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마 시내 나가모, 멫 달에 한 븐썩 크단한 차가 돌아댕깄다 아이가. 그기 나증에 아 띠라 카는 차라꼬 동네에 소무이 막 돌았다카이. 그때는 마 아아 안 놓는기 애국이라 카믄서…. 몬지도 몰르고 애국한다하이끼내 등뜨밀리가 드갔다 나온 츠자들 많았제, 그 핼쑥했든 을굴들을 다 으짤고…”
“내 친구 ㅇㅇ라 카는 아가 저너메 근느에 산 하나 늠어가 살았는데, 가가 시집을 가가 줄줄이 딸만 서이 낳아뿟다 아이가. 그때 가아 시어므니가 그랬다 카드라, 그래 딸만 싸지를 거 같으모 그 차에라도 드갔다 나오라 카믄서, 우째 내 앞에서 그래 섧게 울든지…. 꼬추 아이라꼬 산 목심 띠라 카는게 말이 되나 카믄서”
-남OO, 여, 향년 81세로 작고.
서지태: (산부인과 병원 앞에서 낙태 수술을 받으러 온 아내 이수아에게) “수술받는데 같이 들어가주려고 온 거 아니야. 이혼하자고. 그래 알았어. 그 대신 아이 낳아줘. 낳고 나서 이혼해줄게.”
이수아: “서지태!”
서지태: (병원으로 들어가려는 아내에게) “신고한다. 그거 불법인 거 알지?”
– 드라마 ‘황금빛 내인생’ 39화(2018.01.07) 중에서
대한민국에서 낙태죄는 단 한 번도 제대로 작동한 적이 없었다.
과거에는 강력한 산아 제한 정책을 위한 도구에서 임신 중절 시술 버스가 동네마다 돌아다녔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며, 80-90년대 산아 제한 정책이 마무리 될 무렵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여아가 남아 선호 사상으로 인해 임신 중단의 대상이 되었다. 결국, 낙태죄는 그 시작부터 권력과 가부장제의 입맛에 맞게 사용되거나 또는 간편하게 무력화된, 그야말로 전근대를 상징하는 하나의 녹슨 무기였을 뿐이다.
전근대의 녹슨 무기답게 현행 낙태죄는 임신과 그 중단의 모든 책임을 여성에게만 뒤집어 씌워 왔다. 기본적으로 임신은 여성이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니만큼 남녀가 함께 책임을 져야 하며 또한 그 책임의 일부는 국가에서 나눠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행 낙태죄상 남성이 함께 책임을 지고자 여성의 임신 중단 비용을 보조할 경우 형법 제269조와 270조에 의거 종범으로 처벌받으며, 심지어 병원에 동행만 해도 처벌 근거로써 작용할 수 있다. 임신과 그 중단의 책임에서 남성을 법률이 강제로 배제한 것이다.
한편 낙태죄는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법률적 처벌 규정으로 묶음으로써 가부장제가 여성을 간단히 공격할 수 있는 무기를 제공해 주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드라마에서의 대사는 그 훌륭한 예시다. (저런 장면을 내보내고도 해당 드라마는 당해년도 연말 연기대상 5관왕과 시청률 43%를 기록했다.) 남성의 출산 선택은 가족을 지키는 훌륭한 선택이고 여성의 임신 중단 선택은 철저한 이기주의이자 불법으로 포장한 이 레토릭은 남녀 각자의 자기 결정권에 불합리한 정당성의 차등을 부여하고 이를 공고히 해 왔다.
낙태죄가 실질적으로 실형 선고가 거의 없어서 이미 사문화된 규정이라는 이야기는 사실 꺼낼 필요조차 없다. 녹슨 무기라도 무기는 무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찰은 고발이 접수되면 수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으며, 실제로 법원이나 검찰에서 다양한 사정을 참작하여 기소유예 또는 선고유예로 마무리짓기는 하지만 법적 분쟁에 한 번이라도 휘말려 본 사람은 이 과정이 얼마나 지난하고 고통스러운지 아실 것이다. 특히 상당수의 낙태죄 고발 접수가 여성과 관련 있는 남성 또는 그 가족으로부터 이뤄지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은 이 녹슨 무기가 아직도 위력이 강함을 입증할 뿐이다.
임신 중단을 불법으로 규정한 형법 제269조와 제270조, 그리고 임신 중단의 요건에 관하여 규정한 모자보건법 제14조와 동법 시행령 제15조는 오늘로써 종언을 고했다.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에 관해 다음과 같이 헌법불합치(헌법불합치 의견 4인: 단순위헌 의견 3인: 합법의견 2인) 결정을 선고했다:
“형법 269조와 270조는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침해의 최소성을 갖추지 못했으며, 태아의 생명보호라는 공익에 대해서만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 (2019. 헌법재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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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불합치 판결?
헌법불합치 판결은 해당 법률 조항을 곧바로 위헌 무효로 판결할 경우에 생길 수 있는 규범적 혼란과 입법의 미비를 방지하고, 국회의 입법권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내리는 ‘변형 판결’ 중 하나로, 광의로 해석하면 ‘위헌 판결’의 일종이다. 이번 판결은 현행 낙태죄 규정은 헌법에 부합하지 않지만(‘위헌’), 그렇다고 이 규정의 효력을 곧바로 무효로 하고, 낙태를 전면적으로 허용할 수는 없다는 판단에 따라 2020년 12월 31일까지 해당 법조항을 헌법에 합치하도록 개정하라는 취지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한 것이며, 따라서 국회는 그 기한까지 법을 개정해야 한다. 그때까지 개정하지 않으면 해당 낙태죄 규정은 폐지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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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중요한 것은, 여성의 최소한도의 자기결정권마저 때로는 국가적 정책집행을 위한 무기로, 때로는 전근대적 남아선호사상의 숭배를 위한 무기로 사용되었던 낙태죄가 이제 우리의 손으로 그 역할을 마무리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야만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
무기여, 잘 있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