우리 시대의 지향과 바람을 ‘정도령’으로 표현하면서 안철수를 언급했다. 또한, 그 글에서 나는 안철수를 개인적으로 모르고, 어떤 정치적 자질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 두 가지 문맥에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들어 있다. 나는 안철수 개인을 말한 것이 아니다. 안철수로 대표되는 사회적 흐름과 사회적 현상을 말한 것이다. 그러기에 개인 안철수는 중요하지 않다는 말도 했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사용하는 ‘정도령’이라는 용어는 중남미의 쾌걸 조로나 영국의 아더왕 이야기 혹은 우리 역사에서 홍길동 이야기와 같은 것으로 생각한다. 대중에 대한 억압은 높고, 대중의 열망도 높은데, 그러한 대중의 상태는 개선되지 않고, 열망이 실현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을 때, 민중은 위대한 영웅의 등장을 고대한다. 이 경우 ‘정도령’이 누구여야 하는지는 알 수 없고,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다. 중요한 것은 대중의 열망이 존재한다는 것이며, 그 열망을 누군가가 받아주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런 점에서 안철수의 존재와 역할이 이번 대선에서 중요하다는 취지로 말한 것이다.

추가하자면, 이러한 상황에서 ‘정도령’이 반드시 지도자나 특정 개인일 필요는 없다. 추상적 존재 자체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내가 강조하고자 한 바는 안철수가 아니라 안철수 현상이며, 개인 안철수가 아니라 현상으로의 안철수인 것이다. 그러므로 안철수가 대선 후보가 되든 안 되든 그것은 부차적이다. 그 칼럼 말미에 나는 시민사회를 ‘정도령’이라고도 표현했다. 안철수 현상과 시민사회의 역할에 교집합이 존재한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다.”

8. 새누리당의 ‘조직’ 리모델링에 대한 평가

– 위 박근혜의 MB 차별화와도 일맥상통하는 질문이지만, 앞서 한겨레 칼럼에선 “어떤 리모델링을 하든 한나라당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박근혜는 그 자체로 새누리당와 등치일 만큼 그 위상이 절대적이지만, 새누리당을 ‘조직’이라는 관점으로 볼 때, 최소한 이번 총선만으로 평가하면 새누리당으로의 리모델링은 성공적인 것처럼 보인다. 어떻게 평가하나?

“새누리당은 명칭 변경에 불과하다. 리모델링은 일어나지 않았다.”

“앞에서도 다른 맥락에서 약간 언급한 것인데 박근혜는 성공적으로 당을 장악하고 안정시켰다. 그러나 두 가지 한계는 있다. 하나는, 한나라당을 백 번 바꾸어도 한나라당은 한나라당이며 새누리당은 새누리당이 아니라 한나라당의 명칭 변경에 불과한 것이다. 또 하나는, 박근혜가 성공적으로 당을 장악하고 안정시킨 것이지 한나라당의 리모델링이 일어난 것은 아니다. 한나라당 내부적으로 보면 친이 득세가 친박 득세로 전환되면서 박근혜 독재체제 하에서 안정된 것이지 그 이상의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따라서 이 대목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높지 않다. 오히려 새누리당이 박근혜를 중심으로 강고하게 재결합되어 당의 탄력성이 줄어들었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김문수, 정몽준, 안상수 등에 의해 대선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될 경우 과거 이인제가 탈당하고, 박근혜 자신이 탈당하고, 손학규가 탈당했던 것과 같은 내분이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상당한 파국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9. “새로운 정권교체”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 정권교체가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정권교체”가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더불어 “새로운 정치의 조건”으로 여전히 시민사회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하지만 시민세력의 유력한 상당수 인사가 민주당에 흡수된 현재로선 ‘운동으로서의 정치’와 ‘시민사회’의 정치적 중요성은 오히려 반감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 지경이다.

