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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슬로우뉴스는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논란에 관한 다양한 의견과 주장을 실으려 합니다. 많은 참여와 관심을 바랍니다. 관련 글은 발행하는 대로 목록을 업데이트할 예정입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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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테르 (1694~1778)  초상화 작가: 니콜라 드 라르질리에르 (제작연도: 1724-1725)
볼테르 (1694~1778)
니콜라 드 라르질리에르가 1724-1725경에 그린 볼테르의 초상화

“나는 당신의 사상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 사상을 말할 권리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

계몽주의 시대 비판적 지식인 볼테르. 그러나 이 말을 볼테르가 직접 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주1). 하지만 볼테르의 정신이 그 말에 함축된 것은 사실이다.

이석기 사태가 점점 악화한다. 새누리당은 이석기 의원직 제명을 들고 나왔고, 법무부는 통합진보당 해산 요건을 검토 중이다. 한번 고삐를 잡은 공안기관과 보수 세력이 어디까지 날뛸지 소름이 끼친다. 한편 진보좌파 쪽에서는 이 문제를 ‘사상의 자유’를 둘러싼 싸움으로 보고, 지금은 이석기 편을 들어야 할 때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당신의 사상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 사상을 말할 권리를 위해 함께 싸우겠다”는 말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이석기 그룹의 생각 또는 주체사상파의 사상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그래도 공안탄압에 맞서 그 사상의 자유를 옹호해야 한다는 얘기다.

나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에 당연히 동의하고, ‘설령 주체사상파라도’ 그의 사상이 이단적이라는 이유만으로 탄압받는 것에 당연히 반대한다. 하지만 나는 진보좌파 상당수가 ‘사상의 자유’를 매우 기계적으로, 그리고 숙고하지 않은 채 주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이석기 그룹과 공안당국과의 대립에서 쟁점은 ‘사상의 자유’가 아니란 점이다. 둘째, 사상의 자유에 포함된 핵심적인 권리, 그 권리의 체계, 그리고 그 한계를 고민하지 않고 이를 적용하는 건, 도리어 그 자유를 무력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첫째, 이석기와 공안당국 싸움에서 ‘사상의 자유’는 쟁점인가?

지금 이석기 의원이 ‘나는 주체주의자다’라든가 ‘녹취록 내용은 사실이다’, ‘난 그렇게 하려고 했다’고 주장하는가? 아니다. 지금 이석기 의원과 그의 그룹은 모두 ‘녹취록은 조작, 날조’이라고 주장한다. 통진당 이정희 대표는 ‘농담’이 짜깁기, 과장되었다고 반박했다. 따라서 법적인 쟁점은 녹취록이 과연 사실인가, 증거능력이 있는가, 혹은 ‘농담 수준의 발언’을 대상으로 내란음모나 내란선동 같은 죄로 벌할 수 있는가 등등이다.

즉, 이석기 의원은 검찰이 주장하는 혐의 내용인 사상, 계획, 표현에 대해 철저히 부인하고 있다. 그의 말로만 보면, 지금 상황은 ‘건전한 상식을 지닌 대한민국 국회의원을 국정원이 빨갱이로 조작하는 전형적 공안사건’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 자신이 부인하는 사상에 대해, 다른 이들이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하면, 그건 이석기 의원에게 ‘너 주체사상파 맞잖아. 하지만 너의 사상도 보호되어야 해.’라고, 이석기 의원 스스로 부정하는 사상을 강요하는 꼴이 아닌가?

아마도 변호인단은 현재의 변론 기조를 밀고 나갈 텐데, 법원에서 이를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한다면 이석기 그룹은 ‘국정원의 날조 조작이 증명되었다!’고 환영할 것이다. 하지만 진보좌파는 이석기 그룹에게 ‘사상의 자유가 승리했다’고 할 수 있을까? 뭔가 핀트가 심하게 안 맞는다.

지금 사태에서 오히려 강조할 것은 사상의 자유보다 죄형법정주의요, 무죄추정원칙이요, 사법부의 합리적이고 독립적인 판단이다. 반인권적인 수사행위나 증거 조작은 없어야 하며, 충분한 변론권이 주어져야 한다. 공안부서나 정권이 사법부에 압력을 넣어선 안 되고, 많이 얘기하는 것처럼, 법원은 구체적인 행위 계획 없는 ‘내란죄’를 인정해선 안 된다. 더불어 아직 법적 판단이 내려지지도 않았는데 이석기 의원의 의원직 제명은 말이 안 되고, 증거도 없이 통진당 전체 그리고 진보개혁세력을 꺾어 누르려는 공안당국의 시도를 막아야 한다. 국정원에 대선개입 의혹에 관한 책임 역시 계속 물어야 한다.

‘주체사상도 사상의 자유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금으로선 그저 원론을 확인하는 것뿐, 이석기 그룹이 스스로 주장하지 않는 한 주요 쟁점이 아니다. 오히려 다른 구체적인 요구들로 국민을 설득하는 게 맞다.

통합진보당 홈페이지 첫 화면 모습
2013년 9월 12일 오전 현재

둘째, ‘사상의 자유’는 무엇인가? 또 어디까지 보장해야 하는가?

