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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다음날이었던 지난해 12월 26일, 수원여객운수 조백호 사장은 갑작스럽게 소집된 이사회에서 해임됐다. 아들 조한성 상무도 함께 해임됐다. 수원여객 경영권 분쟁은 그렇게 시작됐다.

“눈앞이 캄캄했죠.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대를 이어 키운 회사를 이렇게 빼앗기다니.”

조한성 전 상무의 이야기다.

경기도 수원시 연무동에 본사를 둔 56년 역사의 수원여객은 보유하고 있는 버스가 572대로 경기도 버스회사 가운데 시내버스 보유 대수가 가장 많다. 100% 자회사로 두고 있는 남양여객까지 더하면 656대에 이른다. 광역버스로는 더 큰 회사들이 몇 군데 있지만 시내버스 회사 가운데서는 전국을 통틀어도 3위 안에 드는 규모다.

상당수 버스회사들이 경영 부실과 누적 적자로 골머리를 앓고 있지만 수원여객은 2016년 기준으로 매출액이 864억 원, 당기순이익이 71억 원에 이르는 건실한 회사다. 이익잉여금도 199억 원에 이른다. 상대적으로 알짜배기 수익 노선이 많고 수원CNG를 100% 자회사로 두고 직접 연료를 조달하고 있어 영업이익률이 높은 편이다.

땅 짚고 헤엄친다던 시내버스 회사들이 사모펀드의 타깃이 되고 있다. CC0.
땅 짚고 헤엄친다던 시내버스 회사들이 사모펀드의 타깃이 되고 있다. CC0.

수원여객의 경영권 분쟁은 일부 주주들이 주식 매입을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수원여객은 2017년에 7억6508만 원, 2016년과 2015년에도 같은 금액을 주주들에게 배당으로 나눠줬다. 2014년에는 10억7111만 원의 배당을 실시했다. 5% 주주라면 1년에 배당금이 3825만원 수준. 전체 이익 규모에 비교하면 크지 않은 금액이고 주식 매매도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라 주주들 불만이 많았다.

그러다가 2017년 12월26일, 일부 이사들이 기습적으로 이사회를 소집해 조백호 사장과 조한성 상무 해임 안건을 올렸다. 이에 앞서 최 전무 등이 12월18일에도 이사회를 소집했으나 절차 문제로 무산된 바 있다. 최진태 전무와 양훈석 전무, 이순국 이사 등이 사모펀드와 손잡고 소액 주주들 지분을 사들여 우호 지분을 늘리고 있었지만, 조 전 사장 등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고 한다.

대를 이어 수원여객의 경영을 맡고 있지만, 조백호 전 사장의 지분은 14.3% 밖에 안 된다. 조한성 전 상무 등 조씨 일가의 지분을 모두 더해도 41.72%. 반면 최진태 전무 등은 양씨 일가 지분을 우호 지분으로 끌어모아 52.04%를 확보한 상황이다. 결국, 이날 이사회에서는 이사 7명 가운데 4명(이순국, 최진태, 양훈석, 김동욱)의 찬성으로 조 사장과 조 상무를 해임하고 이순국 이사를 신임 사장으로 선임하는 안건이 통과됐다. 이순국 사장 지분은 10.7%, 최진태 전무는 7.4%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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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여객의 지분 구조 변동 현황. 최진태 전무 등 현 경영진이 기타 소액주주들 지분을 일부 매입해 이미 50% 이상의 우호 지분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1962년에 설립된 수원여객은 조씨 일가와 양씨 일가 등이 동업해서 조합 형태로 출발해 주식회사로 전환한 회사다. 조백호 사장이 경영을 맡으면서 양씨 일가는 경영 일선에서 배제돼 있었는데 최진태 전무 등이 소액 주주들 지분을 매입하고 양씨 일가 등과 손을 잡으면서 경영권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주목할 부분은 여러 주주들을 규합하는 과정에 스트라이커캐피탈매니지먼트라는 사모펀드가 개입돼 있다는 사실이다. 스트라이커캐피탈은 이순국 신임 사장과 최진태 전무 등 주주 11명의 주식을 매도담보 신탁 형태로 위탁받아 재무적 투자자들을 유치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조백호 전 사장 등의 해임도 스트라이커캐피탈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트라이커캐피탈이 주주들에게 제시한 가격은 주당 32만 원, 액면가 1만 원의 32배다. 회사 가치를 490억 원 상당으로 평가한 셈인데, 주주들 입장에서는 팔리지 않던 주식을 비싸게 사주겠다는 큰 손이 나타났으니 솔깃할 수밖에 없다. 5% 주주라면 24억 원 이상을 손에 쥐게 되는 셈이다.

