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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껍질을 깨뜨린 질문: 안녕들 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인사말이다. 아기들은 ‘안녕? 너 정말 귀엽다’, ‘안녕, 안녕? 얘 언제 이렇게 컸대?’ 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세상과 만난다. ‘안녕히 다녀오세요’를 잘 따라만 해도 엄마 아빠에게 칭찬을 받고, 좀 더 자라 학교에 가면 선생님들께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법을 배운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는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고, 남녀간의 사랑도 대개 ‘안녕하세요?’로 시작된다. 이렇게 보면 ‘안녕하세요?’는 우리 몸에 가장 깊이 새겨진 사회적 행위 중 하나다.

인사말로 쓰이면서 사라진 ‘아무 탈 없는 평안’

안녕(安寧)은 본래 ‘아무 탈 없이 편안하다’는 뜻이다. 이러한 한자의 의미는 ‘안녕하세요’가 인사말로 널리 쓰이면서 사라진다. 상대방과 불편한 관계에 있거나 몸이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이라도 ‘안녕하세요?’라는 인사에’ 제가 당신 때문에 얼마나 골치가 아픈데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하시나요?’라거나 ‘아뇨. 절대 안녕하지 못해요. 제가 진짜 아프거든요’라고 답하지 않는다. 그저 ‘안녕하세요?’라고 대꾸하고 가던 길을 갈 뿐이다.

‘안녕하세요?’가 인사가 되었다는 것은 상대방의 안녕을 물어보는 기능이 사라졌다는 뜻이다. 이제 ‘안녕하세요’라는 말은 ‘저는 당신의 안녕에 관심이 있고, 그래서 당신이 아무 탈 없이 편안하신지 궁금합니다’라는 의미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만났으니 아는 척을 하겠으니 당신도 절 봤다는 표현을 해주십시오’라는 최소한의 사회적 기능만을 수행한다. 의례가 되어버린 ‘안녕하세요?’는 관계의 깊이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형식만을 담을 뿐이다.

일상을 전복하는 ‘안녕들 하십니까?’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안녕들 하십니까?’는 세 가지 면에서 우리의 일상적 언어를 전복한다.

주현우 씨의 대자보, '안녕들 하십니까?'

주현우 씨의 대자보, ‘안녕들 하십니까?’

첫째,’안녕들 하십니까?’는 인사를 넘어서는 진지한 질문이다. ‘안녕하세요?’에 대해 그저 ‘안녕하세요?’로 답하며 스쳐 지나가길 기대하지 않는다. 아프면 아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주기를, 짜증 나면 짜증 난다, 미치겠으면 미치겠다고 소리쳐 주길 바란다. 그렇기에 ‘안녕들 하십니까?’는 대화를 닫기 위한 가벼운 제스처가 아니라, 소통을 열기 위한 뜨거운 몸부림이다.

둘째, ‘안녕들 하십니까?’는 단지 너와 나의 인사가 아니다. 처음 소통의 문을 연 주현우 씨의 대자보 글은 ‘안녕들 하십니까?’로 시작해서, ‘모두 안녕들 하십니까!’로 끝나지만, 두 ‘안녕’ 사이에 수많은 이들의 목소리가 담겼다.

철도 민영화에 반대하다가 직위해제된 수천의 노동자들, 밀양 송전탑 건립에 반대하다가 자살하신 고 유한숙 씨와 밀양 주민들, 먹튀 자본과 신자유주의적 권력에 맞선 쌍용자동차 노동자들까지. 이런 의미에서 ‘안녕하십니까?’는 단순히 상대방을 호명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포함한 사회 전체, 그중에서도 고통당하고 있는 이들을 불러온다.

셋째, ‘안녕들 하십니까?’는 안녕하지 못한 현실 뒤에 있는 무능력하고 불의한 권력을 겨눈다.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물음은, ‘적어도 제가 알고 있는 사회는 안녕하지 못한데 당신들은 안녕하십니까?’라는 물음이며, ‘혹시 안녕하지 못한데 안녕한 척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도발이다. 나아가, ‘안녕하지 못한데 그렇다고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게 하는 힘이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한 힘을 가진 자들은 누군가의 고통 위에서 자신들만의 안녕을 누리고 있지는 않은가?’라는 비판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진짜 ‘안녕’을 찾아서

지금 ‘안녕들 하십니까?’는 바쁜 일상에 묻혀버린 진짜 ‘안녕’의 의미를 발굴하려 한다. 스쳐 가며 툭 던지는 ‘안녕하십니까?’가 아니라, 정치인이 선거 때면 부르짖는 ‘존경하는 유권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가 아니라, 우리 마음 깊은 곳 불안과 아픔에 대해 조곤조곤 말걸 수 있는 공감의 ‘안녕하십니까?’를, 홀로 두려워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서로에게 용기를 불어넣는 연대의 ‘안녕하십니까?’를 캐내려 한다.

‘안녕들 하십니까?’는 방관과 침묵의 지층 속에 묻혀버린 안녕을 찾아가는 작업에 우리 모두를 초대한다. 공감과 연대를 발굴하는 작업은 학교 후문에서, 거리에서, 밀양에서, 제주 강정에서, 시청 광장에서, 강의실에서, 술자리에서, 시국 선언 현장에서, 소셜 네트워크에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와 당신의 삶 속에서 진행될 것이다.

이 작업이 어떻게 진행될지, 그 결과 얼마나 큰 안녕을 이룰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안녕과 안녕하지 못함, 편함과 편하지 않음에 관해 진지하게 질문하면 할수록 나의 안녕과 너의 안녕이 하나로 얽혀 있으며, 실상 하나라는 것, 그렇기에 우리가 모두 안녕할 때 나와 너도 안녕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제 글을 마치며 수많은 분이 던졌던 질문을, 그러나 그들 중 어떤 것과도 똑같지 않은 질문을 던져본다.

정말 모두 안녕들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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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김성우
초대필자, 응용언어학자

성찰과 소통, 성장의 언어 교육을 꿈꾸는 리터러시 연구자입니다. "삶을 위한 영어공부"라는 관점에서 영어교육을 새롭게 정의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산문집 [어머니와 나]를 썼고, ‘영어논문쓰기 특강’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작성 기사 수 : 7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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