어떤 사람은 사상의 자유가 마치 무제한적인 행동의 자유까지 포함되는 것처럼 말한다. 그러니까 이석기 의원이 130여 명의 ‘유격대원’을 모아놓고 모종의 ‘전쟁 결의’를 한 것도 인정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상의 자유에 관한 심각한 오해다. 사상의 자유란, 기본적으로 ‘내심의 자유’이고, 자신의 양심을 강제로 표명하지 않아도 될 권리, 그리고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강제로 하지 않을 권리, 더 적극적으로 이해하자면 사상을 외부로 표현할 수 있는 권리다.

얼마 전 국정원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현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에게 한 멍청한 국회의원이 “지금도 이 나라의 대통령이 문재인이 되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죠?”라고 질문하면서 대답을 강요하자 권은희 과장이 “그것은 헌법이 금지하는 십자가 밟기 질문”이라고 답했는데, 그게 사상의 자유의 핵심이다(주2). 나아가 시장통에 태극기 걸어놓고 지나가는 사람은 모두 국기에 대한 경례를 시킬 때, 그걸 하지 않을 권리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정치 결사의 자유’와 결합하여 자기 사상을 표현하고 타인을 설득할 수 있는 자유의 기초가 된다.

이석기 그룹이 모여서 ‘총기 제조, 유류시설 폭파’를 계획하는 행동은, 엄밀히 말해서, 사상의 자유 영역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자기들 목적을 위해 시민을 살상할 수 있다는 그게 무슨 자유의 영역인가. 우리가 우파 장군들이 모여 쿠데타 모의를 (혹은 쿠데타에 관한 농담을 하는 것을) 사상의 자유라고 말하지 않고, 조폭들이 나와바리 접수 전쟁을 앞두고 아이디어 회의를 하는 것을 사상의 자유라고 하지 않는 것과 같다. 단지 범죄 구성요건이 안 되어 처벌하지 못할 뿐이다.

어떤 사람의 자유란 다른 이가 그 자유의 권리를 보호해줄 의무와 동반된다. 또한, 당연하게도 타인의 본질적인 자유를 침해해선 안 된다. 우리는 국가를 향해 ‘나는 주체사상 또는 마르크스주의 또는 외계인창조설을 믿는다’, ‘내가 외계인창조설을 믿는다고 국가가 날 처벌할 수는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사상의 자유의 핵심이며, 내가 무력으로 시민에게 내 사상을 전파하는 게 아닌 이상 자유롭게 주장을 펼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석기 그룹에 있어 ‘사상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된다면, 공동체의 많은 시민이 불안에 떨어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들의 자유를 보호할 의무를 갖는가. 왜 그들의 자유만 보호되어야 하는가. 그건 평등성의 원칙을 거스른다.

어떤 권리는 그 자체로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권리들의 체계 속에 상호 지지되고, 또 강화된다. 진보좌파는 자유와 권리에 민감하면서도, 이런 권리의 체계에 관해서는 관심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유와 권리가 상호 충돌할 때, 그 권리의 핵심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그것을 조정할지 고민해야 한다. 그런 고민 없이 이때는 사상의 자유를 말하고, 저때에는 시민의 안전을 말하는 건 모순이며, 구체적이지 않은 권리는 언제나 무력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가치와 권리의 체계로서 우리가 가진 게 헌법이다. 심상정 의원은 “헌법 밖 진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좌파 진영에서는 욕을 엄청나게 먹었다. 통진당에서 의원 배지까지 단 사람이 그렇게 쉽게 체포동의안까지 통과시키는 모습에 실망스러웠지만, 헌법을 근거로 삼는 정치 행동이 온갖 직관적인 권리와 자유를 근거로 삼는 정치 행동보다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시민들이 겪는 문제 대부분은 헌법의 진취적인 해석과 합리적 제도를 통해 해결될 수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나는 좌파가 헌법의 명분을 가장 반헌법적인 세력들에게 넘겨주고 주변화되는 것이 늘 안타깝다(헌법 가치를 존중하는 것이 ‘합법주의’인 것도 아니다. 헌법 정신에는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고 불복종할 권리가 당연히 포함된다).

글이 길어졌다. 이석기 의원에 대해 난 무죄 판결을 원하고, 통합진보당이 지켜지기를 바라며, 국정원의 무리수가 반드시 좌초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공안당국에 의해서가 아니라 진정한 ‘사상의 시장’에서 그들의 사상이 토론되어 폐기될 건 폐기되고, 혁신될 건 혁신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 촛불도 힘닿는 한 들고, 공안탄압에 항의하려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함께 살아갈 시민의 입장에서 이석기 그룹의 생각과 계획에 여전히 동의할 수 없으며, 그 계획이 실행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순간, 사상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보호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주체사상이든 그 무엇이든 공개 영역에서 표현하고, 토론하는 것은 자유의 이름으로 보호해야 할 것이다. 그 점에서는 나도 저 볼테르의 정신이 담긴 유명한 말, “당신의 사상을 말할 권리를 위해 싸우겠다”는 말을 외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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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유명한 문장은 볼테르 사상을 정리한 이블린 홀의 [볼테르의 친구들](1906)에서 유래했다.

2. 2013년 8월 19일 국정원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권은희 수사과장의 답변을 모아 편집한 동영상. 권 과장의 “십자가 밟기” 답변은 6분 25초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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