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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사회 칼럼] 노동자의 죽음 앞에서 “시급제 노동자가 왜 열심히 일하겠어”라고 ‘대책’을 세우는 기업(쿠팡). 그런 기업에 분노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소비자의 힘은 미약하고, 법정의 문턱은 높으며, 기업의 돈과 시간은 개인의 분노를 압도한다. 소비자에겐 세 가지 무기가 필요하다. (김보라미 / 변호사) (⌚6분)
🎡 참여사회 특집 ‘불매운동’

불매운동은 많은 변화를 만들어냈지만 여전히 한계도 분명합니다. 역사적 저항 운동으로서 불매운동의 의미를 살펴보고, 소비자 권익을 보호할 법과 제도 도입을 제안합니다.

1. ‘호갱’ 한국: 왜 기업이 잘못해도 소비자만 더 피해 볼까 (정지연)
2. 소비자에겐 세 가지 무기가 필요하다(김보라미)
3. 갈라파고스에 갇힌 소비자의 권리 (한경수)

꽤 오래된 일이다.

조중동 광고 불매 운동의 추억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과 촛불집회 과정에서 시작된 ‘조중동’ 보도에 대한 비판이 소비자 광고 불매운동으로 이어졌던 적이 있었다. 이 때 몇몇 분들은 자발적으로 신문에 실린 광고주의 이름을 옮겨 적어 인터넷에 올렸다. 이미 공개되어 누구나 알 수 있었던 명단이었다. 거창한 뜻보다는 처자식을 부양하던 평범한 가장으로, 그저 ‘이건 아니다’라는 마음 하나로 시작했던 일이었지만 구속되었던 분도 있었다.

소비자불매운동으로 구속까지 되는 것이 맞는 것인가 갑론을박이 있던 시절, 구속된 분의 변호인도 아니었지만 조금이라도 숨통을 틔워주고 싶은 마음에 한 분을 접견한 적이 있었다. 접견 후 가족을 부양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그가 정의감으로 목소리를 냈을 뿐이란 것을 알았다. 불매운동은 가진 것 없는 사람이 들 수 있는 가장 오래되고 맨손에 가까운 무기였다.

소비자는 여전히 힘이 없다

세월이 흘렀고 기업에서 비롯된 사건과 사고는 해마다 더 커지고 더 잦아지고 있다. 작년 겨울에는 쿠팡에서 사람들의 개인정보가 빠져나갔고, 올 봄에는 스타벅스가 5·18의 비극을 희화화했다는 논란이 있었다. 사고는 컸지만 사과는 가벼웠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어찌 해볼 수 없는 분노로 사지 않겠다는 결심을 시작하곤 한다. 소비자는 지금도 분노 앞에서 가장 먼저 이 무기를 집어 들지만, 이러한 불매운동이 지속되는 것은 정보와 비대칭과 벗어나기 어려운 거대 기업의 영향력 때문에 여러 모로 힘들다.

2020년 10월 쿠팡 칠곡물류센터에서 발생한 산재를 은폐하려는 정황이 담긴 쿠팡 내부 자료 일부가 공개됐다. 김범석(쿠팡 의장)이 쿠팡 전 CPO·개인정보보호 최고책임자가 노동자 사망 뒤 메신저로 나눈 대화다. 김범석은 그 대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범석: “이건 우리가 필요한 게 아니다. 그가 열심히 일한다는 메모가 남지 않도록 확실히 해. 물 마시기, 잡담, 서성거림, 짐 없이 이동하기, 화장실…

임원: “그런 내용은 메모에 없다.”

김범석: “그가 왜 열심히 일하겠어? 말이 안 된다.”

임원: “여러 사람이 영상을 검토하면서 공통적으로 한 관찰이다.”

김범석: “말이 안 된다. 그들은 시급제 노동자들이다. 성과가 아니라 시간급을 받잖아.”

김범석(쿠팡 의장)과 임원의 대화 중에서.
김범석(쿠팡 의장).

