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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군대

[궁극의 군대]는 1945년 핵 혁명부터 2000년 무렵의 정보혁명까지 미군과 기술 발전의 상호관계를 다룬 책이다. 저자인 토머스 G. 맨켄은 기술사를 다루는 정석적인 서술 방법을 취하는데, 기술’결정론’ 혹은 기술결정론의 무의미함을 논하기보다는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라는 자체적인 동력과 그것을 수용하는 조직과 문화, 인식의 변화가 어떻게 함께 가는지를 설명한다.

미군과 기술 발전의 상호관계 

핵무기나 컴퓨터가 전장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는 서술이나, 핵무기나 컴퓨터의 등장과 관계 없이 전장은 항상 똑같다는 반론보다 중요한 것은, 육해공군이라는 개별 조직이 그런 기술적 변화에 대응하여 어떻게 적응하고자 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맨켄은 군종별 조직 특성과 문화가 어떤 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했거나 천시했는지를 시대 변화에 맞춰서 보여준다. 베트남 전쟁부터 중동 전쟁을 거쳐 걸프 전쟁까지 다양한 전장에서 여러 기술들을 시험하면서 누적된 각군의 경험들은 오늘날 미군의 모습을 형성하는 데 제각각의 방식으로 기여했다.

육해공 각 군종별로 기술을 수용하는 태도와 문화는 달랐다.
육해공 각 군종별 조직 문화와 시스템의 차이는 기술을 수용하는 태도의 적극성과 소극성, 우대와 천대라는 차이를 만들어냈다.

책에 가장 처음으로 등장하는 핵 혁명을 예로 들어보자. 핵 혁명의 주된 수혜자인 공군은 핵을 실어나를 수 있는 투발 수단과 상대방의 핵과 레이더 기지를 탐사하는 정찰 자산을 엄청나게 축적할 수 있었고, 미사일 부대를 자기들 손에 통제할 수 있었다. 해군처음에는 핵 혁명에 심드렁했으나, 핵이 갖는 추진체로서의 역량을 무시할 수 없었고 원자력 추진 항공모함과 잠수함이라는 막강한 무기를 손에 넣었으며, 항공모함과 잠수함을 핵투발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핵 혁명에서 소외된 육군은 중거리 미사일을 그들 통제 하에 두고자 노력했으며, 핵전 상황에서 부대의 생존력을 높이기 위해 여러 실험적 전술 교리과 부대 편제를 개발했지만, 성공적이지는 않았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과 국방부와 각 군이 보이는 알력 다툼을 관찰하는 것은 이 책의 가장 재밌는 요소 중 하나다.

’70년대~’80년대: 소련과의 상호 경쟁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군의 요구가 정보기술 발전을 촉진시켰고, 그것을 적극 수용한 교리와 조직을 발전시킨 1970년대와 1980년대였다. 사실 이 20년 동안 미군에서 진행된 새로운 발전은 미군 단독으로 수행한 것은 아니었고, 미군의 가장 위협적 상대인 소련군과의 상호 경쟁을 통해서 나온 것이었다.

1. 정찰-타격 복합체와 작전기동군 

소련군 총참모장 니콜라이 오가르코프전장 정보를 빠르게 감지하고 즉각 타격할 수 있는 통신 체계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했으며 이를 위해 컴퓨터를 전투에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주창했다. 그는 이를 ‘정찰-타격 복합체’ 이론으로 발전시켰다.

게다가 나토군의 우월한 공중 전력과 서방 진영의 발달된 생산력에 대응하기 위해 오가르코프는 마흐무트 가레예프 상장이 제안한 ‘작전기동군’ 개념을 채택했다. 작전기동군은 중부유럽에 축적되어 있는 바르샤바 조약군의 엄청난 군대를 작전술 단위로 조직하여 신속하게 나토군의 방어선을 뚫고자 한 단위였다. 적의 핵심적인 전략 목표에 근접하여 핵무기 사용을 봉쇄하면서 나토군을 단기간에 붕괴시키는 것을 추구하고자 한 군사 혁신으로서 미군에는 심대한 위협으로 다가왔다. 1970년대에는 소련 해군도 원양해군으로 확장되었으며 소련 해안에 대한 미해군의 접근 역량을 위협하는 등 급속한 확장과 발전을 거쳤다.

