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은평민들레당’(이하 ‘민들레당’이라 한다)의 당원이다. 민들레당은 서울시 은평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당이다. 은평구민이 당원이지만, 은평구를 생계나 활동의 중심으로 삼는 사람은 누구나 민들레당 당원이 될 수 있다.
민들레당은 지역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민들레당은 2022년 1월에 창당했다. 당원 30명 남짓으로 출발한 초미니 정당이다. 하지만 지역에서 발휘하고 있는 활동력은 다른 큰 정당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아니 오히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과 같은 거대 양당보다도 훨씬 지역에 필요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력은 두 가지 이유에서 가능하다. 첫째, 지역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주민들이 직접 활동하기 때문이다. 둘째, 거대양당을 비롯한 전국정당들 지역조직은 지역 사정에 아랑곳없이 중앙당 입장과 상황에 따라 움직이는 반면, 민들레당은 은평구에 대한 일관된 입장이 있기에 흔들림 없이 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은평민들레당, 지역을 잘 알고 실천합니다!
은평민들레당은 자치구 단위 지역정당을 표방하며 중앙정치에 종속된 지역정치 폐해와 간접민주주의 한계를 극복, 직접민주주의 실현을 목표로 한다.
어제 은평민들레당은 우리 모두의 교통 운동본부가 주최한 ‘지하철 요금 인상 철회, 실효성 있는 교통패스 도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에 다녀왔습니다✊ ✊ ✊
“서울시가 월 6만 5천 원에 모든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정기권을 내년 1월부터 시범 도입하기로 했다. 지난 8월 버스 요금 인상과 오는 10월 지하철 요금 인상을 결정해 놓고, 이제 와서 정기권을 발행한다니 병 주고 가짜 약을 주는 기만행위가 아닐 수 없다. ” (민들레당, 2023년 9월 15일 논평 중에서 )
사실 지역을 망치는 일은 주로 선심성 내지 과시성 사업에 골몰하는 거대 양당의 인물들이 도맡아 하고 있다. 치적을 만들어 놔야 다음 선거에 공천도 되고 당선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은평구도 예외는 아니다. 은평구 안에서도 토목과 건설에 치중된 관급 사업들이 매년 줄을 잇는다. 예를 들어 은평구 주민들의 휴식과 건강을 위한 공간인 녹지를 파괴하고 토목공사를 지속하는 주체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소속 구청장과 구의원들이다. 이들은 주민의 불편과 불만은 모르는 체하면서 자신들이 업적으로 내놓을 만한 일들만 좇는다.
은평구의 무수한 사건 사고들에 관하여 각 정당들은 나름의 입장과 방안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전국정당들은 전국적인 정치 시류에는 민감하게 편승하지만 정작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는 둔감하다. 그러다보니 그들의 입장이나 방안이라는 게 기껏해야 돈을 끌어다가 뭐 하나 만들어놓는 수준에 머물거나 그나마도 아예 내놓지 않은 채 모르쇠로 일관하는 일이 다반사다.
이에 비해 창당한 지 불과 만 2년도 채 되지 않은 민들레당은 지역의 현안에 충실히 대응하고 있다. 무분별한 녹지 파괴에 대한 반대와 지속적인 녹지 보전을 위한 대책을 내놓거나, 은평구 관내의 도시가스점검 노동자들의 노동환경개선을 위한 투쟁에 연대하는 등 은평구의 당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서울시의 근시안적인 행정으로 인해 그 존립이 붕괴될 위기에 처한 ‘혁신파크’의 지속을 위해 대안을 내놓기도 하고, 서울시 대중교통 요금 인상의 부당함과 더 나은 교통체계 구성을 지향하는 운동에 동참하는 등 서울시정에 대한 대응도 전개하고 있다.
하지만 민들레당은 현행법상 ‘불법’정당이다
이처럼 지속적이고 일관되면서도 왕성한 지역 활동을 하는 민들레당이지만, 현행 정당법상 민들레당은 불법 정당이다. 정당법이 허용하지 않는 정당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당’이라는 이름을 걸고 수행하는 민들레당의 모든 활동은 위법행위로써 처벌 대상이다. 그러다보니 민들레당의 구성원들은 당장이라도 법의 제재와 그에 따른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당 활동을 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민들레당은 지역정당이다. 전국을 정치적 활동영역으로 하는 ‘전국정당’과 달리 한정된 지역을 중심으로 정치활동을 하는 정당을 ‘지역정당’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정의당 같은 당들이 전국정당이다. 원내에 의석을 갖지 못한 정당일지라도 노동당, 녹색당처럼 서울에 중앙당을 두고 5개 이상 시·도당 등 전국적 지역조직을 가진 정당들은 모두 전국정당이다.