“시민사회는 마르지 않는 쌀독이다. 한 바가지 떠낸다고 강이 마르는가”

“정권교체가 아니라 새로운 정권교체가 중요하다고 한 것은 앞에서 언급한 노무현 정권 및 친노 문제와 관련이 있다. 우리는 잃어버린 정권을 되찾아와야 한다는 실지회복 차원에서 대선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대한민국’을 창출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며, 이것은 김대중과 노무현을 넘어서야 가능한 것이다. 특히, 과거 참여정부 시절 참여정부와 국민들 사이의 갈등을 감안할 때 우리가 참여정부가 잃어버린 권력을 회복한다는 수준이라면 회복이 불가능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회복의 의미 자체가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권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니 정치권 바깥과 연대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그리고 정치권 바깥이라는 개념을 시민사회로 사용한 것이다. 그러니 이 경우, 시민사회라는 말을 시민운동으로 국한할 필요는 없다. 이렇게 말하니 다수 시민세력이 민주당에 흡수되어 민주통합당이 되었는데 무슨 시민사회가 존재하느냐는 반문이 제기될 수 있는데, 그렇지 않다. 조금 재밌는 어투로 표현하면, 시민사회란 “마르지 않는 쌀독”과 같은 것이어서 몇 명이 정치권에 합류한다고 해서 어찌 되는 그런 영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더구나 정치권에 합류한 인사는 정말 몇 명 되지도 않는다. 강물을 한 바가지 떠낸다고 강물이 마르지 않는 것처럼, 시민사회 몇 사람이 정치권으로 편입된다고 해서 시민사회 동력이 결정적으로 고갈되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시민사회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거대한 발전동력을 잠재한 저수지와도 같다.

‘새로운 정권교체’는 막연히 열린우리당에서 한나라당으로 넘어간 정권을 이제 새누리당에서 민주통합당으로 찾아오자는 식의 권력정치적 수준의 접근이 아니라, 모양이 그렇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그 속에서 우리 사회의 핵심 문제를 해결할 미래비전을 담고 정권을 교체하자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국민과 함께하고 시민사회와 함께하는 그런 정치, 그런 국정운영을 하는 정권으로 교체하자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심화된 사회적 양극화를 해소하고, 재벌체제를 해소하며, 지역갈등을 해소하고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고, 교육이 교육답게 이루어지는 그런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다. 추가하자면, 우리는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가 충분히 되었다. 다만 기득권 세력의 저항과 정치권의 낙후성 때문에 못하고 있을 뿐이다.”

10. 통합진보당의 경선 부정 사태와 향후 정국에 대한 전망 

– 선거 직후 한 언론에서 통합진보당의 캐스팅보트 역할이 중요하다는 정대화 교수의 코멘트를 접했었다. 하지만 최근 상황이 급변했다. ‘통진당 비례대표 경선 부정 사태’가 터졌고, 정국은 안갯속으로 빠져들었다. 이 사태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고, 그 영향력을 어떻게 전망하는가?

“일회성 사건, 단순한 관리 부실이나 실수가 아니다. 처리 방향에 따라 통진당, 나아가 현실 진보정당 세력의 존립 자체가 부정될 수도 있다.”

“총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야권이 총선에서 승리하고, 통합진보당이 원내교섭단체가 되는 구상이 제기되었다. 이렇게 되면 새누리당을 포함한 세 개의 교섭단체가 존재하게 되는데, 이 경우 두 개의 진보개혁적인 교섭단체 역할로 인해 국회의 분위기가 크게 변화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총선 및 총선 이후 중대하고 근본적인 상황 변화가 나타났다.

강력한 정권심판론에도 불구하고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과반수를 획득하면서 애초의 기대가 무산된 것은 정말 아쉬운 일이지만, 통합진보당이 13석을 획득하고 야권연대가 140석을 획득한 것을 나름대로 위안으로 삼았다. 이 상황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고자 했다. 그러나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부정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정치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 비례대표 선출 과정의 부정은 비단 한 진보정당의 문제가 아니다. 진보 이전에 민주주의의 문제이며,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국민 일반의 상식을 위반한 문제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세 가지 차원에서 이 문제의 파장을 예상할 수 있다.

