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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시민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려 문제해결 과정에 직접 참여하기보다 ‘선거’를 통해 이의 적임자를 대표자로 선출하는 방식을 선택한다. 이들 시민 대표자는 의회라는 민주주의 제도적 장에서 자신들을 선출한 시민들의 요구사항을 대변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적 방안을 법률로 제정하려 전력한다. 시민 대표자의 재선 성공 여부는 이러한 입법적 노력 및 결실에 따라 결정되게 된다.

선거는 이러한 대의민주주의적 정치과정의 출발점이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은 대표자를 선출하는 규칙, 다시 말해 시민들의 표를 의석으로 전환하는 선거제도 유형에 따라 대표자 선출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문제는 특정 시민들이 지지하는 대표자가 당선되지 못함에 따라 이들 시민의 문제해결 요구가 의회 주요 의제로 다뤄지지 않고 배제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은 실제 현재 논의되고 있는 선거제도 개혁의 쟁점 대상인 단순 다수 1인 선거구제(단순 다수 소선거구제)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 전체 국회의원의 5/6 이상을 단순 다수 1인 선거구제로 선출하는 현행 선거제도에 의해 형성된 기존 양당 체제에서는 다루어지지 않는다. 그게 아니면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져 온 정치·경제·사회적 이슈를 의제화하려는 군소정당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표는 사표가 되어 대표자 배출로 이어지지 못하고 이들 이슈는 의회 의제로 다뤄지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학계와 시민사회는 대표성의 확대, 자세히 말해 현행 선거제도에서는 대표되지 못하는 이들 시민의 의사를 대의민주주의 체제 안으로 포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비례대표 의원을 증원하고 명실상부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여 다당제로 전환될 필요가 있음을 꾸준히 강조해왔다.

다당제는 대통령의 안정적 국정 운영을 어렵게 할까?

정치권은 대표성 확대에는 원칙적으로 동의하면서도 이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내 왔다. 이들의 이런 반응에는 한국과 같은 대통령제 국가에서 다당제가 구축되면 집권 정당의 의회 과반의석 확보가 어려워져서 대통령의 안정적인 국정 운영이 힘들어진다는 정치적 우려가 자리 잡고 있다. 여소야대 정국 속에서 전개되는 여야 간 극단적 대립은 이러한 우려가 기우가 아니라는 점을 정치권은 물론이고 일반 시민에게 각인시켜왔다.

집권 정당이 과반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면 여타 정당과의 연립정부 구성을 통해 정치적 난국을 헤쳐나가는 의회제 국가와는 달리, 한국의 대통령은 야당과의 협력을 기반한 협치 모색보다는 시행령 발동에 의존하는 정국 운영 방식을 선호해왔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의 상이한 선거 주기로 인해 소수정부(minority government), 즉 여소야대의 정치적 국면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어서 내심 여야 정치권은 다당제로의 전환을 목적으로 하는 선거제도 개혁에 거리를 두어 왔다.

대통령제 국가는 ‘양당제’? 이제는 세계는 ‘다당제’가 맞다고 말한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 소속 정당이 의회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했을 때, 대통령의 유일한 정치적 선택은 한국 사례에서처럼 소수정부 상태에서 시행령 정치에 의한 정국 운영밖에 없다고 가정해보자. 따라서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서는 사회 내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당 출현을 억제하는, 즉 양당제 구축만이 정치개혁의 해답이 될 수밖에 없을까?

이 물음에 대해 대통령제를 권력구조로 채택하고 있는 신생민주주의 국가의 여러 실제 사례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한 연구에 의하면, 의회제 국가에서의 연립정부 구성 빈도에 비해 낮기는 하지만 대통령제 국가에서도 매우 빈번하게 연립정부가 구성되고 있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단독 다수 정부와 소수정부 비율은 각각 29.04%와 25.76%에 머무른다. 반면, 구성 비율이 45.20%로 연립정부는 정부 구성 분포에 있어서 가장 많이 차지하는 정부 유형이다.