니콜라이 오가르코프 (1917~ 1994)
‘정찰-타격 복합체’ 이론을 주창하고, ‘작전기동군’ 개념을 채택한 니콜라이 오가르코프 (1917~ 1994)

2. 미군의 대응: 공지전 교리와 네트워크 중심전

책에서는 ‘정찰-타격 복합체’나 ‘작전기동군’을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지만, 이런 소련군의 도전에 대응하여 미군이 어떤 식으로 기술을 활용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정찰-타격 복합체 개념에 관심을 둔 앤드류 마셜은 부족한 기술력으로 인해 소련군이 해당 개념을 실제 전장에서 구현할 수 없으리라고 직감하여 이를 반대로 미군의 핵심 교리로 채택하고자 했다.

한편으로 철의 장막 너머에서 대기 중인 어마어마한 작전기동군의 제파 전술(諸波 戰術: 특정 공격 정면에 다수의 병과로 구성된 공격 제대를 나눠 연속적으로 투입하여 공격하는 군대 전술. 유사어 ‘파상공격’) 역량을 분쇄하기 위해서 미군은 상대의 전후방을 동시에 전장화하는 것을 추구했다. 우월한 화력을 소련군의 전방과 후방에 동시에 타격할 역량을 갖추기 위해서는 아군의 신속한 소통과 적군에 대한 정밀한 탐지 체계, 후방에 대한 정확한 정찰 능력을 갖춰야 했고, 이 모든 정보를 통합할 통신 인프라가 필요했다.

이런 노력들이 종합되어 미군의 공지전 교리가 탄생했으며, 네트워크 중심전까지 이어지게 된다. 물론, 이런 군사 혁신의 밑바탕에는 ‘실패한 전쟁’으로 평가 받던 베트남 전쟁에서 축적한 전훈들과 베트남에서 발전시킨 정찰, 탐지, 통신 기술과 운용법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마 이런 과정을 통해서 미국의 통신 산업, 특히 컴퓨터 산업이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을 것이다. 군이 대주는 엄청난 연구개발자금과 컴퓨터에 대한 계속되는 수요는 초창기 IT 기업의 안정적인 자금줄이 되어주었고, 그들은 이를 바탕으로 세계 최초의 PC와 컴퓨터 네트워크를 개발하여 정보혁명을 이끌었다. 책은 미군 자체의 기술적 발전에 집중하고 있지만, 책에서 묘사된 미군의 우월한 기술적 역량을 보다보면 이런 노력이 민간 사회로 어떻게 흘러들어갔는지에 더 관심이 생긴다.

미 국방부가 추진하는 총 100억 달러 예산, 10년간 단일 벤더가 사업을 독점하는 '제다이'(JEDI: Joint Enterprise Defense Infrastructure, 합동 방어 인프라) 프로젝트는 인공지능과 무기, 클라우드와 군대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2019년 10월 제다이 프로젝트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수주했다.
미 국방부가 추진하는 총 100억 달러 예산, 10년간 단일 벤더가 사업을 독점하는 ‘제다이'(JEDI: Joint Enterprise Defense Infrastructure, 합동 방어 인프라) 프로젝트는 인공지능과 무기, 클라우드와 군대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2019년 10월 제다이 프로젝트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수주했다.

정보전, 드론 그리고 중국 

책은 2003년 이라크 전쟁으로 끝을 맺는다. 그 사이 미군은 당면한 중대한 군사적 도전을 무엇이라 평가했을 것이며 그를 돌파하기 위해서 어떤 기술 혁신을 활용하고자 했을까? 개인적으로 생각나는 것은 세 가지다.