첫째, 통합진보당의 존립 자체가 근본적으로 위협받을 것이다. 이 문제는 관리 부실 문제도 아니고 단순한 실수도 아니다. 이 문제를 실수로 간주하는 한 돌파구는 없다. 그러나 통합진보당 안에는 이 문제를 관리 부실로 보려는 시대착오적인 경향이 존재한다. 이 경향이 존재하는 한 통합진보당의 존립 근거는 근본적으로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이 상황이 지속되면 국민들은 진보정당이 무엇하는 정당이냐고 물을 것이다.

둘째, 의회 공간에서 통합진보당의 위상은 극도로 추락하게 될 것이다. 먼저, 민주통합당이 통합진보당과의 연대를 재검토하게 될 것이며, 설령 연대가 유지된다고 하더라도 그 의미는 크게 평가절하될 것이다. 다음으로, 의회 안에서 통합진보당의 발언권과 위상이 크게 실추될 것이다. 따라서 총선 직후 기대했던 역할은 사실상 가능하지 않다.

셋째, 정말로 어려운 일인데, 이 문제가 진보정당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민주화 운동과 진보운동 전반에 상상할 수 없는 광범위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 사태로 인해 진보는 정당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고, 진보를 신뢰하고 애정을 보냈던 국민들이 진보에 대한 기대와 신뢰를 철회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진보정당의 위기가 아니라 진보 그 자체의 위기로 비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우리 스스로 그렇게 느끼고 있지만, 특히 보수세력, 기득권세력, 조중동이 이 문제를 오랫동안 반복해서 재생산할 것이다.

그러므로 통합진보당이 이 문제를 결코 일회적인 사건으로 간주하거나 우발적인 실수로 가볍게 처리해서는 안 된다. 이 문제는 80년대 상황에서 수구세력에 의해 조작되거나 과장되었던 유서대필 사건이나 정원식 사건과는 성격이 다르다. 이 문제는 외부에 의해 조작 혹은 과장된 문제가 아니다. 내부의 치명적인 약점과 한계가 드러났을 뿐이다. 따라서 통합진보당이 이 문제를 가볍게 처리하거나, 불확실하게 처리한다면 한국의 현실 진보정당 세력은 회복할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11. 소수 정당의 몰락, 정말 새로운 제3정당 가능할까?

– 이번 총선에선 여전히 양강 체제랄까, 새누리와 민주당의 양당 시스템이 한국 정치의 기본 상수라는 점이 재확인됐다. 통진당은 이번 총선에선 민주당과 한팀이라고 평가해야 할 것 같고. 이 와중에 선진당은 충청권에서 몰락했고, 진보신당과 녹색당 등 소수 정당은 ‘등록 취소’의 아픔을 겪었다. 새로운 정치세력으로서 기존 새누리와 민주당의 양당 시스템에 충격을 줄 새로운 제3정당 출현은 가능하다고 보나?

“새로운 정당, 제3정당의 창당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단순히 정당을 창당하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의미 있는 사회적 흐름이 만들어져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거대 양당구조 아래 다양한 소수정당들이 난립하는 상황에서 또 하나의 정당을 창당할 공간은 존재하기 어려운 편이며, 정치세력이 지역주의로 편재된 상황에서는 더욱 어렵다. 총선 결과 난립하던 여러 군소정당이 몰락했다고 해도 제3정당의 창당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세 가지 정도의 이유가 존재한다.

첫째, 우리나라에서는 지역정당을 인정하지 않는다. 모든 정당은 전국 정당의 형태를 가져야 하므로 별도의 정치적 공간을 확보하기 어렵다.
둘째, 보수정당과 개혁정당의 거대 양당체제로 구축된 상황인데다 개혁정당보다 진보적인 통합진보당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념적으로도 공간을 만들기 어렵다.
셋째, 적어도 현재로서는 새로운 정치의 동력이 될 사회적 흐름이 존재하지 않는다. 총선에서 박세일 등의 참패는 개인적 지명도에 의존한 창당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칙적으로 세 가지 측면에서 새로운 정당의 창당 가능성은 열려 있다.
첫째, 통합진보당이 대중적 진보정당으로 위상을 설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보다 근본적인 노동자 정당이 등장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둘째, 새누리당이 보수와 수구를 아우르는 백화점식 정당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향후 온건보수와 근본주의적 보수세력으로 분화할 가능성이 있다.
셋째, 보수, 개혁, 진보의 기존 스펙트럼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녹색당이 다시 등장하여 국민의 지지를 받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문제는 새로 등장하는 정당들이 얼마나 지지를 획득하고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냐의 문제인데, 당분간은 큰 힘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지만, 정치체제 전체가 요동치는 정치적 변화는 언제나 예고 없이 다가오는 것이므로 그 가능성을 열어놓고 전망해야 한다. 특히, 우리의 경우 남북분단체제가 빠른 시일 안에 흔들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정치적 변화의 가능성이 높다고 해야 할 것이다.

