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강력한 효과를 연일 느끼고 있다.
응급실에 내원한 환자들마다 본인이 아픈 것이 혹시 독감 예방 접종 때문이 아니냐며 불안을 제기하고 있다.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독감 예방 접종 후 부작용이 생겼다며 전화 혹은 직접 응급실을 찾고 있는데, ‘사망’이라는 굉장히 무거운 책임이 걸려있다보니 작은병원들은 경미한 증상만 호소해도 무조건 큰 병원에 가보라며 손사래 치고 있는 상황이다.
의사나 환자나 온 국민이 독감 백신으로 인한 살해 위협(?)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가 살인진드기 사태 이후 또 한번 온 국민이 몰살당할 위기에 처했음을 뜻한다. 다들 이만큼 불안해한다면 어쩔 수 없다. 백신을 아예 전량 폐기하는 게 수순이다. 이제는 오히려 득보다 실이 큰 상황같으니 말이다. 그 결과 겨울에 열성질환이 넘쳐나 수 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더라도. 뭐 어쩌겠는가? 자업자득인데.
예방 접종을 할지 여부는 전적으로 본인에게 선택권이 있다. 누구도 강제로 접종당할 걱정은 하지 않는다. 맞든 말든 그건 자신이 선택할 일이다. 일련의 사망 사건들이 백신 때문이 아니라는 설명은 충분히 나와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을 수 없다면 어쩌겠는가? ‘안아키'(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인지 아나키인지가 되는 수밖에.
독감백신 거부가 초래할 ‘진짜 리얼 월드’
나는 그래서 독감 예방 접종을 안했을 경우 예견되는 손실만을 얘기 해주고 싶다. 올해는 예년과는 달리 좀 특수한 상황이다. 코로나19 때문이다. 발열이나 호흡기 증상이 있는 환자들은 격리실이 있어야 치료를 받을 수 있음은 이제는 상식인 세상인데 춥고 건조한 날씨와 느슨해진 거리두기등으로 겨울에 또 한 번 코로나19의 파고가 들이닥칠 게 예상된다. 여기에 예방 접종 미비로 인해 독감까지 중복 유행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코로나19 격리실마저 부족을 겪는 의료진 입장에선 그야말로 청천벽력같은 소식이다.
독감으로인해 매년 사망하는 환자수는 직간접 모두 포함해 2,000명 이상으로 추정되는데, 올해는 아마 그보다 훨씬 높을 거라는 게 기정사실처럼 여겨진다. 병원 격리구역은 한정된 자원이므로, 발열이나 호흡기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은 그 한정된 자리를 두고 쟁탈전을 벌여야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당신이 독감에 걸려 죽을 위기에 처하더라도 격리실 순번을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다.
코로나19든, 독감이든, 감기든, 폐렴이든 수 많은 열성질환 환자들이 격리실을 기다릴테니, 당신도 대기표를 뽑아든 채 그제서야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펄펄 열이 끓어 일어날 기운도 없는 고령의 어머님을 두고 대한민국 의료 환경을 탓하고 있을 것이고. 그때 TV에선 예방접종률 저하로 독감이 유행해 병원 격리실에 자리가 없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과는 정반대의 소식으로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는 거지.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일각에선 백신의 안정성을 확인해야 하니 예방접종을 1주일쯤 연기하자는 얘기가 나오던데, 무책임한 주장이다. 내가 장담하는데 1주일 뒤에도 바뀔 건 없다. 지금 의심하는 바는 1주일이 아니고 한달 뒤에도 똑같을 것이다. 존재를 증명하는건 쉬워도 부재를 증명하는 건 어렵다.
백신과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 없음은 지금 이상으로 증명할 방법이 없다. 어차피 1주뒤에도 계속 누군가는 죽고 있을게 세상이니까. 1달 뒤에 죽은 사람이 백신때문이 아니라고 누가 증명서를 떼줄 수 있겠는가? 우기면 뉴스에 못 나올 이유가 없지.
예방접종은 보통 항체 형성까지 2주 이상이 소요되므로 지금 맞아도 11월 중순이 넘어야 효과가 나타난다. 그런데 모두가 알다시피 겨울은 이미 성큼 다가왔고, 이미 주위에서 한두 명씩은 콜록이고 훌쩍이기 시작했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독감은 이미 찾아들 채비를 마쳤는데. 우리는 여전히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 1주일이 짧은 시간 같겠지만, 독감은 우리의 사정을 감안해서 도착 시각을 조절해주진 않는다.
작년까지는 독감환자 치료를 걱정해본 적 없다. 검사하고 치료하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으니까. 올해는 다르다. 이것만 기억해둬라. 당신이 코로나19가 아니란 게 입증되기 전까진 아마 병원 문턱조차 넘어서기 힘들 것이다. 어떻게든 올해는 독감에 안걸리는게 상책이다.
나는 이미 예방접종을 몇 주 전에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