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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거짓과 심심한 현실 사이에서 선택하라고 한다면, 그래도 꽤 많은 이들은 심심한 현실을 고를 것이다. 하지만 거짓과 현실 여부를 모르게 하고, 그저 매력적인 것과 심심한 것 사이에서 선택을 맡긴다면 어떨까. 두말할 나위 없이 전자다.

언론이 대중의 편견과 선입견에 편승하고, 이를 조장하면 그 결과는 치명적일 수 있다. (사진: @almutawee CC BY NC SA)
언론이 정확한 사실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대중의 선입견에 편승하고, 이를 통해 만들어진 (헛)소문을 양자의 상호작용을 통해 확대재생산하면 그 결과는 치명적일 수 있다. (사진: @almutawee, CC BY NC SA)

사회에 돌아다니는 소식과 사연 가운데 상당수는 현실 여부를 뚜렷하게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사람들에게 들어오게 된다. 하지만 불충분한 상태에서도 어떻게든 정보를 소화하기 위한 사회적 인지 과정이 이뤄지고, 종종 이야기가 전달되고 또 전달되며 당대의 대중적 상식에서 가장 그럴싸하다고 믿는 방향으로 계속 채워진다. 사실 부분은 적고 채워진 몫이 많을 때 우리는 그것을 흔히 소문이라고 부르는데, 언론 역시 조금만 사실 확인을 게을리하고 ‘상식’에 의존하면 어느새 소문의 확대 재생산과정에 적극 동참하게 된다.

사례: 2013년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 사건

이런 문제의 흥미로운 사례 가운데 하나는 2013년 보스턴 마라톤 폭탄 사건 당시의 용의자 보도다. 수많은 각도에서 찍힌 당시 행사 사진들이 인터넷상에 돌아다녔고, 사람들은 집단지성을 발휘하겠다며 수상한 사람을 찾아 나섰다. 그런데 그중 하나의 사진에서 하필이면 아랍계이며, 하필이면 큰 가방을 메고 있고, 하필이면 다들 선수 쪽을 보고 있는데 다른 방향을 보는 두 청년이 찍혀 있었다.

그 사진은 레딧 등지를 돌았고, 병원에서 FBI가 사우디 청년들의 신병을 확보했다는 관계있을 수도 없을 수도 사실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이야기와 합체하며 오늘날 미국 대중에게 가장 그럴싸한 사연인 ‘아랍계 지하드 테러리스트’라는 방향으로 소문은 급격하게 짜 맞춰졌다. 그리고 이런 내용을 발 빠르게 타블로이드지 뉴욕포스트는 기사화해버렸고, 반나절 이상이 지나고 AP 보도에서 바로잡기 전까지는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퍼지지 않기에는 너무 그럴싸했던 것이고, 언론이 뛰어들면서 더욱 힘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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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의 범인을 무고한 아랍계 청년으로 몰아버리게 한 사진. 언론(뉴욕포스트)이 헛소문을 부추긴 사례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도 그럴싸한 원형적 이야기가 무척 많다. 국’개’의원들이 권력다툼에 바빠서 나랏일 돌아가는 것을 가로막는다는 이야기는 어떨까. 노동조합은 월급도 높은 귀족들의 모임이며 자기들이 더 받겠다고 다른 모든 이들을 희생시키더라는 이야기도 꽤 흔하다. 아니면 특정 소그룹에서 통용되는 상식도 있다. 한국의 젊은 여성은 남자들 재산만 벗겨 먹고 일자리도 빼앗고 상전 노릇 하는 나쁜 X들이다는 넷우익 하위문화의 ‘김치녀’ 이야기라든지 말이다.

관련된 소재가 있는데 사실 확인이 매우 간단한 것이 아니라면, 웬만하면 그런 원형적 스토리로 윤색되어간다. 좋고 나쁨을 떠나서(아니, 떠나지 말자… 나쁘다), 사실 확인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고 또한 딱히 환영을 받지도 않는 세상 속에서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나아가 많은 경우 소식이라는 것은 정서적 반응을 일으키곤 하는데, 분노든 감동이든 즐거움이든 경악이든 더욱 해당 사연에 대한 자신의 첫 판단을 강화해준다. 혼란스러움 정도가 예외일 뿐이다.

그럴듯한 사연과 소식이라도 한 번쯤 의심하지 않으면 우리는 어느새 헛소문에 적극 동참하게 된다. (사진: http://www.flickr.com/photos/drachmann/ alexanderdrachmann, CC BY SA)
그럴듯한 사연과 소식이라도 한 번쯤 의심하지 않으면 우리는 어느새 헛소문에 적극 동참하게 된다. (사진: alexanderdrachmann, CC BY SA)

믿기 전에 세 가지는 체크하자

그렇다면 모든 소식들을 의심해야 한다는 것인가 하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다만 어떤 소식을 접한 후 머릿속에 정보로 등록하는 것을 넘어 사실로 믿기 전에, 확인해보는 습관을 두는 것이 도움된다.

[dropcap font=”arial” fontsize=”23″]첫째,[/dropcap] 분노로든 감동으로든 격하게 정서적 이입이 된다면, 해당 정보를 물어다 준 매체가 원래 어떤 내용을 보내는 곳인지 확인한다. 우리 편을 기쁘게 하는 뉴스가 전문이라면, 의심하라. 이미 잘 알려진 농담성 매체들(예: 어니언 등), 혹은 자기들 나름대로는 진지한데 농담 수준도 안 되는 매체들이라면(예: TV조선 등) 더욱 정보는 받되 믿는 것은 일단 유보하라.

[dropcap font=”arial” fontsize=”23″]둘째,[/dropcap] 접한 내용을 널리 나누고 싶다면, 해당 내용이 누군가에 의하여 뒤집히지는 않았는지 5분 만이라도 검색해 보는 것이 좋다. 게다가 무엇보다, 유포까지 하고 나면 자신이 믿게 된 바를 스스로 고치기 훨씬 어렵다(사이비 종교단에서도 흔히 활용하는 기제로, 포교를 시킴으로서 더욱 자기 믿음에 대한 확신을 강하게 만든다). 현행 온라인 도구 가운데, 실시간 진행상황 확인에는 트위터의 키워드 검색, 이전에 이미 나왔던 문헌에 대해서는 구글이 그저 우월하다. 그리고 행여 잘못 알았으면, 흐리지도 숨기지도 말고 단호하게 고쳐라.

[dropcap font=”arial” fontsize=”23″]셋째,[/dropcap] 믿음을 유보한다고 해서 정보를 받아들이고 토론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잘못된 것이 아님을 항상 인식하되, 습관적으로 머릿속에서도 말버릇으로도 전제를 달고 생각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 “OOO 보도에 의하면”, “OOO 관계자는 ***라고 말했다” 등의 예문이 그런 것들이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개개인 뉴스 향유자들은 고사하고 여러 언론 기사들조차 갈수록 왜곡하는 습관이지만.

정보원이 불분명한 '관계자 저널리즘'은 여전히 언론계의 고질적인 폐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캡처: 구글검색)
출처를 밝힌 척 하지만 사실은 숨기는 ‘관계자 저널리즘’은 언론계의 고질적인 폐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캡처: 구글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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