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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에 부쳐] 돌아가신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하루 종일 다른 일로 바빠서 뉴스를 보지 못했다. 이제야 소식을 접했다. 나란 인간은 평소 매우 비겁하고 비겁하다 못해 소심한 인간이라 SNS가 들끓든, 세상이 뒤집히든, 정치로 나라가 온통 시끄럽든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살고 있다.

그저 한 평생을 숨죽이고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살다가, 때가 되면 얼른 죽기만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소시민에 불과한지라 세상사에는 어지간하면 입을 떼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 밤은 쉬이 잠들지 못할 거 같다. 잠들지 못해 결국 책상 위, 노트북을 열고 앉았다.

10년 전, 3개월 동안의 악몽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 사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풍 전야 같다고 생각해 오기는 했다. 말도 안 되는 민원이 급증하고, 그 말도 안 되는 민원들에 학교도 교육청도 교육부도 언론도 모두 모두 짬짜미하는 것처럼 침묵하다 못해 다들 교사만 두들겨 팰 때부터 이 나라 교육 현실에 희망이 존재하기는 할까 의문을 품어 왔다.

꽤 오래 전 일이다. 한 10년 쯤 되었나,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그때도 고등학교 3학년 부장이었으니 참 징그럽게도 진학 담당을 오래 하기는 오래 했다. 그해 고3 학년부장을 맡고 5월 쯤 학교폭력 사건이 터졌다. 이 사건에 대해 자세하게 말하기 시작하면 명예훼손의 소지가 있는데다 지금 그 사건이 이야기의 중심은 아니니 넘어가자.

내가 맡은 반에서 벌어진 사건은 아니었다. 내가 학년부장이라 해당 학급 담임과 함께 담당해야 했던 사건이었다.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건, 가해 쪽 아이들만 10명 가까이 되었고, 피해 쪽 아이들은 그 반 아이들 전체에 해당하는 큰 사건이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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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학교폭력대책위원회(이하 폭대위)까지 올라가고, 학교폭력으로 결론이 나고, 관련자들 징계 결정이 날 때까지 거의 3개월 가까이 걸렸다. 문제는 그 동안 학부모들이 찾아와 벌였던 횡포, 그렇다, 말 그대로 횡포였다. 담임한테는 밤 12시 넘은 시간이고 새벽이고 전화를 걸어서 아이 인생을 망칠 작정이냐며, 네 인생도 끝장내주겠다고 폭언을 퍼붓고 악을 썼다. 어디선가 ‘한꺼번에 몰려가 난리를 치면 폭대위 회부가 안 될 수도 있다’라고 들었는지 거의 매일같이 순번을 짜서(가해 학생 숫자가 워낙 많고 그에 따라 부모들 숫자도 많았으니) 새벽같이 교무실로 몰려왔다.

아침 7시 반,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제일 먼저 나를 맞이하는 건 기세등등하게 팔을 걷어붙이고 앉아 있는 그들이었다. 여름방학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그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찾아와 악을 쓰고 책상을 탕탕 두드렸다. 수업에 들어가야 한다고 일어서면, 자기 자식들 인생을 망치려고 하면서 무슨 수업에 들어가느냐고 악을 쓰며 막아섰다. 그들의 ‘자기 자식들 인생을 망친다’는 말은 학교폭력 가해 사실이 생기부에 기록되면 대입에 불이익을 받는다는 이유에서나온 말이었다.

나 녹록치 않은 교사였지만… 초임 담임, 어찌 견뎠을까

그래도 당시에 이미 나는 녹록치 않은 교사였다. 교직에 들어오기 전 이미 다른 분야의 사회 경력이 10년 정도 있었기 때문이다. 살아온 세월도 결코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한 배짱하는 게 내가 가진 밑천이었다. 그런데도 그 3개월 동안 내 멘탈은 탈곡기에 곡식 낱알 털리듯 매일매일 남김없이 탈탈 털렸다. 그러니 그때 초임이었던 해당 학급 담임은 어떤 심정으로 버티고 있었을지 어찌 감히 헤아릴 수 있을까. 지금에 와 다시 생각해봐도 그분이 잘 견뎌준 것만이 그저 다행이라는 생각밖에는.

결국 폭대위는 열렸고, 자정까지 지독하게 길고 길게 계속된 그 회의에서 학교폭력이라고 결정이 났고, 가해학생 모두에게 징계가 떨어졌다. 더불어 피해 학생들에게 사과문을 쓰라는 판결까지 났지만, 그 어느 누구도 3개월 가까운 시간 동안 교사들에게 가해졌던 쌍욕에 가까운 언어폭력과 위협적인 난동과 괴롭힘에 대해서는 사과하지 않았다. 물론 그들이 날뛰던 3개월 가까운 시간, 우리를 보호해주는 그 어떤 장치도 마련되지 않았다.

그들의 욕설과 폭언과 협박과 난동 속에 우리는 꼬박꼬박 수업에 들어갔고, 사건과 관련한 상당한 양의 문서를 만드느라 야근을 했다. 밤이면 욕과 폭언이 섞인 문자와 카톡을 받았고, 새벽이면 안부처럼 다시 폭언이 섞인 문자를 받고 출근을 했다. 그런데도 무더운 여름방학 내내 출근하면서 가해학생들을 포함한 학급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입시 상담과 자기소개서 첨삭 지도를 했다. 상담을 하는 동안에도 언제 그들이 교무실 문을 다시 열고 들어와 폭언을 퍼부을지, 책상을 두드리며 악을 쓸지, 아니면 정말로 맞게 될 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교사가 죽었다… 가슴이 미어지고 분노가 밀려온다

올해 발령 받은 초등학교 교사 한 분이 돌아가셨다. 학교 안에서였다고 한다. 학부모들의 악성 민원이 그를 괴롭혔다는 말이 있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더 가려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가슴이 미어진다. 아니 미어진다는 말로는 다 표현하기 어려운 분노가 밀려온다. 어쩌면 그 자리가 내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뭣도 모르고 그저 떠들기나 좋아하는 분들께서 아무 말이나 숟가락 얹고 싶어서 경쟁교육이 문제니, 입시가 문제니 입을 떼지만, 그럴 시간에 단 한번만이라도 지금의 교실 현장을 둘러보고 알아보려는 시도라도 해봤는지 궁금하다. 지금의 상황이 왜 총체적 난국인지 말해볼까.

