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 type=”note”]내일, 우리는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합니다. 이번 선거에선 그 어느 때보다 유권자의 정치적 자유를 제약하는 선거법에 대한 시민의 관심과 개정 목소리가 높습니다.
법원과 헌법재판소는 과연 국민들의 선거권과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결정을 내려왔을까요? ‘선거와 정치적 자유’를 주제로 한 판결 비평으로 확인해봅니다.
¶ 이 글의 필자는 류제성 변호사(법무법인 진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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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에서 후보자가 공직에 적합한지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후보자와 후보자의 정책에 대한 모든 정보가 공개되고 이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 및 의혹 제기가 가능해야 한다. 그런데 후보자에 대한 의혹 제기는 경우에 따라 범죄가 될 수도 있다.
공직선거법이 낙선을 목적으로 후보자에 대한 “허위사실을 공표”하는 행위를 처벌하고, 당선 또는 낙선을 목적으로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후보자를 “비방”하면 처벌하고 있기 때문이다(공직선거법 제250조 제2항, 제251조).
이 두 규정, 즉 허위사실공표죄와 후보자비방죄에 대한 중요한 판결로 시인이자 대학교수인 안도현에 대한 판결을 살펴보자.
- 제1심 – 전주지방법원법 2013고합96판결: 판사 은택(재판장), 강동훈, 윤양지
- 제2심 – 광주고등법원 2013노237 판결: 판사 임상기(재판장), 김세용, 이수환
박근혜 후보에 관한 의혹 제기가 무죄를 받기까지
‘MBC 시사매거진 2580’는 ‘문화재청 관리기록상 청와대가 소유자로 되어 있는 안중근 의사의 유묵이 현재 청와대에 있지 않고, 소재를 알 수 없다’는 내용을 방송했다(2011년 10월 30일).
안도현 시인은 위 방송을 보고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한 결과, 박근혜 18대 대선 후보가 박정희 전 대통령 사후 청와대를 나오면서 당시 청와대에 있던 유묵(遺墨; 생전에 남긴 글씨나 그림)을 가지고 나와 소장하여 왔던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안 시인은 ‘박 후보가 직접 유묵의 행방에 관하여 책임 있게 해명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박 후보가 도둑으로 오인될 수 있다’는 취지의 글을 자신의 트위터에 여러 차례 게시하였다.
검사는 안 시인이 ‘박 후보가 안중근 이사의 유묵을 훔쳐서 소장하고 있거나 유묵 도난에 관여하였다’는 허위사실을 공표함과 동시에 후보자를 비방하였다는 이유로 안 시인을 기소하였다.
제1심의 판단: 허위사실공표죄 무죄, 후보자비방죄 유죄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제1심에서 배심원은 전원일치로 허위사실공표죄와 후보자비방죄 모두 무죄로 평결했지만, 법원은 ‘허위사실공표죄에 대해서는 무죄, 후보자비방죄는 유죄라고 판단하면서 형의 선고를 유예하였다.
먼저 허위사실공표죄에 관하여는 ‘박 후보가 안중근 의사의 유묵을 훔쳐서 소장하고 있거나 유묵 도난에 관여하였다’는 사실은 진위 불명의 사실로 피고인이 진실성을 입증해야 하나 입증하지 못했으므로 허위사실이지만, 피고인이 이를 허위라고 인식하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무죄라고 판단하였다.
후보자비방죄에 대해서는 배심원 평결과 달리 유죄라고 판단하면서도 선고를 유예한 이유로 다음 세 가지를 들었다.
- 대선 후보 자격 검증이라는 공익목적은 명목상 동기에 불과하고 낙선시킬 목적으로 박 후보를 비방한 것이어서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일탈하여 위법하다.
- 이 사건은 법리적 쟁점이 많아 법률 전문가가 아닌 배심원들이 판단하기 어렵고, 사안의 성격상 정치적 입장, 지역의 법감정, 정서에 따라 좌우될 수 있어 배심원 평결이 법관의 법적 평가를 기속할 수 없다.
- 따라서 배심원 평결은 양형에 한해서만 사실상 기속력(=구속력)을 가지므로 절충적으로 형의 선고를 유예한다고 밝혔다.
