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통신을 처음 접했던 것은 중학생 때였다. 아빠가 집에 컴퓨터를 사 왔는데 거기 기본 프로그램으로 ‘유니텔’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내 중학교 시절 ‘유니텔’
처음에는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헤맸지만 곧 사용법에 익숙해졌다. 좋아하는 가수의 팬클럽 게시판에 들어가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남긴 글을 읽어보기도 하고, 직접 글을 써보기도 했다. 내가 쓴 글에 사람들이 댓글을 남겨주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를 그때 알았다. 당연히 PC통신의 메인이자 꽃이라고도 할 수 있는 채팅 역시 많이 했다.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전화선을 통해 낯선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생각을 나눌 수 있다니.
너무나 재미있어서 한밤 중 엄마 아빠 몰래 하던 그때는 그러나 랜선이 아닌 모뎀을 통해 연결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PC통신을 이용하면 전화비가 많이 나왔고, 집 전화도 먹통이 되었기 때문에 쓸 때마다 상당히 혼이 났고, 그래서 매번 몰래 했다. ‘삐이이이이~’ 하는 엄청난 소음이 엄마 아빠 방에까지 들리지 않도록 이불을 뒤집어 쓰고서.
하지만 채팅에 나는 곧 질리고 말았다.
낯선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낯선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일 뿐이었다.
서울에 사는 펑범한 중학생이었던 나, 영화를 좋아하고, 책 읽기를 좋아하며, 친구가 많지 않다는 나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그리 많지 않았다. 비슷한 대화를 나눌만한 사람들은 중학생에게 관심이 없었고, 중학생 아이들은 그런 대화에 관심이 없었다.
결국, 누굴 만나든 피상적인 이야기만 몇 번 나누다 다음에 또 이야기하자는 말을 남기고는 머지않아 소식이 뜸해지는 것이 수순이었다. 나는 실망했다. PC통신으로 영화 [접속] (1997)과 같이 진지한 감정과 생각을 나누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책 좋아하는 중학생’ vs. ‘가출한 여중생’
대신 나는 새로운 즐거움을 찾았다. 그것은 채팅방에서 ‘다른 사람인 척’ 연기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때로 19살의 남자 고등학생인 척 해보기도 하고, 20살의 여대생인 척 해보기도 하며, 28세의 남자 회사원이 되어보기도 하고, 가출한 여중생인 척 해보기도 했다. 희한하게도 내가 누구이냐에 따라 사람들의 반응이 매우 달라졌다.
“영화이야기랑 책 이야기 하고 싶어요. (중학생)”
이렇게 방 제목을 달면 한 시간 동안 아무도 그 방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관심을 받을 수 없었다.
“가출한 중학생인데 외로워요….(여자)”
이렇게 방 제목을 달면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왔다. 모두 남자들이었다.
남자들의 정체는 다양했다. 같은 중학생도 있었고, 고등학생도 있었고, 대학생 혹은 그 이상의 어른들도 있었다. 물론 그 중에도 나처럼 재미로 컨셉을 잡아 ‘연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하여간 수도 없는 남자가 관심을 보였다. 인생에 무슨 고민이 있느냐며, 힘들지 않느냐며 이 오빠에게 이야기를 해보라며 말을 걸고, 만나고 싶다며 관심을 보이고, 가출했는데 갈 곳은 있냐는 식으로, 맛있는 것 먹고 싶지 않냐는 식으로 다정하게 굴었다. 그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나는 너무나 어렸고, 그래서 채팅의 상대방들이 “아다냐 후다냐”고 물어도 그게 무슨 뜻인지를 모를만큼 순진했고(성경험이 있느냐를 묻는 당시의 은어. 아다는 일본어 아타라시이(새로운)에서 온 말로 성 경험이 없다는 뜻이다), 동시에 그 모든 다정함과 관심이 모두 나의 ‘가출 여중생’이란 가짜 상태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개의치 않을 정도로 철이 없었다. 그냥 나는 누군가가 내게 관심을 보이는 것이 좋았다. 낯선 사람이 내게 다정하게 행동하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누군가와 친밀하다는 착각을 느끼는 것이 좋았다.
모든 것은 가짜였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재미있으니까.
채팅방에 들어왔던 남자들 대부분은 나에게 지속적으로 연락하며 (몇시에 다시 채팅방에 만날 약속을 요구하거나 쪽지를 남기는 식으로) 현실 세계에서 만나고 싶어했는데, 사실 그렇게 ‘번개’를 시도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나는 가출 여중생이 아니었고, 그 모든 것은 그저 컨셉을 잡아 하는 ‘연기’였을 뿐이므로. 나로서는 사춘기 소녀의 호기심과 일탈에 적당한 정도의 재미만 느끼면 그만이었기 때문에.