이 대화 메시지를 제보해 쿠팡 불매운동에 정당성을 제공해 주었던 한 제보자는, 쿠팡의 영향력에 대한 우려 때문에 끝까지 매체에 이름을 공개하려 하지 않았다. 모든 인터뷰는 익명으로 이루어졌지만, 쿠팡은 여러 매체를 통해 제보자를 모욕하는 인신공격성 반론을 지속했고 그러한 전략은 실제로 위축효과를 발생시키에 충분했다.

불매는 비폭력적인 수단이지만, 이 무딘 무기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무리 휘둘러도 깊이 상처 내기 어렵다. 불매운동은 함께 분노를 표현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처음의 뜨거움은 오래가지 못하고 식기 마련이다. 매일 써야 하는 생필품 앞에서, 마땅한 대안이 없는 상품 앞에서 불매의 결심은 지속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거대한 기업을 겨누었던 칼이 가맹점주와 협력업체,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이 먼저 타격을 입힐 때는 마음이 편치 않기도 하다. 게다가 법은 불매운동 자체에 대해 면죄부를 주지 않는다.

분노의 유효기간은 짧고, 기업의 시간은 길다

2008년 조중동 광고 불매 운동은 대법원까지 가, 광고주를 집단적으로 압박한 부분에 대해서는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로 처벌되었다. 무엇보다 불매는 분노를 표현할 수는 있어도, 배상과 책임을 끝내 받아내지는 못한다. 소비자가 분노하는 동안 기업은 대응을 자제하며 시간이 흘러가기를 기다릴 뿐이다.

사람의 분노에는 유효기간이 있지만, 기업에는 그 시간을 버틸 자본과 인내가 있다. 한쪽이 생계를 쪼개어 결심을 지키는 사이 다른 한쪽은 광고와 사과문으로 계절이 바뀌기를 기다리면 그만이다. 그렇게 외침은 컸으나, 바뀐 것은 적었다. 떠난 소비자는 조용히 돌아오고, 피해를 본 사람의 손에는 사과의 말 몇 마디 외에 쥐어지는 것이 없다.

쿠팡사건을 돌아보자. 쿠팡을 퇴사한 직원의 손을 타고 상당수의 고객 개인정보가 빠져나갔다. 전체 가입자 수의 일부 밖에 되지 않는 사람들이 집단소송 카페로 모여들었지만, 정작 그 회사는 같은 해 사상 최대의 연간 매출을 기록했다. 한때 주간 매출의 4분의 1이 빠졌던 스타벅스도 불매가 시작된 지 8일 만에 선물하기 순위 1위로 돌아왔다.

스타벅스 굿즈. 스타벅스.

오히려 매서운 말과 분노는 잘못을 저지른 본사가 아니라 매장에서 묵묵히 커피를 내리던 직원들에게로 향하기도 했다. 불매운동의 분노는 뜨거웠지만, 배상도, 잘못의 값도 치러지지 않았고, 문제의 원인도 뽑히지 않았다.

기울어진 운동장, 기울어진 법정의 저울

저울은 처음부터 기울어 있었다. 소비자의 피해는 모두 제각각의 원인이 있지만, 근본적으로 비슷한 모양새다. 분노하거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있지만, 한 사람의 피해를 살펴보면 그동안 우리 법원은 ʻ법원에 소제기를 왜 하나’ 싶을 정도의 금액을 피해액으로 책정해 왔다.

피해액 뿐만 아니라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를 아는 정보는 대개 기업의 손안에 있고, 특히 ʻ해킹사건’의 책임 인정 여부를 그간 법원은 좁은 범위 내에서 인정해 왔다. 피해를 입증할 자료에 대한 접근은 한계가 크고, 소비자들이 이를 짊어지기엔 소송의 비용과 시간이 너무 무겁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소송을 하려다가도 망설인다. 소비자들의 피해에 대한 대책은 대체로 사후적인데다가 법원을 통한 배상액도 만족스럽지 않다. 어렵게 배상에 이르러도 그 몫은 자기책임의 원칙 앞에서 일부 깎이기 일쑤다. 소송을 진행하게 되면 대형 로펌으로 무장한 기업과의 싸움은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지친다.

