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모욕죄(형법 제311조) 합헌 결정에 유감을 표한다.
지난 12월 23일 헌법재판소는 사단법인 오픈넷이 2017년 12월 1일 모욕죄로 재판중인 청구인을 대리하여 청구한 형법 제311조 모욕죄 위헌소원에 대해 6:3으로 합헌 결정을 선고했다(2017헌바487). 강자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가로막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와 모욕죄 폐지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오픈넷은 이번 합헌 결정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합헌 입장에 관하여
헌재 다수의견은 모욕죄에 관한 헌재 선례(2012헌바37 결정 이유의 요지)를 인용하면서 모욕죄가 명확성의 원칙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아 합헌이라고 한다. 우선 모욕죄가 합헌이라는 헌재 다수의견을 살펴보자.
1. 명확성의 원칙에 관해
- 모욕죄는 사람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인 외부적 명예를 그 보호법익으로 하고, 명예훼손죄와는 달리 구체적 사실의 적시를 요구하지 아니하는 등 일반인이라면 금지되는 행위가 무엇인지를 예측하는 것이 현저히 곤란하다고 보기 어렵다.
- 더불어 대법원은 모욕의 의미에 대하여 객관적인 해석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 따라서 모욕죄는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2. 표현의 자유에 관하여
- 모욕죄는 표현의 자유를 다소 제한한다.
- 하지만 모욕행위(표현행위)이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로 볼 수 있는 때는 위법성조각사유가 적용되어 처벌되지 않을 수 있다.
- 이런 점을 고려하면 모욕죄의 형사처벌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
3. 기타 고려한 점들
- 혐오 표현에 대한 직접적인 형사처벌조항 등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모욕죄가 혐오 표현에 대한 일종의 제한 내지 규제로 기능하고 있는 현실적인 측면
- 대법원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모욕죄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고 판시하는 등 표현의 자유가 지나치게 위축되지 않도록 심판대상 조항을 해석·적용하고 있는 점
-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선례(명확성 원칙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아 ‘합헌’)를 변경할 필요가 없다고 판시했다.
추상적인 너무도 추상적인 모욕죄
형법 제311조의 모욕죄에서 ‘모욕’이란 사실을 적시하지 아니하고 단순히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은 너무나 추상적이어서, 일반인, 심지어 판사조차도 어떤 표현이 모욕적인지 아닌지를 명확히 판단하기 어렵다.
극소수의 공개된 모욕죄 판례들을 보면 명백한 욕설이 아닌 한, 타인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 표명에 대해 모욕죄를 인정하는 분명한 기준이나 일관성을 찾을 수 없다. 그 뿐만 이번 결정에서 반대의견(= 위헌의견 = 소수의견)을 낸 3인의 재판관(유남석, 김기영, 이미선)도 ‘모욕’의 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하다고 지적한다:
“상대방의 인격을 허물어뜨릴 정도로 모멸감을 주는 혐오스러운 욕설 외에도 타인에 대한 비판, 풍자·해학을 담은 문학적 표현, 인터넷상 널리 쓰이는 다소 거친 신조어 등도 모욕죄로 처벌될 수 있다.”(유남석, 김기역, 이미선의 소수의견)
약자 입막는 재갈로 이용되는 모욕죄
우리나라에서 모욕죄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와 함께 강자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비판적인 언사를 하지 못하도록 약자의 입을 막는 도구로 남용되어 왔다. 특히 인터넷 시대에 들어와서는 모든 표현의 흔적이 사이버 공간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까닭에 고소와 처벌이 쉬워져 2014년부터 2019년 사이에 사이버 명예훼손·모욕죄 발생건 수가 약 2배 증가했으며 이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그 중 다수는 국회의원, 공무원 등 공인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기업, 전문직, 연예인 등에 대한 비판이 차지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작년 나경원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자신과 관련된 기사에 ‘나베’, ‘매국노’, ‘국X’ 등의 악성 댓글을 게시한 170개의 아이디를 모욕 혐의로 고소한 바 있으며, 오픈넷이 법률지원한 사건은 불기소 처분을 받았지만 유죄 판결을 받은 사건도 있었다. 그리고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라는 이유로 최종적으로 불기소 처분이나 무죄 판결에 의해 처벌받지 않는다고 해도, 모욕죄로 고소 당하면 일단 피의자 신분으로 수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 자체가 일반인들의 법 감정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표현의 자유에 심각한 위축 효과를 불러온다.
