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냐의 북라이딩] 북살롱 목요일 언니, 청와대 국민청원 기획자, 얼룩소 설립자, ‘홍보가 아니라 소통입니다’ 저자 정혜승의 종횡무진 독서 탐험기.
오늘 ‘마냐의 북라이딩’에서는 논쟁적인 책, [책임 정당]을 함께 읽습니다. 이 책은 바람직한 민주주의의 상식처럼 받아들여지는 다수 시민의 적극적인 정당 참여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경고하고, 비례대표제도가 가지는 약점을 다양한 국제적인 사례를 통해 분석합니다.
많은 나라에서 이상적으로 평가하는 독일의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래브라도 리트리버와 푸들의 교배종인 ‘래브라두들’에 비유하면서, 이를 제도적으로 수입한 나라들(이탈리아, 뉴질랜드, 일본, 멕시코 등)이 양당제의 중요성, 연정 합의에서 공공복지를 희생하는 결탁 금지 등 핵심 요소를 상실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저자들은 “풀뿌리 분권화가 유권자 소외 현상을 키운다는 역설을 해결할 열쇠는, 정당이야말로 민주주의 정치의 핵심 기관임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실현 가능하고 책임 있는 정강정책을 제시하고,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얻기 위해 경쟁하는 강한 두 정당의 경쟁적 선거제도, 즉 영국식 양당제를 현실적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편집자, 출판사 해설 참조.)
책임 정당: 민주주의로부터 민주주의 구하기
– 프랜시스 매컬 로젠블루스,이언 샤피로 씀. 노시내 옮김. 후마니타스: 2022.
– Shapiro, Ian; McCall Rosenbluth, Frances (2018). Responsible Parties: Saving Democracy from Itself. Yale University Press.
[마냐의 북라이딩]
프랜시스 매켈 로젠블루스, 이언 샤피로
책임정당: 민주주의로부터 민주주의 구하기
다들 민주주의 위기라는데, 정확하게 뭐가 문제고 어쩌란 말인가? 사실 ‘노답’일 거 같아서 관심을 안두려고 했는데 내가 참여하는 모임에서 [책임 정당]을 읽었다. 예일대 정치학과 교수 로젠블루스와 샤피로가 쓴 책이다. 부제는 ‘민주주의로부터 민주주의 구하기’. 이분들 진심이다. 문제의식에는 공감한다. 근데 문제의 원인 진단과 솔루션에서 꽤 난감하다. 무척 논쟁적 주장이란 얘기다.
대중 참여가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
우리도 최근 비례대표 선거제도를 놓고 무엇이 최선이냐, 최소한 여의도에서는 뜨겁게 맞붙은 가운데 저자들은 민주주의 정부가 제대로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정당 시스템을 탐구했다. 일단 좋은 정당이란? 차기 선거보다 장기적 이익을 고려하는 정책을 펼치는 정당이다.
그렇다면 선거철 한때 공약이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서, 더 폭넓은 지지층을 위한 공공 정책을 입안하고 이행할 수 있는 정부를 위한 정당이 자리잡으려면? 이들의 결론은 정당 수를 늘릴 게 아니라 줄여야 하고, 정당 규율도 더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대중 참여 강화가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는 게 핵심 주장이다. 정당의 위기는 참여 부족 탓이 아니라 무기력과 무능함이다. 더 강한 정당을 위해선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일단 유권자들이 정당 활동에 적극 나서는 게 왜 극단적 방향으로 정당을 움직이지? 저자들은 예비선거와 당원대회 등 대중의 정당 참여 확대를 패착이라고 본다. 적극적 지지자들에게 지도부가 휘둘렸고, 일관성 있는 강한 정강 정책도 함께 흔들렸다. 직접 정치는 좋아 보였지만, 여러 정책을 비교할 능력이 유권자에겐 없었다. 정당 엘리트들의 권한을 분산한 것은 좋은데, 일반 의원들이 아니라 적극적 지지자들에게 권력을 넘겨주면서 스텝이 꼬였단다.
지도부 선출에 당원 참여를 늘리는 등 시민에게 더 큰 결정권을 내주면서 유권자와 가까운 정치인이 선출되도록 한 국가마다 오히려 유권자가 정치에서 소외되는 현상이 심화됐다. 정당이 산으로 간다는 느낌이랄까, 정치 효능감은 더 떨어지고 불신은 커졌다. 곳곳에서 극우 정당이 오히려 힘을 얻고 있다. 기성 체제에 대항하는 정당들이 반이민 등 극단적 주장으로 세를 키웠다.
저자들은 포퓰리즘에 기반한 팬덤정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당이 더 강해져야 한다고 본다. 대통령중심제와 약한 정당의 결합이 상당수 국가에서 문제가 됐다.
강한 정당 경쟁하는 양당제가 최선! … 정말?
특히 저자들은 두 개의 강한 정당이 경쟁하는 양당제가 최선이라고 본다. 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양당제에서 협소한 유권자 층에 호소하는 전략은 위험 부담이 크기 때문에, 두 정당 모두 핵심 지지층 이익만 챙기는 일을 자제하게 된다는 논리다.
