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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숙의 새 필드] 한국학이 활발한 영국 셰필드에서 대중문화를 공부한 박미숙 박사와 함께 대중문화에 비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이야기합니다. 오늘 추가할 새 필드는 풍자.  


시상식 당시 모습과 상패. 풍자 인스타그램.

2023년 MBC연예대상 여자 신인상을 ‘풍자’가 받았다. 풍자의 수상과 수상소감은 새해에도 잔잔한 화제다. 2023년 유난히 유튜버나 BJ와 같은 1인 방송으로 인기를 얻어 공중파 텔레비전으로 진출한 경우가 많았다.

풍자 걱정하는 아빠, 그 아빠 걱정하는 풍자


2023년 유난히 유튜버나 BJ과 같은 1인 방송으로 인기를 얻어 공중파 텔레비전으로 진출한 경우가 많았다. 그중에서도 풍자는 두드러진다. 풍자는 2016년 ‘아프리카 TV’ 진행자로 시작해 인터넷 방송 ‘풍자테레비’를 통해 유튜버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웹 예능과 케이블에 진출했으며 지난해 지상파 MBC ‘전지적 참견 시점’, ‘라디오 스타’, SBS ‘미운 우리 새끼’, jtbc ‘히든 싱어즈’ 등에 골고루 출연했다. 풍자가 주류 지상파 방송국 연말 시상식에서 수상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풍자는 알려진 대로 ‘윤태웅’에서 ‘윤보미’가 된 트랜스젠더 예능인이다. 이전에도 하리수처럼 태어난 성별 대신 새로운 성별로 활동한 트랜스젠더 예능인이 있었다. 그로부터 약 30년 만에 또 한 명의 트렌스젠더 예능인이 나왔다. 그러나 풍자는 하리수와는 결이 다르다.

하리수가 여성스럽고 아름다운 외모였다면 풍자는 크고 거칠며 여성적이지 않은 행동으로 악플에 시달려야 했다. 풍자는 수상 소감에서 이렇게 말했다:

(신인상 받을 줄 모르고) 짬뽕 먹고 왔거든요. 받을 줄 모르고

(…중략…)

진짜 받을 줄 몰라가지고…

아직도 집에서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혹시나 사회에서 조금 설움이 있을까, 배제당할까 걱정하시는 저희 아빠한테 ‘저 이렇게 사랑받고 있고, 저 이렇게 인정받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MBC [2023 방송 연예 대상] 풍자 ‘신인상 여자 부문’ 수상 소감 중에서, 오른쪽은 캡처. 2023. 12. 29. 맞춤법을 고려하지 않고 구어체 그대로 옮김(편집자).

‘다른 세상’을 현실로 경험하면…!


그렇다면 현실은 어떨까? 현실에서 성소수자 및 사회적 약자의 삶은 주류 지상파 방송국에 비치는 모습처럼 화려할까? 한국 사회는 모든 면에서 양극화한 사회다. 남녀 이분법에 따라 획일적인 문화까지 겹쳐 조금이라도 다르면 곧바로 문화적 처벌이 따른다.

풍자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가족 안에서 커밍아웃도 어려웠다. 15세부터 세 번 시도가 있었고, 그 세 번 시도가 모두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수상 소감에서 밝혔듯이 풍자는 여전히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가부장제 사회는 인간은 남녀 양성 중 하나로만 태어나고 남성 중심의 이성애가 순리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성별은 존재하는가? 확인 가능할까? 여성과 남성을 가임 여부와 특정 부위를 확인해야만 알 수 있는가?

작년 2023년 9월 한국 최초의 레즈비언 부모가 탄생했다. 이들은 벨기에 난임 연구소에서 기증받은 정자로 임신해서 부모가 되었다. 그러나 한국 현실은 이들을 합법적인 부부로도 합법적인 부모로도 인정하지 않았다. 현재 이들은 미국에 머무르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소수자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성별, 계급, 지역, 학벌, 외모, 장애, 성적지향, 심지어 나이 등에 따라 대부분 한 가지 이상 차별과 타자성을 경험한다. 누구도 모든 면에서 완벽(?)할 수 없다. 남성 중심과 이성애 문화가 전부라고 믿을 때 우리는 그런 문화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른 세계가 가능하고 그것이 또 하나의 현실인 것을 알면 기존 절대 권력은 상대화한다.

‘다른 세상’을 현실로 경험하면, 그 세상을 금기시했던 기존의 절대 권력은 상대화한다.

정체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정체성도 사회적인 관계와 맥락에서 만들어진다. 가령, 나는 한국에서는 여성으로 간주되지만, 영국 현지인 눈에 나는 이방인이다. 나는 그들 눈에 ‘아시아’ 여성이거나 박사 학위와 동시에 영국을 떠날 ‘외국인’ 유학생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경쟁 대상도 되지 못하는 투명 인간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는 무엇으로 나인가. 중심과 주변부로 나눈 이분법 속에서 자신을 당연한 주류이거나 주변인으로 동일시하지 말아야 한다. 정체성은 성별, 계급, 지역, 심지어 연령 등 개인이 가지고 있는 복합적인 사회적 위치와 상황으로부터 발생한다.

성별 문제는 사적인 문제거나 하찮은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젠더 문제는 사회적으로 이해 관계, 권력관계의 충돌이 잦다. 다시 말해, 개인적인 것이 사회적인 문제가 된다. 그러나 젠더 문제는 기존의 세계관에 대해 단순히 반대하는 세계도 아니고 기존 세계관을 대체할 수도 없다. 단지 가부장성 이성애 사회가 가진 하나의 목소리에 다른 타자의 목소리도 함께 들려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을 정체성을 관계와 맥락을 통해 형성한다. ‘나는 어느 이야기 속에 존재하는 어떤 역할을 가진 사람인가.’

다른 세상, 평범한 일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소파에 앉아서 조는 둥 보는 둥 하며 보는 늦은 밤 예능 프로그램이 시간 때우기에 급급한 것이 우리네 현실이라고 하더라도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이 지니는 실천적이고 문화적 힘이 긍정적인 힘으로 분출되기를 바란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에 관해서는 특히 지배 이데올로기나 대중 매체에서 떠드는 것 이상 알기 어렵다. 주류 지상파 방송국이 풍자를 인정했다고 해서 다른 ‘풍자’들이 모두 풍자 같은 화려한 새해를 맞이한 것은 아닐 것이다.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치는 우리의 일상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 탓에 오히려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주류 방송국이 보여준 화려한 수상식 뒤, 매체 밖 현실은 지금도 수많은 ‘풍자’들이 제 목소리를 내고 있지 못하다.

풍자의 수상이 주는 의미는 다양하다. 이 다양한 의미가 좀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면 좋겠다. 시청자들이 ‘다른 세상’을 현실로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때 다른 세상을 금기시한 권력은 조금씩 무너질 테고, 트렌스젠더 예능인이 상 받는 일이 더는 ‘특별’한 일이 아닌 날이 올 거다.

풍자의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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