당초 양씨 등이 조 전 사장 등에게 여러 차례 지분 매입을 요구했으나 조 전 사장이 주당 10만 원을 제안하면서 주주들이 불만을 털어놓고 있는 가운데 스트라이커캐피탈이 나타난 것이다. 최진태 전무가 먼저 스트라이커캐피탈을 접촉하고 투자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스트라이커캐피탈이 다른 주주들을 개별 접촉하면서 지분 확보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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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수원여객 회사 정관에는 기존 주주 외에 제3자에게 주식을 양도하려면 이사회 승인을 받도록 규정돼 있다. 기존 주주들끼리는 이사회 승인 없이도 주식 매매가 가능하지만, 외부인에게 주식을 넘기려면 이사회 승인을 받아야 주주 명부 명의 개서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이사를 해임하거나 새로 선임할 때도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과반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지금 같은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일부 주주들이 출석을 거부한다면 이사 선임이나 교체를 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애초에 가족 기업 성격으로 성장한 기업이라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막기 위해 까다로운 보호 장치를 만들어 둔 것이다. 스트라이커캐파탈이 과반을 넘는 52.04%를 확보하고 있지만 조 전 사장 일가가 41.72%를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사회를 장악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정관을 바꾸지 않는 이상 스트라이커캐피탈이 이사회에 직접 개입하는 건 불가능한 상황이다. 조백호 전 사장과 조한성 전 상무 등도 임원에서는 해임됐지만 여전히 이사 직위는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수원여객 이사회는 이사 7명 가운데 신 경영진 쪽이 4명, 구 경영진 쪽이 3명으로 나뉘어 있다. 스트라이커캐피탈 입장에서는 당장 이사회는 과반을 장악했지만 주주총회에서 3분의 2 이상 표를 확보하지 못하면 이사를 해임할 수도 없고 새로 선임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스트라이커캐피탈 편에 선 주주들도 당장 주식을 넘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답답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트라이커캐피탈은 아직 투자자를 모집하면서 자금을 확보하고 있는 중이고 제3자에게 주식을 양도하려면 이사회 승인이 필요한 상황이다.

스트라이커캐피탈은 일단 기존 주주들과 신탁 계약을 맺은 다음 주식 양도를 승인하는 안건을 이사회에 올리려는 전략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이사회와 주주총회 모두 과반을 확보한 상황이고, 한 명만 스트라이커캐피탈 쪽 주주를 만들어도 이 사람을 내세워 기존 주주들의 지분을 넘겨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스트라이커캐피탈이 사모펀드의 특성상 단기 시세차익을 챙기고 빠져나갈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스트라이커캐피탈은 자본금이 3억2500만 원밖에 안 되는 신생 자산운용사다. 수원여객은 차고지와 보유 차량 등 유형 자산의 장부가액만 2016년 말 기준으로 130억 원 규모에 이른다. 경영권을 확보한 다음 3자 배정 유상 증자를 실시한 뒤 자산을 매각하고 유상감자 등으로 자본금을 빼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버스회사의 기본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노선을 일부 다른 회사에 내다 팔면서 다운사이징을 할 가능성도 있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인력 감축도 불가피하게 된다.