폭넓은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양당 모두 가운데 블록에 더 신경쓰게 되면서 오히려 극우정당을 억제할 수 있다고 했다. 다당제에서는 정당 연합이 불가피한데, 연정은 대다수 유권자에게 유익한 정책보다는 자기 구성원에게 유리한 정책을 흥정하고 그 비용을 나머지 사람들에게 전가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들은 전 세계 민주주의 현황을 마치 백과사전처럼 꼼꼼하게 살피면서 가장 모범적 시스템으로 결국 영국을 꼽는다. 미국 정치는 양당제임에도 불구, 분권화 과정에서 약한 정당의 문제를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건강보험 시스템의 경우, 영국은 든든하지만 미국은 취약한 것도 여기서 비롯됐다고 본다. ‘유권자 대다수의 장기적 이익에 봉사하는 정책’을 정부가 법제화하는데 힘이 부치는 것도 약한 정당 문제라는 주장이다.
2018년에 출판된 이 책은 트럼프 시대(임기: 2017년 1월~2021년 1월)를 맞이한 미국 정치학자들이 민주주의에 관해 난감해했구나 싶은 마음이 든다. 다만 강한 양당제라는 이유로 영국 시스템이 최선이라는 결론에는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브렉시트를 경험한 영국 정치가 그다지 괜찮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시아 민주주의 리더인 대한민국 분석이 빠지다니. 쳇.
책보다 더 흥미로웠던 토론
이래저래 책보다 토론이 더 흥미로웠다. 최소한 김대중 대통령 시절까지는 민주당이 강한 정당이었던 것인지, 노무현 대통령 이후 정당은 또 달라진 것일까? 제왕적 총재가 나쁜 것처럼 말하지만 DJ야말로 현역들을 날리고 젊은층을 수혈해 정당 혁신을 해내지 않았던가?
제도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제도가 만들어지기까지 각국의 성공과 실패를 단순 비교해도 괜찮은 것인지, 계급과 인종 문제가 있는 나라와 없는 나라를 같이 봐도 되는 것인지 논점이 많다. 예컨대 벨기에처럼 541일 동안 정부를 구성하지 못해도 어쨌든 굴러가는 나라와 선거제도를 비교한들?
새삼 ‘정보화 혁명’이라 부를 수 있는 소셜미디어 폭풍은 각 개인이 모두 정치인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며 권력을 분산시키는데, 유권자 힘을 더 줄여야 한다는 저자들 솔루션이 현실성 있는 것인지 여부도 간과할 수 없다. ‘개딸’ 이전에 노사모를 비롯해 조직화된 대중이 대리인을 통해 뭔가 관철하려는 것이 정당 작동원리의 기본 아닌가?
또 비례대표를 늘리겠다는 주장에는 엘리트들이 의회로 더 진출하는 것을 기대하는데, 난 요즘 엘리트가 정말 최선인지 잘 모르겠다. 엘리트들이 산전수전 베테랑 정치인들에게 얻어터지지 않고 뭔가 해내는 것도 귀한 풍경이 되어버렸다.
우리가 연금개혁에 관해 토론하고 합의해낼 수 있는 구조는 뭐냐, 거꾸로 접근하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다.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는 양당 체계라면 강력한 정당을 떠나서, 그게 될까? 프랑스 마크롱처럼 대통령이 사회보험 개혁 밀어붙이는 방식은 괜찮은가? 저자들은 자본가를 봐주는 좌파, 노동자 챙기는 우파의 양당제 로망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양당이 서로 정치적 내전 수준으로 싸우는 상황에서, 이들이 가운데 블록을 더 챙기는 일이 가능할까?
토론은 흥미진진한데, 실제 현실로 얘기하면 쉽게 저자들에게 동의하기 어렵다. 특히 나는 마지막 9~12장 발제를 맡아 내용을 요약했는데, 독일식 ‘래브라두들’(Labradoodle; 래브라도+푸들;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관한 비유)이 되고 싶은 나라들을 비롯해 중남미, 동유럽 국가 역사와 현황을 보다가 민주주의는 다 망했구나 싶어 웃음이 나왔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권력은 곧잘 못된 궁리나 하고 자기들 이익만 챙긴다. 저자들은 “창피한 부정부패를 일류 경제가 보상해줄 때는 ‘삼류정치’ 웃어 넘겼던” 일본 등 매우 직설적으로 정리했다. ‘세계는 지금’, 민주주의 측면에서 어디쯤 와 있는지 쓱 살펴보는데 도움이 될 뿐더러, 지구 한 바퀴 둘러본 느낌은 덤이다. ‘민주주의로부터 민주주의 구하기’, 이게 쉬운 질문은 아니었다는 건 명백하고, 저자들 답이 미진하다고 해서 흉볼 일도 아니다. 그저 더 고민하고 실행을 모색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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