항소심(제2심)의 판단: 둘 다 무죄
이와 달리 항소심은 허위사실공표죄에 대해서는 진위 불명의 사실로 허위사실이라고 단정할 수 없어 무죄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후보자비방죄에 대해서는 해당 표현이 ‘비방’에는 해당하나 피고인으로서는 진실로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는 점과 피고인의 의혹 제기가 박 후보의 공무담임 적격성을 검증하기 위한 공익적 목적이 있었다는 점 등을 이유로 무죄라고 판단하였다. 다시 검사가 상고하였으나 대법원의 상고기각으로 무죄가 확정되었다.
해당 사건에서의 쟁점은 여러 가지이나 이 글에선 허위사실공표죄 및 후보자비방죄에 위헌성은 없는지, 합헌이라고 하더라도 해석·적용상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 및 그러한 기준에 의할 때 1심 및 항소심 판결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지 주로 살펴보고자 한다.
허위사실공표죄의 위헌성과 적용 한계
허위사실공표죄와 후보자비방죄는 모두 선거와 관련하여 후보자 검증을 위한 의혹 제기 행위를 규제하므로 정치적 표현의 자유 및 유권자의 알 권리를 직접 제약한다. 그런데 허위사실에 대해서는 헌법적 보호의 필요성이 없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허위사실과 진실인 사실은 서로 혼재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그 구별이 언제나 간명한 것은 아니며 역사상 허위라고 여겨진 사실이 사후에 진실로 밝혀지거나 그 반대인 경우도 많이 있다.
그리고 조사 권한이 없는 일반 시민으로서는 제기된 의혹이 진실인지를 확인할 수단이 제한될 수밖에 없는데 언제나 진실만을 말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사실상 후보자에 대한 검증을 차단하는 위축 효과를 초래한다. 우리 헌법재판소도 허위사실이라는 이유만으로 표현의 자유의 보호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비교법적으로 보더라도 허위사실 공표를 형사처벌하는 민주주의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미국은 공인에 관하여 ‘실제적 악의'(actual malice), 즉 그것이 허위 사실임을 알면서(knowingly), 또는 중요한 사실에 대한 비상식적인 무시(reckless disregard of material facts) 속에서 허위의 진술을 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헌법상 표현의 자유에 의해 보호받는다는 전통적인 표현의 자유의 틀을 한결 넓혀 나가고 있다.
선거에서 설령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진술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정부와 법원이 나서서 이를 규제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 수 있고, 선거와 정치적 자유를 근본적으로 제약할 수 있다는 인식으로 그에 대한 규제는 매우 신중하고 엄격해야 한다는 입장을 정립해 가는 것이다.
반면 우리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는 단순히 “당선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허위의 사실을 공표”하는 것을 처벌한다. 근거 없는 무차별적인 의혹 제기로 인한 폐해의 심각성을 감안하더라도 법 조문의 표현 자체가 매우 모호하고, 지나치게 광범위하여 위헌 소지가 매우 크다.
형사법 대원칙, ‘검사의 유죄 임증책임’ 파기한 대법원
따라서 매우 엄격하고 제한적인 해석이 필요하다. 대법원은 후보자에게 위법이나 부도덕함을 의심케 하는 사정이 있을 때 그에 관한 공적 판단이 있기 전이라도 의혹 제기가 쉽게 봉쇄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런데 대법원은 의혹 사실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자가 그러한 사실의 존재를 수긍할 만한 소명 자료를 제시할 부담을 지고, 소명 자료를 제시하지 못하면 책임져야 하며, 소명 자료에 의하여 제기한 의혹이 진실이라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비록 사후에 진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표현의 자유 보장을 위하여 처벌할 수 없다고 본다.
이런 대법원 입장에 따르면 유죄의 입증책임을 검사가 진다는 형사법의 대원칙이 무너져 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허위성에 대한 피고인의 소명 부담은 검사의 입증책임보다 그 양과 질에 있어서 반드시 가벼워야 한다. 피고인이 법원의 촉구에도 불구하고 소명자료를 제출하지 못하거나 제출한 자료가 구체성이 없는 막연한 내용에 불과한 경우에만 소명 의무를 다 하지 못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내용상 명백하게 기망(=속임, 기만)을 통하여 낙선을 유도할 목적을 담은 내용으로 형식적으로는 직접 그 허위사실을 강조할 목적으로 행해진 허위의 진술만을 처벌하는 것으로 좁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제1심과 항소심의 차이
다시 돌아와 이 사건을 보면, 1심은 ‘박근혜 후보가 안중근 의사의 유묵 도난에 관여하였다거나 도난된 유묵을 소장하였다’는 사실은 진위 불명의 사실로서 의혹을 제기하는 피고인이 해당 사실이 진실하다는 점을 소명하여야 하는데 피고인이 이를 소명하지 못하였으므로 허위사실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허위에 대한 인식이 없어 결과적으로는 무죄라고 판단하였다. 의혹을 제기하는 자의 의혹사실의 존재에 대한 소명의 부담을 검사의 유죄 입증책임과 동일한 수준으로 본 것이다.
