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box type=”note”]

이 글은 ‘수술실 CCTV 설치’라는 사회적 의제에 관한 입장을 담은 글입니다. 독자께서 이 의제에 관한 찬성과 반대 의견 어느 한쪽만 접하셨다면, 이에 관한 찬반 의견을 두루 함께 살펴보시길 권합니다. (편집자)

[/box]

 

나는 수술실 CCTV 설치에 반대한다. 관련해서 이미 3년 전에 글을 쓴 바 있다.

나는 의사 집단의 이익에 큰 흥미가 없다. 그러니 집단 이기주기에 매몰된 게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는 사양한다. 더구나 나는 CCTV가 설치된 장소(‘응급실’)에서 일하는 의사다. 안건이 통과되어도 내 삶은 바뀔 게 없다.

CCTV 설치가 가지는 근본적인 문제를 얘기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의사의 반대 주장은 듣지도 않고 욕만할게 뻔한지라 전개 방식을 한번 꼬았다. 덕분에 논리정연한 글이 되진 못했지만, 그래도 한가지는 확인할 수 있었다. 유흥시설과 집안에 CCTV 설치를 찬성하는 사람은 없다는 당연한 사실. 그래. 그거면 충분하다.

수술실이라는 공간 

CCTV 설치를 반대하는 주된 근거는 자료유출 우려다. 하지만 나는 그 부분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기술과 제도의 보완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어떤 제도든 부작용없이 완벽 할 수는 없으므로 어느 정도 손해는 감수해야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료 유출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당사자, 즉 환자(국민)가 원한다는데 그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내가 CCTV를 반대하는 이유는 자료 유출과는 관계없다. 그저 그것이 누군가의 인권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물론 나와 생각이 다를 수있다. 나는 국보법 폐지를 원하고 모욕죄 최소화를 원하는 사람이다.)

수술실은 특수한 공간이다. 주체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사적일수도 공적일수도 있는 공간이다. 환자 입장에서는 굉장히 특별하지만, 의사 입장에서는 일상적인 직업 활동의 공간이다. 누군가는 목숨이 달린 공간인데, 다른 누군가는 (3년 전에 썼다시피) 음악도 듣고 똥 싸러 자리를 비우기도 하는 공간이다. 환자 한명 수술에 1박 2일이 걸리기도 하는데 이건 당연한 게 아닐까?

수술 장면

어린이집의 특수성

어린이집 CCTV가 설득력을 갖는 건, 어린이집의 특수성 때문이다. 어린이집은 다른 주변인 없이 교사와 아동만이 생활하는 공간이다. 의사표현이 불가능한 아동은 피해사실을 알릴 수 없으며, 때문에 교사가 인정하지 않는경우 범행사실을 밝힐 방법이 없다. 증인조차 존재할 수 없는 공간인 셈.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이집 CCTV 설치 때도 논란은 있었는데, 본질적으로 그 조치가 누군가의 직업수행 자유를 현격히 제한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자. 본인들 직장에 CCTV를 달아 감시하겠다면 찬성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따라서 다른 직종과 비례의 원칙에서, 어린이집 CCTV 설치는 분명 문제가 있다.

이 논란을 넘어선 마지막 논리는 간단하다. CCTV 설치 이외에 다른 대안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교사가 사람들 눈을 피해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은밀한 공간을 없애는 방법? 전국 어린이집을 학교처럼 대규모로 운영하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결국 어떤 대안도 없기에 직업활동 자유를 다소 침해하더라도 입법 취지는 정당성을 갖게 되었다.

어린이 집 아동 유치원

 

수술실은 어린이집과 다르다

사람들은 수술실도 어린이집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마취되어 꼼짝할 수 없는 환자에게 의사가 범죄를 저지르는 완전히 은폐된 공간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마취되어 저항을 상실한 환자와 의사가 1대 1로 마주하는 수술실은 없다. 집도의, 마취의, 보조의, 간호사 등의 도움 없이 홀로 원맨쇼 하는 수술은? 만화책 속에나 존재한다. 아무리 작은 수술도 최소한 보조해 줄 간호사라도 한 명 있어야 진행이 가능하다.

즉, 수술실에서 범죄가 일어난다면 그 공간에 함께했던 다수의 사람이 카르텔을 형성하고 묵인과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것을 끊어낼 방법이 오직 CCTV뿐일까? 어떤 직종의 직업적 자유를 제한함에도 불구하고 그 외에는 대안이 전혀 없냐는 질문이다.

단순히 CCTV에 대한 찬반이 아니라 시민의 '안전'과 '프라이버시' 보호라는 목적을 위한 적절한 수단이 무엇인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단순히 CCTV에 대한 찬반이 아니라 환자의 안전과 의사의 프라이버시 및 직업적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가장 적절한 수단이 무엇인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의사와 환자, 관계 맺음의 중요성

더러는 의료사고의 증거 확보 측면에서 접근하던데. 굉장히 순진한 발상이다. 간혹 응급실에서 녹음기 꺼내놓는 사람들을 경험하는데, 그러면 대응은 뻔해진다. 의사도 감정이 있는 동물이다. 의심받는다는 느낌이 들면 손을 뺀다. 정해진 프로토콜만 기계적으로 준수한다.

물론 기계적 프로토콜 자체는 나쁜 게 아니다. 어쩌면 우리가 나아가야 할 세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현시점 우리나라에서는 환자에게 손해가 틀림없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봤겠지만, 우리 의료의 특성은 규격을 넘어설 때 최대의 효과를 발휘하니까.

수술실 CCTV 설치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포장하든 당사자는 이렇게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divide style=”2″]

‘당신을 믿을 수 없으니 감시하겠다.’

[divide style=”2″]

 

의사와 환자 사이 관계 맺음의 중요성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단순한 서비스를 넘어 치료 성적까지 영향을 끼치는 법이다.

악수 상생 공생

내 인권만 보호…? ‘순진한’ 기대

의사들은 CCTV를 오랫동안 반대했다. 그동안 여론을 되돌릴 기회가 무수히 많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어떤 달라진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다른 대안을 제시한 적도 없다. 그저 CCTV 설치를 반대했을 뿐이며, 그 사이에도 범죄는 계속 일어나고 있다. 그러니 이제 CCTV 설치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 된 듯 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법과 윤리, 규제와 자율의 범주가 구분되지 않고 섞여 있다. CCTV가 아닌 다른 대안을 내놓고, 제도를 만들어야 하는 건 근본적으로 누가 해야하는 일인지? 그 지리한 과정이 귀찮아서 가장 파괴적인 방법을 꺼내놓고 여론에 호소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 의문이 든다.

나는 수술실 CCTV 설치 논리를 그대로 차용하여 여러분의 직장, 여러분의 머리 위에 감시 장치를 두자고 주장할 수 있다.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디스토피아가 왜 현실에선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다들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내게는 상상만으로 몸서리 칠만큼 끔직한 미래인데 말이다.

남의 인권을 보호하지 않고 내 인권만큼은 지켜질거란 기대는 조금 많이 순진한 게 아닐까?

 

[divide style=”2″]

[box type=”note”]

새는 좌우의 날개가 있어야 비로소 날 수 있습니다. 좋은 생각은 ‘찬성’ 의견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반대’ 의견을 통해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슬로우뉴스는 다양한 반론과 이견, 보충 의견을 환영합니다. (편집자)

  • editor@slownews.kr

[/box]

관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