그에 반해 민들레당은 그 활동의 범위를 단위 지역에 한정하고 있기에 지역정당으로 분류한다. 현재 민들레당 외에 직접행동영등포당, 과천시민정치당 등 몇몇 지역정당이 활동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창당을 선언한 지역정당은 모두 시·군·구 단위의 기초지방자치단체를 활동의 영역으로 삼고 있는 ‘기초정당’이다. 만일 앞으로 서울시나 대구시, 전라북도나 강원도를 활동의 영역으로 하는 지역정당이 만들어진다면 이를 ‘광역정당’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현행 정당법의 제한으로 인해 민들레당을 비롯해 직접행동영등포당이나 과천시민정치당은 모두 불법단체로 남아 있다. 아무리 지역에서 모범적인 정치활동을 벌이더라도 정당의 이름을 쓰고 있는 한 법을 위반한 단체일 뿐이다. 현행 정당법이 중앙당을 서울에 두고, 5개 이상 광역 시·도에 조직을 가지면서, 각 시·도당 별 5천 명 이상의 당원을 보유하고 있는 정당만을 정당으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요건을 갖춘 정당만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의하여 정당으로 승인받으며, 그 승인이 있어야만 비로소 정당으로서 이름을 걸고 활동을 할 수 있다.
현 정당법은 거대 양당의 기득권만을 보장한다
이런 형식의 정당법 체계는 1962년에 만들어진 이래 지금까지 변함없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눈썰미가 있는 사람들은 이미 짐작했겠지만, 1963년은 바로 박정희 군부가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장악한 해이다(제5대 대통령선거). 1961년에 쿠데타로 민주정부를 전복한 후 권력을 찬탈한 군부는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법에 따른 정권 획득을 도모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정권을 확보하고 지속할 수 있는 법률 체계를 만들었고, 그 핵심에 정당법이 있었다(제정 1962.12.31. 법률 제1246호).
그 정당법이 물경 한 갑자(甲子) 넘게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현실이다. 민주정부를 압살하고 군부 독재를 고착하기 위하여 만들어놓은 정당법의 골격이 민주화된 오늘날까지 그대로 이어지는 것이다. 군부는 처음부터 체제의 현상유지에 적합한 양당제를 정착시키기 위한 기획으로 정당법을 설계했다.
그 설계는 오늘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라는 두 정치집단이 이름만 바꿔가며 꾸준하게 서로 권력을 나누는데 매우 적합한 체계이기도 했다. 따라서 현행 정당법의 체계는 다양한 정치세력이 자유롭게 정견을 내세우면서 경쟁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정치활동의 자유, 정당활동의 자유를 억압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민주주의의 기본적 원리를 보장하기 위해 시행되어야 할 정당법이 오히려 그 원리가 작동하지 못하도록 제어하고 있는 것이다.
현행 정당법은 이처럼 반민주적 정권유지를 위한 기획으로 시작되었음에도 민주화된 지금까지 불변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당성을 결여하고 있다. 또한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정당 창당의 자유와 정당 활동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 더불어 법률 제정 당시의 기획 의도에 의해 정당법은 거대 양당에 의한 정치적 자원 독점의 기반이 되고 있다. 결국 이 정당법은 민주주의 저변의 확장과 심화를 방해하는 반민주적 규제구조로 활용된다. 이러한 점들 이외에도 지역정당 등 다양한 정치세력의 활동을 원천봉쇄하고 있는 현행 정당법이 헌정질서의 작동을 방해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민들레당 헌법소원 분투기
불법단체로, 그리고 그 구성원이 범법자로 계속 남아서는 안 된다. 그래서 민들레당은 창당과 동시에 선거관리위원회에 정당 등록을 신청했다. 예상했던 대로 선거관리위원회는 민들레당의 등록 신청을 반려했다. 정당법 상 지역정당의 등록에 관한 규정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등록신청이 반려된 후 민들레당은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전국정당만을 허용하면서 지역정당의 창당을 사실상 불허하고 있는 현행 정당법이 위헌이라는 취지였다.
약 2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러 지난 9월 26일 헌법재판소는 민들레당의 헌법소원심판청구에 대하여 기각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형식적으로는 민들레당의 패소였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9명의 헌법재판관 중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이 5명이었고 합헌 의견을 낸 재판관은 4명이었다. 실질적으로는 현행 정당법의 규정들이 헌법의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판단이 더 많았던 것이다. 다만, 위헌 선언을 위한 재판관 정족수가 모자랐기에 기각으로 결정되었을 뿐이다. 헌법재판소법 상 위헌이 선언되기 위해서는 6명 이상의 재판관이 위헌 의견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기각이 된 상황은 매우 아쉽지만, 이번 결정은 2006년 제기되었던 유사 헌법소원심판청구의 결과와 비교하면 큰 진전이 있었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9명 재판관 전원이 현행 정당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었다. 그 이후 16년이 흘러 우리가 받아 쥔 결정은 위헌 의견이 오히려 더 많았다. 사회가 변화되었고 그와 함께 헌법의 현실이 달라졌다는 것을 헌법재판소에서도 인정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023년 10월 2일 은평민들레당 논평 중에서
전부 기각이라는 결과만을 놓고 봤을 때, 지역정당운동의 완전한 패배처럼 보인다. 그러나 내용적으로는 지역정당 운동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칠 의미 있는 결정이라고 판단된다.