우선 부모부터. 아이가 시험을 보고 오면 부모는 묻는다. ‘몇 등이냐고’ 그런데 정작 아이가 무슨 과목을 배우는지, 그 과목의 교과서가 몇 종류나 있는지, 현재 무슨 내용을 재미있어 하는지는 아예 모른다. 알려고 하지 않는다.

더 천박하게는 자기 아이가 몇 등이라고 주변에 자랑까지 한다. 초등학교에서부터 중학교 1학년까지는 등수 발표를 못하게 되어 있는데도 극성맞게 담임에게 물어보고 따로 등수를 매기기까지 하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겉으로는 ‘이 나라는 경쟁교육이 문제’라고 말한다. 위선이 도를 넘는다. 웃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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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정책을 만드는 분들은 책상머리에서 자신들 학교 다니던 때나 기억하고 ‘머릿속 정의감’에 불타서 정책을 만들어 뿌리는 걸로 자신들의 책임을 다했다고 믿는다. 그리고 모든 건 교사들이 열심히 안 해서 정책이 굴러가지 않는다고 욕한다. 그러니 당신들도 힘들다고 징징거린다.

하지만 여기서 뭐 하나만 짚고 가자. 연봉도, 사회적 지위도, 사회적 책임도 당신들이 나보다 더 많고 더 높고 더 중요하지 않은가. 나중에 받게 될 연금도 나보다 더 많을 거고 말이다. 당신들이 그 자리에 있는 건 현장의 교사들이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바닥을 깔고 펴주는 역할 때문인데, 그래서 월급 받고 연금까지 보장받는 건데, 거꾸로 우리보고 힘들다고 징징거리는 거, 이건 뭔가 앞뒤가 바뀐 거 같지 않은가?

교사들더러 열심히 하라고 하는데, 내가 가르치는 아이가 힘들어 보이니 불러서 상담하고, 그 아이 생기부에 있는 걸 살피면서 어떤 걸 더 활동해야 할 지 같이 고민하고 하는 건 교사인 내가 가져야 할 자율성이자 적극성이다.

하지만 이런 교사가 열심히 할 수 있도록 정책을 만들고 판을 깔아주는 건 당신들 할 일이 아닌지 묻고 있는 것이다. 그 자리에 앉아서 눈앞에 떨어지는 일이나 하면서 월급 받을 거면 뭐 하러 그 자리에 있나 진심 묻고 싶어진다. 그러면서 우리보고 무작정 열심히 하라고만 하면, 이건 뭔가 적반하장이다.

아, 그런데 이 부분 만큼은 진보정권이고 보수정권이고 다 똑같았다. 난형난제(難兄難弟)

교사가 죽어가는 교실에서…

교사가 신음하며 죽어가는 교실에서 교육의 싹이 자랄 수는 없다. 30년 전, 40년 전, 우리나라가 개도국이었던 시절 당신들이 겪었던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학교와 교실과 교사를 떠올리며 만만한 지금의 학교와 교실과 교사를 비판하고 있을 때, 정작 죽어가는 건 ‘지금의 교육이고 학교 현장’이다.

생각해 보자. 당신들이 끔찍하게 기억하는 그때 그 시절의 학교는, 알고 보면 학교만이 아니라 국가 전체가 폭력적인 구조 안에서 굴러가던 시절이다. 우리는 이미 개발도상국의 열패감을 벗어난 지 오래다. 경제대국 10위로 올라섰고 모든 것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하고 변화한 사회다. 그런데 유독 교육만큼은 자신들이 받았던 그 자리에 머물고 있을 거라 굳게 믿고 그때의 열패감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건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분노와 미성숙한 화풀이가 왜 지금의 교사들에게 무차별로 향하는지도.

다시 말하지만 교사가 신음하며 죽어가는 교실에서 정작 사라지는 건 우수한 우리의 공교육 시스템이다. 이 정도로 우수하고 열정적인 인재들을, 이 정도 가격으로 싸게 후려쳐서 데려올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나라가 과연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보면 쉽게 답이 나온다. 교육을 받는 입장에서도 그렇다. 한 개인이 이 정도의 비용을 들여 이 정도 양질의 교육을 전국 어디서나 균질하게 받을 수 있는 공교육 시스템이 전 세계에 얼마나 되는지 묻고 싶다.

다시 말하지만 사교육을 말하는 게 아니다, 공교육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한 달 기십 만원을 쓰니 기백 만 원을 쓰니 하며 서로서로 비교해가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사교육이 아니라, 당신들이 공짜로 온갖 혜택을 누리고 있는 현재 대한민국의 공교육 말이다.

돌아가신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 진심으로, 가슴 아프게.

덧.

이런 글에 꼭 달리는 댓글이 있어서 다음 말을 덧붙인다. 네가 다른 사회생활을 안 해봐서, 교직이 힘들다고 하는 거라는 등 운운. 저, 힘들기로 소문난 다른 직업에서 할 만큼 하다가 임용고사 봐서 공립학교로 들어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이렇게까지 열악해질 줄은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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