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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커뮤니티 게시물을 검증이나 취재 없이 그대로 받아쓰는 언론 보도 행태가 계속되고 있다. 커뮤니티 게시물은 작성자의 신원을 전혀 알 수 없으며, 정확성도 검증되지 않은 이용자의 의견이다. 기자는 정보 검증과 게시자의 동의를 받는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현 보도 행태는 전혀 그렇지 않다. 특히 여초, 남초로 나뉜 커뮤니티 인용 보도는 마치 성별의 의견을 대표하는 것처럼 언급되어 ‘젠더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클릭 저널리즘은 가짜뉴스뿐 아니라 차별과 혐오 표현을 조장하는 가장 비옥한 환경이기도 하다.
‘커뮤니티 게시물 받아쓰기’를 일삼는 언론사의 행태는 클릭 저널리즘, 즉 자극적인 소재의 기사로 클릭을 유발하기 위한 상업적 목적을 가진다.

백신도 ‘젠더 갈등’, ‘클릭질’ 미끼일 뿐

지난 1일(화) 얀센 백신 접종 사전 예약이 있었다. 하루 만에 90만 명의 예약이 끝날 만큼 반응이 뜨거웠다. 한편 인터넷에서는 백신 접종에 대한 반응을 다룬 기사 몇 편이 큰 화제를 모았다. 대표적 예시로는 중앙일보의 “얀센 女 먼저 맞으면 나라 뒤집히나” 여초서 남녀차별 논란”(2021.06.01)와 세계일보의 “얀센 접종 ‘남녀차별’ 불만…“여자가 먼저 맞으면 나라가 뒤집혔겠지”(2021.06.01.)가 있다.

여초 커뮤니티 '일부' 게시물의 일부 내용을 자극적인 기사 제목으로 삼아 '클릭질'을 유도하는 세계일보 기사. 전형적인 미끼 저널리즘, 클릭 저널리즘의 행태를 보여준다.
여초 커뮤니티 ‘일부’ 게시물의 일부 내용을 자극적인 기사 제목으로 삼아 ‘클릭질’을 유도하는 세계일보 기사. 전형적인 미끼 저널리즘, 클릭 저널리즘의 행태를 보여준다.

두 기사가 보도된 이후 여성들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군대에서 나라 지킨 남자들이 이 정도도 못 맞느냐”, “그러면 너네도 군대를 갔다 오지 그랬냐”, “좋은 건 지들 먼저 하고 싶고 그동안 숱하게 봤던 여자들 모습이다”. 하지만 이후 여초 커뮤니티 안에서도 이용자들이 얀센 접종이 남녀 차별이라는 의견을 처음 봤거나 미국이 백신을 지원한 대상이 한국군이라는 사실을 애초부터 알고 있었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물론 실제로 여초 커뮤니티 내부에서 백신 접종에 대한 의구심을 품은 일부 의견이 나왔을 가능성도 있다. 대표적인 여초 커뮤니티로 꼽히는 ‘여성시대’는 회원 수만 약 80만 명, ‘쭉빵카페’는 약 160만 명이다. 이 중 누군가 관련된 이야기를 했고, 기자가 이를 포착하여 보도했다면 기자는 ‘결백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자가 먼저 맞으면 나라가 뒤집어졌겠지”와 같은 자극적인 말을 인용해 보도하는 것은 결론적으로 젠더 갈등을 키우는 일일뿐이다.

편견과 선입견을 합리적인 대화와 토론을 통해 중재하고 조율하기는커면 이를 부추기면서 '클릭질'을 유도하는 저열한 클릭 저널리즘의 행태
편견과 선입견을 물리치는 합리적인 대화와 토론을 중재하기는커면 갈등과 편견을 강화하고 이를 부추기면서 ‘클릭질’을 유도하는 저열한 클릭 저널리즘의 행태

‘남혐 손가락’ 만드는 클릭 저널리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선동이나 날조가 쉽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난 4월, ‘소년병 징집’ 국민청원 보도는 취재원 없는 커뮤니티·국민청원 받아쓰기 보도의 대표적인 예이다. 커뮤니티 글쓴이는 “여성 징병과 소년 징병 대결 구도를 만들자”며 “여성 징병을 해야 하는지 문제보다, 여성과 소년 징병 중 어떤 게 더 타당한 가로 프레임이 짜지면 여성 징병이 당연한 흐름으로 간다”고 글을 올렸고, 이는 사실 확인조차 없이 그대로 기사화되었다.

국민청원을 도구로 삼아 젠더 갈등을 심화시키고 불필요한 논쟁을 유도하려는 커뮤니티 집단을 어떠한 의심이나 검증 없이 보도하며 논란의 판을 키운 것이다. 언론은 온라인상에서 일어나는 논쟁을 기사화할 때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최근 남초 커뮤니티에서 제기하는 ‘남성 혐오(남혐) 논란’을 보도할 때 무분별하게 보도하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남혐 논란’은 ‘집게손가락 논란’이다.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잡는 듯한 모양은 2015년 ~ 2017년 존재했던 사이트 메갈리아의 상징과 닮았다며 남초 커뮤니티로부터 ‘남혐’이라 지적받기 시작했다.

남초 커뮤니티의 문제 제기는 언론 보도로 이어졌다. 하지만 팩트 체크도, 취재도 없이 그저 남초 커뮤니티의 주장을 받아쓰는 것에 급급했다. 논란 ‘속보’ 경쟁이었다. 단체나 회사에 타격이 클 수 있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이해 당사자의 입장을 담지 않은 기사도 존재했다.

 

집게 손가락을 '남혐 손가락'으로 만든 언론. (출처: 중앙일보, 아시아투데이 기사 갈무리)
집게 손가락을 ‘남혐 손가락’으로 만든 언론. (출처: 중앙일보, 아시아투데이 기사 갈무리)

언론이 ‘남혐 논란’, ‘남혐 손가락’이라고 보도하기 시작하면서, 남초 커뮤니티의 ‘의견’은 공론장으로 나왔다. ‘집게손가락 논란’을 모르던 사람들도 이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남혐 손가락’ 이미지를 썼다고 지적받은 GS리테일, 카카오뱅크, 국방부, 랭킹닭컴 등에서 사과의 뜻을 밝히고 이미지를 수정했다. 결국, 개인과 사회는 집게손가락 하나에도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집게손가락을 ‘남혐 손가락’으로 만든 것은 언론이었다.

2021년, 한국 사회에서 ‘젠더 갈등’은 격렬해지고 있다. 이에 장작을 넣고 불을 지피고 부채질까지 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언론이다. 취재도 팩트체크도 없이 익명성을 기초로 한 인터넷 커뮤니티를 출입처로 삼아 자극적인 소수 의견과 일방적인 문제 제기를 보도하는 것은 직업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무책임한 일이다. ‘젠더 갈등’은 절대로 하루아침에 마무리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취재 행태를 반복한다면 ‘논란’과 ‘갈등’은 깊어질 뿐이다. 언론은 온라인 여초, 남초 커뮤니티 내의 현상만을 보도하는 행태를 멈추고 다각도로 사안을 취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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