우선, ‘전국정당조항’에 대한 이번 결정은 2006.3.30. 2004헌마246 전원일치 합헌판결보다는 한층 진일보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전국정당조항’에 대하여 “군소정당의 배제는 그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될 수 있다”고 하면서 “5개의 시 · 도당을 구성하는 것이 그렇게 과도한 부담이 된다고 보기 어려우며”하고 하여 그 수단의 적합성도 충족한다고 판단했었다.
반면 이번 결정에서는 5명의 재판관이 군소정당의 배제가 결코 대의민주적 기본질서의 기능 수행을 위한 요건이 될 수 없으며, 침해를 최소화하는 제도의 도입이 가능함에도 이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였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기각이었으므로, 즉 현행 정당법이 그대로 존치될 수 있게 되었으므로 민들레당은 여전히 불법정당이다. 민들레당 뿐만이 아니라 같은 이유로 헌법소원을 제기했던 직접행동영등포당, 과천시민정치당 역시 여전히 위법한 정당활동을 하고 있는 중이다. 국회가 정당법을 개정하지 않는 이상 이 상태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물론 국회가 정당법을 순순히 개정하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특히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두 당은 양당체제를 공고히 승인해주고 있는 이 정당법을 변화시킬 이유가 별로 없다. 그러나 더 이상 이 법을 존치할 명분을 찾을 수는 없다. 계속 이 상태를 유지하는 한, 거대 양당은 반민주적이고 위헌적인 체제에 기생한다는 불명예에 갇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대의정치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더욱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주권자들이 인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주권자의 요구가 커져갈수록 정당법을 개정할 수밖에 없는 시기가 다가올 것이다.
이제 공은 입법부로
희망은 먼 발치에 있지 않다. 거기에 손을 뻗치는 순간 희망은 현실이 된다. 지역을 바꿔 세상을 바꾸자는 지역정치의 취지를 온전히 성취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변화가 후속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기를 그저 바라고만 있는 동안은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민들레당을 비롯해 많은 지역정당들이 실제로 창당하고 활동하면서 상황은 변했다. 제도의 변화는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 될 사회적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반영한 정당법의 개정이 다음 과제로 대두된다. 이제 사법적 판단의 시간을 넘어 입법의 시간으로 돌입하고 있는 것이다.
민들레당은 오늘도 은평구의 녹지보전 방안 도출, 지역 노동자들과의 연대, 서울 혁신파크개발 대응, 서울시 교통요금 인상 대응 등을 논의하고 실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제도의 한계 때문에 우리의 존재 양식은 불법이지만, 우리가 하는 정치활동은 거대 양당이 하지 못하는 진정한 의미의 지역정치이다. 우리의 위법은 저들의 만행보다 아름답다.
나는 그래서 민들레당의 당원임이 자랑스럽다.
정말로 은평구를 누구보다 잘 알까? 봉산숲 파괴를 과연 2023년에서야 알았을까? 왜 2014년부터 실시한 편백나무숲 조성 사업을 모른척했을까? 10년이 다되어가는 사업에 대해 2023년에서야 문제를 제기하는걸까? 알면서도 모른척 해왔던 게 아닐까? 이 동네 시민단체 출신이라는 사람들이 고위직 공무원인 협치조정관이라는 자리를 했음에도 은평구청이 서울혁신파크 개발을 찬성하는 것에 대해 왜 일언반구 못했을까? 봉산 편백숲 조성 사업이 현안일까? 도시가스점검 노동자들의 노동문제가 지역현안일까? 서울의 문제가 아닐까? 전국의 문제가 아닐까?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너무나도 편협한 사고로 지역을 바라보고 있어 보여서 안타까움이 너무도 커서 그렇다.
지역정당운동은 정당을 만들어서 할게 아니라 시민단체를 만들어서 해야하는 시민운동적 성격을 갖는다. 불법 행위를 하는데 그 일에 동조할 수 가 있겠는가? 게다가 정당이라는 단어가 담고 있는 기능들을 사실상 무시한채 시민운동적 성격의 불법정당을 만들었으니 일반 시민들에겐 인지부조화가 올 수밖에 없다.
헌재의 판단에 대해 “아쉬운 결정, 그러나 도약을 위한 계기로”라 했던데 이에 앞서 자기 활동들에 대해 ‘반성’부터 해야하지 않을까. 지역 일에 대해 그렇게 잘아는데 왜 시민들이 동조해주지 않는지, 시민들을 끌어들일 구심점 역할을 왜 못하는지. 정당이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는게 아니라 자기 이야기만 하고 싶어하는데 무슨 정치를 할 수 있겠는가. 이런식의 정당이면 기성정당보다도 못할 뿐이라 생각.
지역정당을 할게 아니라 지역정당법을 개정하는 시민단체를 만들어서 활동하시는게 혼란을 줄이는 법이다. 괜히 헌재가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