첫째는 시리아와 우크라이나에서 보여진 정보전이다.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실시간 통신이 수월해지면서 20세기 말 미군이 추구했던 전장 구성 단위 간 원활한 소통은 원칙적으로 제3세계의 비정규군도 수행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그러나 통신 인프라가 너무 당연해지면서, 역으로 전투는 네트워크를 해킹하거나 의도적으로 역정보를 흘려 상대방을 교란하는 등의 전장 정보 왜곡에 많은 영향을 받게 되었다.

전술적 수준을 넘어서, 국가 행정의 모든 영역이 디지털화되고 있는 근래의 흐름을 고려하면, 상대국 인프라를 망가뜨리고 후방을 교란시키는 전략적 수준까지 가면 사이버전의 위협은 어느 때보다 커졌다고 할 수 있다. 미국, 중국, 러시아 등은 스스로 방어하고 상대편을 더 잘 공격하기 위한 여러 수단을 강구하고 있다.

둘째로는 드론을 비롯한 무인기의 위협이다. 무인기가 소형화되고 더 신속하고 정밀하게 상대방을 타격할 수 있게 되면서 전장은 새로운 변화를 맞고 있다. 솔레이머니가 지휘한 후티(예멘의 이슬람 자이디야 시아파 무장 단체, 이란은 후티를 예멘 정통 정부로 승인한 상태)의 사우디 타격이나 아제르바이잔 드론의 아르메니아 전차를 향한 성공적 공격이 대표적인 예시다.

그 자신도 미군이 행한 '드론 공습'(바그다드 국제공항 공습)으로 사망한 거셈 솔레이마니(Qasem Soleimani, 1957년 11월3월 11일-2020년 1월 3일, 향년 62세, 사진은 2013년 당시 모습, 출처: Tasnim News Agency, CC BY 2.0)
그 자신도 미군이 행한 ‘드론 공습'(바그다드 국제공항 공습)으로 사망한 거셈 솔레이마니(Qasem Soleimani, 1957년 11월3월 11일-2020년 1월 3일, 향년 62세, 사진은 2013년 당시 모습, 출처: Tasnim News Agency, CC BY 2.0)는 드론을 통한 후티의 사우디 타격을 지휘했다.

드론의 도전에 맞서 자신의 병과를 보호하고 또 드론 기술과 운용법 자체를 발전시켜 적군에 대응해야 하는 기술적 도전이 계속해서 거세지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미국의 핵심 경쟁국으로 부상한 중국에 대응하는 것이다. 중국이 구축한 A2/AD(반(反)접근·지역거부; Anti-Access, Area Denial: 2000년경부터 미국이 중국의 서태평양 영역 지배 전략을 부르는 명칭)를 무력화하기 위해서 미국은 공지전을 연상시키는 공해전 교리합동접근기동개념(JAM-GC)을 만들었다. 중국군이 해상과 지상에 배치한 레이더, 미사일, 해공군기지를 신속하게 무력화시키고 반접근/지역거부를 돌파하고자 하는 것이다.

중국의 탄도요격미사일(ABM;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대공 미사일)의 범위 (출처: 미국방부)
중국 대함탄도요격미사일(ASBM; 항공모함, 구축함을 공격하는 탄도미사일)의 범위 (출처: 미국방부)

어떤 모습이 될지 예측하기는 어렵겠지만, 이런 기술 발전과 안보 환경의 변화로 촉발된 군사적 도전은 다시금 새로운 기술 발전을 촉진시킬 것이고, 민간으로 흘러들어갈 그 결과물은 다시 한 번 우리들 삶의 모습을 바꾸어놓을 것이다.

이 책 자체는 제목에서 나타나듯(원제: 기술과 미국적 전쟁 방식) 미군에 집중하는데, 나중에 소련군이나 중국군이 형성한 교리, 그리고 그것이 미군 교리와 어떻게 상호작용해왔는지를 더 자세히 파악할 수 있는 책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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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필자가 자신의 독서 체험과 개인적인 견해를 바탕으로 쓴 ‘자율적’ 서평입니다. 출판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슬로우뉴스는 다양한 독자의 다양한 독서 체험 공유를 환영합니다. 거기에는 가장 충실한 독자인 출판사 자신의 서평도 물론 포함입니다. 보내고 싶은 서평이 있다면 아래 이메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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