반면 항소심은 의혹을 제기하는 자가 그 의혹 사실의 존재에 대한 소명 책임을 진다는 대법원 판례를 따르면서도 피고인이 의혹을 제기하게 된 경위와 동기, 피고인의 소명 및 검사의 수사결과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허위성이 입증되지 않아 무죄라고 하였다.
1심은 검사의 입증책임이라는 형사법의 대원칙을 무시하고, 피고인에게 과도한 소명 부담을 지운 반면 항소심은 그 오류를 바로잡은 것이다.
후보자비방죄의 위헌성과 적용 한계
후보자비방죄는 진실한 사실을 적시하여 후보자 등을 비방하는 행위를 처벌한다. 그런데 진실한 사실을 적시하는 행위에 대해 처벌하는 외국의 입법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법원은 ‘비방’에 대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상대방을 깎아내리거나 헐뜯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지만, 그렇게 해석하더라도 ‘비방’의 의미가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정치적 의사 표현이나 비판행위와 어떻게 구별되는지 판단하기 어렵고 이로 인해 후보자의 정책에 대한 평가나 의혹 제기, 진실로 밝혀진 것들에 대한 공표조차 봉쇄당할 우려가 있다. 따라서 후보자비방죄에 대해서도 엄격하고도 제한적인 해석과 적용이 요구된다.
특히 ‘진실한 사실로서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는 단서를 적극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 대법원은 1) 적시된 사실이 전체적으로 보아 진실에 부합하고, 2) 그 내용이 객관적으로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고, 3) 행위자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그 사실을 적시한다는 동기에서 이를 실행에 옮길 경우 처벌할 수 없다고 한다. 4) 그리고 진실인 것으로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비록 사후에 진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처벌할 수 없다고 본다.
그런데 제1심은 ‘박근혜 후보가 안중근 의사의 유묵 도난에 관여하였다거나 도난된 유묵을 소장하였다’는 사실의 적시가 비방에 해당하는지 여부, 비방에 해당한다면 그것이 진실한 사실인지 아니면 진실한 사실이 아니라도 진실로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았다.
더불어 별다른 논증 없이 피고인이 주장하는 대통령 후보 자격 검증이라는 공익목적은 명목상 동기에 불과하고 낙선 목적으로 비방한 것이어서 위법하다고 단정하였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더욱이 배심원이 법리적 사안에 대한 판단을 잘하지 못할 것이라거나 편향된 판단을 할 것이라는 법관의 편견을 드러내고 있다.
시민의 건전한 상식에 기초한 판단을 신뢰할 수 없다면 국민참여재판은 도입될 수 없는 제도다. 국민참여재판의 실효성과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배심원 평결의 기속력을 권고적 효력보다 강한 사실상의 기속력 내지는 법적 기속력으로 개정해야 한다는 유력한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현실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대의제의 위기와 선거법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대의제의 위기가 논의되고 있다. 대의제 위기의 원인을 비단 선거법에서만 찾는 것은 너무 협소한 견해다. 그러나 후보자에 대한 의혹 제기와 비판을 봉쇄하는 선거법이 정치적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를 침해하고, 후보자 검증을 방해하여 선거 불신과 무관심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 역시 분명하다.
따라서 허위사실공표죄와 후보자비방죄는 폐지 내지 개정하고, 존속할 경우 항소심처럼 엄격하고도 제한적인 해석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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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김경호, ‘후보자 검증을 위한 의혹 제기와 후보자비방죄의 위법성조각 판단 기준에 관한 연구 : 대법원 판결을 중심으로’, 언론과학연구 제13권3호, 2013.
- 백태웅,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와 미필적 고의의 법리’, 법과사회 49호, 2015.
- 조국, ‘일부 허위가 포함된 공적 인물 비판의 법적 책임 ?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 판례 비판을 중심으로 -, 서울대학교법학 제53권 제3호, 2012.
- 홍승희, ‘국민참여재판법 개정안의 개선방안 – 배심원 평결의 기속력을 중심으로 -’, 형사정책연구 제25권 제3호, 2014.