12. 대선 쟁점: 예상 및 당위

– 이번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무엇이 되리라 예상하고, 또 한편 무엇이 되어야 한다고 판단하는가?

“우리 생활 속에서 만들어진 질문이 쟁점이 될 것이고, 또 그래야 한다.”

“삶의 문제, 생활의 문제가 가장 중요한 대선 쟁점으로 부상될 것이며 또한 그렇게 되어야 할 것이다. 즉 예상되는 쟁점과 당위적으로 요구되는 쟁점이 일치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70년대 이후 민주주의와 경제 성장을 모두 겪었다. 이 과정이 미흡하고 불만족스럽고 불안정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이 과정을 거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민주주의 문제나 경제성장 문제를 다시 거론하는 것은 참신하지도 않고 설득력도 없다. 오히려 많은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하고 경제성장도 했는데 ‘사는 게 왜 이렇게도 고달프냐’고 푸념한다. 그렇게 생활 속에서 만들어진 질문이 우리의 주요 관심사가 되고 있는 만큼 당연히 이 문제를 중심으로 대선 쟁점이 형성될 것이며, 또한 그렇게 되어야 한다.

삶의 문제가 어떤 방식으로 쟁점화될지는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경제 민주화, 재벌개혁, 복지의 문제는 이미 초보적인 수준에서 쟁점화된 셈이다. 여기에 비정규직 문제, 등록금 문제, 중소기업과 자영업 문제, 지역과 농촌의 몰락 등이 함께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러한 삶의 문제는 개별 정책이나 공약의 수준에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다. 이것들은 민주주의의 확대와 삶의 질 개선이라는 차원에서 거시적 포괄적으로 풀려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기존 사회체제가 크게 변화해야 하는 만큼 이에 부합하는 새로운 미래한국의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정당과 후보가 국민의 지지를 받게 될 것이다.”

2부: 학자이자 ‘선수’ 정대화에 대해

1. 정치 체험에 대한 소회

– <미래구상>을 통한 정치 실험, 통합신당 대표비서실장 등의 체험이 정대화에게 남긴 교훈은 무엇인가?

“<미래구상>의 단체명은 <창조한국 미래구상>이었다. 시민사회가 대한민국의 미래 비전을 마련해 새로운 정치, 새로운 사회를 만들자는 취지였고, 그 일을 민주진보진영의 정치권과 공동으로 추진하자는 구상이었으며, 그 일환으로 시민사회가 중심이 되어 열린우리당 탈당파들과 협의를 시작했고, 문국현 당시 대선후보와도 관계를 유지했으며, 그 연장선에서 새로운 정당 (대통합민주신당)을 만들어 우리 측 원로인사를 당대표로 세우고 나는 당대표 비서실장을 맡았다. 그러나 몇 가지 구조적인 한계와 더불어 우리 자체로도 준비가 부족했음을 절감했다.