주목할 부분은 의회제 국가는 물론이고 대통령제 국가에서도 연립정부는 민주주의 운영과 관련된 여러 지표에서 놀라운 수행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한 분산분석은 물론이고 여러 정치·경제적 요인의 영향력을 통제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통계분석도 대통령제 국가의 연립정부 존재가 민주주의를 원활하게 작동케 하는 매우 중요한 제도적 요인임을 밝혀준다. 특히, 공공서비스의 질 및 정부의 정책 수립과 이행 능력 수준을 평가한 “정부 효과성” 지수와 시민의 정치참여와 언론 및 표현의 자유 수준을 평가한 “참여와 책임성” 지수에 있어서 연립정부는 소위 여소야대의 소수정부에 비해 현격하게 탁월한 수행력을 나타내고 있다.

여소야대 대통령이 ‘시행령 통치’ 아닌 ‘연정’ 선택하게 하려면

다른 대통령제 국가와는 달리 한국의 소수정당 대통령은 왜 연립정부 구성과 같은 정당 간 연합과 정책 공조를 위한 협치의 정치를 선택하지 않을까? 한국 사례와 연립정부 구성된 사례의 정당 수, 다시 말해 정당체제 유형이 이에 대한 이해의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정당의 의회 의석률을 기반으로 구한 유력정당 수로 정당체제 유형을 살펴보면, 연립정부가 구성된 사례의 평균 유력정당 수는 4.72로 한국의 평균 유력정당 수인 2.76보다 대략 2개가 많다. 유력정당이 많을수록, 다시 말해 다당제에 가까울수록 대통령 소속의 집권 정당이 과반의석을 얻지 못할 가능성은 커진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의 최고의 선택은 소수정부를 유지한 채 자신에게 부여된 입법 권한, 즉 시행령 발동에 의한 국정 운영이 아니라 여타 정당과의 연립정부 구성을 통한 안정적인 정국 운영이 된다.

다당제보다는 애매하게 양당제에 가까운 현 한국의 정당체제에서 대통령 소속 집권 정당의 의석률이 45% 이하에 처하는 경우는 전체 35%로 연립정부 사례의 80%에 비해 매우 적다. 이러한 정당체제에서 한국의 대통령은 비난받을지언정 시행령 통치를 밀어붙이다가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신의 정당이 승리하는 길을 고집할 것이다. 협치는 한국의 정당체제 구도 속에서는 정치학 교과서에서나 나오는 이상적인 단어에 불과한 것이 된다.

다당제로의 전환, 이제는 피하면 안 될 때

이의 해결 방안은 시민들의 대표성 강화를 통한 다당제로의 전환이다. 따라서, 비례대표 의원은 증원하고, 명실상부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며, 비례대표 의원 선출은 권역별이 아닌 전국 단위에서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의회 선거제도 개혁이 추진되어야 한다. 이에 더해, 지역구 의원을 단순 다수제 방식으로 선출하던 것을 결선투표제 방식으로 선출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지역구 선거에서 결선투표제 도입은 군소정당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대표자가 선출되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이들 시민의 요구가 결선 선거를 앞두고 전개되는 거대정당과 군소정당 간 협상 과정을 통해 거대정당의 선거 공략에 반영될 수 있게 해줄 뿐 아니라, 지역구 선거에서도 다당제의 등장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협치는 다당제가 정착될 때야 비로소 우리의 정치 현실로 다가설 것이다.


중꺾정 칼럼

‘2024년 총선을 앞두고 국회는 선거제 개편 논의로 한창입니다. 선거제를 어떻게 바꿀지도 문제지만, 국회가 결단해야 할 정치개혁 과제들도 산적해있습니다. 선거제 개편이 아닌 개혁이 되기 위해, 나아가 정치개혁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가 매주 칼럼을 통해 논하고 평가해보고자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건 ‘꺾’이지 않는 ‘정’치개혁이니까요. 오늘 ‘중꺾정’ 칼럼의 필자는 안용흔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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