게티이미지.

더 많은 무기가 필요하다

이 모든 일의 본질은 결국 ʻ권력의 불균형’ 이슈이다. 한쪽은 정보, 자본, 전관, 정책결정권자들과의 네트워크, 인내할 시간을 쥐고 있고, 다른 한쪽에는 결국은 흩어질 분노뿐이다. 우리의 제도가 소비자를 여전히 ʻ보호받아야 할 객체’로만 바라볼 때, 개인은 분노를 표현할 자유는 가졌으되 잘못을 바로잡을 힘은 갖지 못한다. 그러므로 소비자에게는 더 많은 무기가 필요하다. 용기만으로는 부족하다. 손에 단단히 쥘 도구가 있어야 한다.

1. 집단소송제

첫째, 집단소송제도는 반드시 필요하다. 작은 피해들을 한자리에 모아, 흩어진 빗방울을 강물로 만드는 일이다. 현행제도에서 입증방법도 동일한 만 명 정도의 소송인단을 모아 소송을 하게 되면, 소송인단 정리에만 수개월이 걸리고 법원도 소송인단 정리에 과부하가 걸리기 십상이다. 집단 소송제도의 도입은 소비자 입장뿐 아니라 사법절차의 합리화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2. 증거개시제도

둘째는 증거개시제도다. 기업만 가지고 있는 증거들을 열게 해야 한다. 절대적으로 정보가 부족한 피해자가 다툼에 앞서 증거를 확보할 수 있게 하고, 무거운 입증의 책임을 더 많이 아는 쪽으로 옮기자는 것이다. 증거개시제도는 무기대등의 원칙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3. 징벌적 손해배상

셋째는 징벌적 손해배상이다. 현재의 제한적인 수준의 배상액을 넘어서서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는 일이 필요하다. 징벌적 배상제가 도입되면 불매운동은 기다리면 잠잠해지는 것이 아니라, 잘못해도 이익이 나는 장사가 되지 않도록, 책임의 무게를 제대로 추궁하는 목소리가 될 것이다.

게티이미지.

보호의 객체에서 권리의 주체로

위 세 가지 요구는 소비자를 보호의 객체에서 권리의 주체로 일으킨다. 그간 기업들이 시혜적으로 접근했던 소비자의 불만에 대해 소비자 스스로 실질적 권리 행사를 가능하게 해야 한다. 한 번의 분노가 허공으로 흩어지지 않고, 배상, 책임, 그리고 근본적인 원인제거라는 단단한 결실로 맺히게 하는 길이다.

집단소송은 흩어진 사람들을 묶는다. 증거개시가 기울어진 정보의 저울을 바로잡고, 징벌적 배상이 잘못의 값을 제대로 묻는다. 불매의 외침은 메아리가 아니라 정당한 응답을 받는다. 기업이 소비자의 눈치를 보며 버티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권리 앞에서 책임을 마주한다. 불매의 목소리로 시작된 권리 주장에 답이 돌아오게 하자는 것이다.

다시 2008년 조중동광고불매운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다 구속되었던 그 분을 생각한다. 그가 높이 주장했던 것은 정의였고, 당시 많은 언론소비자들이 이에 호응했지만 미완의 불매운동으로 끝났다. 용기와 불편함만을 소비자들에게 요구하고, 온전히 부담으로 지우는 것은, 정의롭지 않은 사회의 모습이다. 분노가 해결되지 않고, 의문으로만 남지 않도록, 제도라는 더 단단한 무기가 도입되어야 한다. 그럴 때 이는 더 이상 소비자들을 외롭게 두지 않겠다는 사회의 약속이 될 수 있다.

불매는 소비자의 힘이다. 그러나 그 힘이 진정 세상을 바꾸려면, 사지 않을 자유를 넘어 잘못을 바로잡을 권리가 있어야 한다. 분노를 넘어 배상과 책임을 끌어낼 도구가 우리 손에 쥐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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