첫째, 열린우리당을 심판하고 노무현 정부를 심판해야 한다는 당시의 시대적 흐름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 흐름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둘째, 시민사회의 힘으로 이 일을 하자고 했는데, 시민사회 인사들이 중심적으로 참여하기는 했지만, 시민사회의 큰 흐름을 만들지 못하고, 일부 인사들의 참여로 제한되었다.
셋째, 기성 정치권의 이기적이고 정략적인 의도를 제대로 간파하지 못했고, 이들을 억누르고 새로운 정치를 할 만큼 우리가 준비되지 못했다.
넷째, 초기 시민사회, 열린우리당 탈당파, 한나라당 탈당파 (손학규), 구민주당으로 대통합민주신당을 만들고 당시까지 열린우리당에 잔류한 인사들은 수용하지 않기로 결의했는데, 진행과정에서 열린우리당을 통째로 수용함으로써 열린우리당과 노무현 정부로 향하던 모든 국민적 비판을 떠안고 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다섯째, 이와 같은 다국적군으로 내부적인 논란과 혼란 속에서 대선후보 경선을 시작했는데, 당은 과거 열린우리당과 아무런 차별성이 없는 정당으로 변질하여 버렸고, 대선후보로 출마한 인사들의 무원칙한 조직동원이 논란이 되어 시민사회의 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결국은 당대표 비서실장직을 사임할 수밖에 없었다.

결론적으로, 시민사회의 잘 준비된 조직 역량 없이는 기성 정치권을 개혁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비전과 정책을 포함한 상당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무엇보다도 정치개혁은 정치권을 압도할 수 있는 그 무엇, 특히 뚜렷하게 대비되는 비전과 정책의 준비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혁신과 통합을 통한 민주통합당의 창당이, 5년 전과는 여러 모로 다른 성격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정치개혁의 측면에서는 여전히 같은 오류를 반복한 점에서 매우 안타깝고, 그것이 총선패배의 원인이기도 하다는 점은 깊은 아쉬움이다.

2. 민주당 공천의 한계

– 이번 총선과 관련해 민주당의 공천은 ‘계파 나눠 먹기’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특히 정대화 교수 본인이 공심위에서 교육계 대표로 당선 안정권에 추천되었다가 결국은 탈락했다. 이에 대한 솔직한 소회와 평가가 궁금하다.

“새 정치하겠다는 사람들 태도가 기성 정치인과 별반 다르지 않더라.”

“선거가 정책과 인물과 조직의 싸움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더구나 이명박 정권의 정책적 폐해가 강렬한 분노로 분출하고, 지역구 공천의 여러 논란으로 민주통합당의 지지가 흔들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성을 갖춘 다양한 비례대표후보들을 선발하여 진용을 갖추고 국민들의 동의를 받는 것이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다른 분야와 달리 교육계는 작년 하반기부터 교육혁신을 적극 추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비례대표 교육후보를 추진했다. 오랜 논의 끝에 사실상 전체 교육계의 뜻을 보아 3명의 교육후보를 정당에 추천했다. 이 과정에서 공식적인 교육후보는 아니었지만, 전교조 위원장을 역임했던 정진후 후보가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후보로 이미 결정되었기에 교육계는 민주통합당 비례대표에 집중했으며, 공심위에서 교육계의 뜻과 필요성이 무리 없이 수용되었다.

교육계가 이렇게 한목소리를 냈던 이유는 반값 등록금, 사학비리 창궐과 비리재단 복귀, 국공립대 법인화, 비정규직 교수,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 해소 등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교육영역에 핵심적인 쟁점과 과제들이 산적해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과제들을 민주통합당이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는 판단에서 이 문제를 적극 추진할 전문역량이 절실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주통합당 지도부의 지향과 공심위의 지향이 서로 어긋나면서, 더구나 그 과정에서 지도부의 계파별 이해관계가 일부 작용하면서, 공심위 안은 크게 변질되었고, 정책 전문성을 극대화하자는 취지는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

정당의 비례대표는 정당의 필요에 따라 정당이 선택하여 국민의 심판을 받으면 될 일이다. 또 정당이 그 필요성을 느껴 공심위를 구성했으면 공심위의 의견을 마땅히 존중하는 것이 옳은 태도이다. 더구나 계파 나눠 먹기 하지 않고 제대로 일할 사람을 비례대표로 선출하겠다고 약속한 이상 그렇게 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그렇게 되지 못했고, 비례대표 선출과정과 결과가 국민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으며, 총선에서도 뚜렷하게 기여하지 못했다. 더 중요한 것은 총선 이후 핵심 쟁점을 중심으로 현안 문제들을 풀어나갈 전투력을 기대한 만큼 확보하는 데도 실패했다.