다른 너무나 다른 ‘일탈’의 대가
최근 수없이 공유되는 N번방 사건 관련기사를 읽으며 문득 이와 같은 중학생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피해자가 된 여자아이들 대부분은 트위터에서 ‘일탈계’로 통칭되는 계정을 사용하던 아이들이었다고 한다. ‘일탈계’는 다소 노출 수위가 높은 사진(가슴골, 다리 등)을 올리며 성적 관심을 표현하는 계정들이다.
애초에 왜 표적이 될만한 그런 행동을 하느냐는 비난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겠으나 나는 그 여자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그 아이들 역시 중학생 때의 나처럼 어느 순간 알아버렸던 것이다. ‘가출 중학생’ 컨셉을 잡으면 수많은 남자가 관심을 보이는 것처럼 노출 수위가 높은 사진을 올리면 높은 관심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아이들은 자신을 그렇게 위험에 노출시키면서까지 관심과 친밀함이 필요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설령 그 모든 다정함이 가짜라도 개의치 않을만큼.
그리고 그 ‘일탈’의 대가가 지금의 이것이다. ‘박사’를 비롯한 N번방 운영자 대부분은 이와 같이 일탈계를 운영하는 아이들에게 피싱 링크를 보내 개인 정보를 빼냈고, 그것으로 그들을 협박하여 ‘성 노예’로 만들었다고 한다. 시키는대로 말을 듣지 않으면 너의 개인 정보를 모두 유출시켜 버리겠다고. 가족들에게, 지인들에게, 친구들에게, 네가 트위터에서 이런 사진 올리고 다녔다는 것, 남자들과 야한 이야기 나눈 것 모두 공개해버리겠다고. 자신이 아는 작은 세계가 전부인 아이들 대부분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런 덫에 걸려들었고, 결국 서서히 서서히 빠져나올 수 없는 수순으로 수십만 명을 위한 섹스돌이 되고 말았다. 너무도 무력하게.
많은 이들이 이번 사건을 두고 인류애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사실 나는 그렇지 않았다. 애초에 인류에 대한 기대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결국 동물의 한 종류일 뿐이다. 환경에 의해 인간은 누구보다 선해질 수도, 아주 악독해질 수도 있다. 아마 일탈계를 사용했던 여자아이들이나, N번방에 들어가고자 했던 남성들이나 최초의 욕망은 아주 비슷했을 것이다. 어릴 때 나처럼 낯선 것에 대한 관심, 금기된 것에 대한 욕망, 타인에 대한 갈망, 정서적 육체적 친밀함에 대한 욕구 등의 뒤섞여 있었을 것이다. 성욕, 호기심, 일탈과 모험과 도전에의 충동. 나는 여성에게 ‘욕망 당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여성도 인간인데 당연하지 않은가.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모험’과 ‘일탈’에 대한 대가가 성별에 따라 어마어마하게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여자 아이들은 작은 ‘일탈’로 시작해서 정신과 육체가 파괴될 정도의 끔찍한 벌을 받고, 평생 잊을 수 없는 고통과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되는 반면, 남자들은 너무도 쉽게 거기에서 벗어난다. 낯선 남성과의 아슬아슬한 하룻밤을 상상했던 여성은 약물에 취해 정신을 잃고 강간을 당하고 나체가 촬영되고 그래서 그 영상물이 온라인에 돌아다니는 지경에 이르는 반면, 남성들은 ‘어제 좋았지’ 하고 그저 잊어버리고 만다.
작은 일탈로 인해 공중 화장실을 발가벗고 개처럼 돌아다녀야 했던, 남동생의 성기를 만져야 했던, 성기에 칼날을 집어넣어야 했던 여자아이들… 그들 중 대다수가 아마도 이것을 평생 잊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반면, 이것을 본 남자 아이는 그저 계정을 지워버리고, 달았던 댓글을 지워버리는 것으로 끝나고 만다. 호기심에 들어가봤는데 이렇게 심각한 건 줄 몰랐어요 죄송, 하고 잊어버리고 만다. 이 사회가 그렇게 만든다. 그래도 되게끔 허용한다. 그래서 같은 일이 자꾸만 반복된다.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잊혀지고, 잊어버린다.
만약 그때 내가, 중학생 때의 내가, 거기에서 아주 조금만 더 호기심을 느껴서 나에게 접근하는 남자들을 실제로 만났다면, 혹은 그들에게 조금 더 사랑받고 싶은 욕구를 느껴서 야한 사진이라도 찍어 올렸다면, 나의 신상정보를 노출하는 일이 생겼다면, 그때 나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어쩌면 나 역시 이름은 달랐겠지만, N번방의 소녀가 될 수 있었다. 내가 원했던 것은 그저 작은 일탈, 낯선 이의 친절과 관심, 그리고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 뿐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