헌재의 반대의견(=위헌의견 =소수의견)도 모욕죄가 표현의 자유를 제약함을 지적한다:
“모욕죄의 형사처벌은 다양한 의견 간의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을 통하여 사회공동체의 문제를 제기하고 건전하게 해소할 가능성을 제한한다. (중략) 그뿐만 아니라 다원성과 가치상대주의를 이념적 기초로 하는 현대민주주의 사회에서 모욕이라는 광범위한 개념을 잣대로 표현의 허용 여부를 국가가 재단하게 되면, 언론과 사상의 자유시장이 왜곡되고 정치적으로도 악용될 우려가 있다.
또한, 국가형벌권의 행사는 국가권력행사 중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고 대상자에게는 가혹한 강제력에 해당하므로 그 행사는 최소한의 행위에 국한되어야 한다. 단순한 모욕행위에 대하여는 시민사회의 자기 교정기능에 맡기거나 민사적 책임을 지우는 것으로 규제할 수 있다.” (유남석, 김기역, 이미선의 소수의견)
모욕죄 폐지는 세계적 흐름
2011년 UN 인권위원회[footnote]표현의 자유에 대한 일반논평 34호에서[/footnote]는 사실적 주장이 아닌 단순한 견해나 감정표현에 대한 형사처벌은 폐지할 것을 규약 당사국들에게 권고한 바 있다. 견해나 감정표현만으로는 국가 형벌권이 개입할 만한 중대한 해악이나 권리 침해가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고 모욕적·비하적 견해나 표현도 소수의견의 지적대로 때로는 정당한 분노를 드러내어 사회정의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비교법적으로도 모욕죄를 폐지하는 것이 세계적 흐름이다. 잉글랜드, 웨일스, 아일랜드, 몰도바, 루마니아 등은 모욕죄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을 전부 폐지했고, 우리나라 모욕죄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독일에서도 일반 모욕죄는 피해자가 주도하는 사소(私訴; 아래 박스 해설 참조)에 의해 처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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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사인소추 제도’
독일 형사소송법에는 ‘사인소추’ 제도가 있다. 형사소송에서 피해자에게 형사소추권, 즉 소제기의 권한을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독일에서는 경미범죄, 즉 범죄 정도가 경미하고 공공의 이익을 크게 침해하지 않는 범죄의 경우에는 피해자에게 독자적인 형사소추권을 인정한다. 구체적으로 사인소추가 가능한 범죄 유형은 주거침입, 모욕, 서신비밀침해, 상해, 협박, 거래상의 쉬뢰 및 증뢰, 손괴와 부정경쟁방지법위반 및 저작권법 위반의 아홉 가지다(374조). 이 가운데 상해죄의 일부와 손괴죄를 제외한 나머지 범죄는 모두 친고죄다.
검사는 이러한 범죄들이 ‘공익’에 관련되어 있을 때에만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376조). 그렇지 않은 경우 피해자만이 검찰을 거치지 않고 사소(私訴)를 제기할 수 있다. 다만, 뇌물죄와 저작권법 위반 범죄를 제외한 범죄에 대해서는 소를 제기하기 전에 조정을 시도하여야 하는 조정전치주의를 취하고 있끼 때문에 조정시도가 성공하지 못한 경웨 한해 피해자는 사인소추절차에 의한 소를 제기할 수 있다(380조). 사인소추인은 변호사와 함께 출석하거나 위임장을 가진 변호사로 하여금 대리하도록 할 수 있으며(378조), 절차에 참여하여 의견을 진술하고 변호사를 통해 기록을 열람할 권리를 가진다(385조).
– 한국법제연구원, ‘2006 독일 법령용어 해설집’, 2006. 10.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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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의 다수의견(합헌의견)은 모욕죄가 혐오 표현에 대한 일종의 제한 내지 규제로 기능하고 있다고 지적하지만, 반대의견(위헌의견)처럼 혐오 표현은 별도의 법률을 통하여 규율될 수 있는 것으로써, 반드시 표현의 자유를 광범위하고 과도하게 제한하는 모욕죄를 통해 규율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타인에 대한 부정적 감정표현을 형사처벌하여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축시키는 모욕죄에 다시 한번 면죄부를 준 이번 결정에 깊은 유감을 표하며, 오픈넷은 이에 굴하지 않고 모욕죄 폐지 운동을 지속해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