가장 아쉬운 대목은 비례대표를 선출하는 과정과 결과의 문제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이 과정에서 새로운 정치를 지향하겠다고 한 사람들의 태도와 의지다. 그들 역시 기성 정치인과 별 달리 구별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런 난맥상을 교정할 어떤 주장이나 움직임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3. 민주당 사학개혁 의지가 있나?

– 특히 이번 정대화 교수 비례대표 공천과정을 바라보면 민주당이 과연 ‘사학비리 척결’과 ‘(대학)교육개혁’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어떻게 평가하나?

“민주통합당의 의지와 정책 전문성이 부족하다.”

“민주통합당이 의당 새누리당보다는 사학개혁 의지가 있다고 봐야한다. 이것을 부정하면 기대할 토대가 사라진다. 그러나 민주통합당이 진정으로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는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다. 현실정치의 어려움을 완전히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기에 모든 책임을 민주통합당에 떠안길 수는 없겠지만, 민주통합당이 의지와 전문성을 가지고 사학개혁을 비롯한 교육혁신을 제대로 추진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판단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민주통합당은 반값등록금과 같이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일, 부담 없는 일에는 자발적으로 나서려고 하지만 중요하고, 부담스런 일은 피하려고 한다. 사학비리 문제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더구나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 근절, 고등교육의 재편과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전문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늘 정부 당국에 휘둘리게 된다. 의지와 정책 전문성 두 측면에서 많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4. 비리사학 복귀 저지 투쟁의 경과

– 관련해서 과거 비리재단 복귀로 몸살을 앓고 있는 대학들의 현황이 궁금하다. 그리고 상지대를 포함한 이들 대학의 올해 계획도 짧게 듣고 싶다.

“대학민주화가 80년대 이전으로 회귀하고 있다.”

“약 60여 개 학교가 사분위 정상화 심의에 올라 있고 그중에서 상지대, 대구대, 세종대 등을 포함한 많은 대학과 초중등 학교에 비리재단이 복귀했으며, 나머지 학교들도 조만간 정상화 심의과정을 거쳐 비리재단이 복귀할 것이다.

비리재단의 복귀는 사학재단, 이명박 정권, 교과부, 사분위가 조중동의 지원을 받아 전개하는 초대형 프로젝트인데 민주통합당은 이 프로젝트에 대항할 어떤 역량도 의지도 갖추지 못한 상황이다. 그 결과 지난 4년간 속수무책으로 당했으며, 이 과정에서 비리재단이 복귀한 대학 등 학교들은 학내에서 재연된 사학분규로 몸살을 앓고 있다. 80년대 후반부터 정치사회적 민주화 과정의 일환으로 시작된 교육 민주화의 조치가 비리재단 축출, 학교 운영의 민주화, 임시이사 파견인데 이 과정이 전면적으로 뒤집어져 우리 교육이 80년대 이전으로 회귀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지난 총선에서 야권이 승리했더라면 그 힘으로 6월 개원국회부터 사학비리를 청산하고 비리재단 복귀를 재평가하는 동시에 당면한 여러 교육 현안을 체계적으로 검토하여 교육혁신의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했으며, 그 연장선에서 대선 승리와 정권교체를 통해 새로운 교육을 시작한다는 계획이었는데, 이 계획의 일부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많은 관련자들이 실망하여 교육혁신을 위한 투쟁동력이 떨어졌다는 것이 문제이며 민주통합당에 대한 기대도 크게 낮아져 어려움이 예상된다.

그러나 교육혁신을 위한 투쟁이 정치권에만 의존해서 진행되는 것은 아닌 만큼 교육계가 심기일전하여 다시금 진용을 재편성하여 활동력을 복원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교과부 앞 상경투쟁 중 학생들과 함께 (2010년 7월)

5. 학자가 아닌 선수로

– 좀 개인적인 질문을 하나 해보자. 앞으로 학자와 평론가가 아닌 ‘선수’로 뛸 용의가 있는가? 좀 더 구체적으론 올해 대선과 재보궐, 차기 총선에서 ‘필드의 선수’로 뛸 용의가 있는지 궁금하다.