조한성 전 상무는 “곡반정동 등 수원여객이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의 공시지가만 225억 원이고, 수원여객의 전체 가치는 1,000억 원이 넘을 거라고 본다”면서 “그동안 주주들의 불만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단기 차익을 노리는 사모펀드에게 경영권을 넘겨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조 전 상무는 “다른 주주들에게 원한다면 스트라이커캐피탈이 제시하는 가격에 지분을 매입해 줄 수도 있다고 제안했지만, 이미 상당수 주주들이 스트라이커캐피탈의 매도담보 신탁에 묶여 있어 발을 뺄 수가 없는 상황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민우 수원여객 노동조합 위원장은 “버스회사라는 게 요금을 정부에서 정하는 데다 노선과 임금이 고정 불변이라 사모펀드가 들어와도 이익을 늘릴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다”면서 “최악의 경우 적자 노선을 정리하고 차고지를 내다 팔거나 담보 대출을 받는 방식으로 재무 건전성을 악화시키고 이익을 챙겨서 빠져나갈 우려가 크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초창기 M&A 업계를 주도했던 성보경 프론티어M&A 대표는 “스트라이커캐피탈은 직접 버스회사를 운영하는 데는 관심이 없고 직접 인수할 자본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아마도 외부 자본을 끌어들여 사모펀드(PEF)를 설립하고 SPC(인수목적회사)를 내세워 수원여객의 자산을 담보로 LBO(차입형 기업 인수) 방식으로 인수합병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성 대표는 “이 경우 흔히 대상 회사와 SPC를 합병시켜 차입금에 대한 부담을 대상 회사에 떠넘기는 전략을 쓰는데 자칫 회사의 존속이 위태로운 상황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스트라이커캐피탈이 이미 과반 이상 지분을 확보한 상황이고 이사회 역시 스트라이커캐피탈에 우호적인 이사들이 과반이 넘는 상황이지만 여전히 이사 선임이나 해임에는 3분의 2 이상의 지분이 필요하고 정관 변경 역시 3분의 2 이상의 특별 결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스트라이커캐피탈이 실질적으로 경영권을 장악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이순국 사장 등 4명의 이사들이 스트라이커캐피탈의 충실한 대리인 역할을 한다면 이사진 교체 없이도 경영권 행사가 가능하겠지만, 이익실현(exit) 과정에서 이해관계가 충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스트라이커캐피탈과 기존 주주 등의 동맹이 오래 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성보경 대표는 “과반 지분을 확보하더라도 이사회를 장악할 수 없는 구조라 스트라이커캐피탈의 적대적 인수합병이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본다”면서 “조 전 사장 등의 해임도 이사회가 아니라 주총 결의가 필요한 사안이고 주권 반환을 거부하고 주주 명부 열람과 등사를 방해하는 등 법적 분쟁 소지도 있다”고 지적했다. 성 대표는 “경영참여형 사모펀드의 특성상 이사회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다면 적대적 인수합병에 실패할 가능성이 큰데 현재로서는 스트라이커캐피탈 측이 3분의 2 이상 지분을 확보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순국 신임 사장이 이사회를 소집한 2월8일 오전, 수원시 캐슬호텔에는 수원여객 노동조합 조합원 50여명이 모여들었다. 이사회에 부의된 안건은 0.1%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이아무개씨 지분을 스트라이커캐피탈에 양도하는 거래를 승인해달라는 안건이다.

노조는 이사회를 실력 저지하겠다고 맞섰고, 결국 이순국 대표는 이사회를 두어 시간 남짓 남겨두고 이사회 연기를 선언했다. 노조는 노조와 협의 없는 이사회 개최는 안 된다는 입장이지만 형식적인 협의를 거쳐 언제라도 다시 이사회가 소집될 수 있는 상황이다.

한편, 이순국 사장과 최진태 전무 등은 모두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이순국 사장은 지난 7일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면서 “어떻게 기사를 써도 좋으니 나가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진태 전무는 여러 차례 인터뷰 요청에도 “나중에 하자”며 거절했다. 스트라이커캐피탈로 경영권이 넘어가면 최진태 전무가 사장을 맡게 될 거라는 관측도 있지만, 확인된 바는 없다.

수원여객 노조 김재천 부위원장은 “우리는 조백호든 최진태든 누가 사장이 되든 상관 없다”면서 “다만 단기 시세 차익을 노리는 사모펀드가 공적 인프라인 버스회사의 경영권을 장악하고 미래를 내다 파는 상황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경기도는 시내버스에 준공영제를 도입하지 않고 있지만, 환승 할인 보조금과 천연가스 취득 보조금 등 명목으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지급하는 보조금도 상당한 금액이다. 수원여객의 경우도 2016년 기준으로 115억 원의 보조금을 지급받았다. 세금을 쏟아 부으면서 버스회사 사장들 좋은 일만 시킨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았지만 이런 안정적인 수익구조 덕분에 사모펀드의 사냥감이 된 상황이다. 주주들의 요구를 묵살해 왔던 조 전 사장 등에게 문제가 전혀 없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 버스회사는 민간 기업이면서 동시에 공적인 인프라 성격을 띤다. 수원여객이 머니 게임의 희생양이 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수원 시민들의 몫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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