“2002년 이후 기계적 중립 노력을 그쳤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고, 상황이 전략을 만든다.”

“상당히 어렵고 민감한 질문이다. 귀납적으로 되돌아보면, 이미 지난 대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정치평론가로서의 활동은 마감한 셈이다. 스스로로 그렇게 판단하고 있고, 대선 이후에도 그렇게 활동해 왔다. 정치평론만으로는 개혁에 한계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해왔던 방송토론 출연을 자제하는 것이나 언론에 정치평론을 기고하는 일을 뜸하게 하는 것도 그런 이유이고 교육혁신을 위한 활동에 몸담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 연장 선상에서 교육후보 비례대표로 출마했으니 자의든 타의든 사실상 ‘선수’로 뛰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결선에까지 올라가지 못했지만, 교육후보 비례대표 추천을 수락하고, 공심위에 후보등록을 하고, 면접에 응했으니 이미 ‘선수’로 뛰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 시작부터 정치적일 수밖에 없었다. 참여연대 창립을 통해 시민운동을 시작했고, 현실정치를 다루는 정치학자였다. 낙선운동, 지지당선운동 등을 통해 언론에 반복적으로 노출되었기 때문에 특별히 이 문제(학자와 ‘선수’의 경계)를 늘 민감하게 다루었다. 그러나 2002년 대선 이후, 생각을 바꾸어 참여연대 활동을 정리했으며, 그 이후에는 기계적이고, 형식적인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정치발전과 사회경제적 발전이지 특정 학자의 정치적 중립성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므로 목표와 과제가 중요한 것이지 그 방법과 태도, 특히 정당과 정당 사이에서 기계적으로 중간을 지키는 모호한 태도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학자냐 선수냐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개혁과 발전의 과제를 어떻게 수행하고 실행할 것이냐의 문제다. 교육후보 비례대표를 수락했던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토대로 한 것이었다. 총선이 끝난 후에는 아직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다만 총선에서 정책과제가 부각되지 못했던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 대선 과정에서는 정책과제를 중심으로 한 쟁점 부각이 필요하다고 보아 그것을 효율적으로 추진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일에 매달려 있는데, 그 이후의 문제는 그 이후의 상황에 맞추어 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고 상황이 전략을 만들어간다.

6. 전범이 되는 해외 정당, 해외 정치 지도자

– 해외 정당, 정치지도자 중에 우리나라 정치에 귀감이 될만한 정당과 정치인으로 정대화 교수가 평가하는 정당과 정치인이 궁금하다. 그리고 그 이유도 짧게 설명해주면 좋겠다.

“유럽 사민당에 관심이 많다. 특히 스웨덴 등 북유럽의 사민당이나 독일 사민당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정당제도가 유럽과 미국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미국 정당에 대한 관심은 높지 않지만, 워싱턴이나 링컨, 2차대전 당시의 루즈벨트와 같은 정치지도자에게는 관심이 간다.

유럽 사민당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이것이 19~20세기 혁명 이후 인류역사에서 사회개혁과 경제발전을 동시에 추진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고 구체적인 사례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들 정당들은 다양한 사회적 요구를 체계적으로 정치영역 안으로 수렴하여 사회안정을 유지하는 성과를 보여주었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와 농민 등 민중의 요구에 기반해 있으면서도 경제발전과 사회복지 확대를 동시에 달성하고, 이를 통해서 사회적 안정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은 모든 시대 모든 국가가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훌륭한 정치지도자는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 많다. 남아공의 만델라, 브라질의 룰라, 중국의 모택동과 등소평, 인도의 간디와 네루, 옛 유고의 티토, 옛 소련의 고르바초프, 베트남의 호치민, 독일의 오스카 라퐁텐, 프랑스의 퐁피두와 미테랑, 19세기 영국의 글래드스턴 등등. 모두 시대 변화를 읽고 변화를 이끌었던 지도자들이다. 정치지도자는 위기와 변화의 시기에 빛나는 것이므로.”

7. 끝으로

– 이번 인터뷰에서 미처 하지 못한 말이 있다면 듣고 싶다.

“20세기 우리 사회는 두 개의 큰 역사적인 과제를 부여받고 있다. 하나는 과거의 역사 구조적인 질곡에서 벗어나는 과제이며, 다른 하나는 새로운 미래사회로 나가는 과제이다. 전자의 과제를 대표하는 것이 70년 분단구조를 해소하고 극복하는 과제이며, 후자의 과제는 새로운 대한민국의 틀을 짜는 과제이다.

“긴 역사적 안목으로 분단된 우리 시대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한반도의 분단은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형성된 것이며 우리에게 역사적으로 엄청난 고통과 희생을 강요한 사건이다. 동시에 지금까지도 우리를 가장 옥죄는 구조적인 장벽이다. 우리가 분단구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늘 고통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더불어 새로운 사회를 창출해가는 일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정치적 민주주의는 물론이고, 모든 사회경제적 발전도 궁극적으로는 분단구조의 해소 위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또, 그 바탕 위에서만 충분히 실현될 수 있다. 더구나 북한동포 역시 마땅히 우리 민족의 일원으로서 미래를 함께해야 할 민족 구성원이다. 한반도 분단구조를 해소하는 일에 우리의 모든 관심과 역량을 모아야 한다. 우리가 삼국시대를 바라보는 것처럼 긴 역사적 안목에서 분단된 우리 시대를 바라보게 된다면, 분단구조에 저항하지 않고 분단을 용인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자”는 시대착오적인 구호로는 안된다.

우리의 미래인 새로운 대한민국을 설계하고 추진하는 일은 다가올 미래의 과제가 아니라 이미 상당히 지연된 오늘날의 과제이다.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현재가 불안정한 것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사회의 현재 역시 불안정한 것일 수밖에 없다. 이미 우리 사회는 70~80년대의 고도성장 사회에서 벗어나 있다. 사회도 그렇고 사람들 마음도 그렇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과 정치는 여전히 박정희 시대나 김대중 시대 정도에 머물러 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선도하던 시대가 지났고, 수출이 내수경제를 이끌던 시대도 지났으며, 노동자가 머슴처럼 일하는 시대도 지났다. 학교를 기업처럼 운영하던 시대는 물론이고, 교사가 학생들을 일방적으로 훈계하던 시대도 지났다. 어느 것 하나 변하지 않은 것이 없는데 우리는 여전히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자”는 시대착오적인 구호를 주창하고 있다. 새로운 사회는 개방과 협동, 공존과 상생, 개인과 공동체가 함께 맞물려 돌아가는 사회다. 우리는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조차 제대로 설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재벌과 지역토호, 친일반공 세력 등 보수 기득권세력들이 자기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혈안인 상황이다. 그런데 사회의 공기인 언론과 학계가 기득권의 재생산에 편승하여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기껏해야 양비론의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결정적으로 정치 역시 이러한 기득권 구조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해결 불가능한 이해관계의 갈등구조 속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한다.

우리가 정치개혁을 주장하는 것은 비단 깨끗한 정치를 하자거나 정치자금을 아끼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를 과거의 낡은 구조에 가두지 말고 사회의 막힌 곳을 열어서 함께 행복하게 잘 사는 미래의 새로운 사회로 나가는 선도적인 역할을 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정치가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한다면, 정치자금이 아까울 게 없고, 정치가 깨끗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제 역할을 못하는 정치권이 기득권 세력의 나팔수 역할을 하면서 엉뚱한 소리만 하니 국민들이 정치를 믿지 않고 불신할 뿐만 아니라 아예 정치를 멀리하는 것이다. 다가오는 대선이 이러한 토론과 혁신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지만 안타깝게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별로 커 보이지 않는다.”

* 이 글은 슬로우뉴스 2호 특집, ‘온라인, SNS, 그리고 4.11 총선’ 열여덟 번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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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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